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자로 눈뜬 자
요한복음 9:1-41
2024년 6월 30일 주일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요한복음 9장은 태어나면서 부터 앞을 보지 못하고 오랫동안 구걸해서 먹고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세상을 보게 된 것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육신과 영혼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요한 복음 9장 맹인 이야기 속에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첫째,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나면서 앞을 못보고 길거리 옆에 읹아서 구걸하며 살던 이의 영혼과 육신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행하셨습니다.
둘째,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나면서 소경으로 구걸하며 사는 그 사람이 맹인으로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가 죄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시각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그 당사자 죄 때문인가, 그 부모 죄 탓인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생각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욥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위로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로자가 아닌 정죄자로 변했습니다.
욥, 너의 죄 때문이니 하나님께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회개할 일이 없었습니다.
무고한 고난, 애매한 재난을 당했습니다.
2024년 6월 30일 현재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군가 어떤 안좋은 일을 당하면 죄받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자들 질문에 예수님 답은, 그 시각 장애자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밤이 되기 전 낮에 주를 보내신 이의 일, 즉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요 9:4).
그 일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일이었습니다(요 9:5).
요한복음 8:12 KRV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 약속하셨습니다.
어둠은 사탄과 그 영향아래 있는 이 세상입니다.
"밤이 되는 것"(9:4)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잡혀가시고 십자가에 죽임당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의 흙에 침을 뱉아서 그 시각 장애자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이, 어둠의 화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타락했습니다.
흙을 눈에 바르시는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인간의 회복을 위한 재창조 행위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침을 그 흙에 섞었습니다.
옛날 할머니나 어머니가 모기 물린 곳에 침을 발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의 몸의 침으로 흙과 섞어 그 소경 눈에 바르셨습니다.
흙과 침이 그 맹인 눈의 회복을 위한 매개체가 되었습니다(참조 막 8:22-25; 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 요한복음 9장).
침과 흙을 그 맹인의 눈에 바르신 예수님은 "가서 실로암 못에 씻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맹인은 가서 실로암 못에서 그 눈을 씻고 보게 되었습니다.
앞을 못보는 사람이 실로암 못까지 가는 일은 남다른 순종의 행위였습니다.
나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 왔을 때, 그는 사환을 통해 요단 강에 일곱번 씻으라 했습니다.
나만은 화가 나서 아람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하가 설득했습니다.
나만은 요단 강물에 일곱번 몸을 담근 후 피부가 정상으로 회복되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순종은 치유를 얻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장애인들과 환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어떤 경우는 말씀 만으로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각 장애인의 눈을 치유하실 때 손수 흙을 침과 섞어 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다음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행하신 일입니다.
셋째,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시각장애 걸인으로 사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경험으로 보면 그 사람은 시각 장애자였고 앉아서 동냥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눈이 멀쩡해져서 서서 걷고 정상인으로 행동하는 것을 본 그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그들은 긴가민가 하여 어떻게 그가 눈을 뜨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이 흙을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했고 가서 씻으니 나았다 답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한 그들은 그 사람을 바리세인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넷째, 바리세인들입니다.
이들은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구걸하며 살던 사람이 눈을 뜨고 정상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을 했느냐를 문제 삼았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 시각장애인 눈에 흙을 바른 행위를 일로 보았고, 안식일을 어긴 것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그 맹인 눈에 흙을 바르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바리세인들의 반발을 미리 예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안식일 논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바리세인들 중에 안식일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바리세인은 "이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그런 이적을 행합니까?"
그들의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그들은 논쟁 끝에 그 눈뜬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네 눈을 뜨게 한 그 사람을 너는 무엇이라 말하느냐?"
그 눈뜬 사람은 답했습니다.
"그는 선지자입니다."
다섯째,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리세인들과 예수님 사역을 곱게 보지 않는 자들을 포함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가 맹인이었다가 눈을 뜨게 된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 눈뜬 자의 부모를 불렀습니다.
여섯째, 그 시각장애자 부모입니다.
사회적 약자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부모는 상처가 많습니다.
자식이 나면서 눈이 보이지 않으면 부모의 아픔은 너무 컸을 것입니다.
그 자식이 길거리 앉아서 구걸하는 것을 보는 부모 마음은 날마다 절망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부모에게 "당신들 자식이 맞소? 이 자가 나면서 소경이었소? 어떻게 지금 볼 수 있는 것이오?"
그 부모가 답했습니다.
"그는 우리 아들이 맞습니다.
그는 날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지금 볼 수 있는지, 누가 그의 눈을 보게 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도 나이가 들었으니 그에게 물어 보기 바랍니다.
그가 알아서 답할 것입니다."
그 눈뜬 자의 부모는 유대인들이 두려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자는 누구든지 회당에서 쫓아낸다, 즉 출교하기로 결의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출교 당하면 신앙 생활도 못하고 사회 생활도 못하게 됩니다.
그 유대인들은, 즉 예수님께 적대인적인 자들은 그 눈뜬 자를 다시 불렀습니다.
일곱째, 시각장애인 본인입니다.
그 눈뜬 자에게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라. 이 자는 죄인인 것을 우리가 안다." 라고 협박했습니다
그 눈뜬 자는 점점더 담대해지고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핍박과 고난은 신자의 믿음을 강하게 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소경이던 내가 눈을 뜬 사실입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그가 네게 무엇을 했느냐?
어떻게 그가 네 눈을 뜨게 했느냐?"
"이미 내가 말했지만 여러분은 듣지 않았습니다.
왜 그것을 다시 듣고자 합니까?
여러분도 그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들은 화가 나서 그에게 욕했습니다.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습니다.
"너는 이 자의 제자이다.
우리는 모세 제자들이다.
그러나 이 자는 어디서 온 자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 눈 뜬 자가 답했습니다.
"이제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그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내 눈을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말을 듣지 않음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뜻을 행하는 경건한 자에게 귀기울이십니다.
나면서 맹인된 자의 눈을 뜨게 한 일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것도 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눈뜬 자는 담대한 간증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화가 나서 답했습니다.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그 눈뜬 자를 쫓아내어 보냈습니다.
그 눈뜬 자는 출교당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눈뜬 자가 출교된 것을 아셨습니다.
그를 만나 물었습니다.
"너는 인자를 믿느냐?"
"그가 누구십니까? 그 분을 믿고 싶습니다."
"너는 그를 보았으니 지금 네게 말하는 이니라."
"주여 제가 믿나이다."
그는 주님께 경배했습니다.
"내가 심판을 위해 왔노라.
맹인이 볼 것이고
보는 자가 소경이 되리라."
옆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말했습니다.
"뭐라고!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님이 답했습니다.
"너희가 보지 못하면 죄가 없다.
그러나 너희가 본다고 주장하니 여전히 죄 중에 있다."
하나님은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십니다.
나면서 보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살던 사람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눈을 뜨고 주님을 경배하고 간증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교당한 그는 유대 사회에서 정상적 삶이 어려워졌습니다.
주님 제자로 사는 길은 고난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길을 우리는 가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만이 우리를 거룩케 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끈을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삶이 되길 주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