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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말씀: 디모데후서 4:1~8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의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구원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길을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 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니라 아멘.
♠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라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자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최후 부탁 혹은 최후 명령을 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이 이 디모데후서를 쓰시고 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네로 황제에 의해서 목배임을 당하여 순교 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이 마지막 유서와 같은 이 내용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참 중요한 의미가 있다 라는 생각이 됩니다. 1절 말씀에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다 나타나야 하고 그의 심판 자리 앞에 우리는 다 서야 한다. 우리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그래서 주님의 나라 예수님이 영원한 왕으로서 통치하실 그 나라가 우리 앞에 임할 것인데 그것을 다 기억해야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지금 내 육체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을 반드시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시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기도 훈련하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고침 받는다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게 된다거나 어떤 이런저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우리 신앙의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영원을 보내야 될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굉장히 얕은 신앙을 가지고 나의 삶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의해서 일희일비하면서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훈련
모든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사실 많은 고난의 삶을 감당하시면서 사셨죠. 우리가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의 문제도 해결해 주고 또 범사에 형통한 삶과 은혜들을 주신다 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맞는 말씀이지만, 이 기도 훈련을 하면 사실은 고난도 많이 받게 됩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나 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공격들이 임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삶에서도 그랬고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죠. 예수님에게는 아무 죄도 없고 잘못 하신 것도 없었지만 주님이 져야 할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그 고난의 삶을 감당을 하셨습니다. 또한 구약의 모세에게도 80세 될 때까지 약 40년의 광야 목동 생활을 하는 고난의 시간을 통해, 그의 인격과 삶이 성숙되고 이게 숙성되도록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 후 자기 혈기와 자기 욕심과 인간적인 자기 의가 다 부서진 후에야 그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사실 우리 신 목사님도 30세에 사업이 완전히 망하고 40세 되어서 이 기도를 시작을 하셨고, 기도한 지 10년이 지났을 때에야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시작하셔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고난에 떠내려가는 세월 10년과 기도의 세월 10년, 20년의 세월 이후에야 하나님께서 사역을 맡기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도 놀라운 환상을 보았지요. 하늘에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고 형제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상의 꿈이 성취되기까지는 고난의 시간들을 보내었고 그가 꿈을 꾼 지 23년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건 야곱도 마찬가지고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하 만민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니라 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해 첫 자녀인 이삭이 태어날 때까지는 25년의 인내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영원한 하나님과 그의 약속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인내의 시간 인내의 숙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실 왜 꼭 요셉이 23년이나 지나서야 어 그 꿈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좀 더 빨리는 안 되겠습니까? 이런 질문들은 불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전부 다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성숙시키는 시간이 있고, 또 나의 성숙과 더불어 그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한 여러 가지 주변적인 조건들이 함께 맞물려가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때는 언제나 주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모든 때는 하느님 의 것입니다. 심지어 신 목사님이 사역에 대해서도 언제 사역이 열립니까? 3번 질문할 때까지 답변을 안 하셨고 마지막 답변이 묻지 말라는 취지로 말씀하셨죠. 너의 사역이 내 사역이고 내 사역이 너의 사역이다. 때와 시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답하십니다. 그것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도 예수님의 답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때와 시간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오. 인간은 때와 시기에 항상 목을 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올무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마음입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것이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명하신 일과 뜻에 나를 충성스럽게 드려나가면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하라
2절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디모데, 사역자요 목회자였고 교회를 돌보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그가 해야 할 의무를 명하십니다.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오래 참고 가르치고 경책 경계 권면을 하라는 말씀을 줍니다. 물론 이 말씀은 사역자에게 주시는 말씀임과 아울러, 오늘 우리 영성학교 식구들에게는 이 말씀이 꼭 말씀 전파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너는 쉬지 말고 기도해라 라고 우리는 또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쉬지 않는 기도의 말씀으로 이 말씀을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 기도의 최종목적- 기도의 목적과 동기가 무엇인가?
