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西山大師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덮인 들판을 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지니.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
* 눈길을 걸을 때 마다 누구나 느꼈을 이 감상을 우리는 지금 얼마나 염두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거칠고 난잡하고 지조를 지키지 못했으며 아정(雅正)하지 못한 행동거지를 자신의 아들이 이어받고
이웃이 알며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에 까지 남는다면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 작품은 일반에게는 백범 김구의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어려운 결단을 내릴 때마다 백범이 되새겼다던 이 시는 사실 서산대사(1520 ~ 160 4)의 「선시(禪詩)」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이 작품이 빗돌에 새겨진 형태로 발견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의 작자 문제다. 필자는 북한 문예출판사에서 지난 1985년 발간한
한시집 2권 328면에서 이 작품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이 작품의 제목을 야설(野雪)이라고 적고 있으며 답(踏)자는 천(穿)자로 일(日)자는 조(朝)자로
작(作)자는 위(爲)자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 전체의 의미는 차이가 없다.
그 책에서는 지은이를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 : 1771 ~ 1853)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규장각도서관에 그의 문집 필사본이 3종 소장되어 있는데 확인 결과 이 작품은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는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과 장지연이 편찬한 '대동시선(大東詩選)' 등에 이 시가 순조 때 활동한 시인 이양연(1771 영조 47~1853 철종 4)의 작품으로 나와 있다고 전했다. 이 시에서 '穿雪(천설)'은 '踏雪(답설)'의 잘못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안 교수는 위 문헌들에 '穿雪'로 수록돼 있다고 밝혔다. 서산대사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이 시가 수록돼 있지 않다고 한다. 이것을 계기로 이양연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시를 남겼나 하는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명대(明代) 화가 육치(陸治)의 '답설(踏雪)'
이양연의 자는 진숙(晉叔), 호는 임연(臨淵). 광평대군(廣平大君) 여(璵)의 후손이며 상운(商雲)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많은 책을 읽어 모르는 것이 없다는 평이 있었고 사대부로서 농민들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많이 지었다. 율곡 이이 선생의 학문을 평생 사모하였고, 수 백수의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1830년(순조 30) 음보(蔭補)로 선공감첨정에 오른 뒤 도사·호조참판을 거쳐 1852년(철종 3) 동지의금부사에 이르렀다. 시에 뛰어났는데 시풍이 호매격렬(豪邁激烈)했다. 만년에 후학교육에 힘썼으며, '심경'과 '근사록'으로 스승을 삼아 제자백가는 물론 역대 전장문물(典章文物)·성력술수(星曆術數)· 전제군정(田制軍政)에 널리 통하였으며, 늙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아 많은 저서를 남겼다.
민요시 '촌부(村婦)' '전가(田歌)' '해계고(蟹鷄苦)' 등이 대표적이다. 저서로 '석담작해(石潭酌海)' '가례비요(家禮備要)' '상제집홀(喪祭輯笏)'이 있다고 한다.
이양연의 시 몇수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서 유배 살던 집을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 '영영백운도'
村 婦 마을 아낙네
君家遠還好(군가원환호) 자네 친정은 멀어서 오히려 좋겠네 未歸猶有說(미귀유유설) 집에 가지 못해도 할 말이 있으니 而我嫁同鄕(이아가동향) 나는 한동네로 시집 와서도 慈母三年別(자모삼년별) 어머니를 3년이나 못 뵈었다네
