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이 글은 필력과 내용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미흡함이 많습니다.】
11세기라면 중세의 성기로써 중세의 중반부입니다. 이때부터는 봉건제가 유럽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기사가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기사는 시대, 민족에 따라서 그 모양새와 장비가 다르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11세기 하면 가장 유명한 노르만 족의 기사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1. [12세기 프랑스 기사]
2. [10~11세기 노르만 기사]
{삽화를 보시다시피 이 삽화들은 프랑스계 노르만인 기사들의 모습입니다.}
노르만족은 9세기때부터 갈리아 지방을 활발히 습격하고 노략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911년, 노르만족의 침략에 진저리가 난 서프랑크 왕국의 단순왕 샤를 3세는 갈리아 지방을 노략하던 노르만족의 수장인 롤로에게 개종(改宗)과 종신(從臣)을 권유했고, 그결과 롤로는 샤를 3세의 가신이 되고 샤를 3세는 그 보답으로 롤로에게 노르망디 지방을 하사합니다.
이후 노르만족은 노르망디에 정착하여 세를 불리고, 노르만족의 강력한 전투력과 프랑스의 기마술을 결합시켜서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게 됩니다. 후일 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후일 노르망디의 공작 기욤(영국식:윌리엄)은 잉글랜드로 건너가서 잉글랜드를 차지하게 됩니다.
자, 이제 이 강력했던 노르만 기사를 살펴봅시다.
노르만 기사들은 중세 시대 기사지만 판갑 같은 깡통을 착용하지는 않았습니다. 11세기때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갑옷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노르만족의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 우리가 아는 갑옷이 아닌 겁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깡통만 쓰고 다닌게 아니라는 소리)
이들은 대부분 체인 메일이라는 사슬 갑옷을 입었습니다. 이 체인 메일을 호버크(haubark)라고도 부르는데(1, 2번 삽화 참조) 이 호버크는 대체로 종아리까지 내려왔는데 짧으면 허벅지 정도까지, 긴 것은 머리 전체부터 발목까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호버크는 신분에 따라서 길이가 달랐습니다. 일반적인 병사들은 호버크가 대부분 허벅지 정도까지 오는 반면, 영주같이 신분이 높은 귀족들은 종아리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이나 대영주같이 신분이 매우 높은 귀족들은 발목까지 오는 호버크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 차이가 호 버크의 값이 많이 나가는 물건인지 잘 알려주기도 하지요. 노르만족만의 특징중 하나는 2번 삽화를 잘 살펴보면 호버크의 허리 부분에 칼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습니다. 물론 이 구멍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2번 삽화에 있는 칼집이 1번 삽화에 없는 이유)
호버크를 입고 머리부분은 코이프(coif)라는 사슬투구를 쓰는데,(1번 삽화 참조)때로는 호버크가 머리전체를 감싸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 코이프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투구는 우리가 잘 아는 깡통 투구인 헬름(helm)이 아니라 저 삽화들에서 나오는 투구를 썼다고 합니다. (1, 2번 삽화 참조) 저 투구를 노르만 헬멧이라고 합니다. 이 노르만 헬멧은 11~12세기쯤 기사들이 많이 썼다고 합니다.
방패는 노르만의 특유의 방패인 카이트실드라는 나뭇잎 모양의 방패를 쓴다고 합니다.(1, 2번 삽화 참조) 이 카이트실드는 말을 탈 때 방패를 팔에 걸 수 있게 줄이 달려있다고 합니다.
이제 노르만 기사들의 무기를 살펴봅시다.
노르만 기사들은 장창이나 2m 정도 되는 단창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하마시에는 장검을 사용했는데,(1, 2번 삽화 참조) 대체로 당시 유럽의 기사들은 저런 장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장검은 대체로 80~90cm의 길이에 검날의 폭이 일부로 넓게 고안됐는데, 그 이유는 좀 더 갑옷을 잘 베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검의 위력은 투구를 절단하고 두개골까지 손상을 줄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고 합니다.
노르만 기사의 공격방식은 전시대 기병과는 조금 다릅니다. 전시대 기병들은 단창을 사용한 투창과 기병돌격을 겸하는(대표적으로 고트족의 기병이나 카롤링거의 기병) 반면 노르만기사들은 투창을 하지 않고 오로지 돌격만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후일 유럽 중기병의 원형이 됩니다.
이 노르만 기사들의 강력함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예시로는 유명한 헤이스팅스 전투(1066)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헤이스팅스 전투는 언덕 위에서 돌격해오는 색슨족의 보병대를 노르만 기병대의 돌격으로 반격하면서 전투를 노르만 공작인 윌리엄이 승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노르망디 공작이 그 유명한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의 초대왕 정복왕 윌리엄입니다.
[물론 완벽한 기병의 공은 아니다. 당시 색슨족 보병대는 런던에서 이미 한차레 전투{1066년, 노르게의 하랄과의 전투}를 겪고 바로 런던에서 잉글랜드 남부 헤이스팅스까지 뛰어온거라 병사들이 매우 지쳐 있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하지만 기병의 돌격은 정말 매우 강력하고 위협적인 것은 사실이다.]
다음에는 12세기 기사들과 템플러와 호스피텔러들에 대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저 호버크는 현재, 이시대에도 살수 있다. 때때로 영국 신문을 살펴보면 호버크를 판다는 광고가 실리기도 한다. 물론 조립품이라서 구매자가 직접 조립 해야한다.」
참고 - 환상의 전사들, 이치카와 사다하루(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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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잘 봤습니다.
동래성 견학했을때 우리나라 투구에 대해 가이드분이 설명하시길 종이로 만들었고 옻칠을 두텁게해서 건조시키는 공법으로 가볍고 단단하다고 해서 엄청 놀랐습니다. 저는 금속재질인줄 알았는데 그때 처음 알게 되서 지금도 믿겨지지 않더군요. 옻칠때문인지 금속 광택이 나서 당연히 금속제 투구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갑옷 제작이 정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을거 같더군요. 게다가 멋지기까지 하니 ㅎㄹ
칠한다니까 삼국지 등갑이 생각나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