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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卷
鬼計難測
第 十五 章. 이율(利率), 저울로 달 수 없는 마음
( 一 )
꼬끼오! 꼬꼭! 꼬고고곡...!
투계(鬪鷄)들이 날개를 휘저으며 서로를 쪼아대는 모습은 표현
할 수 없는 흥분을 불러왔다.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도 신랄했
지만 종국에 한 마리가 주둥이 사이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광경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에의 욕구를 대신하는 것 같았
다.
갈홍아는 깊은 골짜기로 침강(沈降)했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와아아! 와아...!"
흥분한 군중들은 목청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댔다. 지금 막 투
계 한 마리의 머리에서 선혈이 샘솟 듯 뿜어 나왔다. 근 일 년
동안 주인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으며
싸움이 시작되기 전 달아 본 중량도 한계 체중에 육박했던 닭
이었다. 필경 최종 승리의 꿈을 꾸었을 투계가 덧 없이 죽어
갔다.
갈홍아는 둥글게 쳐진 울타리 한쪽에 멀거니 서서 죽어 가는
투계의 눈을 직시했다. 무언(無言)에 죽은 사람의 눈을 바라보
면 악마의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이런 미물의 눈도 포함되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절휘의 자포독에 중독되었을 때 그 모습이 꼭 저렇지 않았을
까? 감기는 눈까풀을 밀어 올릴 힘도 없어 퇴색한 눈으로 생의
마지막을 의미없이 받아들이는 저 투계같이...내장이 뒤틀리던
고통...잠시 시간이 흐르자 참 편안했었지. 지금 저 투계는 고
통을 느낄까?
꼬끼오...!
싸움에서 이긴 투계는 목을 길게 뽑고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잠시 후 다른 투계 두 마리가 서로 기세를 올리며 날개를 푸덕
이자 사람들은 곧 동전 몇 문씩을 꺼내 내기를 걸었다.
저렇게 사는것이 인생이었다. 한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 모습을 보며 동전 몇 문을 잃거나 딴
다.
사람들끼리 으르렁 거리는 것은 누구의 장난일까? 당철휘와의
숙명적인 싸움, 단비하의 일생...인간을 지배하는 신이 있다면
어느쪽에 내기를 걸까?
그리고 목숨을 건 싸움에 내깃돈을 얼마나 걸까?
갈홍아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며 걸음을 옮겼다.
보름 동안 내처 달려왔다. 무작정 뒤를 쫓아왔지만 그가 향하
는 곳이 사천성(四川省) 성도부(成都府)일 것을 의심치 않았
다. 당문을 찾아갈 줄 알았기에...그런데 뜻밖에도 단비하는
청성산(靑城山)으로 왔다.
그리고 또 보름.
단비하는 움직일 줄 몰랐다. 청성산 입구에 있는 허름한 농가
를 빌려 거주할 곳을 마련한 다음, 낮에는 산에서 약초를 채집
하고 밤에는 단약을 제련했다. 무산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행동에 비하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느슨한 행동이었다.
갈홍아는 아무 소리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곳으로 왔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반드시
나타 날거야.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기다려."
그 말 이후 단비하는 하루하루 생활에 충실했다. 그런 점이 갈
홍아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마치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갈홍아는 단비하의 말을 절대적
으로 믿었다.
무산에서부터 청성산까지 보름 동안의 여정, 정녕 피를 말리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정체를 알수 없는 복면인들은 끊임없이 앞길을 가로 막았다.
하나같이 독공을 절정으로 익힌 고수들...그들이 사용하는 독
도 치명적인 절독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그대로 황천
으로 직행하는 살얼음 판이었다.
단비하의 하독 솜씨는 날이 갈수록 고명해졌다. 내공을 사용하
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독을 살포하는 기구도 사용하지 않았
다. 하지만 자연적인 요건을 최대로 활용한 하독에 복면인들은
일 장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했다.
"정말 당문에서 배우지 않았어?"
"당문에서? 후후후! 그렇다고 할수 있지. 또한 모모(姆姆m)의
무산파 절학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정확히 말하면 독을 다루는 모든 독문의 절학이라고 할수 있
지."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해 봐. 그럼 네가 전 독
문의 모든 독공을 귀일시켰단 말야?"
"뭐? 우하하하하...! 모든 독공을 귀일시켜? 어림없는 소리...
