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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 )
청성은 부산했다. 무려 삼백여 구에 달하는 시신을 처리한다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청성산은 도교의 명산인
지라 향화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비통한 심정은 잠시
접어 두고 격전의 흔적을 빨리 처리해야 했다.
정오무렵.
각기 독특한 병장기를 휴대하고 청성산 서남쪽으로 들어선 일
단의 무리는 서슴없이 원명궁(圓明宮)으로 접어들었다.
"무량수불...오늘은 향화객을 받지 않습..."
정중하게 예를 표하던 청석(淸石) 도인(道人)은 심상치 않은
예감에 말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흐흐흐...! 대청성파에서 향화객을 받지 않는다니 언제부터
이렇게 꼬리를 말았지? 혹시 도관(道觀)에 예쁜 여자라도 숨겨
두고 있는 것 아냐?"
음충맞게 웃으며 어깨에 둘러 밴 철추를 만지작거리는 장한은
호전적인 눈빛을 보냈다,
분명한 도전이었다. 당문과 접전시 예상치 않은 희생에 당황하
고 있는 청성파에 숨돌릴 틈도없이 나타난 괴한들, 마치 사전
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듯 적시에 나타났다.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
청석 도인은 가슴에서 치미는 울분을 꾹 억누르며 예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존함! 우하하핫! 야, 청성파 도장님께서 존함이란 말씀을 사
용하시다니 송구스럽습니다. 우하하핫!"
"이봐, 그러지 말고 존함을 가르쳐 주지 그래. 그래야 죽어서
도 원이나 없지. 요즘 귀신들은 무척 지독하다는데 만약 꿈에
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래?"
쥐처럼 작은 눈을 가졌지만 날카로운 안광이 절정고수임을 말
해 주는 사내가 거들었다.
"그럴까? 이봐, 냄새나는 도사. 존함을 들을 준비는 되어 있
나?"
"말씀하시지요."
청석은 즉시 예를 취했다. 그러나 전신 내공을 끌어올려 불의
의 기습에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어르신의 존함은 바로 옥황상제이시다, 우하하핫!"
거한은 안하무인 격으로 웃어 제쳤다. 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
청성에서 벌어진 일을 어디선가 들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
무리 그렇더라도 아직 청성이 종이 호랑이는 아닌데...
"그만들 돌아가시지요. 접대를 소흘히 했다고 원망듣겠습니
다."
"이놈아 접대를 소흘히 한것은 사실이잖아."
휘이잉...!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철추가 위맹스런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들
었다.
"건방진 놈들! 손속이 맵다고 원망일랑 말아라."
청석은 즉시 대라산수를 펼쳐 내기 시작했다.
청성의 모든 무공이 빠름에 역점을 두었듯이 대라산수 역시 십
팔식을 일순간에 펼쳐야 묘미가 사는 절정무학이었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되받아 치는 것은 무당의 면장(綿掌)과 흡사했
지만 검을 휘두르듯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난다는 것이 크게
달랐다.
"흐흐흐! 제법 한수하는 것을 보니 청 자배 도사놈이군."
거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망하고 있던 다른 장한들이 일제
히 달려들었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말을하던 청석은 산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향전(香箭)을 보았
다. 적이 침입하면 쏘아 올리라던...그러고 보니 무뢰배들은
원명궁에만 온 것이 아닌 듯했다.
"타앗!"
청석은 우렁찬 고함과 함께 대라산수 십일식과 십이식을 연달
아 전개하여 거한의 오른쪽 늑골을 쳐갔다. 동시에 품에서 향
전을 꺼내 하늘로 쏘아올렸다.
휘르륵...! 퍼어엉...!
향시가 터지며 커다란 음향이 울렸다. 청성 어느 곳에서나 들
을 수 있는 비록 상청궁과 거리는 멀어도 충분히 들었을 게다.
"하하하! 쥐새끼 같은 놈. 도움을 청해? 하여간 정파 얼굴에
먹칠은 청성이 다하는구먼."
"어이, 내버려둬. 다 살자고 바동거리는 짓들인데."
장한들은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여유롭게 공격을 가해
왔다. 분명 이름없는 강호 초출들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청 자 항렬을 가진 자신이 이렇게 고전할 까닭이 없었다.
