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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의 주요 하천.
이 글에서는 프린키파투스 시기 로마 제국의 "북쪽 경계"에 대한 너무나도 유명한 해석을 검토하려고 한다.
"로마 제국의 북쪽 국경은 대체로 제정 초기에 확립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원래 엘베강과 도나우(다뉴브)강을 방어선으로 삼으려 했지만, 바루스의 패배로 게르마니아를 잃었고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아 정복을 포기하여 그 구상은 실현되지 않고 대신 라인강과 엘베강이 제국의 방어선이 되었다."
60년대 초까지 이러한 주장은 그야말로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해석상의 무리수와 실상과 맞지 않는 부분이 계속해서 노출되었다.(*)
훌륭해 보이는 이론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우선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우구스투스는 생전에 단 한번도 엘베강과 도나우강을 제국의 방어선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일이 없다. 정말로 자주 반복되는 현상이다- 현대의 독자들은 마치 기정사실처럼 알고 있는 많은 도식들이, 정작 사료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어선"에 대한 아우구스투스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단순히 말할 필요가 없어서 이야기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근대의 지배자들에게는 종종 그런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아우구스투스의 의도를 무슨 수로 알아낼 것인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고 추측하는 수 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서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엘베-도나우 방어선 가설을 자명하게 뒷받침하는가?
아우구스투스의 집권 후반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게르마니아 속주의 군단은 라인강 좌안에 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것은 라인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게르마니아 "정복" 전쟁을 위해서였다. 엘베강은 "방어"된 증거가 없다.
공격의 측면에서 보면, 아우구스투스는 분명 장군들에게 "엘베 강을 넘지 말라"는 지시를 한 일이 있었음이 동시대 기록인 스트라보의 글에서 확인된다.(Strab.7.1.4) 그러나 정작 기원전 1년 쯤에 L.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아우구스투스의 조카 사위. 5대 황제 네로의 조부)는 엘베강을 건너갔다 왔고, 그보다 앞서 기원전 9년에는 드루수스도 엘베를 넘으려고 시도했다.(DioCass.55.1) 사실, 스트라보가 전한 바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엘베 양쪽의 부족들이 힘을 합쳐 로마에 대항해서는 곤란하기에 전쟁을 더 쉽게 치를 수 있도록 우안은 내버려두게 했다는 것이다. 명백히, 이는 엘베가 제국의 한계선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한편 "제국의 동북방 국경 도나우"는,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플라비우스 왕조 시기까지는 요새화되지 않았다. 하류의 요새화 시기는 오현제 시대까지 내려간다.(cf>Mattern) 따라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도나우를 항구적인 방어선으로 구축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물질적인 증거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도나우 너머 지역에 대한 군사 활동의 증거도 보인다. 스트라보는 게타이와 다키아족(도나우 북쪽의)이 "거의 로마에 복종"하고 있으나, 게르만족과 손을 잡을 희망을 품고서 완전히는 굴복하지 않았다고 썼다.(Strab.7.3.13) 아우구스투스 본인의 주장은 좀 더 단순하면서도 거창했다. 자신이 보낸 군대가 "도나우를 건너, 다키아족이 로마 인민에 복종하도록 만들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Aug:ResGest.30) 이를 꼭 다키아 정복이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시도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아니라는 법도 없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유명한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이다. 14년에 사망하면서 아우구스투스는 제국 경영 및 후계와 관련된 유언을 남겼는데, 여기에는 "제국의 영토를 더 이상 확대하지 말라"는 조언이 실려 있었다.(Tac:Ann.1.11, DioCass.56.33)
이 유언은 의미가 모호하고, 해석상의 난점들을 야기한다. 임종을 앞둔 황제가 제국의 확장에 한계를 그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생각한 제국의 북쪽 국경은, 엘베강인가, 라인강인가? "거의 복종"한다는 다키아는 관념상 제국에 포함되는가, 아닌가? 후자는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다. 전자의 경우, 정황상 엘베강일 것 같기는 하다. 게르마니쿠스가 당시 게르마니아 총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르마니아쿠스가 라인-엘베의 반란자(로마적 관점에서)들을 진압하는데 성공하고, 그 이상 영토의 확대는 없다면, 이번에는 커다란 마르코만니 왕국(더하여, 콰디)이 제국의 옆구리 한 부분을 차지한 채로 남게 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진지하게 그런 상태가 국가에 이롭다고 생각했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생각을 초대 황제가 언제부터 갖게 되었는지 "유언"은 일절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시우스 디오는 아우구스투스가 해당 조언에, 영토를 더 늘리면 지키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지금 가진것을 잃을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고 전했다. 30년 넘게 정복 전쟁을 계속해 온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방어선" 가설의 관점대로라면, 이런 말은 제국의 국경이 마침내 이상적인 위치까지 확장되었기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단순히 노인 황제가 말년에 겪은 시련(즉, 판노니아-달마티아 대반란과 게르마니아 마그나의 실함)으로 인해 자신이 추구해온 확장 일변도 정책을 후회하게 되었기에 한 말일 가능성 역시 전혀 낮지 않다.