나는 그만큼 실력이 높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생각도 없
어. 그럴만한 시간도 없고...내공을 지녔을때는...휴우! 그만
두자."
아리송한 대화가 오간 다음부터 갈홍아는 단비하의 하독을 눈
여겨 보았다. 관찰이 용이하게끔 복면인들은 끊임없이 나타났
고, 단비하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했다.
복면인들의 무공은 예전의 자신이라 할지라도 승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지고했다. 분명 오랜 기간 혹독한 수련을 받았
음이 틀림없었다. 죽으면서도 극히 낮은 비음만 터뜨렸으니까.
생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벙어리처럼 굳게 입을 다
물었으니까.
그런 그들이 단비하에게 힘없이 쓰러졌다.
독을 무시하지 마라. 하류잡배들이 어두운 그늘에 숨어서 꼼지
락 거리는 그런 독이 아니다. 맞서 보자. 무공이라도 좋고 천
하절독이라도 좋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진정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나타나는 복면인들을 그는 당당하게 물리쳤다.
'이상해...이건 너무 이상해...'
단비하의 하독 방법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자신 또한 독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으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독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독술이랄 것까지도 없었다. 뭐라 할까? 굳이 독문을 들먹
일 필요도 없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그런 기초적인 방법만
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
었다.
그날의 기후, 자신이 위치한 곳의 지형 지물을 완벽히 소화해
야 사용할 수 있는 독술이었다.
청성산에 와서 하는 짓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약초와 독물을 채집하고 단약을 제조한다는 것이 말은 그럴듯
하지만 실상 내막을 알고 보면 독문에 갓 입문한 무지렁이들이
하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단비하는 그런 기초적인 작업을 하면
서도 무슨 큰 절학이라도 개발하는 듯 심각했다.
갈홍아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단비하가 하는 짓에 동조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혼자서 당문
을 쳐 들어갈 엄두는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당문에 간다해도
당철휘 그놈이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
칫하면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었다. 하울며 단비하는 당철휘가
청성산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도 여느 날처럼 심심파적으로 마을을 돌아봤다 동네 아낙
들은 천생배필이라고 쑤군덕거렸다. 남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종 잡을수 없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먹고 사니 아마 그들 눈에
는 부부처럼 보인 것 같았다.
그런 눈길이 왠지 밉지 않았다. 어느 땐가는 정말 그랬으면 하
는 생각을 자각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었다. 무슨 황당
한 생각인지...그의 결에는 이경화라는 여인이 있는데...설혹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시궁창에 더렵혀진 몸으로 여인의 능력
을 상실한 몸으로...하지만 후텁지근한 바람결에 묻어 오는 땀
냄새가 싫지는 않았다.
'말도 안돼. 저런 촌녀석을...'
갈홍아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슬렀다. 지금은 당철휘
한 놈을 죽이는 것만도 벅차지 않은가. 어써면 평생을 뒤쫓아
도 이루지 못할수도 있는데...
투계들의 싸움을 보고 흥에 겨워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오늘은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무슨 좋은 일이라
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갈홍아는 황급히 신형을 숨겼다.
당자인...
사망산검과 일전을 겨웠던 조문덕이란 놈을 대동한 채 유유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작고 가녀린 놈은 분명 당자인이었다.
과연 단비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저들이 이곳에 나타나다
니...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당문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청성파의 관할 구역을 유유히 걸어다니다니 호랑이
간이라도 삶아 먹었는가.
"그냥 확 쓸어 버립시다?"
"입 다물어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멀리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아, 그런 좀스런 놈들과 실랑이하려니 몸이 들쑤셔서 그렇지
요. 주모님은 골방에 들어가서 기척도 없고...에잉!"
"조용히 하지 못할까?"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입 꼭 다물고 있으면 되잖습니까."
조문덕은 정말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이렇게 다리품만 팔지 말고 술이나 걸찍하게 마십시다."
"술? 그것도 좋겠지."
갈홍아는 당자인과 불곰처럼 커다란 덩치가 주루에 들어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 부리나케 신형을 날렸다.
당자인은 전갈 네 마리가 뒤엉킨 당문 고유의 무복을 입었다.
파문이라 생각한 순간부터 영원히 입지 못할 무복으로 생각했
는데...사마전에게 밀지를 받았지만 당문 무복을 입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청성산 부근에 밀집해 있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당문을 두더
지 취급하는 반당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경멸스런 눈초
리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청성...빌어먹을 청성에 들어서면
서부터 하루에도 열댓 번씩 보아야 하는 눈초리들...