自輓(자만) 내가 죽어서
一生愁中過(일생수중과) 한 평생 시름 속에 살아오느라 明月看不足(명월간부족) 밝은 달을 보아도 만족하지 못했소 萬年長相對(만년장상대) 이제부턴 만년토록 마주 볼테니 此行未爲惡(차행미위오) 황천 가는 이 길도 싫지 않다네
躱悲(타비) 슬픔을 참고
入門還出門(입문환출문) 문으로 들어가려다 도리어 나와서 擧頭忙轉矚(거두망전촉) 고개 들어 황망히 두리번거리네 南岸山杏花(남안산행화) 남쪽 언덕엔 산살구꽃 가득하고 西洲鷺五六(서주로오륙) 서편 물가에는 대여섯 마리 해오라비가 보이네 (躱 피할, 몸 타, 矚 볼 촉)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몇 달 상관으로 떠나 보낸 가장의 아픔이 은근하면서도 둔중하게 다가온다. 제목에서 보듯, 슬픔을 표나게 내세우는 대신 ‘딴청’을 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슬픔과 아픔을 자극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節食牌銘 절식패명(절식위한 경계의 말을 적은 팻말)
適喫則安(적끽즉안)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고 過喫則否(과끽즉부) 지나치게 먹으면 편치 않다 儼爾天君(엄이천군) 의젓한 너 천군이여 無爲口誘(무위구유)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客夢 나그네의 꿈 鄕路千里長(향로천리장) 고향 길 천리나 길고 秋夜長於路(추야장어로) 가을밤은 길보다 더 길구나 家山十往來(가산십왕래) 고향 산을 열 번이나 오갔어도 簷鷄猶未呼(첨계유미호) 횃대의 닭은 아직도 울지 않네 (簷 처마 첨)
村家 시골집에서
抱兒兒莫啼(포아아막제) 아가야 아가야 울지 말아라 杏花開籬側(행화개리측) 살구꽃이 울타리 곁에 피었구나 花落應結子(화락응결자) 꽃이 떨어져 열매를 맺으면 吾與爾共食(오여이공식) 아가야 너하고 함께 따 먹으리라
村夕 촌락의 저녁
秋日在林稍(추일재림초) 가을 해 나무 끝에 떠있고 淸陰落溪水(청음낙계수) 맑은 그늘 개울물에 떨어진다 山屋兒呱呱(산옥아고고) 산집의 아이 엉엉 울고 山婦婑未已(산부유미이) 산촌 아낙은 아직 방아를 찧는다 (婑 아리따울 유)
山亭 산속 정자
山亭白日閒(산정백일한) 산속 정자에 낮이 고요한데 山鳥啼兩兩(산조제양양) 산새는 짝지어 울고 있어라? 柳絮飛將下(유서비장하) 버들개지 날아 떨어지려다 輕風吹復上(경풍취부상) 미풍에 불리어 다시 올라간다 (絮 헌풀, 버들개지, 헌솜 서)
老婦夜中績 한밤중의 길쌈
老婦夜中績(노부야중적) 늙은 아내 한 밤중에 길쌈하다가 先聞山雨時(선문산우시) 산 비 막 내리는 소리 들었네 庭麥吾且收(정맥오차수) 뜨락 보릴랑은 내 거둘 테니 家翁不須起(가옹불수기) 당신은 일어날 필요 없어요
白鷺 백로-1 蓑衣混草色(사의혼초색) 도롱이 의색이 풀빛과 같아 白鷺下溪止(백로하계지) 백로가 냇가에 앉았네 或恐驚飛去(혹공경비거) 혹여 놀라 날아 갈까 봐 欲起還不起(욕기환불기) 일어나려다 다시 그대로 앉아버렸네
白鷺 백로-2
白鷺宜白沙(백로의백사) 백로는 백사장서 놀아야 하니 莫向春草碧(막향춘초벽) 봄풀 푸른 곳엔 가지 말아라 不須自分明(불수자분명) 모름지기 스스로 분명하지 않으면 易爲人所識(역위인소식) 남들이 알아채기 쉽게 된단다
깃털 빛깔이 흰 백로는 흰 모래사장에서 놀아야 제격이다. 그런데 자꾸 봄풀 푸른 속으로 날아드니, 그 흰 빛깔이 초록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백로야! 여긴 네가 놀 데가 아니니 백사장에 가서 놀아라. 네가 네 몸가짐을 옳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너 있는 곳을 금방 알아챌 게 아니냐!
秋草 가을 풀
秋草莫怨霜(추초막원상) 가을풀이여, 서리를 원망말라 秋殺亦生道(추살역생도) 가을의 죽음은 새로 사는 길이라 却從地上蘇(각종지상소) 도리어 땅에서 소생할 것이라 人生不如草(인생불여초) 인생이란 풀만도 못한 것인가
秋花 가을 꽃
霜林餘衰草(상림여쇠초) 서리 내린 숲에 시든 풀 남아 草花紅半瘁(초화홍반췌) 화초에 꽃들은 반이나 시들었다 病蝶力耐風(병접력내풍) 병든 나비 억지로 바람 참으며 搖搖貼不離(요요첩불리) 한들거리며 붙어서 떠나지 못한다
迷藏鳥 술래잡기 새
遠遠迷藏鳥(원원미장조) 저 먼 곳의 술래잡기 새 迷藏岑樾春(미장잠월춘) 산 그늘 봄날에 술래잡기 하누나 藏身鳴自衒(장신명자현) 몸 감추고 스스로를 뽐내며 우니 愧爾隱非眞(괴이은비진) 네 숨음이 참 아님 부끄러워라 (樾 나무이름 월)
半月 반월
玉鏡磨來掛碧空(옥경마래괘벽공) 옥 거울 갈다듬어 벽공에 걸었더니 明光正合照粧紅(명광정합조장홍) 밝은 빛 화장할 때 비춰보기 딱 알맞네 宓妃織女爭相取(복비직녀쟁상취) 복비와 직녀가 서로 갖겠다 다투다가 半在雲間半水中(반재운간반수중) 반쪽은 구름 새에 반쪽은 물 속에 (宓 엎드릴, 편안할, 성 복)
자료출처-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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