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필(筆)이 칼보다 강하다.’ 어찌 보면 칼은 몸을 죽일 수 있지만 필은 혼을 죽일 수 있습니다. 칼이 몸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 마음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차지할 수 있으려면 감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칼은 두려움을 줄지언정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면 위협이 아니라 감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흔히 권력을 쥔 사람들은 감동이 아니라 위협으로 백성을 다스리려 합니다. 물론 효과는 빠릅니다. 눈앞에서 복종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몸은 굽히지만 그 마음은 숙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고 돌아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다스리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사회가 어지러울 때 흔히 종교가 힘을 얻습니다. 사람은 무엇엔가 의지하고 싶은 본능이 있고 그런가 하면 뭔가에 대한 희망을 가지려 합니다. ‘정감록’이 민중 사이에 유행한 것도 그런 연유에 틀림없습니다. 살기 힘들고 나라도 도와주기는커녕 빼앗아가기에 혈안인 환경에서 기댈 곳은 무엇인가 색다른 힘입니다. 무엇이 나타나든, 아니면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든 변화를 꿈꾸는 것이지요. 힘이 없는 백성에게는 어떤 놀라운 힘의 소유자가 나타나서 부조리한 현실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꿈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죄인가? 하고 묻습니다. 사실 꿈을 꾸는 것은 아무도 모르니 죄를 따지기 힘듭니다. 문제는 그 꿈을 책으로 내서 사람들이 읽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꿈꾸는 일은 보이지 않으니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글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영향을 받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들이 모여 힘을 합합니다. 그래서 어쩌자고? 더구나 규합된 힘이 세력을 형성해서 권력자를 위협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권력자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자리가 위태해지는데 가만있을 사람은 없지요. 다시 그 마음을 돌이키든지 아니면 원인 제공자를 찾아 처단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본보기로 효시하겠지요. 까불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역시 그 사람의 여러 가지 여건들이 작용할 것입니다.
정부 안에서는 권력다툼이 있고 사회에서는 권력자들에게 반항하는 민간세력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미 힘을 모은 세력이 저항하고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왕은 수렴청정 그늘 아래 제대로 힘을 쓰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중심을 잃은 정부는 대신들의 세력다툼에 이렇다 할 대응도 못하고 바라보는 격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민간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그린 ‘정감록’이 퍼져 있습니다. 머리가 좀 있는 세도가는 미완의 이 예언서를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이용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그만한 필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필요합니다. 마침 세간에 음란서적으로 유명해진 작가가 있습니다. 전혀 딴판의 이야기지만 일단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요. 그러니 이 사람을 다르게 이용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작가 ‘연흥부’ 이 사람은 어려서 헤어진 형 놀부를 찾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 형의 거처를 알고 있다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조혁’ 이 사람은 한적한 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도우며 살고 있습니다. 본래는 양반 집안의 사람이고 친형은 정부 고위 관리입니다. 그러나 의식과 삶의 방향이 전혀 다르지요. 이야말로 ‘흥부와 놀부’입니다. ‘연흥부’의 형인 놀부와는 천양지판입니다. 연흥부를 위협하여 ‘흥부전’이라는 판소리 극을 제작하게 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흥부전’은 이야기 가운데 이렇게 또 다른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나중에는 그것을 궁중 어전 앞에서 이용하여 왕을 제거하고 득세를 꾀합니다. 현대판 문화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성의 목숨도 왕의 목숨과 같다.’ 민중 세력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당시로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대단한 주장입니다. 과하게 표한다면 임금에 반역하는 정도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찌 감히 왕과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왕을 하늘처럼 받들던 시대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과 종교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고위층과 서민층의 생각이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백성은 날로 생각이 깨어나고 있는데 기존 권력자들은 시대의 변화보다 자리를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놓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갈등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광고나 예고편을 통해 짐작은 했습니다. 기존의 ‘흥부’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도 비슷한 이야기가 삽입 이야기처럼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짧은 시간에 시대적 변화와 그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사회적 갈등을 폭 넓게 이야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욕심이지요. 그래서 다소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 구성이나 과장 등이 걸립니다. 당연히 평판도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글을 쓰는 사람이 칼을 휘두르는 사람보다 오히려 힘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두려움보다 뜨거운 감동이 낫습니다. 그것이 또한 오래 갑니다. 영화 ‘흥부’를 보았습니다. 배우 고 ‘김주혁’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
ㄳ
^&^
감사
복된 한 주를 빕니다. ^&^
감사 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날씨가 다시 쌀쌀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