예전의 당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와 존경을 받았다. 독에
중독된 사람들은 물론, 고질적인 병을 않던 사람들도 당문에서
는 거뜬히 치료해 줬다. 살아 있는 신의 손 그렇게 불리는 사
람들이 항시 너댓명씩 존재했다.
그러던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기룡이 당문주로 취임하면서
부터...
당문 십절, 신의 손이라 불리던 당문 십절이 독공의 대가들로
교체되었다. 축출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오직 한군데뿐. 당문
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영원한 은거에 들어갔다. 신의 손은
사라졌다. 대신 죽음의 손이 나타났다.
당문의 무력(武力)은 구파일방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세인들의 존경은 무력과 비례하여 추락하고 말았다. 일
반적으로 다른 문파들이 무력과 동시에 존경이 높아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순된 일이지만 이해 못 할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약초 도매상들과 결탁하여 이윤을 추구한 현실도 존경심을 떨
어뜨리는 데 한몫을 했다. 많은 독단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불
가피한 일이었지만...
"지난 보름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지만 삼절의 행방은 오
리무중이에요. 그를 끌어 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전면전이죠.
당신은 청성의 이목을 집중시키세요. 사소한 시비면 충분할 거
예요. 정말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만약 그
런 일이 생긴다면...호호호! 책임을 혼자 걸머져야 돼요."
"만약 삼절이 나타난다면?"
"그는 당철휘가 요리할 거예요. 그도 마찬가지죠. 실패한다면
그 혼자 책임을 져야해요."
"흥! 당철휘 따위가 삼절을?"
"그의 독공은 당문 십절의 수준에 올랐어요. 암산이라면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어요. 조문덕을 상대로 내기해 볼까요?"
한연지의 눈은 귀광으로 번쩍였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정
말 조문덕이 암산 당할것 같은 예감에 몸을 떨어야했다.
"너는 뭐 할 거냐?"
"청성의 이목이 당신에게 돌려진 틈을 이용해서 삼절을 찾아
내야죠. 그를 죽일 방법도 찾아내고요."
한연지는 당문 문양이 새겨진 무복을 디밀었다.
"이걸 입고 다니세요. 시비를 걸어 올 사람이 많을테니까."
자신에게 학대를 당한 여인이 일말의 표정도 없이 내미는 무
복, 입기가 께름칙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당자인으로서도 대책
이 없었다. 관현(灌縣)에 있는 약초상들은 삼절 진인의 그림자
도 찾지 못했다.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청성산 기슭에 있는 건복궁(建福
宮) 중턱에 있는 천사동(天師洞), 사백이십 장 높이의 산정에
위치한 상청궁(上淸宮)에도 그는 없었다. 아니, 삼백 삼십 리
에 달하는 청성산을 이 잡듯 뒤져도 삼절 진인의 행적은 발견
할수 없었다.
그 덕분에 청성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비록 약초상들이 약초 채집을 핑계삼아 청성산을 뒤졌지만 사
백여명이 일제히 산에 들어 온다는 것은 예사롭지 못한 일이었
다. 결국 당문에서 지낭으로 이름난 한연지, 그녀에게 자문을
구해야했다,
그런데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략은...
성공한다면 더없이 다행한 일이지만 실패한다면 자신만 청성파
에 노출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책임을 흔자 걸머지라고 했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단단히
일깨워 줄 생각이었다.
그게 어젯밤의 일. 조문덕이 잠에 곯아떨어진 야반 삼경에 주
고 받은 대화였다
"여보게, 가세. 오늘은 술맛이 떨어져서 마실 기분이 안 나는
구먼."
"그러세나 나도 마침 일어설까 생각 중이었네."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것처럼 기분 나쁜 일은 없었다. 그런 행
동을 모른다면 모를까 노골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서는데
야...
"이런 염병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던 조문덕은 팔목을 지그시 눌러 오는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주공 저런 놈들은..."
"내버려둬라. 술 마시거 싫은 사람들이 가는데야 어찌 말리겠
느냐. 우리가 술값 계산하는 것도 아닌데..."
당자인의 음성은 주루 안 모든 사람들의 귀에 뚜렷이 파고들었
다. 일부러 큰 소리를 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여보게 주인! 여기 금존청(金尊淸)하고 건작리배(乾昨裡背:
등심 고기 튀김)를 가져다 주게. 등심은 좋은 것으로 부탁하
네."
