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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특별 기고
한국불교 영역의 현황 문제점과 향후 방향 (5)
삼국유사 영역의 필요성과 한국고대사 정립의 시급성
글 전옥배
(한국불교영어번역연구원 원장, 111nirvana@hanmail.net)
1.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현대적 의미와 한국고대사의 정립
[한국고대사의 정립-건국신화 (단군신화)-한국학과 한류의 기원-동북공정]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25대 충렬왕(忠烈王) 때 국사(國師) 일연(一然 1206-1289)이 편찬한 역사서이다. 삼국유사는 김부식(金富軾)의『삼국사기(三國史記)』와 함께 우리 고대사의 쌍벽을 이루는 역사서이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삼국유사의 ‘유사(遺事)’란 ‘빠진 혹은 누락된 역사’란 뜻이므로 특히 삼국(三國)시대의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란 의미이다. 삼국유사의 ‘유사’에서 우리가 지금 현대에 와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삼국사기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 부여 등 한국고대사에 관한 부분이다.
삼국유사의 기이(紀異)편 맨 첫 머리에는 우리 국조(國祖)인 단군이 중국 상고시대 요(堯)임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역사기록인『위서(魏書)』와 우리나라의 기록인 『고기(古記)』를 둘 다 같이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건국역사를 밝히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중국과 같이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임을 분명히 입증한 것이다. 일연은 단군을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로 삼고, 남북의 여러 부족국가와 고구려, 신라, 백제의 3국을 모두 단군의 후손으로 같은 뿌리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위대한 업적을 삼국유사를 통해 정립한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는 정덕본이 1512년에 복간된 이래 1914년에는 어윤적의 『동사년표(東史年表)』에 소개되었고, 1927년에는 최남선의 교감본이 이조 때 이계복의 정덕본 간행 이후 415년 만에 국내에서 발간되었다. 그 후 최초의 『삼국유사』 국역이 진행되어 『조선야사전집(朝鮮野史全集)』에 수록되었으나 그것은 부분적인 번역일 뿐 아니라 거의 현토(懸吐)를 단 정도이어서 명실상부한 국문 번역본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46년, 이가원 등의 사서연혁회의 첫 국역 단행본 삼국유사가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삼국유사』는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어린이용이나 부분적인 번역을 제외하고도 약 50종 이상의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또 이와 관련된 단행본만 해도 350권이 넘으며, 국내외의 크고 작은 관련 논문은 3,000편을 넘어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많은 양의 관련 자료가 있다.
현재『삼국유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소장 학자들이나 몇몇 연구소도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삼국유사에 관한 관심과 연구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진작 주류 역사학계나 정부에서는 그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체계적인 연구에는 관심이 없어 아직도 정확한 번역본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쉽게도 50종이 넘는 대부분의 한글 본 번역서들은 부분적인 오역이나 불완전한 해석 등, 여러 가지 많은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 한글 번역본의 실정이 이렇다보니,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어 번역의 오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영어 번역본만 하더라도 주류학계나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연세대학교에서 출판한 삼국유사 영역본은 1960년대 미국대사관에 근무했던 하태응 선생이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대우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번역한 것이기에 학문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고, 2000년 들어서 출간한 전남대학 출판부 발간 영역본도 현대 아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되었고 번역자가 영문학 교수이기 때문인지 전문성이 많이 떨어진다. (이 기고문 하단부에 2권 영역본의 오역 사례와 문제점 검토 참조)
또 외국어를 전공한 우수한 학자가 외국어 판본인 삼국유사의 번역에 투입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들에게는 번역을 위한 정확한 한국어 저본(底本)이 기본이 되어야만 바른 번역이 나올 수 있다. 저본인 한글번역서의 오역(誤譯)들은 그들의 외국어 능력과 무관하게,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왜곡과 오해까지 일으켜 국제화 시대에 바른 한국의 소개가 불가능함은 물론 한국 문화가 오해받을 소지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현재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삼국유사의 두 영어 번역본에서 문제점들 짚어보고 향후 영문 번역의 바른 방향을 삼국유사의 영역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왜 21세기에 들어 새삼스럽게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유사가 현대적 의미로 다시 그 중요성이 재해석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한문 원본을 해석한 국문본의 많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영역의 시급성이 이 시대에 유독 요구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삼국유사가 이 시대에 각광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삼국유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주는 독보적인 역사서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높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삼국사기에서 다루지 못한 고조선, 부여, 발해, 가야 등의 삼국유사의 기록들은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이해하고, 정립하는데 중요한 사료(史料)로서의 역할을 한다. 