"어이! 떼거지로 몰려 나온다. 이만 가자."
무뢰배 중 일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향전 소리를 듣고 원명궁
에 있던 청성 도인들이 몰려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내지른 소리
였다.
"하하하! 이봐 돌대가리 그럼 다음에 보자고."
장한들이 일제히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 또한 미리 도주
할 시기와 방향을 정해 놓은 듯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사
불란했다.
"저들이 누구기에..."
청석은 청성파의 무공에 회의(懷疑)가 들었다. 자신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그래도 이십 년이나 갈고 닦은 무공인데 무명지
졸들에게 허둥거린 모습이라니. 혹시나 사제들이 봤을까봐 부
끄러웠다.
호응정에 육 인이 모여들었다. 장문 옥양 진인, 삼절 진인, 청
성오수중 사 인, 그들의 안색은 한결같이 비통했다.
"휴우! 사제들을 볼 낯이 없네. 청성을 맡은 지 삼십 년...발
양광대(發揚廣大)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수모를 당하게 만들
다니..."
"장문 송구합니다. 우선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삼절 진인은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는지 처음부터 일의 경
과를 돌이켜 보았다. 당자인 일행이 나타나고 일양자가 공격하
고...거기까지는 아무런 하자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율촌
에 나타난 귀속사가 그리고 전위대원들의 죽음을 무릅쓴 저
항...분명히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은 짐작하겠는데 정확히 어
느 부분이라 집어 낼 수가 없었다.
"놈들은 시도때도없이 공격해 옵니다. 제자들은 한시도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상적인 공격이라 적절하게 대처할 수도 없
고...뭔가 방법을 강구해야 겠는데..."
무도심창이 답답한 듯 넋두리를 늘어놨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똑같았다. 생각같아서는 단칼에 버릇없는
행동을 징계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이틀사이에 상청궁으로 올라오는 일곱군데의 산로가 열 번에서
열다섯 번의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아직 사상자는 없지만 진
정 피곤한 노릇이었다.
"놈들의 정체는 파악했습니까?"
삼절 진인은 조심스럽게 옥양 진인을 올려다봤다, 일시감에 터
져 버린 진노를 참지 못해 귀속사가 도당을 소탕했고, 그 결과
일백여 명의 제자들이 혈수에 잠긴 것을 자책하는 장문.
"전서구를 한마리 잡았는데, 호북성에서 발호하는 칠은방주에
게 가는 전서였네. 아마 저들도 칠은방도가 아닌가 싶네만..."
장문은 소매 속에서 노란 전서를 꺼내 삼절 진인에게 건네 주
었다.
< 보고(報告).
삼백여 형제들 청성산에 집결. 명(命)대로 청성파를 공격하고
있으나 무공의 현저한 격차로 인해 공략이 불가(不可)함.
방주는 속히 방도(方道)를 증원해 주기 바람.
칠은방(七銀幇) 영원불멸(永遠不滅). >
"앗차!"
삼절 진인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삼절, 왜 그러는가?"
"자, 장문. 제, 제가 불민해서 청성에 대죄를 지었습니다."
삼절 진인은 황급히 옥양 진인의 면전에 무릎을 꿇었다.
"삼절, 도대체 왜 이러는가? 말을 해야알 것 아닌가?"
"사형! 사형답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속시원하게 말
이나 해 보십시오."
청성오수 중 냉정하기로 소문난 일검파천 부양(浮陽) 진인(眞
人)조차 답답한 얼굴을 했다.
삼절은 장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는 눈물이 그렁거
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콧등이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당문은...당문은 저희 청성파에 위세를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
었습니다. 귀속삼가를 부추긴 복수를 하려 함도 아니었습니다.
당문, 당문은 저희 청성을 무림에서 제명할 계획입니다."
"제명? 아니, 감히 당문이 청성을 건드린단 말인가?"
"이대로 가다가는 당문의 음모에 말려듭니다. 벌써 제자들이
백여명이나 죽었습니다. 당문이 칠은방도와 합세하여 일거에
공격해 온다면...끝장입니다."
"그럼 그게 모두 다 당문의 획책이란 말인가?"