당자인은 조문덕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조문덕 역시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그들의 입가에는 가는 미
소가 매달렸다. 아침부터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청성 도사놈
그놈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이다. 금존청을 주문하는 순간에...
아마 자신들의 존재를 보고하러 갔음이 틀림없었다. 다음에는
도사놈들이 벌떼처럼 달려 들테고 그땐 적당히 어루만져 주면
된다.
다음은 한연지의 몫, 그녀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분명한 것은
청성오수가 나서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왔어. 그놈들이 왔..."
허름한 모옥 문을 힘껏 밀고 안으로 들어서던 갈홍아는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인상을 깊게 찡그렸다. 손은 자연스럽게 허리
춤에 매달린 보검 위에 얹혀졌지만 뽑을 생각은 없었다.
우선 상대의 인원이 너무 많았다. 거의 십여 명은 될 것 같은
데 한결같이 태양혈이 불끈 솟은 것이 고수임이 분명했다.
독상을 당하기 전의 몸이라 해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들, 하물며 지금은 그때의 절반밖에 내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형편이니...
다음은 그들의 복장에 기가 질려 버렸다. 청성파 도인들의 복
색. 이 곳이 청성산이니 청성파 도인들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보게 되지만 그들이 무더기로 몰려 들었다는 것은...심상치
않았다.
"갈소저라고 합니다. 무산파파의 손녀지요. 어서 들어와."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단비하의 모습이 비쳤다.
그의 결에는 회색 도복(道服)을 입고 허리에 단봉을 비켜 찬
초로의 도인이 있었다. 날카로운 안광, 빈틈없는 몸가짐, 범접
할 수 없는 기도...청성파내에서도 평범치 않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도인 십여 명을 전부 합쳐도 그 한 사람을 따
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게 갈홍아의 생각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
"갈 소저,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들어가서 이야기 합시다.
시간은 많으니까."
초로에 접어든 도인의 음색은 극히 평온했다. 마음과 몸이 함
께 녹아드는 듯 다정했다. 이런 음색을 지닌 사람들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경망되이 함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일을 처리해 갈
것이다.
'그래 청성파와 연락을 주고 받았음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이렇게 행동할 수 없어. 곧바로 청성산으로 달려온 점
도 그렇고..."
갈홍아는 복잡한 시선으로 단비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아는 단비하는 천하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일가
붙이는 물론 일면식한 사람도 전무할 정도였다. 적이 되어 버
린 당문 사람들을 제외하면 무산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라 할
정도로...그런 그가 언제 청성파와 손을 잡았단 말인가?
단비하에게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무산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깨달았다. 그는 도면에 점과 점을 찍어 놓고 한줄로 쭉 긋듯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중간에 가로막은 복면인들만 없었다면 약
간 돌아오는 길도 선택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무산을 떠나기 전부터 청성파와 손을 잡았다는 이야
기가 성립된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이 그런것을...
갈홍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사위를 경계하는 청성 도인들의 틈
바구니를 비집으면서 어쩌면 단비하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멍청이로 알던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시간이 지나
자 뛰어난 사람이 되더니 이제는 무림 거대 문파와 연수할 정
도로 급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다니...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저력만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도저히 이럴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
가 지닌 볼품없는 무공과 청성파와의 연계는...세상에 이런 부
조화가 또 있을까?
우르릉! 쾅!
하늘을 뒤흔드는 거센 충격이 뒷머리를 쳤다. 그 충격은 필설
로 다 할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갈홍아는 신형을 휘청거렸다.
무산파의 모사 제갈문이 청성파 삼절 진인 제갈부(諸葛浮)의
친동생이라니...
하나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온화한 인상의 도인.
그가 청성오수중 일인 무도심창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기
때문에 모든 의문이 빠르게 풀렸다.
제갈문의 놀라운 정보력도 이해할수 있었고 단비하가 제갈문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면 당철휘 일행이 청성파에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는 여반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의문들이 속출했다. 제갈문은 왜 그런
사실을 숨겼을까? 친형이 청성파의 장로란 신분인데도 불구하
고 미독환사 전장로를 아미파로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애써 무산파로 입문한 동기는? 생각 할 수록 복잡하기만 했다.
