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이전의 옥기에 이미 도철문의 원전이 나타납니다.
** 청동기와 도철문
도철이라고 말하는 것은 귀면의 가면 형상이다. 옥기 때 이미 나타났다. 삼성퇴 청동기 가면에서 도철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지만, 청동기의 도철문은 과거의 옥기와는 양식에 변화가 나타났다. 상나라 중기와 말기에 유행한 도철이라고 부르는 동물 모양의 가면이 유행하였다.
도철이라고 말하는 동물의 문양은 두 마리의 용이 옆 모습으로 서로 코가 맞닿도록 붙여 놓으므로 전체적으로는 정면을 바라보는 가면의 모습이다. 에드버그 콘스텐이 지적한 도철의 모양을 보자.
“도철은 앞에서 보면 가면처럼 보이는 동물의 얼굴을 말한다. 도철은 청동기의 표면에 남작 엎드려 있고, 얼굴 옆으로 몸통으 암시하는 부분과 다리, 꼬리가 보인다. 표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선의 모양이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반쪽짜리 얼굴 두 개가 이마에서 코까지 내려오는 선(가공의 선이든, 이음매에 나타난 선이든)을 중심으로 양쪽에 대칭을 이룬다.”
도철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최근에는 양저 문화의 옥기에서 뿌리를 찾는다. 그러나 상의 도철면은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사유의 변화가 왔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주례에는 고대에 제사를 지내는 방식을 예시하였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에 천자와 제후가 제사를 올렸다. 각 제사 때마다 다른 동물 모양의 제기를 사용하였다. 제기를 동물의 형상으로 만드는데는 고대 제사에 소, 양, 돼지, 닭, 개를 재물로 바치는 희생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의례에 동물을 바치는 것을 조천(朝踐)이라 하고, 술잔을 올리는 것을 조헌(朝獻)이라고 하였다. 술을 바치는 제사를 나(裸)라고 하였다. 제사에서 음식과 술을 바치는 일은 중요하였다. 술은 마시지 않고 땅에 뿌렸다. 청동기가 제기로 만들어지면서 신령한 동물을 문양으로 하였다.
청동기가 제기로 만들어지던 시기는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국가가 형성되고, 농업 중심 산업이 나타난 시기이다. 부권사회를 지탱하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 예법으로 발전하였다. 이 예법이 주나라 때 이르면 종법이 되고, 주례가 되었다. 상왕조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신정사회라면 주나라는 혈연관계를 기본으로 하여 종법제와 봉건제로 퉁치 규범으로 삼았다.
중국의 청동기는 무덤과 제사의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경사회로 정착하면서 신분의 계층화를 드러내는 국가의 성립시기와 일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청동기는 심미적인 여러 장식과 형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배경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 사람은 신령한 동물을 통하여 신과 소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기에 도철문을 새겼다.)
첫댓글 귀한자료 고맙습니다.. .
중국미술을 공부해보면 처음에는 의미 있는 문양(주로 종교적인 의미를 가집니다.)이지만, 인지(人知)가 발달하여, 문자가 발생하면 문양의 내용이 문자로 바뀌고 문양은 장식으로 바뀝니다. 장식이 되면 더 화려해지고 ------, 그러다가 글자로 의미 전달을 하면 제기(그릇)은 오히려 단순해집니다.
글(청동기에 새겨진 글-명문)이 길어지고 -- 글을 읽어보면 인간 사상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서예 공부를 하시면서, 그런 변화가 읽어나간다면 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