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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준 희 이비인후과 원장“깨달음 추구하며, 어려운 이웃 돌아보라” |
대불련 수련회서 받은 신선한 충격 금강경 수행 20년…의료봉사 30년 용수보살의 <지론(智論)>에는 인도 계빈국에 살던 한 스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큰 법회가 열리고 있는 신도의 집에 들어서려다가 옷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문지기에게 박대를 당했다. 다시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법회장에 들어선 스님이 음식을 옷에다 먹였다는 일화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청맹과니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말이다. 이준희이비인후과의원을 찾아가는 길이 그랬다.
지난 11월26일, 서울 지하철 7호선 마들역 인근에 위치한 병원을 찾는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30여년은 됐음직한 낡은 건물엔 작은 상점들이 빼곡히 입주해 있었다. 흔히 병원하면 깔끔하고 정돈된 건물을 연상하는 것과 다른 분위기다. 문 하나를 열고 병원으로 들어서자 온화한 인테리어가 좀 전 건물 분위기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잘 꾸민 커피숍에 온 기분이다. 약간 지저분한 느낌의 건물이 사바세계라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보여주는 병원의 분위기는 연화장의 세계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막 진료를 마친 이준희(53세) 원장을 만났다. 병원 분위기만큼이나 온화하고 밝은 웃음을 지닌 사람이다. “불교가 제게 영향을 준 것이 세가지 있어요. 첫째는 미래를 불안해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 둘째는 아상을 줄이고 포용력을 키워준 것, 셋째는 상대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죠.” 이준희 원장의 삶을 들여다 보면 소위 ‘엘리트’의 전형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줄 곳 ‘최고’의 성적을 유지하고,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학교와 집만 오가면서 공부를 했단다. 하지만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의과대 수업을 받으면서 회의가 들었다. ‘이게 무슨 인생인가’ 대학 첫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 때 우연히 따라간 서울대 불교학생회 연합수련회는 이 원장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산 범어사에서 10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수련회에서 예불, 발우공양, 강의를 들으면서 비로소 이준희 원장은 “한숨 쉬어가는 법”을 알게 됐다. 우등생이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이후 의과대불교학생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이준희 원장은 몇몇 선후배들과 뜻을 모아 무료순회진료를 시작했다. “의과생들이 다 그렇지만 항상 ‘과락’이란 칼날 위에서 공부를 해야 했죠. 매주 시험에다가, 한 과목만 낙제를 받아도 한 학년을 다시 다녀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깨달음을 추구하고, 사회의 어려운 사람을 돌보라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가르침’을 버릴수는 없었어요.” 1970년대 시작한 자원봉사활동은 아직까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선재의료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외국인노동자와 서울역 노숙자를 대상으로 무료 시술을, 또 노숙자 수용시설인 ‘은평의 마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뚝배기처럼 묵묵한 삶은 건물에서도 나타난다. 20년째 더 확장하지도, 옮기지도 않고 묵묵히 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모친을 따라 ‘금강경 독송회’를 알고 나서 20년째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금강경>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이준희 원장은 “부처님께 마음을 받치듯, 사람을 대하고 물질을 접하려고 매일매일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강박관념이 주된 원인이예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더 나은 삶, 보다 빠른 정보를 추구해야 하죠. 하지만 사찰에 들어서면 그 순간만은 끈을 ‘탁’ 놓게 되요. 현실에서 다시 치열하게 살아야겠지만, ‘더 나은 가치’에 대해 법문을 듣고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불교가 주는 매력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이준희 원장은 현재의 마음에 살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심이나 미래심은 불안과 초조함을 일으키지만, 현재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은 이런 걱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한번 돌아보려다 보니 우선 다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줄어들고, 나의 아상이 줄어들게 되더군요.” 결국 남을 포용하는 마음이 일어나 대인관계가 원만해졌다는 설명이다. 이 원장이 꼽는, 불교를 알게 돼 행복한 또 다른 이유는 인과응보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받을 경우에 ‘내가 전생에 저 사람에게 잘못을 한 결과구나’ 생각을 하다보니 “물건을 잃고 마음까지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물건만 잃는 지혜가 생겨나더라”는 것. 그래서 이준희 원장은 “인과응보를 믿으면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현재도 매주 일요일이면 노모와 함께 경기도 용인에 있는 법당을 찾아 <금강경>을 공부하며 ‘여여’(如如)하게 살고 있다는 이 원장과의 만남은 마치 ‘마음공부’에 대한 법문을 듣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처럼 살면 되요. 그것이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삶의 자세 아닌가요? 한 생각 바꾸면 참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데.” 이 원장의 환한 미소가 마주 대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밝혀주고 있었다. 안직수 기자 jsahn@ibulgyo.com #이준희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하고 국립의료원에서 이비인후과 진료를 시작으로 28년째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인제대.국립의료원 외래교수와 서울대 이비인후과 임상자문의를 맡아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선재의료회 회원으로 서울 봉은사와 서울역에서 외국인노동자, 노숙자 무료진료를 하고 있으며, ‘금강경 독송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