"당기룡, 당기룡을 너무 얕잡아 봤습니다. 당기룡의 짓이 틀림
없습니다. 현 무림 정세를 보면 칠은방도를 움직일 만한 사람
은 당문밖에 없습니다."
"으음...!"
옥양 진인은 깊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심상치 않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당문이 마각을 드러냈다면 진
실로 중대한 위기였다. 더군다나 당문은 뒤로 한걸음 빠져 있
어 드러내고 질책할 성질도 아니었다.
"사형, 당문과 칠은망도 가 연합했다는 중대한 사실을 몰랐단
말이오? 그사실만 알았더라면...에잇! 칠은방도들의 무공은 보
잘것 없습니다. 어중이떠중이들을 긁어 모은 사교(邪敎) 집단
이 아닙니까? 그런 무리들이 아무리 덤벼든다 해도 까딱하지
않을 청성입니다. 그런 것이 무슨 큰일이나 된다고 호들갑이십
니까?"
성질이 열화 같은 일양자가 불쑥나섰다.
그는 무뢰배들이 공격해 올 때마다 직접 나서서 쳐죽이지 못하
는 것을 원망하는 터였다. 만약 하산하지 말라는 장문의 지엄
한 명이 없었던들 벌써 한달음에 달려가 살육을 전개했을 것이
다.
"미안하네, 일양. 당문이 칠은방과 손을 잡다니...진정 몰랐
네."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한말이지만 설득력이 미약했다. 청성의 정
보망은 당문과 칠은방과의 연계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냈다.
아무리 호응정에만 있다 할지라도 청성오수까지 아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삼절 진인은 눈을 감고 자문자답하듯이 상황을 설명했다.
"칠은방도는 산만한 듯하지만 실은 분전(分戰)을 유도하고 있
는 것일세. 약오배어적(若五倍於敵), 즉삼술위정(卽三術爲正),
이술위기(二術爲奇)라. 아군 병력이 적의 다섯 배일 적에는 삼
을 정면 공격에 충당하고 이로 기습한다. 제자들의 무공이 높
음에도 불구하고 침입자들과 호각지세(互角之勢)를 이루고 있
음은 바로 중과부적(衆寡不敵). 그럼 나머지 이에 해당하는 무
인들은?"
옥양 장문을 비롯한 청성사수는 삼절 진인이 중얼거리는 모습
을 보며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다섯 배라니 그럼 천여 명
에 이르는 무인들이 청성산을 에워쌌단 말인가? 모골이 섬뜩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삼절 진인은 당문과 칠은방이 연합한
사실을 몰랐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그러나 이번에는 장
문조차 모르고 있는 칠은방의 공격 인원을 말했다. 어떻게 일
천여 명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하지만 현실이 급박하여 이런
의문들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적어도 사백여 명이 기습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터."
삼절 진인은 말을 끊고 묵상에 잠겼다.
이럴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 침 삼키는 소리조차 참아야 한
다. 잠겼던 눈이 뜨여지면 가공할 계략이 쏟아지리라. 그리고
그 계략은 청성을 위기에서 건져 주는 구명줄이 되리라.
이윽고 삼절 진인의 눈이 반짝뜨여졌다.
"사제, 방법이 생각났는가?"
옥양 진인은 입 안이 바싹타는 긴장을 느끼며 다급히 물었다.
"싸워서는 안 됩니다."
삼절 진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했다.
"아니 싸워서는 안된다니..."
"이곳은 청성산입니다. 칠은방이 분전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주
전(主戰)을 써야 됩니다. 병법에 보성비험(保城備險), 절기양
도(絶基糧道)라 했으니 문을 굳게 닫아 걸고 싸움에 응하지 않
되, 칠은방의 보급로를 철저히 차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 달
이 가기 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형 답답한 소리만 골라서 하시는군요. 아, 그까짓 칠은방도
놈들이야 천 명이면 대수고 이천 명이면 뭐 합니까? 그냥 나가
서 일거에 끝장내는 것이..."
"사제는 생각을 한 다음 말하는 습관을 기르게!"
일양자의 음성은 삼절 진인의 호된 질책에 뚝 끊겼다.
