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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티무르가 보던 뽕잎을 내가 본다 티무르가 만지던 흙을 나도 만지고 제왕이 가리키던 설산을 나도 어루만진다 그러나 나는 어떤 새벽은 그에게 돌려주고 어떤 뽕나무는 받아들이고 같이 누릴 수 있는 달빛은 같이 섬긴다 그가 쓰던 구름은 나도 사랑하고 그가 이룬 욕망은 가만히 사양한다 그가 쉬던 아가위나무 그늘 아래 나도 앉아 쉬지만 그가 땅 위에 손가락으로 그려놓은 낙엽만큼 많은 제국은 그의 무릎 위에 조용히 되돌려주고 그가 보던 강물은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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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티무르의 고향
포플러나무여 너는 알고 있으리라
저 너른 들판의 기억과
찬연했던 날의 영광과
밖으로부터 불어오는 어떤 바람소리도
무찌를 수 있었던 위대했던 날들의 추억을
그대 알고 있겠구나
유목의 대지로부터
유라시아의 광야를 지나
유럽의 대륙을 모조리 호령하던 날까지
거수巨樹의 가슴이여
한혈마의 말발굽소리와
천산의 눈바람과
양들의 웃음소리까지도 죄다 알고 있겠구나
유르트yurt의 아침과 저녁을
모두 가슴에 품고 있겠구나
샤흐리삽스 Shakhrisabz -
티무르의 출생지
‘샤흐리삽스’는 ‘녹색도시’라는 뜻
옛적에 녹색이었고
지금도 푸른 땅이다
남쪽으로 제라프샨 산맥을 넘어
사마르칸트로부터 73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
티무르의 유적을 제하고 나면
비교적 한산한 지역
악사라이 궁전Aksaray palace의 입구 쪽으로 늘어선
신령스런 포플러나무 고목 몇 그루
제왕처럼 우뚝 솟아오른 땅
벌판은 아득하고
초목은 조용한 자리
거기 제왕의 고향이 있다
샤흐리삽스에서 제왕의 흔적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저 바람 속에 숨은 자취를 덜어내고 나면
남는 영광이 무엇일까
옛 제국의 아침은 오늘따라 겸손하다
풀잎들은 따뜻하고
어느 수목들도 거드름이 없다
티무르 -
한 번 뽑아든 칼은
악사라이 궁전 앞의 거대 포플러나무
유목의 새벽과 다른 아침을 베기 전에는
결코 도로 거두어들이지 않았었다
잔혹이 들불처럼 온 세상을 번지고
그의 군대가 한 번 지나간 자리에는
파괴의 피냄새가 두루 진동했으나
한 번 겨눈 창검은 도성을 모두 무너뜨릴 때가지
후회할 줄 몰랐었다
유목의 힘으로
백만 명에 이르는 열방들의 목을 베었으나
죽고 사는 시간은 뒤돌아볼 줄 몰랐다
1336년에 태어나서
1370년에 제국을 세운
중앙아시아 최대의 정복자
죽기 전에 세상의 절반을 정복하고
델리・앙카라・이스파한・바그다드・알타이까지
두루 정복의 영토를 넓혀가며
삼십 년 세월 동안
오로지 전쟁에만 몰두했던 인물
칼을 뽑아들면 어느 아침도 후회를 몰랐었다
투르크 종족의 후손으로
이슬람을 받들고
몽골의 바람소리를 죽는 날까지 존경했다
오직 정복의 새벽만이 맞이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시간
스무 살 젊은 나이에 낙마하여 다리를 다쳤기에
‘절름발이 티무르’는 그 후로는
한 번 말 잔등에 올라앉으면
죽는 날까지 말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트란스옥시아나의 패권을 잡은 뒤로는
‘단 한 차례도 진 적이 없는 절름발이’는
단 한 차례도 후회한 전쟁이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뿐이기에
목표를 쓰러뜨리기 전에는
한 번 뽑은 칼은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칭기즈칸과 차가타이 칸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가문의 핏줄이
칭기즈칸의 핏줄에 닿아 있기를 홀로 열망했다
전사와 필부는 죽이되 예술가는 살려주고
칭기즈칸의 혈통에 닿아 있는 자는 살려주고
이슬람을 간절히 섬기기보다는
‘술탄’이라 이름 불리기를 즐거워했다
정복의 땅마다 ‘성스러운 전쟁’이 지천이어서
불멸의 이름으로 밤과 낮을 내달렸다
서른네 살에 왕위에 오른 후로
일흔 살 나이에 숨을 거두기까지
적의 영토를 폐허로 만드는 것을 과업으로 삼고
전리품을 약탈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말 잔등에서 내리지 않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은 인물
그러나 애석하여라
정복이 아니면 무엇에도 입맛이 없어
일흔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명나라로의 정복의 길을 떠나는 도중
길 위에서 객사했으니 애석하여라
꿈이 끝났다
한바탕의 축제가 다한 자리
샤흐리삽스에 바람이 분다
녹색도시에 녹색 바람이 인다
이 바람 어디서 오는 바람일까
티무르로부터 오는 바람일까
제국으로부터 오는 바람소리일까
아니면 오늘을 살아가는
샤흐리삽스의 여염이 보낸 숨결일까
그러나 나는 제국의 바람소리는 바람결에 흘려서 듣고
여염의 바람소리만 내 가슴에 담는다
(이어짐)
첫댓글 자ㅏ연을 지배하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고 문명을 만들고 ... 언젠가는 빛볼 날도 있을 중앙아시아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