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그 아이
- 우병녀(월요일 오전반 27주차)-
그 아이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당시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육학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던 때였다.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누군가가 내 수업과 관련한 글을 써 올렸다. 물론 칭찬의 말이다. 당시 나는 2학년 수업을 맡고 있었고, 내용상 문과 반 학생이었다. 문과면 1~4반 네 반 중 한명의 학생인데~~ 누굴까? 궁금했다. 올린 글의 내용이나 글 솜씨가 보통내기가 아니다. 게시글에 댓글을 달면서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고2 학생이 알기는 어려운 ‘문익환’이며,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영화 ‘송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수업에 갈 때마다 그 아이가 누구일까 더욱 궁금했다.
뒤에 알게 된 그 아이는 키가 자그마하고 귀여운 얼굴의 전학생이었다. 정체가 밝혀진 후에 그 아이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나를 찾아왔다. 와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가고, 어떤 날은 가만히 앉아 있다 가기도 했다.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옆에 와서 영화 얘기를 할 때는 생기가 돌고 할 얘기가 많았다. 그 아이는 영화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이미 만들었다는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8m로 만든 ‘솔롱고스’라는 영화는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 같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무한 신뢰를 퍼부어주며 그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제관계는 지속되었다.
10월 국제 영화제 때에는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그 아이는 시험보다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 아이는 우리의 프로그래머가 되어 영화를 선택해주고 영화에 관심이 많던 몇몇 교사는 영화비와 식사비를 대며 함께 영화를 보러 다녔다. 공부는 뒷전이었던 그 아이는 3학년 때 대학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써서 당선이 되었다. 그것으로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입학을 하였다.
고3 때 한번은 소설을 써 왔다. 부모가 계신대도 형편이 어려워 보호 시설인 그룹 홈에 보내진 한 아이 이야기였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서 서울의 사립대학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영화라는 작품은 혼자 방에서 끄적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사람들의 환대를 사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계획서 발표도 잘 해서 여러 루트를 뚫어 지원금을 타내어 단편 영화 작품을 몇 편 만들어 냈다. 그것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상도 타고 깐느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의 첫 장편 영화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였다. 주인공 영재는 보호 시설에 사는 17살 소년이다. 시설을 퇴소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갔지만 무능력하고, 자신의 동생까지도 시설에 보내려는 아버지에게 구역질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착한 아이로 주위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칭찬 받지만, 뒤로는 후원 물품을 팔아 돈을 만들고, 친구를 배반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의 주인공이다. 지독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친 한 청춘의 아픔을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로 이 아이는 청룡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이 아이가 한번은 긴 손 편지와 선물을 가지고 찾아왔다. “선생님이 저의 꿈에 조건 없이 지지해 주시고 심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많이 도와주신 덕에 저라는 사람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졌고 꿈에 더 악착스러워진 것 같아요. 당시에 가족 분들한테 눈치도 많이 보이셨을텐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던 게 제 마음 한 켠에 짐으로 남아 있었는데, 부산 영화제 <거인> 상영 때 선생님과 남편분이 객석 중앙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신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울컥하던지요. 선생님 덕에 저도 베푸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니 베푸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 사랑은 흘러가는 거다. 잘 하고 있구나. 한참 칭찬을 해줬다.
교실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는 무수한 아이들. 그들은 다 다른 길로 걸어갈 거다. 한 시기를 함께 떠밀려 내려가다 각자 흘러갈 길을 따라 흘러가는 강물들. 그들과 함께 흘렀던 시간들을 추억해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는 누구였던가? 그래. 나는 그들의 선생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