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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KOREA
“어? 어! 어어어!”
도치씨는 치과에서 이 뽑는 소리를 지르며 대를 곧추세웠지만 도치씨의 대는 물속으로 처박히기만 했다. 처음 이 자리를 발견했을 때 너무 혼쭐나서 이번엔 채비를 단단히 했다.
바늘은 티타늄흑침 5호를 사용했고 목줄은 2.5호캐블러 외줄, 그리고 원줄은 4호아크릴원사로 바꿨기 때문에 줄과 바늘은 자신했다. 허지만 카본 대를 사용한 것이 마음에 걸려 불안했다.
낚시점에서 몇 번이나 플럭스재질과 글라스로드를 들었다 놨다 했지만 아무래도 손맛에 자신이 없어 포기했던 것을 후회했다. 만약 물속의 대물이 영악해서 대에 텐션을 주고 되돌아 치고 나가면 카본의 특성상 뚝 부러지고 말 것 같은 불안감에 가슴은 콩닥콩닥 다리미질을 해댔다.
완연한 봄이 된 물속상황도 뭍의 생물들처럼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탓인지 끌어당기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만약 수초대만 아니었으면 그 힘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지만 가능한 속전속결 빨리 꺼내는 것이 상책이다. 허지만 대도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운행을 할 수는 없었다.
몇 번의 망설임 속에 주저주저하던 도치씨는 결국 정면 대결을 선택했다. 대물이 머리를 돌리지 못하도록 있는 힘껏 가슴 쪽으로 대의 허리를 끌어 당겼다.
스스스스 봄바람이 갈대 잎을 훑자 도치씨의 대 끝에서도 음흉한 소리가 울렸다.
“피잉 피피핑 이이잉.”
도치씨는 그 음흉한 소리에 가위 잡힌 것처럼 가슴을 쫙 펴고 허리를 뒤로 제켰다. 비로소 낚싯대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토록 버티던 대물이 갈지자를 그리며 좌우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괴물이 움직이면 승산은 도치씨에게 있다.
한, 3분여의 대치와 2분의 실랑이 끝에 대물이 머리를 수면 밖으로 내밀었다. 대물이 공기를 마셨다고 생각하자 도치씨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육지 생물은 물에 빠져 익사하지만 수중생물은 공기를 마시면 볼 장 다 본 것이다. 도치씨는 이런 사망을 기사氣死라고 해야 하지만 비사飛死라고 부른다. 헤엄쳐야 할 놈이 수면을 날다 죽으니 비사가 맞긴 맞다.
도치씨는 이날 새벽까지 43.7cm를 비롯해서 월척만 17수를 꺼냈다. 군대 갔다 와서 머리 기르고 처음 발생한 사건이었다.
또 한주일이 흘렀다.
도치씨는 역시 슬래브오두막 앞에 차를 세우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저수지나 밤 11시가 넘어가면 낚시꾼들의 부산한 자리이동도 없고 사방은 바람소리와 풀벌레소리만 남는다.
이 시간을 기다리다 도치씨는 거의 자정 가까이 잠이 들었다.
운전한 탓도 있지만 지난 주 17수의 월척을 꺼낸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도치씨가 붙박이대물명당으로 살금살금 기어가서 대를 드리웠을 때는 보름달이 도치씨의 머리 위에서 수은등같이 밝게 빛나고 있을 때였다. 도치씨는 높이 뜬 보름달을 보며 오늘은 지난번만 못하겠다고 미리 기대수준을 한 단계 낮췄다.
물고기의 입질은 달의 크기와 반비례하기 때문에 오늘이 보름이란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보름이라도 예외는 있다. 달무리가 지면 의외의 조황에 주눅 들기도 하지만 흔치 않는 이변이다. 오늘의 달은 너무 맑고 밝았다.
허지만 오산이었다.
2.0호대를 집어넣고 찌가 서기를 기다리는데 찌의 뿌리 쪽에서 대야만한 물결이 일어 난 후 사정없이 찌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때를 같이해 대를 세웠다.
“피잉!”
또는
“피아앙! 퓽퓽!”
이런 소리가 아니었다.
“쁑! 풍덩! 피리리리! 풍덩! 삥삥삥!”
요물의 울음소리 같은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며 2.0호대가 3번대 마디까지 물속에 곤두박였다. 도저히 대를 세울 수가 없었다. 보름달빛에 비친 도치씨의 2.0호대는 꼭, 비닐하우스 뼈대를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쁘지지지 뿌드드득.”
도치씨의 대는 금방이라도 토막날것처럼 우지직거렸다.
도치씨는 기왕 대가 부러진다면 괴물의 상판이나 볼 요령으로 온 힘을 모으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신 후 단번에 대를 치켜들었다.
