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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소통을 들고 다니면서 묻지마 살인을 벌이고 다니는 싸이코패스 쉬거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 영화는 2008년도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작품성과 오락성에서 기염을 토한 명작이었습니다. 감독상을 수상한 코엔형제는 항상 같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드는 독특한 이력의 형제입니다.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이 영화에서 최양락 같은 단발머리를 하고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동전 던지기로 사람을 죽이는 엽기적인 살인마로 등장하는 소름이 오싹끼치는 인물입니다.
제목이 무척이나 독특한 이 영화는 늙은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 분)의 무력한 얘기로 시작되고 끝을 맺습니다. 원칙주의자이며 질서정연하고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희대의 살인마인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가 영화전편을 누비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섬뜻함을 느끼게 합니다.
사실 이 영화를 한번 보고나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렇다고 쉬거가 노인만을 골라 죽이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를 보시는 분 대부분은 정말 탄탄하게 잘 만든 스릴러 영화 정도로만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보게 만드는 매력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큰 줄기의 영화 내용은 퇴역 군인 르웰린 모스(조시 브롤린 분)를 사이코 패스 안톤 쉬거가 뒤쫓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모스와 에드는 우리 인간의 삶과 유사합니다. 늙은 보안관 에드의 경우 약자를 대변하는, 가장 지식과 경험이 많지만, 가장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음과 가장 가까운 경계(노인)에서 비정상적이고 혼란스런 세상을 한탄하지만 어떻게 해결할 방도가 없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 은퇴를 앞둔 늙은 보안관 에드
그와 반대되는 살인마 쉬거는 미국 텍사스에서 미국인도 멕시코인도 아닌 타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느 편도 아닌 자신의 철학만으로 묻지마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싸이코패스입니다. 살리는가 죽이는가. 그에겐 오직 두 가지의 선택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살인을 선택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동전을 통해 선택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동전의 앞과 뒤를 가지고 죽이고 살리는 것을 우연에 기대는 특이한 살인마입니다. 쉬거는 우연은 혼돈이 아닌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즉, 동전의 앞과 뒤 둘 중 하나의 선택조차 질서라고 판단하고 무조건 실행에 옮깁니다.
이런 모습은 주유소 주인과 비논리적 대화를 나누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동전을 던지는 모습과, 모스를 찾기 위해 찾아간 모텔 관리인 여성과 논쟁한 이 후, 상대를 죽일 수 없는 상황에서 화도 나고 조금은 당황한 쉬거의 표정에서 잘 일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마치 인간이 아닌 죽음을 형상화 한 모습과 같습니다.
* 마약 밀매단 총격 현장
심지어 살인 도구도 총이 아닌 공기총으로 총알조차 남기지 않으며 살인을 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쉬거가 사이코패스로 보이게 하며, 또한 예상치 못한 순간 흔적도 없이 오는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죽음이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질서라고 쉬거를 통해 말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다양한 해석을 갖고 보게 됩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쉬거 역)의 미친 연기와 낮으막한 저음, 코메디언 최양락 같은 요상한 단발머리, 노래 하나 없이 눈과 귀를 꽉 채워 주는 이 스릴러물은 시련과 불운, 공포 가운데 그래도 아주 작은 희미한 희망도 살짝 보여주는 인생에 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재수 좋으면 오래 살고 재수 없으면 일찍 죽는다는 함유가 내포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동전 던지기와 같은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거지요.
* 산소통을 이용한 총을 들고 다니면서...
왜 이 영화의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요?
제목을 방향타 삼아 영화의 함유된 의미를 천천히 짚어봅니다. 얘기의 초점은 은퇴를 앞두고서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쫒는 보안관에게 맞추어집니다. 황혼이 되어 되돌아보는 보안관으로서의 삶은 적지 않은 회한들로 들어차 있습니다.
그때 내가 한 선택들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다른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하는...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는데, 갈수록 더욱 흉흉해져가는 세태로 제기되는 물음은 보안관의 존재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끝내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잡지 못하고서 은퇴를 해버릴 판입니다.