특히 단군신화의 기록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더불어, 삼국유사는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담고 있어 21세기를 들어 전 지구촌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는 한국학과 한류(韓流)의 뿌리에 대한 이해를 이 삼국유사의 대중적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한국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영역의 필요성이 있다. 또한 단순한 역사서가 아닌, 민족의 설화, 문화, 종교 등을 담고 있는 삼국유사는 다양한 관점의 한민족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일연은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몽고 침입으로 야기된 전쟁으로 고통 받았던 고려 후기에 중국문화와 대등하면서도 독자적인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삼국유사라는 위대한 역사책을 집필한 것이다.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사의 신화와 전통을 담고 있는 귀중한 역사서로, 지금은 중국 땅이 된 고조선, 고구려, 발해, 부여 등 역사적으로 우리 땅인 만주 동북 삼성의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사서(史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의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한 상태이다. 아예 우리 정부나 주류 국사학계에서는 관심의 밖이고, 특히 건국시조로서의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21세기에 들어와 중국 정부가 직접 관변(官邊) 역사학계를 동원해서 동북공정이란 이름하에 아예 중국 고대사를 왜곡하여 만주 땅이 원초적으로 중국의 것임을 역사적으로 왜곡하는 어처구니없는 작업을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삼국유사의 그 내용과 의의는 현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며 그 영역(英譯)의 시급성은 지금의 세계화된 시대에는 필요하다. 아울러 한국학, 한류 관련 한국의 정체성과 한민족의 원류로서 뿌리 찾기 연구는 우리 고대사를 바로 잡는 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대한 시대적 요청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세계적 트렌드를 보면 한국에 대한 나라 밖의 관심이 더 클 정도로 한류와 한국학에 관한 해외에서의 관심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뜨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내에서는 우리의 한류에 대해서 왜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Cf. 국제교류재단 한국학 백서 참조)
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과는 별도로 왕력(王歷) · 기이(紀異) · 흥법(興法) · 탑상(塔像) · 의해(義解) · 신주(神呪) · 감통(感通) · 피은(避隱) · 효선(孝善)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력은 삼국 · 가락국 · 후고구려 · 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이다. 특히 본 기고문이 주로 취급하고자 하는 기이편은 고조선으로부터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57항목으로 서술하였는데, 권1 · 2에 계속된다. 기이편의 서두에는 이편을 설정하는 연유를 밝힌 서언(敍言)이 붙어 있다.
2. 단군신화와 건국신화
-그 의미와 문제점들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에서 우리 역사로서 약 5천 년 전의 있었던 역사적 기술인 사실이다. 하늘의 신(神)인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했다. 이를 본 환인은 아들의 원(願)을 들어주기 위해 천부인(天符印) 세 가지를 내려주며,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보냈다. 환웅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농업, 의학, 법률 등을 가르치며 인간 사회를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고 싶다고 간청한다. 환웅은 그들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그 음식을 먹으며 인내하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랑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지만, 곰은 끝까지 인내하여 웅녀라는 여인으로 변하고, 이후 웅녀는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된다. 단군은 이후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고대 한국의 첫 번째 왕으로 군림한다.
단군신화의 곰의 “인내(忍耐)”, 그것은 현대에 와서 세계인들이 “한강의 기적”이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한류(Korean Waves)를 통해 인정하는 바로 우리 민족의 DNA에 새겨져 내려온 “은근과 끈기”이다. 이는 반만년 동안의 수많은 (정확한 숫자는 논란이 있지만 1,000번 내외로 추정) 외국 침략 의 역사 속에도 견디어 내어 온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체험된 DNA 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단군신화는 단순한 신화로 그치지 않고, 고조선이란 나라가 우리 고대사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상징적 설명을 담고 있다. 환웅이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것은, 신성한 존재가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인간 세계에 내려왔다는 천강설(天降說)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고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신성한 존재와 연결시키고, 그 통치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곰이 인내심을 통해 인간이 되는 과정은,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통한 한국인들이 인내와 “은근과 끈기”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내용은 단군 신화가 단순한 신화적 서사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적 유산임을 보여주고 있다.