허지만 바위에 걸린 것처럼 괴물과 대의 사이에서 모든 텐션은 사라지고 팽팽한 줄 다림만 남았다. 몇 분간의 숨 막히는 긴장이 침묵 속에 흘렀다.
도치씨는 대를 버티며 생각했다.
“이건 필시 붕어가 아니다! 엄청난 메기다! 이 정도라면 절구통은 넘는다!”
도치씨가 물속의 괴물을 추측할 때 수면에서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났다. 그 물보라 속에서 분수 같은 물과 함께 거대한 혹등고래한마리가 푸욱 솟아올랐다. 혹등고래는 수면에 꼬리를 차고 하늘로 치솟은 후, 운동장만한 입을 벌리고 도치씨를 향해 덮쳤다. 상상도 못한 혹등고래의 기습에 피할 겨를도 없이 도치씨는 고래의 입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고래의 입안은 워터터널처럼 길게 소용돌이치며 끝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도치씨는 동굴입구 같은 고래의 아가미를 지나 한정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한참 미끄러져 내려가서 커다란 웅덩이에 풍덩 빠졌다. 웅덩이엔 온갖 작은 물고기들과 크릴남극새우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크릴들이 도치씨를 발견하고 떼거리로 몰려들어 도치씨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도치씨는 필사적으로 대항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살갗이 뜯겨 나가고 뼈가 들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눈알을 뜯어 먹히는 것이었고, 그 와중에도 참을 만한 것은 아랫도리 중앙으로 몰려든 크릴들의 집요한 공격이었다.
지난여름 혜림이 루어로 자신의 불알을 건 바로 그 지점을 집중 공략하는 크릴들이 마치 여왕벌 따라 방금 분가한 토종 벌떼처럼 둥글게 뭉쳐 가고 있었다. 도치씨는 모든 것이 다 뜯겨나가도 불알만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불알을 뜯어 먹는 크릴을 떨쳐내려고 손을 흔들어 댔지만 헛수고였다. 마침내 반쯤 해골이 들어나고 골반뼈 중앙에 축구공크기로 불어난 크릴들이 대글거리고 있었다.
도치씨는 낙담했다.
마치 좀비처럼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경악하고 절망한 것이 아니었다. 단 하나뿐인 자신의 불알이 크릴새우들에 의해 완전 해체되어 간다는 것이 참을 수없는 충격이었다. 도치씨는 울먹이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아내에게 자신의 최후상황을 알리려고 소리쳤다.
그러나 도치씨가 정작 내지른 소리는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혜림 누나 내 불알이! 내불알이 내 불알이.”
도치씨가 눈을 번쩍 떴다.
사방이 깜깜했다.
때 이른 모기한마리가 앵앵거리며 차안에서 돌아다녔다. 도치씨는 아직도 꿈에서 덜 깨 모기소리를 불알에 붙은 크릴소리로 착각했다.
반사적으로 아랫도리를 쳐다봤다.
말짱했다. 아니 꿈에서 본 크릴들의 크기만큼 불룩 부풀어 있었다. 얼른 손으로 확인해봤다. 딱딱한 뼈다귀가 손에 잡혔다. 손가락으로 부르트려 보려고 했지만 딱딱하기만 했다.
도치씨는 멍한 머릿속을 털어내려고 목을 좌우로 돌려 본 후, 자신의 온 몸을 구석구석 수색했다. 그러나 꿈에서 본 징그러운 크릴들은 한 마리도 없었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휘파람처럼 새 나왔다.
조금 전의 모든 상황이 확실히 개꿈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에 낀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쓰윽 문지르고 물기 묻은 차창 밖을 내다봤다.
깜빡 잠이 든 사이 어둠이 먹물처럼 배어있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 슬래브오두막을 쳐다봤다. 슬래브오두막도 어둠에 묻혀있었다.
도치씨는 자동차 밖으로 나왔다.
습기 가득한 봄밤의 상큼한 공기가 도치씨를 완전히 잠에서 깨웠다. 긴 쉼 호흡을 했다. 아카시아향이 가슴 안으로 가득 들어 왔다.
저수지 사방을 한눈에 돌아 봤다.
중 하류권대는 많은 낚시꾼들이 진을 쳤지만 도치씨, 비밀의 정원. 붙박이명당은 인공위성에서 본 노스코리아northkorea처럼 캄캄했다.
시계를 봤다.
루미녹스야광 바늘이 12시1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슬래브오두막을 다시한번 살폈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불은 켜지지 않았다. 저토록 오래 집을 비운다면 아마 봄 여행간 것이려니 생각하고 슬슬 기동준비를 했다.
오두막주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마음이 탁 놓인 도치씨. 오늘은 월척들과 닥치는 대로 난장판 쳐 볼 심사다. 그동안 낚시꾼들과 슬래브오두막 주인의 눈치 때문에 소극적이었던 월척대결을 마음 놓고 펼칠 생각을 하자 심장은 요동치고 마음은 오두방정을 떨었다.