* 동전던지기에서 이겨 간신히 죽음을 모면한 모텔 관리인
이전 세대에게는 허허 벌판의 텍사스를 삶의 장소로 일구는 근면함 밖에 없었는데, 오늘날의 텍사스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흉악한 범죄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노년이 되면 신의 뜻을 이해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신의 뜻을 모르겠다는 보안관의 고백이, 정의는 승리한다는 진리가 정말로 진리인지 의심스럽다는 듯 허탈한 표정 주위를 맴돕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심지어 이젠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기도 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도대체 도덕적 인과가 성립하지 않는 세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 엽기적인 살인마 쉬거
영화에서 처음 살인마에게 죽음을 당하는 도로 위의 노인은, 단지 살인마에게 차가 필요했던 순간에 마침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합니다. 닭장차를 몰고 가던 노인은 살인마의 고장 난 차를 보고 선의로 멈춰 섰다가 죽는 경우입니다. 스크린 밖의 관객들 입장에서는 살인마의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대변하는 연출로 이해할 수 있지만, 스크린 안의 세계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한 세월을 살아온 자신의 마지막은 그렇듯 갑작스러운 우연이었을 겁니다.
피로 물든 마약 거래 현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일확천금을 줏게 된 제대군인이자 용접공 모스는 그 돈을 되찾고자 하는 살인마의 추격을 매번 용케 벗어나며 런닝 타임을 이어가나 싶더니, 기어코 살인마에게 죽습니다. 영화 내내 부를 향한 용접공의 초인적 의지를 그려내던, 마치 용접공이 주인공인 양 전개를 해나가던 영화는, 정작 그의 죽음을 자세히 다루지도 않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이란 사건은 그토록 간단하고 허무합니다.
용접공인 남편 때문에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된 아내, 더 환장할 노릇은 사위 때문에 도망자 신세가 된 장모입니다. 암까지 달고 있는 노쇠한 몸은 말년에 도대체 이게 뭔 난리인가 싶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도 아니건만, 자신의 말년이 고작 도망자의 신세인 것입니다. 그나마도 사위가 잠시 쥐고 있었던 횡재의 혜택은 누려보지도 못하고, 딸에게 장례비를 빚으로 안기고 떠나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 겁에 질린 주유소 주인
한 주유소의 계산대 앞에서, 살인마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심사가 뒤틀린 것인지, 주유소를 운영하는 노인에게 동전을 내밀며 선택을 강요합니다. 사이코 앞에서 서 있는 노인은 선택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노인이 죽고 사는 문제는 오직 동전에 달려 있습니다. 동전 앞에 선 노인에게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은 그저 확률의 우연인 것입니다.
인생의 곡절을 겪을 만큼 겪었고, 이젠 운명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인생의 늘그막에, 그러나 동전 앞에서 삶을 갈망하며 운명을 점치고 있는 자신에게, 지나온 세월은 아무런 지혜도 되지 못합니다. 삶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순간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동전의 앞뒤를 선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 모스의 부인
살인마 쉬거는 딴엔 나름의 원칙을 고수합니다. 용접공 모스에게 혼자 죽을 것이냐, 아내와 함께 죽을 것이냐의 선택권을 줍니다. 그러나 용접공이 무슨 선택을 했어도 무의미합니다. 살인마는 기어이 그의 아내를 죽이러 갑니다. 그리고 용접공의 아내 앞에서도 동전의 선택권을 줍니다. 살인은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저들의 선택이 동전의 결과로 잇대어진 사건이 결국 죽음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살인마 저 나름의 합리적인 사유입니다.
살인마는 자신이 제시한 원칙에 지독할 정도로 충실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서 죽이는 것입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왜 그런 선택에 내몰려야 하는지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살인마 자신이 납득할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아마 영화 제목의 노인은 그런 의미였는지도 모릅니다. 도덕적 합리가 통하던 시절을 살았던 세대, 그리고 은퇴를 앞둔 보안관이라는 공권력은 구질서를 상징하는 듯. 그렇다면 살인마는 점점 그런 질서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그저 저 자신에게만 전념하는 욕망들로 가득한 종잡을 수 없는 현대인들의 불안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요?
다시 생각을 고쳐먹은 마약브로커가 킬러로 고용했던 살인마를 처치하기 위해 보낸 해결사는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듯한, 반전의 캐릭터라도 되는 듯한 자신감과 치밀함을 내비칩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역시 그저 살인마의 총 한방이었을 만큼 간단하고 허무합니다.
돈을 갖고 달아나던 퇴역군인의 죽음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결코 쉽게 당하지 않는 영화적 필연성의 상징인 듯한 살인마 역시, 마지막에 가서 다소 어이없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죽지는 않았지만 팔의 뼈가 튀어나온 채로, 점점 가까워오는 경찰차 사이렌의 반대쪽으로 힘없이 달아납니다.
어찌 보면 영화의 주제는 의외로 간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그토록 알 수 없는 개연성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는 것을…. 역설은 죽음의 성격이 삶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삶 또한 그토록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예나 지금이나, 노인에게도 살인마에게도, 이건 세대차이를 물을 문제도 아닌 것입니다.