[단군 신화와 고조선의 역사적 상징성]
단군신화는 단순히 한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조선은 한국 최초의 국가로, 단군왕검은 그 창시자로서 한국 민족의 기원임을 나타낸다.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이는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고조선은 이후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나라로 발전했으며, 법률 체계와 농업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고대 국가의 모습을 형성했다. 8조법과 같은 고조선의 법률은 당시 사회 질서 유지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고조선의 발전은 단군 신화 속에서 환웅이 인간에게 농업, 법률, 의학 등을 가르쳤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며, 단군 신화가 단순한 신화적 서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역사적 사건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단군 신화의 현대적 해석과 의의]
현대에 이르러 단군신화는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매년 개천절(10월 3일)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단군 신화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이는 단군 신화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군 신화는 또한 한국의 민족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인들은 단군 신화를 통해 민족의 기원을 되새기며, 자주성을 지키고자 했다. 특히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단군의 건국이념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오늘날에도 한국의 교육 이념과 국가적 가치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교육열(대학교육 인구대비 통계와 해외유학생 숫자, 유아교육 등)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민족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금 세계가 한국의 고도성장과 우리의 교육시스템을 배우고자 한국에 많은 유학생들을 보내고, 또 세계 각국 정부 관리들이 한국에 와서 정부 유관 부처를 방문하여 한국의 성공 모델을 배우려고들 하고 있지만 그들이 우리의 성과를 이론으로만 배워서 한국처럼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 DNA에 새겨진 우리민족의 체험을 통해 얻어진 정신력이 없이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 경제 성장이나 교육이 그들의 성공 모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이 정신을 한국인의 오랜 역사 얻어진 “Can-Do Spirit”라고들 이야기 하고 있다.
[단군 신화의 상징성과 문화적 전승]
단군 신화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해서 전승되고 있는 문화적 상징이다. 다양한 예술 작품과 문학에서 단군신화가 재해석되며,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교육과정에서도 단군 신화는 중요한 역사적 이야기로 다루어지며, 어린이들에게 한국의 기원과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교육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의 다양한 미디어에서도 단군 신화는 여러 형태로 재현되고 있으며, 특히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단군 신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전승 과정은 단군 신화가 여전히 한국인의 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원천임을 보여준다.
[21세기 건국신화의 의미]
홀대받는 단군신화… 기념관조차 하나 없어
정부지원 없는 국조(國祖) 제사…‘무늬만 국경일’ 개천절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그러나 고조선 건국이 신화니 역사니 하는 오랜 논쟁, 남북한 간의 시각차, 정부의 무관심 등으로 갈수록 그 의미가 퇴색돼 가고 있다. 특히 우리 건국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달리 국민들에게조차 널리 사랑받지 못한 채 초·중·고생의 과제물 주제, 연례적인 기념행사 등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 관심·지원 전무
국내에는 단군기념관이나 단군신화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기관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내 어느 박물관에도 고조선 실이 별도로 설치돼 있지 않다. 국립박물관 청동실 안에 고조선 유물이 일부 전시돼 있을 뿐이다. 국립박물관 관계자는 “고조선 역사가 중요하지만 고조선 실이 따로 없는 것은 관련 유물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관련 유물 자료 대부분이 북한에 있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조로 불리는 단군의 제사는 국가적인 행사로도 치러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정부의 지원도 거의 없다. 사단법인 현정회는 매년 개국을 기념하는 ‘개천절 대제(大祭)’를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 안의 단군성전에서 조촐히 치르고 있다. 이 단군성전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이 숙봉 여사 등 세 자매가 1968년 사재를 털어 건립한 것으로 현정회가 맡아 관리하고 있다. 규모는 대지 800㎡, 성전 건물 53㎡에 불과하다.
단군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잊히지 않고 있는 것은 초·중학교 과제물을 통해서다.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단군, 단군신화, 단군왕검, 고조선 등에 대한 질문과 관련 답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초·중학생들이 지적인 호기심이 아닌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재설 우석대 한국어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정부부터 단군을 홀대한 탓인지 우리 국민들 사이에 언제부턴가 ‘거짓’ 또는 ‘허구(虛構)’ 건국 신화는 ‘필요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다.