도치씨는 필드가방을 트렁크에 둔 채. 5단 살림망과 1.6호대와 2.0호대 그리고 받침대만 달랑 챙겨들고 출동했다.
온라인에서 어렵게 수소문해서 준비해 온 적외선랜턴을 켰다. 흑백시야가 길을 밝혔다.
조용조용 지난번의 발판을 찾아 잡초를 헤쳐 나갔다. 자신의 위치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적외선랜턴을 켰지만 발판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겨우겨우 갈대와 잡초를 헤치고 발판에 가까워졌을 때 미끄덩거림이 있어 허리를 숙여 손가락으로 살폈다. 아뿔싸! 도치씨가 밟은 것은 지난번에 위장용으로 쌌던 자신의 똥이었다. 아직도 똥이 완전 발효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습기가 많은 탓이었다.
허지만 도치씨는 자신의 똥냄새에 오히려 짠한 향수를 느꼈다. 손가락 끝에 묻은 똥의 진액을 잡초더미에 쓰윽 문지른 후 계속 전진했다.
수초 대 사이에 두 대의 낚싯대를 드리울 장소가 나타났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대를 앞치기로 밀어 넣었다. 퐁당! 봉돌 떨어지는 소리가 수면에서 경쾌하게 들렸다.
찌가 부동자세로 벌떡 일어선 후 서서히 잠수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지지난주일 맞춰둔 장비인데 서서히 잠수하던 찌가 물속으로 완전히 잠겨 버렸다.
도치씨는 지난 두 주일동안 여러 차례 비가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다시 수심을 조정하기 위해 1.6호대를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피이융! 핑핑!”
지난번과 거의 비슷한 중량이 느껴졌지만 막강한 파워로 도치씨의 1.6호대를 물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에 도치씨는 당황했다. 예견은 하고 있었지만, 넣자마자 서서히 찌가 잠수하는 그것이 입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2호대를 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번의 그런 흡인력이나 크레인이 아니었다.
끌려나온 놈은 정확히 44.5cm였다.
44.5cm를 걸어내고 1.6호대를 다시 던져 넣기 바쁘게 대물은 인정사정없이 도치씨의 일번 대를 끌고 들어갔다.
대물들은 IS보다 더 무자비했다. IS는 예고라도 하지만 대물들은 전혀 예고가 없었다. 던지면 물고 들어가고, 끌어내면 무지막지하게 용트림하고. 도치씨는 낚싯대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단 두시간만에 17수의 월척을 했다. 그리고 입질은 딱 끊어졌다. 대물들도 사태를 파악하고 비상회의를 소집한 것 같았다.
도치씨는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았다.
허지만 오늘은 전원 돌려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44.5cm만 남겨두고 전부 일렬로 귀가시키기로 작정했다. 도치씨는 석방한 그들이 자유를 찾아도 절대 자신의 고향을 등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도치씨는 지지난 주일 캐미라이트에 반사된 초록빛 눈으로 노려보던 그 여자가 슬래브오두막의 그 창문에서 일거일동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지난주일 창백했던 그 여자의 얼굴이 오늘은 검게 변해 있다는 것은 더 더구나 알 수 없었고 빛은 없지만 광채로 번뜩이는 그 여자 눈에서 발광하는 초록불의 정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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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초밭 낚시터가 명당인가 봅니다.
월척만 나오게 말입니다.
수초밭이라고 모두 좋은 터는 아니지만 봄낚시철엔 수초밭이 단연 유리합니다
수초밭에도 명당이 있죠...ㅎ
꿈도 무서운 꿈을 꾼 도치
제수가 있을려나보군요..
초록빛 여인과의 또하나의 인연이 될것만같은 생각이 드네요~~ㅎㅎ
글쎄요 악연일지 호연일지 두고 봐야겠죠?
즐거운 성탄되십시오
꿈에서도 월척의 꿈은 여전 하군요.
제미있게 잘보앗슴니다.
낚시꾼들은 한번씩 이런 꿈 꿉니다..ㅋㅋㅋ
도래미님도 오늘밤....ㅎ
즐거운 성탄전야 멋지게 보내십시오
오늘도 여전히 낚시용어 잘배워 갑니다.작가님 글만 잘쓰시는줄 알았더니
낚시에는 박사님이세요..
즐거운 성탄절 가족과 함께 행복하시길 기원 합니다.
ㅎ
지금 멋진 성탄보내시죠?
칭찬 고맙게 받습니다.
봄이오면 천일염님도 가까운 곳으로 낚시 한번 나가보세요
참 좋습니다. 에너지도 충전되고 마음도 순화되고요
고운 성탄 함께 하실 가족께도 즐거움 넘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