* 안톤 쉬거
보안관들의 대화 속에선 흉흉한 세태의 원인은 ‘요즘 것들’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용접공과 뼈가 튀어나온 살인마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요즘 것(마을 어린이들)’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원로 보안관이 자신의 동료를 잃은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흉흉한 세태를 반영하는 범죄는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그렇듯 자신들에게 반하는 가치를 부정적 현상의 원인으로 몰아갑니다. 그래야 시대의 불안을 설명해줄 수 있는 인과로 성립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요즘 것들이 살아가는 요즘의 풍토를 건네준 책임으로부터 어른들이 자유로울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어차피 요즘 것들도 어른들이 일구어 놓은 시대의 산물이 아니던가요. 그렇듯 현상에 대한 원인은 특정한 범주로 규정하기 어렵고, 명확하게 규명되지도 않습니다. 뚜렷한 동기가 없는 범죄의 원인이 시절의 문제만도 아니듯, 어느 시대를 살던지 간에 인생의 속성이 항상 불확정성인 것처럼….
< 주요 등장 인물 >
* 늙은 보안관 에드 톰 벨
영화의 시작 내레이션과 엔딩씬을 담당하는 이는 보안관인 에드 톰 벨입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이며 핵심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작 기억에 남을 주요한 장면에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 주변인물처럼 느껴지지만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거의 대부분이 이 인물의 입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3대째 보안관을 하며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건을 추적합니다.
이야기는 늙은 보안관인 벨의 시선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곧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점점 힘을 잃어가는 올드맨의 입장에서 그는 과연 이 땅에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 같습니다. 본인들의 헌신적이었던 거친 국가발전의 시대. 그리고 현재의 무질서해보이는 극단적인 자유경쟁의 시대를 비교하면서...
그런 그의 앞에 이미 퇴역군인인 르웰린 모스와 청부살인업자인 시거가 얽힌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각각 힘을 잃어가는 시민의 모습과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한 현실의 모습들을 대변하며 극을 꾸역꾸역 이끌어 갑니다.
원작자는 청부살인업자인 쉬거를 두고 죽음을 의인화 한 캐릭터라고 했습니다. 영화 내에서 이 살인자에게 살인의 목적 같은 것은 그다지 부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화 초반에 보안관들끼리 한 살인범을 취조했던 얘기를 합니다.
"그 놈은 내내 누군가 죽일 생각이었다면서, 출옥하면 또 죽이고 지옥에 가겠다고. 씹어 뱉듯이 말하는데 할 말이 없더구먼. 말문이 막혔지.“ "요즘 범죄는 딱히 동기도 없어."
* 살인마 안톤 쉬거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털끝만큼의 감정이나 동요도 없는 살인마입니다.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총 대신 그것으로 사람을 죽이고 자물쇠도 엽니다. 그가 하는 유일한 배려는 사람을 죽이기 전 앞면과 뒷면을 맞힌 사람은 살려주는 동전 맞히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살인마의 무기는 산소통입니다. 산소통 노즐의 입출력을 이용하여 개조한 총으로 가축 도축장에서 사용합니다.
그는 도대체 왜 살인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할 만큼 인과관계는 하나도 없이 그저 살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움직입니다. 나름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돈을 받고 사건을 처리하기위해 산소통을 들었다지만, 그의 표정이나 태도에는 '그딴 건 사실 필요가 없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쫓고는 있지만 돈에 환장했다기보다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그 방식을 고수하는 인물입니다. 오로지 동전던지기로 자기 눈앞의 사람을 죽고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쉬거의 존재는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상과도 유사합니다. 마지막에 늘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자신도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고야 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한치 앞도 알 수 없고 비켜갈 수 없는 운에 맡겨야 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불행과 위험의 집행관이며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퇴역 군인 르웰린 모스
과거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으로 현재 트레일러에서 생활합니다. 과거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현재는 불안정하며 돈가방에 눈이 멀었다가도 양심에 찔려 도움을 주러가다가 쫓기기도 하는 항상 경계선에 놓여진 인물입니다.
그가 생활하는 트레일러처럼, 거주를 위한 정착의 공간임과 동시에 이동성을 띄는 형태로 반대되는 두 개념 중 어느 쪽을 선택할 수도 있는 인물이며 명예로운 퇴역군인이자 한 편으로는 눈앞의 돈가방을 탐하는 인물입니다. 즉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며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군상이며, 미국과 멕시코를 넘나드는 등 끊임없이 경계를 오가는 존재입니다.
