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8(금)■
(골로새서 3장)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묵상/골 3:22-25)
◆ 종들아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당시에는 신분의 차별이 뚜렷했다. 귀족과 노예가 있었고, 상전과 종이 있었다. 그리고 이 신분은 좀처럼 바꾸기가 어려웠다.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신분을 벗어버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말하지 않았다. 가급적 벗어나면 좋겠지만, 설사 벗어나지 못해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영생을 얻은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종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할 것을 말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서신서에서 이것을 언급했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전 7:20-23)
바울의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가치관, 어떤 인생관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생의 삶이 모든 것이기 때문에 이생에서 이런 종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이다. 그러나 거듭남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자각한 사람은 종의 신분일지라도 그렇게 억울하지 않으며 왕의 신분조차 그렇게 부럽지 않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사슬에 매인 상태에서 감히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행 26:29)
이재형은 조선의 왕족이었다. 그가 고종(이재황)보다 먼저 태어났더라면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승동 대 감이란 칭호를 받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세상이 어수선해서, 되는 대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충주 선산에 갈 때 엄귀현이라는 사람을 말잡이와 길안내로 고용했다. 이 사람은 키가 크고 기운이 장사였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극진히 이재형을 모셨는지 이재형은 감탄했다. 주막에서 잠잘 때도 불침번을 설 정도로 성실하였다. 이재형은 이 사람의 충성이 너무나 기특해서 이것저것 물으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엄귀현은 너무나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 나리, 황송하오나 오늘부터 예수를 믿으소서. 그래야 나리도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사옵니다."
이재형은 다소 불쾌했다. 아니 말잡이 주제에 감히 왕족인 자기에게 이런 것을 권하다니...
이재형은 빈정대는 투로 물었다.
"그래, 예수를 믿으면 마부꾼 신세도 면하는가?"
"나리, 예수를 믿는 것은 그런 도리가 아닙니다. 저는 마부꾼 신세를 면하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마부꾼 노릇을 더 잘하려고 믿습니다."
"나리, 나리께서 예수를 믿으시면 제가 평생을 마부꾼으로 나리를 모시겠습니다"
이재형은 그가 건방지다고 생각하여 화를 버럭 내었지만 속으로는 놀랬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길래 왕족도 부러워하지 않고 권하는 것일까?
후에 이재형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교회 사경회에 참석했을 때, 마부꾼 엄 씨를 보았다. 그는 경건하게 꿇어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집회가 끝난 후에 이재형은 엄 씨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인사했다.
"형님, 이렇게 만나니 반갑구려. 내게 전도하던 엄가 아니시오?"
엄귀현은 깜짝 놀랬다.
"나리!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다니요. 황송합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인데, 그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님이 맞지요"
"나리께서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주변에 있던 형제들은 이 상황을 알게 되자 모두 할렐루야를 외치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기업의 상'에서 기업(基業)이란 기본이 되는 업이라는 의미다.
곧 그 사람의 생계 유지의 수단이 되는 땅이나 가업을 말한다. 그래서 기업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업(inheritance)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각 지파에 땅을 기업으로 주었다. 그리고 레위 지파에는 땅 대신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망명하면 그에게 있을 곳과 먹고 살 직업도 준다. 그래야 이 땅에 발붙이고 살 것이 아닌가?
성도가 천국에 가서 받는 기업의 상이란 바로 그와 비슷하다. 즉 천국에서 시민으로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있을 곳과 할 일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교회 일에는 하늘의 상이 있지만, 직장 일은 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당 바닥을 쓰는 것은 상이 있지만, 직장 바닥을 쓰는 것은 쓸데없는 수고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구분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주께 하듯 하면 기업의 상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형제들이여, 직장 바닥도 성실하게 쓸어라.
오늘날 많은 성도가 교회에서는 충성 봉사하지만 직장에서 빈둥댐으로써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그들에게 직장이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할 뿐 충성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이 직장이든 교회든 충성되게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아이가 셋이나 되는 어떤 자매가 남들은 전도하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자신은 아이나 돌보는 일을 하고 있으니 너무나 보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죄송했고, 자신은 하늘의 상이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얼굴이 밝아졌고,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념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 충실해라. 그것이 성도의 바른 태도이며, 결국 그런 태도는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오로지 전도하기 위해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는 어떤 선교단체에 속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직장은 일종의 위장 취업과 같았다. 그는 전도하여 약간의 실적도 올릴 수 있었지만, 결국은 직장에서 겉돌게 되고 왕따가 되게 되었다. 긴 안목에서 볼 때 그런 태도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오해하게 하고, 결국은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된다. 보험 상품 팔려고 친하게 접근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
이 짧은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인생 철학이 되어야 하고 직업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성실함에 주님께서는 기업의 상을 약속하신다.
주님,
게으른 저를 용서하시고,
사람을 대할 때나 무슨 일을 할 때나 마음을 다해서 주께 하듯 하는 성실함이 몸에 배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