무산파를 위해서는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으로 하루 끼니조차 염려하던 가정에 황
금이 무더기로 쏟아졌을때의 기분이랄까? 제갈문...무산파가
포용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존재였다.
"비, 비하 이게 도대체..."
"그보다 아까 할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할말? 아! 시진에서 당자인의 모습을 보았기에..."
"당자인? 그가 시진에 나타났단 말이야?"
"응, 그것도 당문 복색을 입고 당당하게..."
"그래...! 푸훗! 와하하하...!"
"하하하...!"
단비하와 무도심창은 하늘이 터져라 웃음보를 터뜨렸다.
"하하하! 나는 삼절 사형의 지략이 하늘에 오른 줄 알았소. 그
런데 오늘 보니 그런 사람이 한 사람 더 있구려. 제갈문...하
하하! 아마 제갈 가문은 하늘의 축복을 받았거나 저주받은 가
문임이 분명하오."
"저주라 하셨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않소? 머리가 뛰어나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없
소. 그런 사람들이 행복할 리 있겠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과연 저주받은 가문
입니다."
"자,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당자인이 시진에 나타났다면 예측
대로 된 셈인데..."
"제 생각을 양보할 뜻은 없습니다. 당자인은 철천지 원수, 제
손으로 해결 하겠습니다."
"가능하겠소?"
"전 같으면 자신없었을 겁니다. 청성으로 오면서 미지의 인물
들에게 급습을 받았지요.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덕분에 독공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고 몸에 숙달시켰습
니다. 건방진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중독시키고자 마음 먹
어서 안될 사람은 없습니다."
"허허허! 대단한 자부심이오. 그럼 나를 중독시켜 보겠소?"
무도심창은 정중하게 말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독술을 경시했
다. 아무리 독술의 대가라 할지라도 이런 지척에서 함부로 손
을 놀릴 수는 없었다. 굳이 하독하고자 하면 할 수 있겠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 청성오수의 무공은 하늘에 닿았다는 소문
이었으니까.
갈홍아의 생각은 달랐다.
'미련한 사람, 벌써 독에 중독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녀가 아는 단비하는 하독 부문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생각도 없었다.
자신과 조모를 중독시킨 복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으
니까, 일 장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했으니까.
"그럼 실례를..."
단비하가 가볍게 고개를 수그리는 순간, 무도심창의 손은 허리
춤에 매달린 단봉을 잡았다. 여차하면 단봉을 창 삼아 나중평
찰창(拿中平札槍)을 전개하여 가슴을 찌를 참이었다. 적어도
그가 파악한 단비하는 내공이 없어 보였고 그런 사람이 펼치는
손놀림보다는 빠르게 일창을 전개할 자신이 있었다.
뜻밖에도 단비하는 양손을 소매 속으로 넣고 조용히 눈을 감았
다. 만약 무도심창이 생사 대적이라면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
다. 잠시 기다리던 무도심창이 불쾌한 안색으로 막 입을 열려
는 순간 단비하의 두눈이 번쩍 뜨여졌다.
"몸은 괜찮으신지..."
"무, 뭐?"
무도심창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토해 냈다. 벌써 하독을
했단 말인가? 이것이 독공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무공은 정녕
볼품 없어진다.
"어 언제...?"
갈홍아 역시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랐다. 단비하의 독술이 지고
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흔적도 없이 전개할 정도는 아니었
다. 만약 그렇다면 천하제일 독성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흔적도 없이 전개하는 독을...
"내, 내 몸은 괜찮...엇!"
급히 운공조식하여 몸을 세밀히 관찰해 가던 무도심창은 단비
하의 입꼬리에 매달린 웃음을 보았다. 득의로운 웃음, 급히 전
신 혈도를 봉쇄하려는 순간, 단비하의 손이 미끄러지듯 빠져
나오며 황색 가루분을 터뜨렸다. 단봉을 잡고 있는 손이 움직
일 틈도 없었다. 절묘한 시간적 안배, 그는 자신이 어떤 행동
을 할지 미리 알고 있었다.
"이런 비열한..."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하늘이 빙빙 도는 어지러
움, 가슴이 쏘개질 듯 아파오는 통증, 목구멍에서 기어나오는
단내...
"이건 무산파파가 즐겨 사용하는 사심독과 본 단가에서 비전되
는 섬백단을 혼합한 독이지요. 어떻습니까? 견딜 만합니까?"
무도심창은 정신이 없었다.