"나는 지금 청성을 둘러싼 칠은방도를 염려하는 게 아냐. 저들
을 물리치려면 제자들의 희생도 따라야 할터...좋네. 그렇게
해서 물리쳤다고 해보세 하지만 그다음 또 다른 무리들이 공격
해 온다면 어찌 할텐가? 그때도 나가서 싸우겠는가? 강전(강
戰)만이 능사는 아니네."
아차 싶었다. 그런 점을 생각 못했다. 칠은방도 일천여 명이
몰려왔다면 나머지 육천여 명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었다. 이동
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무인을 선별해 내는 문제가 어렵겠지만
칠은방이라면 충분히 공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설마 그렇게까지...우리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텐데 무엇 하러 죽기 살기로 덤비겠습니
까?"
"모르지, 당문주의 미끼가 무엇인지, 하지만 당기룡이 머리를
썼다면 끝장을 볼 거야."
"그럼 사제의 의견대로 함세. 하지만 우리가 굳게 문을 닫고
있으면 누가 저들의 보급로를 차단하나."
옥양 진인이 어수선한 좌중을 일신하며 결론을 요하는 질문을
했다.
"후후후! 조양과 일양을 건드린 놈이 적격입니다."
"단비하란 젊은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칠은방이 전면적인 공격을 가해 온다면 청성이
위험합니다. 청성사수와 장문이 움직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다행히 저는 죽은것으로 되어 있으니 제가 나서서 단비하란 젊
은이와 함께 보급로를 차단하겠습니다."
옥양 진인은 참 한심했다. 어쩌다 대청성파가 칠은방 같은 사
교 무리에게 핍박을 당하게 되었는지. 공격을 당하면서도 모욕
스런 언사를 들으면서도 참아야 하는지.
'수성(守城)만이 능사는 아니었어. 달리는 말에는 채찍을 가했
어야 했는데. 삼절이 장문을 맡았더라면 이렇게는 안되었을 텐
데.'
전부터 느꼈던 감정이지만 이번 일만 끝나면 장문직을 이양해
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다행히 사제 삼절 진인도 장문을 바
라고 있으니 서로간의 입장이 바뀌는 것도 좋을 성싶었다.
삼절 진인은 공사로 다망하고 자신은 산수와 더불어 은유자적
하는 생활.
'사부님이라면...넘기셨을거야. 사제의 귀계를 따를 사람이 없
으니까.'
* * *
단비하는 농가를 빌려 상처를치료했다.
전신이 화끈거리던 독상은 말끔히 가셨지만 부러진 갈비뼈는
근 보름 동안 정양(靜養)을 요하는 큰 상처였다. 내장이 상하
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아직도 화상을 입은 듯 벌겋게 변한
피부가 독의 지독함을 설명해 줬다.
휘이이잉!
완연히 겨울 냄새를 풍기는 바람이 거칠게 스쳐 갔다.
'이해할 수 없어. 당문에 내가 모르는 독이 있다니.'
당잠청이 마지막에 하독한 독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종류였
다. 혈뇌옥에 갇힌 기간이 삼 개월. 당문을 떠나 중원을 활보
한 게 일 년, 일 년 삼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새로운 독을 만들
어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경독이었어. 그것도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최악의 신경독...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제조 기법은? 그걸 알지 못하는 한 당문
주를 건드리지 못한다.'
휘이잉...!
무정한 겨울 바람은 흩어진 머리카락을 날리며 답답한 심사를
조롱하는 듯 했다. 그때,
삐이걱...!
손본지 오래된 사립문을 밀치고 갈홍아가 들어섰다.
"아니 왜 또 나왔어? 찬바람은 몸에 해롭다고 했잖아."
그녀는 무복 대신 동네 아낙들이 입는 평범한 옷을 입었다.
머리는 그저 되는 대로 질끈 동여맸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찬
바람을 맞아 불그스레하게 상기되었다.
손에는 검 대신 떡 한 접시가 들려 있었다. 아마 동네 아낙들
에게 얻어 온 것이 틀림없을 게다.
갈홍아는 내놓고 부인으로 행세했다. 관현에서 농가를 빌려 살
아 본 경험도 있고, 젊은 부부로 행세하는 것이 거미줄같이 촘
촘한 당문도의 눈을 속이기에 적합한 까닭이었다.