종종 엘베-도나우 "방어선" 가설은 전략적인 당위성을 갖는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대하의 한쪽에 막강한 방어 기지를 두고서, 저편에 어슬렁거리는 적대 부족들을 바라본다. 얼마나 훌륭한가!
-한참 후대까지도 도나우 강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라인강의 좌안의 군사화는 공격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물론 그런 것은 잠시 잊어도 될지 모른다. 현실과 이상은 다른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 제국의 국경은 오직 천연 장애물과 군단의 힘만으로 지켜지는 것도 아니었다. 제국은 경계 바깥에 가급적이면 우호적이거나 종속적인 현지 세력이 위치하도록 오랫동안 안배했다. 또한 제국의 기나긴 경계 가운데는 강과 맞닿지 않은 부분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부분이 정말 더 위험했는가?
강을 기준으로 선방어한다는 전략이 정말 그렇게 좋은지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아우구스투스가 다키아까지도 정복했다면, 아마도 제국의 서북쪽 방어 태세는 개발된 도나우 양안을 배후로 가지고 카르파티아 산맥을 천연 장벽으로 하여 기지를 적당하게 배치하는 종심 방어가 되었을 것이다. 도나우 선방어-다분히 가상적인-에 비해 특별히 나쁜 방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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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는 정권을 잡은 후 거의 남은 일생동안 영토 확장 전쟁을 거듭했다.
오랫동안 그것은 "방어선의 확립"을 위해서였다고 해석되어 왔지만...
종합해 보자. 놀랍게도 엘베-도나우 방어선 가설은, 그 어떤 사료로도, 물질 증거로도 당위적인 뒷받침을 받지 않는다. 방어선 가설을 정설의 지위에서 밀어내고, 90년대 이후 세를 떨치게 된 이론들은 흡사 공화정 시대 야심가들을 연상시키는 아우구스투스의 정복욕과, 프린키파투스 확립기의 미묘한 정치 상황과 유착된 "정복의 정치성"에 주목한다. 그 중 무엇이 더욱 옳다고 여기에서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냥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하자.
방어선 가설의 약점은 결과적으로 일어난 일이 지니는 의미를 확대해석한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한참 지난 어느 시점에 보니 로마 제국은 라인-도나우를 경계로 삼아 방어 위주로 군대를 운용하던 상태였고,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아 정벌전을 벌였으니, 원래 의도했던 방어선은 엘베-도나우였으리라고 추측해서 나온 이야기인 셈이다. 브런트 선생은 시니컬한 상상을 폈다: 만약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14년에 죽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필시, 초대 황제가 도나우강과 엘베강까지 로마 영토를 확장하려 했다는 등의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5년에 죽었더라면 또 어땠을까? 아우구스투스가 보헤미아를 공격하려 했다는 것을, 후세에 과연 알 수 있었을까?(cf>Brunt)
-결과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여겨버리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사료가 모든 정보를 다 주지 않기에, 우리는 결과적으로 일어난 일을 가지고서 추측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료는 그 추측의 재료라도 성실하게 주는 것일까? 확대 해석의 위험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무서운 가상의 세계로 넘어가 보자. 그 세계에서 많은 학자들은 갈리아의 종심방어(라인강 선방어조차 아닌!)가 얼마나 합리적인지, 또 발칸 북부의 "쓸모 없는 땅"을 정복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혜안인지 설명하는 말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마르코만니 왕국의 위치를 보고서, 혹시 아우구스투스가 여기도 정복하려 하지 않았겠느냐는 글을 누군가가 인터넷 게시판에 썼다가는 무슨 말을 들었겠는가!