◆ 갈등 요소로 전락 (북한과 중국의 경우)
단군은 북한에서는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북한은 1993년 단군릉을 평양시 대박산 기슭에서 발굴, 대규모로 축조하면서 “단군이 5011년 전의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등 단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각에서 단군 신화를 선전 도구와 내부 단결용으로 이용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지만 단군이 남측에서 보다는 북한에서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경제성장 등 대부분 한국보다 뒤지지만 삼국유사의 연구가 남한 보다 낫다는 평가와 단군신화의 작업을 북한에서 민족 단결의 방편(方便)으로 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이다. 사실 우리 삼국유사의 연구가 일본과 북한의 연구나 실적 보다 못하다는 것은 이미 우리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최초 연구가 1910년대 일제 통치하 초기에 이루어짐)
단군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과 시각차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재야 사학계가 중국 본토 상당 부분이 과거 우리 영토였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강단 교수들의 주류가 실증적 증거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촉발된 갈등은 단군의 존재, 단군릉 등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중국에서 동북공정의 일부로서 김치와 홍삼까지 자기들의 고유 식품과 영영제로 조작하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문제는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갈등들은 향후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와 맞물려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최근의 서해공정 참조).
국내에서 단군신화와 단군에 대한 종교적 갈등도 좀처럼 봉합되지 않고 있다. 홍익문화운동연합이 지난 1997년부터 99년까지 전국 초·중·고교에 370여개의 단군상을 설치하자 99년부터 단군상 수십개가 훼손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소행이지만 아직도 인터넷에서는 단군상을 둘러싼 네티즌 간의 찬반 댓글이 수천 건에 달하는 등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단군상은 우상 숭배에 해당하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가의 시조(始祖)로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현재 인구의 30%를 상회하는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 포함)의 근본주의자들에 의하여 단군 부정과 훼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바 정부나 학계에서 이를 단순 종교 갈등으로 일어난 폭력 사건으로 치부하고 건국신화와 관련된 중대한 사태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30% 이상 되는 기독교의 정치적 영향과 불교 측의 무관심도 문제. 정부와 불교계가 대오각성 해야. 참고로 중국과 일본의 기독교 숫자는 전 인구의 1% 내외.]
◆ 체계적 대책 마련 시급
국내 대형 서점가에서는 단군신화와 고조선 관련 해설서가 20권 가량 팔리고 있지만 이 판매량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하면 몇 십 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고조선 시대 이야기를 다룬 삼국유사 등의 판매량은 아주 미미할 정도로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단군신화가 국민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서서히 잊힐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주도적으로 나서서 단군과 고조선을 재평가하고 국민적인 관심을 고조시켜야 한다는 것이 학계 관련 학자들의 중론이다. 즉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지속적, 체계적으로 상고사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고 국민들이 독도 못지않게 고조선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문식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고조선을 포함한 상고사 연구가 아주 부족한 상태”라며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나서서 강화도와 태백산의 첨성단 등 고조선 유적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시작하고 국민들도 상고사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하고 있다.
3. 중국의 동북공정과 서해공정의 역사 왜곡 문제.
1) 동북공정과 우리측 대응 미비 문제의 심각성
동북공정은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를 줄인 말로서 21세기에 들어와서 새산 중국 정부와 학계에서는 한 반도 북부와 만주에 있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가 모두 중국사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개방정책 추진 이후 공산주의 체제(體制)의 약화와 더불어 1990년대 소련연방 해체 전철을 밟을 우려에 대한 다민족 국가의 사회통합 논리로서 소수민족 분리 독립에 대한 운동에 대비한 역사 왜곡 프로젝트로 중국사회과학원이 주도로 한 연구 사업이다. 한국과는 만주 조선족의 분리와 북한 붕괴 이후 북한 영토에 대한 연고권 주장까지 포함된 것이다.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중국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이 주도해 해당 지역의 역사, 문화, 지리 등에 대해 연구하는 프로젝트이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귀속시킨 동북공정의 실체가 2003년 국내에 처음 알려지면서 한국 학계와 국민들은 큰 충격이 빠졌다. 공식적으로 동북공정은 2007년 마무리됐지만 연구 지원 기간이 끝난 것일 뿐, 중국의 동북 3성에 대한 연구와 한국사 왜곡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래 최근의 서해공정 참조).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중국 동북지역부터 아프리카까지 ‘하나의 길’로 잇는 경제벨트) 정책과 맞물려 역사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중심이 되는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상황으로 이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중국 학계는 오랜 기간 중국 중심의 일원적·일방적 세계관을 고수하며 중국에 대한 고구려의 종속성을 강조하고, 고구려가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는 방식의 연구 방법을 택했다. 또 한·일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않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의 가치를 평가절하 함으로써 오로지 중국 사료만을 이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2) 최근 계속되는 서해공정 문제