"들어가서 떡 좀 먹어. 호박을 넣었는데 아주 달고 맛있어."
"떡이라...후후후! 너도 많이 변했구나? 사탕과자 외에는 쳐
다보지도 않더니 이제는 떡도 먹을 줄 알고..."
"놀리지 말고 들어가. 한두 살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게 뭐
야?" 네 몸 생각은 네가 해야지 누가 해줄 줄 알아?"
한달음에 달려온 갈홍아는 단비하의 어깨를 부축했다.
톡톡쏘는 기세가 사라졌다. 농가에 같이 거주하면서 갈홍아에
게 찾아온 변화였다. 물 길고 나무해 오고...한번도 해보지 않
은 집안일을 혼자 다하여 피부가 많이 거칠어졌지만 얼굴에는
온온한 화색이 돌았다.
- 정말 좋다,,,나는 손끝에 물 안 묻히고 살려고 했는데 이제
는 생각이 바꿔었어. 부귀하게 사는 것보다 값진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 그게 뭔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과 근심없이 사
는거야.
어느날 잠든 머리맡에서 중얼거리던 독백이었다.
그녀는 몽매에도 바라던 사랑을 얻은 양 즐거워했다. 단비하가
보기에는 남악 형산으로 가는 길에 당철휘에게 보여 줬던 행복
한 미소였다. 그때의 모습이 풋풋한 사과 같았다면 지금은 좀
더 성숙한 모습이라는 것이 다를 뿐.
"괜찮아. 이제 나 혼자 걸을 수 있어."
단비하는 여인의 독특한 살내음을 맡자 민망스런 생각이 들어
부축을 뿌리쳤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운공조식을 열심히 한
탓인지 상처는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걷다 보면 옆
구리에서 바늘로 콕콕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풋! 바보...그래, 그럼 혼자 걸어."
갈홍아는 피식 웃으며 떡을 한 조각 떼어 먹었다. 이것이 그녀
다운 행동이었다. 상대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마음, 가장 편
하게 해주려는 세심한 배려, 그래서 갈홍아와 함께 있으면 마
음이 편했다. 막말도 함부로 할수 있을 정도로...
한연지는 부축할 생각도 안 했을 게다. 그녀는 강자를 좋아했
으니까. 어떤 상황도 홀로 타계하며 정상에 우뚝 서는 강자.
그런 사람만이 그녀의 관심사인데, 하물며 이까짓 상처에 쩔쩔
매는 사람. 사랑을 받는 데 능숙한, 그러나 줄 줄은 모르는 여
자가 한연지였다.
이경화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부축하려 할 게다. 워낙 눈물이
많았다. 무공을 익힌 여인답지 않게 마음이 여렸다. 부축을 거
절하면 섭섭한 마음에 소리없는 눈물만 흘릴 게다. 너무 착해
사기그릇처럼 조심스런 여자였다.
전부 신경 쓰이는 것 만은 틀림없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
은 조건에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면 그까짓 비위 맞추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지만 모든 신경을 독에만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국에 사랑타령이나 하고 있을수는 없었다. 만약 갈홍아마저
부담스런 여인이었다면 같이 있지 못했을 것이다.
단비하는 갈홍아가 진짜 사랑에 눈 떴음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나서던 갈홍아는 낯선 도인을 보고 이맛
살을 구겼다. 잠시 동안 맛보았던 평화가 깨졌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누구신지...?"
초로의 도인은 밤새 내린 눈속에 묵상처럼 서 있었다. 칠흑처
럼 검은 흑발과 가슴까지 길게 늘어진 수염에 하얀 눈이 쌓여
탈속한 분위기를 풍겼다. 육십에 가까운 나이, 세속에 때묻지
않고 수도에 정진한 모습이 엿보였다.
"삼절이라고 하네만 들어 보았는가?"
"삼절 진인! 청성파!"
갈홍아는 이른 아침에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의 정체를 알고
는 봉목을 부릅떴다. 무산파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제갈문의 친
형. 그녀와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점보다도
하늘의 별처럼 높은 위치에 있어서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했던
사람이 볼품없는 농가에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인 일이신지..."
"허허허! 댓바람에 찾아왔더니만 갈증이 나는군. 차 한잔 줄
수 없겠나?"
"들어 오시지요."