엘베-도나우 방어선 가설은 잘 말해도, "혹시 그럴수도 있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그리고 당위성의 장식을 제거하고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꽤 이상하다. 보헤미아 정벌 계획과 판노니아-달마티아 대반란에서 간취되는 아우구스투스 정권의 정복 방식은, 황제가 정복의 한계를 의식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판노니아-달마티아는 정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으로 주민들은 분명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 당국은 이 지역에서 사람을 뽑아 지원부대로 썼고, 보헤미아 토벌에도 동원하려 했다.(cf>DioCass.55.29, Vell.2.110) 이런 방식은 흡사, 피상적인 정복과 이어지는 압정, 대규모 반란과 진압으로 귀결되곤 하던 공화정기 확장을 떠올리게 한다.
아우구스투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지도 불가해하다. 공화정기 로마인들은 정복을 찬양했고,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도 이는 변치 않았다. 제국은 끝없이 세상을 정복하고 군대는 가는 곳 마다 승리한다는 테마는 흔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가 당시에 보편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정복을 계속 하면서도 모두에게 비밀로 감춘 채 마음 속으로는 '곧 이상적인 한계가 다가온다'고 계산했다면, 몹시 놀라운 일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제정 로마의 초대 황제였지만, 그 자신은 기본적으로 공화정 말기 로마에서 태어나 공화정기 이상 속에서 동시대 야심가들과 교류하고 경쟁하며 커진 사람이었다. 정복에 대한 그의 접근 태도는 하드리아누스 시대 레토릭보다, 공화정기 현상을 통해 이해해야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본문에서 소개하는 비판을 좀 더 자세히 아시고 싶은 분은 P. A. Brunt, 『Roman imperial themes』, J. W. Rich, 「Augustus, war and peace」, 『Augustus』, CAH(new series) vol.10, S. P. Mattern, 『Rome and the enemy』등을 참조하시길. 해당 책과 논문의 참고 문헌 목록에는 그 밖에도 물론 좋은 글이 많이 제시되어 있다.
**카시우스 디오는 유언이 초대 황제의 평소 언행과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야만 부족들로부터 많은 영토를 빼앗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혀 설득력이 없는 해석이다. 무슨 약을 했길래 이런 생각을...라기보단, 디오 나름의 입장에 대한 분석은 Brunt를 참조.
사족1: 아우구스투스의 도나우 방어선 가설조차 증거가 없는 판이므로, 시오노 선생이 미는 "카이사르의 도나우 방어선 의도설" 은 꺼낼 가치도 없다.
사족2: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14년에 죽은 평행세계:
아우구스투스 혹시 독일이랑 불가리아까지 먹으려고 했던거 아닐까... 알프스도 먹었는데...
└Re: 전쟁이 RTS 게임인줄 아는 사람이 여기 또 있군. 도나우강 상류가 어떤덴지 아시긴 하나요?
└Re:Re: 보급전의 역사만 읽어도 저런 소린 못 할텐데 말이죠...
└Re:Re: 완전 답없는 로마빠네요. 로마군 무장은 정강이 보호대가 없어서 트라키아 전사들한텐 그냥 밥이거든요? 뭐 좀 알고 얘기하시죠.
첫댓글 재밌네요 로마가 중국같은 개돼지가 되었을 평행세계를 상상해봅니다
사족2 ㅋㅋㅋㅋ
뇌피셜이 문제라지만 뇌피셜 운운충들도 참ㅋ
잘봤습니다 확실히 방어선에 목을 매는것을 보면, 정확한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주장하는 이들이 선택취사한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