마약거래 도중 총격전이 일어난 사건 현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200만 달러가 든 돈 가방을 취득하게 됩니다. 모스는 물을 달라는 현장의 부상자를 내팽개치고 죽은 자들의 총과 탄알집을 챙기고 인생세탁을 할 수 있을만한 돈다발들을 챙겨 집으로 갑니다.
그는 결국 늦은 밤, 물을 챙겨 아까 낮의 그 곳으로 다시 갑니다. 하지만 한 트럭의 마약도, 숨이 붙어있던 그자의 목숨도 이미 사라지고 난 뒤입니다. 그리고 마약거래를 하던 조직에서는 청부살인업자 안톤 시거를 고용합니다. 그는 이제부터 킬러에게 하염없이 쫓길 것입니다.
* 해결사 칼슨 웰즈(우디 해럴슨 분)
쉬거를 쫓는 또 다른 살인청부업자입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쉬거보단 병원에 입원한 르웰린을 찾아가서 거래도 할 줄 아는 직업적인 살인청부업자입니다. 큰 사건을 벌일 기대감을 주지만 그도 쉬거에게 산소통으로 허무하게 죽습니다.
앞선 세 인물에 비하면 다소 비중이 적고, 등장할 당시엔 쉬거에 대립하며 걸출한 액션신을 만들어낼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이야기꾼 노릇을 하다가 아침 이슬처럼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각 인물들의 관계를 풀어내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관객에게는 이해를 돕는 보충 설명 역할을 합니다.
<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생각하며...>
*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영화의 제목은 원작인 소설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원작의 소설 제목도 시에 나온 어구를 인용했다고 합니다. 그 인용된 시구에서 ‘No country for old men’의 의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가 맞습니다.
노인들은 지난 과오와 성공을 내포한 역사를 지닌 지혜의 산물이라고 여겨지는데, 그들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음에 대해 탄식하는 말입니다.킬러에게 쫓겨 멕시코로 넘어간 주인공 모스가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넘어올 때 베트남 퇴역군인임을 국경경비원에게 인정받아 ‘모셔져’오기도 합니다.
아직은 그들의 과거를, 어른의 수고를 여전히 인정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편 보안관이 접하는 신문에서는 사회보장연금을 타내기 위해 노인을 감금하고 고문도 했다고 합니다. 말장난처럼 “TV가 고장 나 심심했나보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들의 시선은 현재의 그러한 것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현 세태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입니다.
* 동전 던지기에 의한 나라이다?
이 영화의 핵심을 담당하는 살인마 안톤 쉬거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동전 던지기’입니다. 동전의 어느 면이 사는 건지 죽는 건지조차도 알려주지 않은 채 동전을 던집니다. 겁에 질린 주유소 주인이 절박한 심정으로 동전으로 결정하지 말고 차라리 네(쉬거)가 결정하라고 하는데도 ‘동전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는 뭐든 아직 결정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저 우연에 맡기는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냥’이라고 말하듯, 이유가 있어서 발생하는 필연이 아님을 말합니다. 죽일지 말지 결정하지 않은 생각을 동전에 빗댄 것입니다.
* 처음과 마지막 장면
황량한 텍사스 사막의 일출을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는 앞으로 먼지 폴폴 날릴 영화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이어서 진행되는 보안관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통처럼 이어 내려오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대를 지켜내고자 하는 자부심과 동시에 자신이 잡아들인 범죄자가 원래 누군가를 그냥 죽일 생각이었다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출소 후에도 살인을 할 거라고 툴툴거리며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 후반부와 이어집니다. 돈가방을 들고 튄 퇴역군인 모스가 죽은 후 현장을 보던 보안관들끼리 세상이 말세라며 요즘 것들 타령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주인공 보안관은 살인마에 대해서 문득 놈이 자신들이 제어할 수 없는 유령 같다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보안관의 입을 통해 제시되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일출에서 시작하며 늦은 밤 끝이 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죽던 순간에 대해서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이 코앞인 마지막 순간까지도 총을 찾던 할아버지는 결국 그날 밤에 죽었다고 하면서, 죽고 나면 아무런 부질이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막을 수가 없고, 또한 닥쳐오는 변화는 막을 수가 없으니 접을 건 접고 포기하며 살라고 합니다. 총을 들며 정의를 수호하려 해봤자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구시대적 가치로 아둥바둥 발버둥을 쳐도 변화의 물결,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지 않은 채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넋두리를 늘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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