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304/1118]묵향墨香으로 충만한 늦가을
어제는 흐린 날씨에도 전주와 임실에서 열리고 있는 두 곳의 서예전과 전주의 강암서예관을 ‘순례巡禮’하며, 모처럼 묵향墨香을 한 가득 가슴에 안은 ‘문화생활의 날’이었다. 묵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그윽해지는 게 서예書藝인데, 그 분야에 일가一家를 이룬 분들의 귀한 작품 수십 점을 직접 본다는 것은 호사豪奢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전 10시 나를 픽업해준 남원의 근봉槿峯친구 부부와 전북대 박물관으로 향했다. 전북대 중문과교수로 정년퇴임을 앞둔 심석 김병기의 ‘축원·평화·오유展’이다. 결혼, 수연, 출산, 이사, 개업 등을 축하하는 동서고금의 명언과 명문을 쓰는 것은 적선積善의 일종일 터이나, 서예를 통해 분노와 원망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면 이만한 힐링이 어디 있으랴. 문외한이 봐도 글씨가 좋고 내용은 또 더욱 좋다. 10m도 넘는 건물 벽에 배치한 서예작품들이 설치미술과 진배없다. 대단하다, 훌륭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20여년 동안 붓을 잡고 있는 친구는 대번에 작품집(3만원)을 사며 감탄을 한다. 주인공이 나타나 몇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니, 더욱 오묘한 서예의 세계로 빠져든다. 백범白凡 선생이 환국 전날밤 중국에서 썼다는 ‘不變應萬變불변응만변’의 뜻이 비장하고 심오하다<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온갖 변화에 대응한다. 사진 2장>. 오유傲遊는 또 무엇인가?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뼈대있게’ 노는 것이라 한다. 뼈대있게 노니는 게 오유라고? 그 얼마나 내가 바라던 세계인가? 이 두 글자를 쓴 족자는 값이 얼마나 될까? 김교수의 ‘붓춤’이 남긴 흔적을 갖고 싶다. 서예가 문장을 쓰는 예술이 서예라더니, 모든 작품이 이 말과 맞아떨어진다. 작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관람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발길을 돌려, 향교 옆 ‘강암서예관’을 찾았다.
강암剛菴은 또 누구인가? 서예가 송성용宋成鏞을 아시리라. 국내 최초로 개설된 2층짜리 멋진 한옥의 서예관. 1999년 돌아가신 날까지 상투를 놓치 않았던 이 시대 마지막 선비이자 서화書畵의 대가. 오죽하면 1995년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열린 전시회 제목이 ‘강암은 역사다’였을까. 서예관은 내 고향 전주를 ‘문화의 도시’라 지칭하는데 더욱 빛나게 한다. 이 땅에 어찌 추사秋史의 서화만 있을 것인가. 그분의 작품 모두 국보급인 것을. 아들 사형제로도 유명한 ‘명품 가족’. 차남 송하경 선생이 부친의 뒤를 잇고 있으며, 사남 송하진은 현재 전북도지사이다. 작품마다 뜻을 음미하며 감상하고 싶지만, 때가 한참 지났다. 맛집으로 향한다. 전주에 오시걸랑 부디 남문시장의 ‘조점례 피순대’집을 한번은 들르시라. 그 잘 끓인 순대국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줄인다.
마지막 코스는 물안개로, 붕어섬으로 유명한 옥정호 주변의 ‘섬진강 물 문화관’이다. 최근 인사동에서 전시를 마치고 온 아하我河 김두경 작가의 ‘I am-알파벳 문자추상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서예계에서 아주 파격적인 작가로 유명하다. 언제부터 붓이라는 필기구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됐을까? 그가 붓으로 쓰고 그려낸 ‘문자추상화’는 작가의 설명이 없으면 짐작도 하지 못하겠다. 이런 새로운 장르도 있을 수 있구나. 회화 차원으로 얘기한다면 가히 ‘한국의 피카소’라 하겠다. 서울 전시를 통해 외국작가들의 반응이 뜨거웠다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동양예술의 꽃’이라는 서예의 무한확장을 보고, 그들이 어찌 놀라지 않을 것인가. 세상이 아무리 ‘디자인시대’라지만 서예에 이렇게 디자인적 요소를 결합하니 이처럼 훌륭한 예술작품이 되는 것을. 발상의 전환과 확대, 창의creativity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trinity art’(서예와 사진 그리고 컴퓨터그래픽이 융합된 새로운 실험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서예의 세계화'가 아닐까.