'깨졌어. 나의 평화가...이제부터는 다시 검을 잡아야 돼.'
불길한 예감이 밀려들었다. 나쁜 일은 어김없이 일어나곤 했
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삼절 진인의 목적은 단비하
에게 있을 터 살얼음판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리라.
"허허허!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늑하군."
삼절 진인은 방으로 들어서면서 기분좋은 웃음을 흘렸다.
"잡동사니 하나까지도 손때가 묻었거든요."
이 방도 오늘이 마지막...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쓸고 닦고 정
성껏 다듬었는데...미련이 남았다. 이런 행복을 언제 또 누릴
수 있을지, 워낙 무뚝뚝한 사내라 세심한 정은 없지만 그와 함
께한 짧은 시간은 행복했다.
갈홍아는 납면차(蠟面茶)를 준비했다. 생각해 보니 우스웠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당철휘를 죽이지도 못했는데 잊어
버리고 있었다니. 복건성(福建省) 건안현(建安縣)에서 만든 납
면차를 너무 어렵게 구했다. 그래서 자신은 먹지도 않고 단비
하에게만 조금씩 끓여 주곤했는데...아직도 다병(茶甁)에는 밀
랍 같은 납연차가 반이 넘게 남았다. 언제 먹겠다고 아껴 먹었
는지...
단비하는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지 않아 더욱 초췌해 보였다.
밤새도록 끙끙거리며 생각에 몰두하더니 이른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생각같아서는 좀더 자도록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삼절
진인의 비중은 너무 컸다.
"자네의 독공이 괄목상대한다더군. 좋은 일이야."
삼절 진인은 지나가는 말로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순간 갈홍
아의 귀는 콩긋 세워졌다. 청성파에서 그것도 삼절 진인이 몸
소 찾아왔다면 범상치 않은 일, 궁금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자네가 당자인과 후위대주 당잠청을 죽인 사실이 당
금 무림의 최대 화제 거리라네. 그것도 무공으로 죽인 것이 아
니라 독술대 독술로 겨뤘다면...당문이 좌시하지 않을걸세."
"걱정 안합니다."
"그런가? 패기도 맞췄군. 동생한테서 자네 이야기는 귀가 따갑
도록 전해 들었네. 늘 새롭게 변신하는 무서운 젊은이라고..."
'그래요. 그는 무서운 사람이에요.'
갈홍아는 흐뭇한 시선으로 단비하를 쳐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세상에 다시없는 바보였다. 그러던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나타났지만 그때만 해도 별볼일 없는 사
람이었다. 방사라는 새로운 하독 방법을 터득했다고는 하지만
주목받을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적어도 무산을 떠날때는...지
금은 그누구도 그와 정면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리라. 갈홍아가
본 단비하는 능력의 한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용건을 듣고 싶습니다."
"흠! 그러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청성파를 도와주게."
"청성파를 도와 달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칠은방도들이 청성산을 에워싸고 있네. 청성파로서는 그
들을 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해서 그들이 스스로 물러가도
록 방법을 강구했네."
"흠...! 보급로를 차단하겠다는 말씀이군요."
순간, 삼절 진인의 눈에서는 햇불 같은 신광이 번쩍였다.
한마디만 듣고도 모든 상황을 알아 버린 젊은이, 만약 적이라
면 필히 제거해야 될 상대였다.
"맞았네. 나는 청성 사람이라 전면에 나서기가 곤란하지. 청성
문도가 아니면서 앞에 나서 줄 사람이 필요하네."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도와 드린다면 대가로 무엇을 주
시겠습니까?"
"허허허! 대가라...자네가 보답을 논할 줄은 몰랐네. 그래 무
엇을 줬으면 좋겠나?"
삼절 진인은 거침없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당문을 치려 합니다. 청성파의 힘을 빌려 주십시요."
"당문을 치는 데 나서 달란 말인가?"
"...!"
단비하는 말없이 삼절 진인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활화산
처럼 이글거리는 열정을 담고...
"으흠! 쉬운 일은 아니네, 청성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있으니까. 더욱이 당문을 칠 만한 뚜렷한 명분이 없으니...으
흠! 곤란하군. 그런 문제는 내가 독단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
니 확답을 주지 못하겠네."