'내공을 운기하여 독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 세상 그 어떤 독
일지라도 나를 중독시킬 수는 없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일 뿐, 단비하의 마지막 말이 끝나
기도 전에 무도심창은 통나무처럼 무너져 버렸다.
"청성과는 언제부터 연락을 주고 받았어?"
"그런 적 없어."
"그럼 무도심창은..."
"오늘 찾아왔어. 삼절 진인의 전갈을 받았다면서."
"제갈문이 삼절 진인의 동생이란 것은..."
"무산에 있을 때 알았지. 어느 날 밤 그가 이야기해 줬거든.
그는 내가 무산에 머무르지 않으리란 걸 알았어. 가급적이면
효율적인 복수를 하라. 이것이 그가 말한 명분이었지. 그래서
당자인 일행이 청성으로 향하는 것을 알았고..."
갈홍아의 옷깃을 스치는 밤 이슬이 상쾌했다.
무도심창이 덧없이 쓰러지는 모습이라니...당철휘가 그런 지고
한 경지에 올랐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휘영청 밝은 보름
달 아래 밤길을 같이 걷는 사람이 그였다면...
미움과 사랑은 공존했다. 당철휘를 증오하면 할수록 그가 마음
을 바꾸어 지순한 사랑을 보여 주는 환상도 그리곤 했다. 물론
용서할 생각은 없지만 혹 그렇게 해준다면...
"제갈문은 당자인의 목적을 파악했어. 삼절 진인의 척살! 근래
에 제갈문이 가장 역점을 두고 한 일은 흩어진 무산파 문도들
을 모으는 일과 청성과 공조하는 일이야. 당자인 일행이 하는
일은 무산파가 재기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어. 본의
는 아니겠지만..."
"무슨 소리야학?"
"삼절 진인의 척살. 그것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무산과 청성
이 공조할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거든."
"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돌아갈 생각은 없나?"
"없어."
"무도심창과 행동을 같이한다면 당철휘를 더 빨리 죽일 수 있
을 텐데?"
"너하고 같이 다녀도 그를 죽일 기회는 생길 거야."
갈홍아는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한 말을하고 말았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당철휘...그를 죽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막상 그런 기회
가 자신에게 주어지고 칼자루를 쥐게 된다면...지금은 복수란
명분으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복수마저 끝내고 나면 무슨 목적
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두려웠다.
더욱 두려운 것은 자신의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당철휘.
원수같은 인간이지만 돌아오리라 확신했다. 그가 없는 세상이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치욕을 당하고도 무슨 미련이 남
았는지...순결을 빼앗고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 인간인데.
무도심창과 행동을 같이한다면 그런 기회가 더 빨리 찾아올 것
이다.
삼절 진인이 당자인 일행을 노리고 있는 이상 그들은 솔개 앞
에 놓인 병아리 떼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단비하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어느새 목적지에 다 온 것이
다.
당자인이 술을 마시고 있는 주루에.
무도심창은 운공조식으로 몸에 여독이 남아 있는가 확인했다.
해독약을 복용했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
게라도 확인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만큼 독성이 지독
했다.
숨을 고르고 눈을 뜨자 염려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눈
동자들이 보였다. 직계 제자들...그들의 눈동자에는 근심이 가
득 깃들여 있었다. 사부가 무너지는 모습이 과히 보기 좋지는
않았을게다.
"단비하는 갔느냐?"
"사부님과 대화를 나눈 후 곧바로..."
"음...!"
당자인은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그래도 무림에서 초절정고수
라 지칭받던 자신이 맥없이 당했는데 하물며 당문의 조무래기
정도야...
"뒤는 누가 따르고 있느냐?"
"청광(淸光)이 따라갔습니다."
"청광이라...그럼 됐다."
청광은 신체 골격이 특이했다. 상체보다 하체가 유난히 길었
다. 두팔 또한 기형적으로 길어 무릎까지 닿을 정도였다.
무도심창은 청광을 보자마자 낚아채다시피 해서 제자로 거두었
다. 칠십이파검(七十二波劍)을 발전시켜 개발해 낸 무도창법
(無道槍法)을 전수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골격이었다.
팔이 길어 창을 자유자재로 전개했고 하체가 길어 신법을 펼치
는데 더없이 적합했다.
과연 그는 남들보다 짧은수련 기간에 깊은 성취를 거두었다.
