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정원 / 이강하
넓어진 길의 끝부분이 꽃무늬 두건을 쓰고 차를 마시고 있다 찻잔의 온도는 뜨겁고 발가벗은 나무 위 새소리가 차끈하다 스쳐간 당신의 사랑이 무작정 같지 않아서 외려 산속 공중은 광활하다
지붕과 나무 사이가 깊고 붉어서 ‘괜찮다’라는 형용사로 수십 미터 공중을 끌어내려 매만져본다 뒤틀린 어제의 잡음을 골라내면서 이별한 꽃과의 관계는 영원히 행복하기를
푸른 공중은 나비들의 날개가 넘어야할 길이 겹쳐진 피안이다 새 울음이 발라진 단풍 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도 마찬가지일까?
부서진 내 오른쪽 어깨의 한 모퉁이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먼저 간 사람과 죽은 꽃들이 공중을 오고간다 돌담을 헤아리며 바람의 구멍을 궁금해 하면서 차분함과 용맹함이 모인 말의 분화구를 생각하는 밤,
어느새 타샤의 마당이 하얗다 토끼와 강아지들이 뛰어다닌다 먼 미래 언덕까지 하얘지는 바이올린 소리, 오! 내일이면 성탄절이군요? 통증을 견뎌낸 선(禪)의 방에도 익은 계절이 뚝뚝 떨어지겠어요 눈이 펄펄 내리듯 은백색 고요의 깃발들이
- 사화집 『얼룩무늬 손톱』 2019 변방 제3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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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시인
경남 하동에서 출생.
2010년 《시와 세계》신인상 시 당선.
시집 『화몽(花夢)』『붉은 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