"기다리지요."
"대가 없이는 나설 수 없다는 말인가?"
"당문을 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알았네. 돌아가서 장문과 상의해 보지."
삼절 진인은 갈홍아가 끓여 온 납면차를 홀짝거렸다.
"청성이 도와줄 것 같아?"
"도와 줄 거야."
"정말 어이없어. 무얼 믿고 그렇게 장담해?"
"우리는 노출됐어. 당문의 정보망은 청성을 능가해. 적어도 성
도에서만은 그런데 삼절 진인이 찾아왔다면..."
"어머! 정말이네. 그럼 어떡하지?"
갈홍아는 갑자기 조급해졌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삼절 진인이 찾아올 정도라면 당문에 노출된 것은 기정사실이
었다. 당문주 당기룡의 지략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런 그가
왜 단비하를 내버려 두고 있을까? 후위대주까지 죽인 대적
을...
"걱정하지 마. 당기룡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
를 죽일 생각이 없는 것만은 확실해. 청성파는 어차피 당문과
자웅을 결해야 될 거야. 내가 전면에 나서 준다면 훨씬 수월하
겠지, 서로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어."
"연락이 언제 올것 같아?"
"오늘 안으로."
단비하는 무쇠 가마솥에 물두꺼비를 넣고 기름올 뽑아 내는 중
이었다. 언뜻 보면 개구리로 오인하기 쉽지만 우툴두툴한 흑갈
색의 등가죽에 있는 독액은 사람을 일 각 안에 죽일 정도로 독
성이 강했다.
당잠청과의 싸움에서 대조독을 다 써버려 새로 제조하는 것이
다.
"자신있어?"
"...!"
단비하는 무슨 소리냐는 듯 의문스런 눈길을 보냈다.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냐 말이야?"
"나는 또 무슨 소리라고...싸움이야 해봐야 아는 것 아냐? 칠
은방도들은 전에 겨뤄 봤으니 대충 실력을 짐작하겠고...참 이
상하지. 청성파는 두렵지 않은데 당문은 어렵게 느껴져 영원히
부술 수 없는 벽처럼...왜 그런지 모르겠어."
'바보야 그건 네가 당문에서 자랐기 때문이야. 인간 이하의 취
급을 받으면서 살아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주눅이 든 거야. 하
지만 나는 믿어 너는 꼭 이길 거야.'
단비하를 쳐다보는 눈길이 애처롭게 변했다. 마치 자신이 불합
리한 경우를 당한 것 같아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데 당한 당사
자의 마음은 어떨까? 갈홍아는 입술을 꼭 깨물면서 모종의 결
심을 굳혔다,
< 단비하 전(前).
청성 장문의 허락을 득(得) 했음.
그러나 청성과 당문은 모두 정도의 기치를 건 문파이기에 직접
적인 충돌은 할 수 없음. 청 자 배 제자 오십 명이 측면 지원
할 것을 약속하며, 본 파에서 취합한 정보를 알려 주는 것으로
만족하기 바람.
청성산을 에워싼 칠은방도들의 수는 약 일천 명으로 추산되며
산곡(山谷)에서 야영함. 생필품은 사흘마다 조달되며 약 백여
명이 보급에 투입되어 있음.
부룡객잔(浮龍客殘)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물품은 관현에서 자
체 조달함. 보급 경로는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파악할 수 없
음. 무운(武運)을 빌겠음.
삼절 진인 서(書).>
전서는 단비하의 예측대로 삼절 진인이 떠난 그날저녁 무렵에
날아왔다.
"수고 많았다."
단비하는 짤막한 한마디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환자 시중을 든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싸울때는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상태가 나빴다.
당연히 대소변은 요강에 봐야 했고...갈홍아는 싫단 말 한마디
않고 모든 시중을 들었다.
그것만 해도 고맙기 이를 데 없는데,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한지에 적힌 대로 독충과 약재들을 채집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십 리를 걸어야 약재 하나를 구할 수 있는
힘든 일이었다.
갈홍아는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언제 출발할 거야?"
"지금."
"정말 나도 가면 안돼?"
"약속했잖아."
"휴우! 그래..."
