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1층 로비. 지난달 이곳 응급실에 실려와 심장 수술을 받았던 조민국(가명·43·금융회사 이사)씨가 저만치 걸어오는 중년 남성을 알아보고 달려가 손을 잡았다. "선생님,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 이 은혜 평생 갚으며 살겠습니다." 캐주얼 차림의 김건형(49·목포 남악 하나내과 원장)씨가 조씨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건강한 모습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하하."
조씨가 등산로에서 심장이 멎어가고 있었던 것은 한달 전 일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심장 전문의"라고 한 등산객이 그를 구하고 사라졌다. 은인(恩人)을 찾는 조씨의 사연이 조선일보에 소개됐다. 조씨의 은인을 어렵사리 찾아낸 기자를 통해 두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이다.
'청계산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지난 7월 13일이었다. 조씨는 이날 오전 6시쯤 집 앞 청계산을 뛰어올라갔다. 일하느라 밤을 새운 뒤였지만 체력엔 자신이 있었다. 정상을 100여m 앞뒀을 때 조씨는 '누군가 양손으로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조씨는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가려 했지만 곧 휴대폰을 꺼낼 수조차 없이 온몸에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조씨가 주저앉은 그때 김건형씨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김씨는 "누군가 주저앉는 걸 보고 곧장 다가갔다"고 말했다. 심장전문의인 그는 "전형적 심근경색이었고 매우 중대한 상황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김씨가 손으로 어림한 조씨의 최고 혈압은 90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는 "함부로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로 119에 전화를 걸어 헬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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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 1층 로비에서 조민국(가명·오른쪽)씨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심장전문의 김건형 원장(개인 병원 운영)에게 악수를 청하자 김 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조씨의 손을 잡고 있다. 조씨는 한 달 전쯤 청계산을 오르다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우연히 만난 김 원장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조씨는 이름과 얼굴이 신문에 실리는 걸 원하지 않아 뒷모습을 찍었다. /
- 윤동진 기자
119상황실은 "날씨가 좋지 않아 헬기는 어렵다. 응급대원을 올려 보내겠다"고 했다. 김씨는 "나는 심장전문의다. 헬기가 뜨지 않으면 이 사람은 죽는다"고 했다. 그의 단호한 말에 119는 헬기를 띄웠다.
헬기가 오는 동안 김씨는 옷을 벗어 쓰러진 조씨의 체온을 유지시키고 식은땀을 쏟아내는 그에게 계속 물을 먹였다.
자꾸 일어나려는 조씨를 눕혀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김씨는 호흡이 가쁜 조씨에게 심호흡을 시켰고,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들어 올려 심장으로의 혈액 순환을 도왔다.
조씨는 2시간30분 만에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됐다. 의사는 "이 병원 모든 환자 중 지금 당신이 제일 위독하다!"며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김씨의 응급처치가 없었다면 조씨는 수술받을 기회조차 없을 만큼 급한 상태였던 것이다. 사흘 뒤 조씨는 두 발로 걸어 퇴원했다. 병원 의료진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우리가 돈을 댈 테니 한 달 뒤에 심장 MRI 한 번 더 찍자"고 제의했다.
조씨는 산중(山中) 은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병원 기록부에도, 119 소방 기록에도 그의 흔적이 없었다. 지인을 통해 신문 기고(본지 1일자 A29면 ☞
'山行 중 죽을 목숨 살려낸 심장 전문의를 찾습니다')도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김씨는 "신문에 난 사연도 읽었고, 헬기에 오르기 전 조씨가 힘겹게 건넨 명함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의사라면 도와주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걸 잘했다고 하는 게 과찬인 것 같아 차마 나서지 못했습니다."
- 지난 1일 조민국(가명)씨의 후배 김병기씨가 본지 A29면에 기고한‘山궋 중 죽을 목숨살려낸 심장전문의를 찾습니다’기고문. /본지 지면
조씨가 산에서 김씨를 만난 건 천운(天運)이었다. 주중엔 목포에서 일하고 주말은 서울 집에서 보내는 김씨는 주말마다 오전 7시쯤 집을 나서 근교 산들을 올랐다. 그러나 청계산만큼은 이날이 처음이었고, 평소보다 이른 오전 5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이 같은 등산로를 올랐고 김씨가 심장전문의라는 것도 행운이었다. 김씨는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지나가던 등산객 100여명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도움을 주려 했어요. 등산객들이 건넨 등산복과 물통, 사탕 등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조씨는 그 일 이후 술을 끊고 매번 거르던 아침밥도 꼭 챙긴다고 했다. 김씨는 "의사들은 '하나의 병이 만병(萬病)을 치료한다'고 말한다"며 "이대로만 계속 관리하시면 아무 탈 없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해지실 거다. 그것 말곤 더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첫댓글 감동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