그런 그가 단비하를 뒤 쫓았다면 안심해도 좋았다. 자신이 당
하는 것을 보았으니 독을 경시하지도 않을 테고, 뒤따르며 소
식만 전해 주는데 위험이 있을 리 없었다.
"으음...l"
무도심창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제갈문으로부터 당자인에 관한 전서를 받았을때는 웃음만 나왔
다. 당문은 정녕 골칫거리였다.
바로 코앞에서 무섭게 세를 형성하고 있는 당문 칠 기회가 없
었던 것은 아니었다.
백년 전, 당문은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그때, 그때 쳤어야
옳았다. 그때는 대의명분이 뚜렷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천인들 대부분이 약초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 당문은 그들에게 막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아무런 명분없이 당문을 친다면 만인들로부터 질타를 받게 된
다.
삼절 진인은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단비하를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위인됨이 어떤지 살펴봐 달라고...
친아우라는 제갈문에게서 날아온 전서구와 연관있는 일일 게
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목적은 말해 주지 않았다. 어떤 때는
그런 점이 섭섭했지만 삼절 진인의 생각은 언제나 옳았기에 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단비하 같은 무명소배와 만날 생
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을 게다. 그런데...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무공으로는 장문에 버금간다는 청성오수 중 일인이 아니던가.
당해도 너무 쉽게 당했다.
독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했다.
단비하...가볍게 흘려 버릴 인물이 아니었다. 일전을 겨룬 다
음 확고하게 굳어진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삼절 사형의 생각이 틀린 것 같다. 단비하...죽여야
해.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그
를 꺾을 사람이 드물 거야. 그는 독중지성으로 추앙받을 테
고...독의 본거지는 역시 사천...사천에서 독의 제왕이 나오게
할수는 없지.'
단비하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다. 적어도 무도심창의 가습에는
당문 십절과 엇비슷한 경중으로 자리잡았다.
싹수가 보이는 것은 어릴 때 잘라버려야 한다.
아무리 당문과 적대하는 놈일지라도 독술이 지고한 경지에 오
른 놈이라면 죽여야 한다는 것이, 최소한 독술을 사용할 수 없
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무도심창의 생각이었다.
'호응정(顥應亭)으로 가자. 사형과 대책을 강구해야 돼. 단비
하는 경시할 수 없는 놈이야. 성장 가능성이 농후해 무시했다
가는 천추의 한이 된다.'
무도심창의 눈에서는 번갯불 같은 광망이 일렁거렸다.
호응정(顥應亭).
상청궁 뒤의 돌계단 구백구십구 개를 밟고 올라서면 청성제일
봉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 한가운데 조그만 정자가 위태롭게
세워져 있으니 바로 호응정이다. 사시장철 푸른 산림이 수려하
게 보이는 곳.
민간인은 상청궁을 출입하는 데도 제한을 받았으니 호응정은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 안전한 곳이라 할수 있었다.
삼절 진인 제갈부는 그윽한 맛의 작설차(雀舌茶)를 즐기며 입
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조양(朝陽), 너무 과민해진 것 같네."
"절대 과민하지 않습니다. 여섯 살에 청성에 입문하여 오십여
년 동안 불철주야 무공에 전념해 온 접니다. 그런데 단비하의
독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무도심창 조양 진인은 굳은 안색으로 단비하의 위험성을 역설
했다.
"허허허! 사제가 너무 겸양해진 것 아닌가?"
갑자기 말을 던진 사람은 얼굴색이 대춧빛으로 불그스름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얼굴...겉으로 보아서는 무공을 익힌 고수
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허리에는 회색빛의 도복
과는 어울리지 않는 금빛 요대가 둘러져 있었다.
청성에서 금빛 요대를 두르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일도일
사 뿐이었다. 일 도에 목숨 하나라는 말을 만들어 낸.
"답답하군요, 사형 목봉(木棒)을 뽑아 보지도 못하고 당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좌중에 동석한 육인은 비로소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사제가 한 말...정말인가?"
바싹마른 몸매에 얼굴빛도 누런 양피지처럼 핏기없는 도인이
물었다. 그의 무릎에는 일견하기에도 보검으로 보이는 검 한
자루가 곱게 놓여 있었다.
"단비하, 그의 독술은 최소한 당문 십절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더욱이 그가 전개한 독은 사심독과 섬백단을 섞은 것이라 했습
니다. 하지만 저는 죽는 줄 알았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사심
독이나 섬백단 정도로 저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으음...! 그 정도에 당할 자네가 아니지."