그런데, 또 하나 재밌는 것은 김병기 교수와 김두경 작가가 친형제라는 것이다. ‘핏줄은 못속이다’는 속설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알고보니 구한말 거유巨儒 간재 전우의 세 제자 중 한 분인 유재 송기면 선생이 외증조부이며, 두 분 모두 외조부인 강암 선생님을 사사했다고 한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속담도 이를 두고 생긴 말인가. “김교수 전시회를 다녀온 길”이라는 나의 말에 “그래요. 저는 가보지 않아서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요”라며 심상하게 대답하는 작가. 예술인들은 이렇듯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인가. 작가는 전라도의 명문 전라고를 나왔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라는 말을 추사 선생이 즐겨 썼다던가.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 이 말처럼 학문적 수양의 결과로 나타나는 선비의 고결한 품격을 일컫는 말이 또 있을까. 어제 하루는 ‘문자향’에 흠뻑 취했다. 오늘내일 비가 내린다는데, 이틀동안은 낙수물 소리를 들으며 ‘서권기’에 빠져볼 생각이다. 나를 픽업해 5시간여 운전해준 친구가 고맙고, 친구는 이런 전시정보를 알려준 내가 고맙다한다. 이 아니 좋은 일인가. 얼마 전에는, 추사 김정희 이래 가장 큰 서예가로 불리는 검여 유희강 선생의 도록圖錄을 선물하니 그렇게 좋아라할 수가 없다. 역시 책이든, 그림이든 임자가 따로 있다. 문외한인 나에게 장서藏書 취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가능하면, 아니 일부러라도 찾아서 이만한 호사는 누리고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첫댓글 [서예] 글씨를 붓으로 쓰는 예술.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주먹을 불끈쥐고 붓을 잡으면 힘을빼고 잡아라라.
벼루에 먹을 갈며 히히덕거리다 손에 얼굴에
먹물을 바르고 백지를 접어서 우리나라 금수강산을 쓰던 시절이 엇그제 같다.
우리 아부지도 글씨를 엄청 잘 쓰셨다.
도청 공무원이셨는데 큰행사가 있으면 아버지가 붓글씨로 쓰셨던 기억이난다.
한지를 접어서 노트를 만들어 제사며 필요한 내용을 꼬박꼬박 잘도 적어놓으셨다.
아버지의 붓글씨 노트를 지금도 보관중이다.
간혹 빛바랜 노트를 들춰보면 노트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들 4형제중 글씨를 제대로 쓰는놈을 막내뿐이여 하시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배우다만 붓글씨를 쓰고싶은 마음뿐 ㆍ깨복쟁이 친구인 김호석 화백은 우리나라 수묵화의 거장이 되어 전통 붓을 복원하고 직접 닥나무를 재배하여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를 복원하는 대단한 친구이다.
우리중학교때 전맹호 검도 선생님 칠판에 칼(刀)도 글씨를 써놓고 검은 도이다 그러나 칼보다 무서운것이 무엇이냐? 물으셨다.모두들 총이요 대답하니 엄숙히 말씀하셨다.
칼보다 무서운건. 붓이다.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흐린 아침이다
따르릉님! 칼보다 붓이 더 무서운겨. 그럼 븃에 능한 벗님은 내공 10단이라고 할까? 인정함. 우천이 붓이야기를 하니 신선 기억창고에서 잘도 끄집워낸다. 완전 인공지능급.
우천님과 주파수가 맞아 떨어졌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아요. 사진의 한문 붓 글씨 보면서 피카소인들 이것을 그려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동양의 피카소^라는 극찬의 비유를 쓰시는군요.
우천이 도올보다 헐 낫다, 뭘 보면 그리 깨달움과 글감이 풍만해지는지. 엄지척!
강암새의 첫째 아드님 송하선 교수님은 나의 중3 담임샘. 인상이 차갑고 너무 무서운 샘이었는데, 시인이라니.
@우포 장준상 송하선씨는 셋째 아드님. 소설가로 고려대 교수를 역임함. 장남은 송하철, 차남은 송하경. 사남이 송하진 전북도지사임.
'永變應萬變'이 아니고 '不變應萬變'인줄 압니다.
묵향이 그윽합니다.
오늘도 함께 복 짓는 하루가 됩시다.
오류. 수정하였음. 해량하소서.
以不變 應萬變
나는 호치민의 좌우명으로만 알고 있었네!
禪家에서 유래된 구절이라고 합니다.
https://m.blog.naver.com/aswind33/120165227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