3절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탈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영성학교 지금까지 수천 명이 오셨는데 이분들이 다 끝까지 이 기도 훈련에 공동체 일원이 되어서 주님 오실 때까지 끝까지 가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처음에 와서 1달 정도 하다가 그만 오시는 분들 계시고 1년 2년 같이 가시다가 또 그만두시는 분도 계시고 때로는 3~4년 같이 하다가 그만 나오시는 분도 계시고 심지어는 7~8년을 함께하다가 그만 오신 분도 계십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이 길에 함께 가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왜 이 길을 끝까지 같이 가질 못하는가? 내 안에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사욕을 따를 그 귀신이 주는 마음의 생각들을 받아들일 때 이 길을 끝까지 가는 데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제 많은 의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꼭 이 길만이 답일까? 이외에도 더 괜찮은 데도 많지 않은가? 꼭 이 가르침만이 정답인가라는 생각들을 귀신들이 막 불어넣을 때 내 귀가 가려워서 이 내 귀를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는 곳들을 찾기 시작하게 되고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얻는 일에 내 최종 목적을 두지 않으면 항상 현상에 의해서 내 신앙이 흔들리면서 가게 됩니다. 신 목사님도 사실 10년을 기도하셔서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기 시작하시고 이 사역을 맡기시게 됐잖아요. 빚이 해결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도 아니고 먹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을 구하는 기도에 자신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소원 이루는 일에 내 목표를 두기 때문에 그게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거나 내 의도와 다르게 어떤 상황들이 전개될 때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고, 귀신이 준 미혹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청주 우리 식구 분들도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내가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그 날에 내가 기쁘게 하나님을 만날 기대에 내 모든 소망을 두고 있는가? 하나님 내 마음의 모든 소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라는 고백을 내가 올려드리고 있는가? 입으로는 비슷한 말들을 하는데, 내 마음에는 육신의 소원이나 가려운 귀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서 하나님보다 그게 더 크게 내 마음을 잡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 믿음의 선한 싸움
사도바울은 6절에서 자신의 신앙 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자신의 생명을 전제처럼 부어 들였다고 고백합니다. 전제란 제사장들이 포도주나 독주를 이렇게 재단에 부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와 같은 다른 제사는 재가 남고 뭐가 남는데 이 전제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제사입니다. 다 증발해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나의 전체를 쏟아 부어 드렸다. 나는 흔적도 남지 않도록 사라져야 할 재물로 하나님께 나의 생을 드렸다고 고백합니다. 이게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사도바울은 마지막 7절을 고백해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침노하여 싸워서 빼앗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달려갈 길을 끝까지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죽음을 앞둔 이 노 사도의 고백 아래서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조금 하다가 어려움이 오면 포기하고 안 되나 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도바울은 선한 싸움을 하고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다 마칠 때까지 믿음을 지켰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과 끝까지 기도 안에서 동행하며 말씀을 통해 순종하는 사람은 나를 위해 예비 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믿음이 내 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 내 소망은 이 땅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다른 소원이 아니라 주님 만나서 그 나라에서 받게 될 의의 면류관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라고 하신 것처럼, 저도 다른 영혼들이 기도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 만나도록 도와주는 그런 주님의 종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우리가 기도해 나가신다면 우리 청주영성학교 모든 식구들이 주님 오실 때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지켜보았다. 네가 나에게 간구하는 모든 간구에 내가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하시는 그런 종들이 되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청주영성학교 식구들도 오직 내 모든 소원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두고, 이 땅에서 전제와 같이 주님 원하시는 그 뜻에 나를 부어드리는 삶을 살다가 나를 위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날까지 이 기도를 기쁘게 즐겁게 하고 주님을 섬기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기도해 나가시면 구하지 않아도 일상의 삶의 필요들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그 일상의 삶의 필요가 나의 큰 목적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 그것을 계속 내려놓으시면서 하느님을 보십시오.
하나님만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 기도는 결코 헛된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얻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우리의 소원을 둔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삶을 복되게 이끄시는지를 우리가 모두 체험하고 정말 행복하게 사는 우리가 되실 줄로 믿습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