"새로운 독입니다. 당문에서 개발한 독은 아니었습니다."
"허허허! 사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단단히 반한 모양이
로구먼. 사실 자네에게 그를 보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은 동생의
전서 때문이었네. 당자인을 죽이려 하는데 도와줬으면 하는 전
서였지."
삼절 진인은 말을 잠시 중단하고 작설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나는 그 전서 자체가 신경에 거슬렸네. 부탁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동생이거든...그래서 단비하란 젊은이가 어떤 자인지
궁금했네."
"그럼 사형께서 직접 가보시지 않고..."
무도심창은 삼절 진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문(百聞)
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자신이 직접 보는 것이 가장 확실
하지 않은가?
"허허허! 어떤 일은 너무 자세히 아는 것이 장애가 될 수도 있
다네. 그런 걸 일컬어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하지. 허허
허!"
삼절 진인의 안색은 오히려 밝았다. 단비하의 존재를 과소평가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서도(書道), 화도(畵道), 다도
(茶道)에 능통하여 망양(望陽) 진인(眞人)이라는 도명(道名)보
다는 삼절 진인으로 불리는 사형의 심계가 지고난측하다는 것
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 무슨 복안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독술이 그정도라면 당
문과 거세게 부딪칠 겁니다. 당기룡은 가만있지 못할 것이고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 젊은이가 죽
는 것은 필연입니다. 우리는 뒤에서 약간 조정만 해주면 됩니
다."
삼절 진인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 바로 청성의 장문이었다.
"그럼 사제들의 암살건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깊고 서늘한 눈과 백발(白髮), 백미(白眉)가 인상적인 노도사
가 물었다. 청성파 장문 옥양(玉陽) 진인(眞人)이었다.
"얼마 전 당문에 일대 변혁이 있었습니다. 귀속칠가들이 당문
의 강압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당문은 그들의 행동
을 소리 소문없이 저지시켰습니다. 문제는 귀속칠가를 움직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인데...빈도의 생각으로는 아미파가 아
닌가 생각됩니다."
"아미파!"
"아니, 아미가 귀속칠가를?"
"사천성에서 귀속칠가를 꼬드길 만한 세력은 아미와 점창 그리
고 우리뿐인데 점참은 지역적으로 거리가 있으니..."
"계속 이야기해 보게."
옥양 진인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당문에서 조그만 사건
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연 발생적인 현상으로 치부
했지 아미파가 개입 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사태가 의외로
복잡했다.
"문제는 당문이 귀속칠가를 부추긴 배후 세력으로 우리를 지목
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모른다는 이야기지
요. 화는 나는데 맞대 놓고 추궁할 수는 없고...그래서 편법을
쓴겁니다. 당자인을 축출하고 당철휘를 내보내고, 아마 그들의
뒤를 받쳐 줄 힘이 당문을 출발했을 겁니다."
"허허허! 그들로 청성을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아닙니다. 당기룡이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지요. 당자인
일행은 공식적으로 당문과 연관이 없습니다. 즉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간에 당문과는 연관이 없다고 발뺌을 하겠지요. 그들
은 낚싯밥입니다. 앞에서 눈을 가리는 안대 역할을 하는 동안
실질적인 힘은 뒤를 칠 겁니다. 청성오수와 저를."
"뭐? 허허허! 과연 뱀처럼 사악한 자로군."
"문제는 우리들을 치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귀속
칠가 사람들이라면 살겁을 펼치기도 힘듭니다. 사실 그들을 쳐
봤자 껍데기에 불과하고 갖은 오욕은 청성이 뒤집어쓰게 되어
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좋겠나?"
"뒤를 받쳐 주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당자인 일행을 제거해야
합니다. 단비하란 젊은이가 친다면 효과가 없지요. 청성의 힘
으로 쳐야 합니다. 철저하고 깨끗하게."
삼절 진인은 미리 생각해 두었던 듯 복안을 구구절절이 풀어
냈다.
"좋네, 그렇게 하지. 그럼 삼절이 안배했던 대로 시행들 하
게."
결론은 내려졌다.
호응정, 청성파의 장문과 여섯 장로인 청성오수 그리고 지략이
극히 뛰어난 청성의 머리 삼절 진인이 늘 회의를 하는 곳이었
다.
첫댓글 즐독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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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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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고맙습니다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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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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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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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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