약속했다. 보급로를 차단하는 일은 하루이틀만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단비하는 그 기간을 한 달로 잡았다. 그 동안 갈
홍아는 무산을 다녀와야 한다. 무산파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
혔으면 도움을 청할 계획이었다. 갈홍아 역시 당철휘와의 원한
이 있기에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비하를 떠나기 싫은
마음은...
"오늘은 어두워졌으니까 내일 아침에 떠나. 저놈들도 필요없으
니까 잡아 먹어야지."
꼬고고고곡...!
마당 한쪽에는 갈홍아가 기르는 암닭 세 마리, 수낡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여자들이란 정말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종종 한다. 영구히 안
주할 집도 아니고 잠시 머무르는 곳에 무슨 애착을 그리 쏟는
지. 단비하는 닭이나 잡아먹고 떠나라는 만류를 뿌리치지 못했
다.
"누구냐!"
단비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삶은 닭을 안주삼아 마신 죽엽청(竹葉淸)에 흠씬 취했던지 세
상 모르게 곯아 떨어졌다.
'갈홍아는...'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침입자가 가슴을 압박하도록 몰
랐다면 갈홍아 역시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언제나 세심하게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녀였으니 침입자가 들어오도록 가만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퍼뜩 스쳐 갔다.
"나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무슨 일..."
말을 하던 단비하는 몸을 흠칫거렸다. 부드러운 손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왔다. 갈홍아 그녀는 자신의 결에 누워 숨소리조차
죽인 채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 빙어처럼 미끈한 몸이 만져
졌다.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가 탄력있게 다가왔다. 고차(袴叉)
조차 입지 않은 알몸.
"너와 자고 싶어."
음성도 잘게 떨렸다.
단비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언제나 부담없던
여자의 마음속에도 이런 감정이 숨어 있었다니.
"가라."
단비하 자신도 놀랄 만큼 냉랭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랐는가!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을 토하며 품속으로 기어
들던 갈홍아의 전신이 급격히 굳어졌다.
"내가...내가 더러운...여자라서...?"
"그래."
"그렇구나. 푸훗! 난 참 멍청한 계집애야, 그렇지?"
"알았으면 돌아가."
"책임져 달란 소리는 아냐. 좋아서...하룻밤으로 만족할게."
"후후후! 너 많이 타락했구나. 돌아가."
갈홍아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러나 곧 자조적인 웃음
을 흘리며 힘없이 말했다.
"꼭 그렇게 말해야 돼? 좋게 말하면 안 돼?"
"네 행동을 먼저 생각해 봐. 무산을 떠나올 때 뭐라고 그랬지?
나와 동행하자. 그러면 살려 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그
런 말을 한것 같은데?"
"맞아, 그랬어."
"그게 우리의 관계야. 그것 이상도 이하도 없어. 지금 돌아간
다면 예전의 친구 관계를 회복할 수 있어. 하지만 계속 이런다
면 지금 떠나겠다."
"호호호...! 너는 떠날 수 없어. 마혈을 제압했거든."
"갈홍아, 예의를...헉! 그만두지 못해!"
갈홍아는 단비하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
'오늘 일로 인해 독사 보듯 대한다면 할말이 없어. 하지만 너
와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 당철휘, 그놈에게 더러워
진 몸. 아기조차 가질 수 없는 만신창이 몸이어서 미안해.'
단비하는 눈을 뜨고도 한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어젯밤 일이 악몽처럼 소록소록 생각났다.
연신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을 토해 내던 갈홍아. 그녀는 언제
떠났을까? 얼굴을 마주 대하기가 무서웠는지 모른다. 정갈스럽
게 차려진 아침 밥상만이 그녀가 있었음을 말해 주었다.
'갈홍아...너는 바보로구나. 그렇게 당하고도 정해(情海)에 빠
지다니. 어쩌자고 나 같은 놈에게 정을 준단 말이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바보...휴우! 그래. 네 말
대로 어제 일은 어제로 잊어라.'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강한 여자니까 그런
일로 흔들릴 리는 없겠지만 당철휘에게 받은 상처와 버금가는
상처를 받았을 게다.
단비하는 갈홍아가 곱게 개어 놓은 하얀 무복을 입었다. 손수
만들었는지 바느질 솜씨가 꼼꼼한...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
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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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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