서해공정의 문제는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해양 강국 건설’ 선언 이후 남중국해에 알박기 구조물 설치로 영유권을 확장한 중국이 최근에 와서는 한국의 서해(西海)를 대상으로 ‘서해공정’에 속도를 내고 있어 한국과의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서해공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중국이 2018년부터 서해 잠정조치 수역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중국의 주장: 중국은 이 구조물이 어로 활동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서해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구조물 설치: 2024년까지 여러 형태의 고정 구조물이 설치되었으며, 이는 한중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관련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외교적 반응: 한국 측은 중국의 구조물 설치에 대해 항의했으나, 중국은 한국의 해양기지를 언급하며 반박했다. 현재 협상 상황: 한중 양국은 구조물 철거 문제에 대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은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낮다. 이와 같은 상황은 서해에서의 해양 분쟁과 관련된 복잡한 외교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심상치 않은 중국의 ‘서해 공정’…이번엔 부표 13개 설치 해리 해리스 전 美대사도 “서해, 제2의 남중국해 우려”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과 이어도 인근 등 동경 124도까지 대형 부표(浮標) 3기를 증설해 현재 총 13기의 부표가 서해 주요 해상 길목에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은 ‘기상 관측용’으로 부표를 설치했다고 주장하지만, 부표 대부분에는 첨단 복합 센서가 장착돼 해양 데이터 수집뿐 아니라 군사 정찰 목적으로도 운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철제 구조물뿐 아니라 ‘바다의 정탐병’이라 불리는 부표도 늘려가며 서해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의뢰해 입수한 군 자료에 따르면, 해군은 2023년 5월 20일 제주 이어도와 동경 123도 사이에서 새로 설치된 중국 부표 3기를 발견했다. 정부가 2018~2020년까지 총 10기의 중국 부표를 확인해 중국에 항의했는데도, 3기를 더 설치한 것이다. 부표 대부분은 폭 3m, 높이 6m 크기로 알려졌다. [출처: 중앙일보 2025년 6월1일자, 조선일보 2025년 5월 31일 자]
PMZ는 한중 양국의 200해리(370㎞)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해역이다.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인근 공해상에 해양 관측용 부표를 추가로 설치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6월1일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해군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4월30일 기준 서해 PMZ 안팎에 해양 관측 부표라고 주장하는 설치물을 13개 띄우고 있다. 부표 3개는 2023년 5월 세워졌는데, 이는 중국이 필리핀과 남중국해에서 해상 영유권 갈등을 빚던 시기다. 중국은 당시 필리핀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인근에 부표 5개를 설치하자 맞대응 차원에서 등대용 부표 3개를 세운 바 있다. PMZ는 바다의 국경선으로 불린다. 이 구역에선 항행과 어업을 제외한 시설물 설치나 자원 개발 등의 행위는 금지된다. PMZ 일대는 국제법상 공해이지만 중국은 동·남중국해에서도 유사한 부표를 띄워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서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국 군함의 안전한 항로를 확보하기 위한 이른바 '서해 공정'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지난달 29일 부산에서 열린 해군 주최 국제해양력심포지엄에서 “중국은 남중국해를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서해로 시선을 돌려 PMZ를 침범하고 있다”며 “미국에선 서해가 제2의 남중국해가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고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PMZ 내 중국 측의 구조물 무단 설치 등 관련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해양주권 보호를 위해 유관부처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군에 따르면, 부표 13기 가운데 1기는 PMZ 내에 설치돼 있다. 정부는 2018년 2월 이 부표를 발견해 PMZ 밖으로 철거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비례 대응 차원에서 PMZ 내에 우리 부표를 설치하고 현재도 유지 중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한중 해양협력대화에서도 중국의 부표 증설 문제를 지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부표 13기는 한국 영해가 아닌 PMZ 안팎의 공해상에 설치됐지만, 민간 선박과 한미 해군 함정의 항행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부표 증설도 서해를 중국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 공정(工程)’의 하나로 분석된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2025년 6월1일 자]
- 다음호에 계속
필자 전옥배는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금융계에 일하다 퇴직하고
50대 중반인 2,000년에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2005년에 한국불교영어번역연구원(KIBET)을 설립하였다.
2014년에 한영불교대사전을 발행하면서 한국불교 영역화 작업을 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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