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6번째 편지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의미는?
2024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다양한 내용의 신년 인사를 받았습니다. 일일이 답장은 못 하였습니다. 대신 월요편지를 통해 저도 새해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하고 있는 이 신년 인사는 언제 누가 처음 시작한 것일까요? 인터넷도 뒤지고 ChatGPT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도 신년 인사를 할 때 상대방에게 복을 많이 받으라고 축원할까요? 사용자 수가 많은 언어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영어(약 15억 명)는 'Happy New Year'(행복한 새해)로 우리나라의 복에 해당하는 Happy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복을 비는 의미보다는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중국어(약 11억 명)는 '新年快乐'(새해 축하)로 '乐'가 즐거움이나 행복을 뜻하지만 새해 자체를 축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힌디어(약 6억 명)는 ''नए वर्ष की शुभकामनाएँ!(새해에 좋은 소망들)로 'शुभकामनाएँ'가 좋은 소망, 축복의 뜻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에게 축원하는 의미가 담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사처럼 '많이'나 '받으세요'라는 등의 상대방을 의미하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스페인어(약 5억 3천만 명)는 '¡Feliz Año Nuevo!'(행복한 새해)로 영어의 'Happy New Year'와 동일한 표현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어(약 2억 7천만 명)도 영어, 스페인어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새해라는 의미의 'Bonne année!'입니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는 라틴어에서 파생한 언어입니다. 같은 어원을 가지는 언어로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가 있습니다. 이들 언어의 새해 인사를 어떨까요.
이탈리아어로는 'Nuovo anno felice'로 영어로 번역하면 'New Year Happy'입니다. 영어와 어순만 바뀌었습니다. 포르투갈어로는 '¡Feliz Ano Novo!'로 스페인어와 단어 모양도 거의 비슷합니다. 라틴어는 모두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는 라틴어 계열은 아닌 인도-유럽어족의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언어이지만 노르만 정복(1066년) 이후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새해 인사는 그 영향의 결과로 라틴어 계열과 동일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라틴어에서는 새해 인사를 어떻게 할까요?
'Felix sit annus novus'(행복한 새해가 되길)입니다. 영어의 'Happy New Year'나 스페인어의 '¡Feliz Año Nuevo!'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중간에 'sit'라는 단어가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라틴어의 'sit'은 라틴어 'esse'(있다, 되다)의 명령법 또는 희망을 나타내는 형태로 우리나라 말로는 '있기를'입니다.
제 얕은 지식으로 라틴어에서는 새해 인사를 <행복한 새해가 되세요>라고 인사하였던 것이 세월이 흘러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그리고 영어에서는 이를 줄여 <행복한 새해>라고 인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5대 언어별 새해 인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 행복한 새해가 되길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의미는 세상을 향해 새해에는 모두가 행복하기 바란다는 의미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우리나라처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상대방에게 개별적으로 구체적으로 축원하는 형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새해 인사는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해 복을 많이 받기를 바라는 특별한 형태의 인사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많이 받으라고 권하는 <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福은 示(보일 시) + 畐(가득할 복)으로 파자할 수 있습니다. 示는 하늘에서 내려보는 관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福은 인간이 계획하고 실현하는 것들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의지로 이루어 낼 수 없는 어떤 절대적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개념이라고 해석합니다.
인터넷 <브런치 스토리/ 짐꾼의 목장>의 의견을 보겠습니다.
"중국인들은 원래, 복(福)이라는 것은 제 가질 깜냥만큼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에게 '복받으라' 하는 것은 자기가 가진 복에서 얼마를 떼어서 주는 셈이라 그들은 웬만해선 남들에게 복받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새해 덕담을 나눌 때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새해에는 신나는 일만 있어라 (新年快樂)' 하는 건데, 그에 비하면 자기 뒤주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모르면서 '복 많이 받아라' 하고 너도나도 퍼주는 우리네 인심은 얼마나 후한 것인가."
매우 독창적인 해석입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운명론이 지배할 때는 복도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의 철학은 운명론을 거부하고 <행복은 인간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개념을 바꾸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새해 인사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수동적으로 "그저 아무 것도 안 해도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듯 복이 쏟아지니 그 복을 받으세요"라는 의미가 아니라 능독적으로 "새해에는 목표를 많이 계획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많은 좋은 결실이 이루어져 행복해질 것입니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께 다시 한번 새해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번 한 해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1.2.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