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김산을 만나다 1 (외 2편)
이윤훈
불 뿜는 용처럼 생긴 과일
처음 본 순간
당신의 붉은 얼굴이 환영처럼 비쳤답니다
속속들이 짙붉은 홍육화룡과(紅肉火龍果)
그 안을 열다 내 손이 뻘겋게 물들고
핏물이 흐르는 은빛 칼
아, 뼛속까지 붉게 물들어야 혁명이겠지요
세상의 모든 것에 졌지만
나 자신에게는 승리했다
당신의 말을 입술에 얹어봅니다
온몸이 뜨거워지고
혁명과 함께 당신이 다시 내게 대어납니다
숨을 헐떡이며 비틀비틀 일어서는
난산의 포유류 새끼
혁명은 그런 것이겠지요
화룡과 하나 핏빛 손으로 받아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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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산(1905~1938) : 혁명가, 항일독립투사, 아나키스트.
앙리 마티스
⸺ 춤
손잡고 도는
알몸의 다섯 여자들
태양의 춤
깨끗한 피가 돈다
생의 볼륨
소낙비 내리고 물오른 알몸, 탱고의 음표예요
살아있음을 참지 못해 바람구두를 신어요
발꿈치에 매발톱이 돋아요
춤추는 붉은 드레스, 활짝 핀 함박꽃이에요
숨이 찬 바이올린 네 줄, 끊어질 듯, 질, 듯
아, 생의 볼륨을 높여요 포플러나무 끝까지
⸻시집 『생의 볼륨을 높여요』 (2018. 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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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훈 / 1960년 평택 출생. 아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생의 볼륨을 높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