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기억력이 제일 뛰어난 제자는 아난입니다.
부처님의 생전 말씀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총명했는데
이와는 반대로 게송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여
바보라 불리던 한 비구(比丘)가
아라한(arhat)이 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라한이란 원시불교에서 깨달은 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테이의 제타 숲
<외로운 이로운 동산>에 계실 때입니다.
그때 비구 스님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을 반특(槃特)이라 하였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주리반특가(周利槃特迦:suddhipanthaka),
반타카라고도 불립니다. 그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경전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존자 반타가
또는 마하반타카(cudapanthaka)라 하였는데
아우 주리반특가보다 먼저 출가하여 아라한 되어 있었습니다.
마하 반타가는 아라한이 되고 나서는 동생도 출가시켰습니다.
그런데 동생 주리반타카는 정말 아둔했던가 봅니다.
어느 정도 아둔했는가 하면 형이
“훌륭한 향기를 지닌 홍련화처럼,
연꽃은 아침에 피어난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허공에서 태양처럼 작열하는,
광휘를 비추는 앙기라씨를 보라.”라는 게송을
동생에게 외우라고 했지만, 뜻은 고사하고
넉 달이 되도록 이 게송 하나 암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참다못한 마하반타가는 동생 주리반특가에게
<이 계송하나 외우지 못하니 속세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고 내쫓았습니다.
멀리서 혜안으로 이를 본 부처님은 주리반특가를 불러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이라는
매우 간단한 단어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 말은 ‘티끌 제거’라는 뜻입니다.
「증일아함경」에서 “소세(掃蔧)”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제구(除咎)”를 의미하는 말로
먼지나 때를 없앴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깨끗한
천 조각을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반특가는 부처님으로부터 천 조각을 받고 나서
“라조하라낭, 라조하라낭,..”암송하며
천 조각을 만지면서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런데 천 조각을 얼마나 만졌는지
천 조각은 행주처럼 더러워지고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이를 본 주리반특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천 조각은 원래 깨끗했다.
그런데 내가 만지면 만질수록
이렇게 더러워지고 너덜너덜해지는구나.
깨끗했던 내 마음도 업으로 인하여 쌓이고 쌓여
오염되어 이렇게 변했구나. 이 업으로 획득된 몸 때문에
오염되어 달리 변한 것이구나.
아, 물질이란 무상하다.
내 마음이라는 것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조하라낭(티끌 제거), 라조하라낭을 반복하여 외우면서
마침내 마음의 모든 티끌을 모두 제거하고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라한이 된 것입니다.
이를 <증일아함경>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없애는 것(제(除)이고, 무엇을 때(구(咎)라고 하는가?
때란 재나 흙, 기와장이나 돌이요 없앰이란 깨끗이 하는 것이다.
세존께서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내 몸에는 티끌과 때가 있다.
무엇이 없애는 것이며, 무엇이 때인가.
결박은 때요, 지혜는 없애는 것이다.
나는 지혜로 이 결박을 쓸어버리자.
다섯 가지의 쌓임의 이루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생각했다.
즉 이른바 이것은 물질이요 이것은 그 원인이며
이것은 그 사라짐이다.
이것이 이른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이루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이 다섯 가지 쌓임을 생각하여
욕류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와 무명루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의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나고 죽음이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치고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을 것을 여실히 알았다.」
무상의 대도는 길고 난삽(難澁)한 말을 많이 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법성게>에 이르듯
「깨닫는 것 외에는 다른 경계가 없습니다(證智所知非餘經)」
주리반특가는 <티끌 제거>라는 이 한마디 말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치 선가(禪家)의 수행자들이
<무(無)>라는 한 글자의 화두로 깨달음을 얻듯
그렇게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리반특가의 출생 내력도 흥미롭습니다.
<선견율비바사> 경에는 반특가(panthaka)를
반타(槃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반타는 한(漢)나라 말로 길가에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반타의 어머니는 본래 큰 부자 장자의 딸이었습니다.
장자는 오직 이 하나의 딸만을 두었으며 7층의 누각을 지어서
이 딸을 편히 두고 한 명의 종을 보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둘이 같이 지내다 보니 그 딸이 부리던 종과
눈이 맞아 불륜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세습적 계급 제도가 엄격했는데
이를 카스트(caste)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법률서와 보편적인 용법 속에서
카스트는 대체로 4개의 계급으로 분류되는데
계급의 최상층은 브라만(Brahmin승려),
다음은 크샤트리아(kshatriya귀족, 무사),
다음은 바이샤(visha농민, 상인, 연예인),
최하층은 수드라(shudra 수공업자, 하인, 청소부)입니다.
계급에 따라 결혼, 직업, 식사 따위의 일상생활에
엄중한 규제가 따랐습니다.
가장 불결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수드라 밑에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 분류됩니다.
불가촉천민은 dali라고 하는데
이는 <핍박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크사트리아계급의 딸이 최하층인
수드라급의 하인과 불륜을 저질렀으니
이는 <역모혼(逆母婚)>이 됩니다.
상층계급의 남자가 하층 계급의 여인을 취하는 것은
<순모혼(純母婚)>이라고 하는데
역모혼으로 되면 천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겁이 난 딸은 그래서 종과 함께 친정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 나와 따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첫 아이를 배자 해산을 돌보아 줄 사람 없자
남편에게 돌아갈 것을 청을 했지만,
겁이 난 남편을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장자의 딸은 남편 몰래 친정으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해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반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남편과 함께
다시 돌아가 살다가 이번에 두 번째 아이를 배게 됩니다.
자식까지 낳았으니 부모님도 허락하지 않겠느냐고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친정으로 가다가 또 길에서 해산을 하고는
친정으로 둘이 함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딸의 아버지는 두 외손자만 받아드리고
딸과 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만 외가의 집에서 머물게 된 것입니다.
장자가 죽자 모든 재산을 두 외손자가 물려받았습니다.
그 후 형은 동생 반타가에게 관리를 맡기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고,
형은 동생 반타가에게도 출가를 권유하게 된 것입니다.
경전에 의하면 그 후 아라한이 된 동생 주리반타가는
신통력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행차하실 때 외도가 산을 허물어
부처님을 매몰시키려고 할 때 손가락을 튕겨
산을 밀어버리기도 하고, 바사익왕이 부처님과
대중들을 궁전에 초청하여 공양을 베풀 때
부처님은 주리반특가에게 발우를 들고 따라오게 하였는데
문지기가 바보 존자를 알아보고는 들어오지 못 하게 하자
문밖에서 궁전에 계신 부처님께 팔을 뻗어 발우로 공양하였는데
팔은 보이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아
이를 부처님께 묻자 주리반특가의 팔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한때 바보였던 주리반특가는 아라한이 된 후
신통제일이라는 목건련존자만큼
그의 신통력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 다섯 경전에서 발췌하여 임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증일아함경 제11권 선지식품
@선견율비바사 제16권(p515)
@법구비유경 제23권 제16품 술천품,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 의제 보살만행 수능업경제5
@빠리경> 테라가타
@사진은 불교최초도래지 영광법성포에서 촬영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