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 최광모
사막을 펼쳐놓고 Del을 두드리는 밤
날름거린 뱀의 흔적, 그 욕망을 문질러
낙타가 걸어간 먼 길
지문으로 읽는다
220V로 휘몰아치는 열풍 속에 숨겨져
웃음이 되지 못한 추억도 모두 찾아내
태양과 접속한 두 눈
연신 비벼 닦는다
뜨거운 모래 폭풍 멀리 날려 보내고
슬픔으로 빗금 진 가슴팍을 수습한 뒤
거칠게 저항한 과거
흔적 없이 지운다
*죽은 사람의 인터넷 기록을 정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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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최광모
골목에 둥지를 튼 외로웠던 유목민들
아득해진 꿈들을 길 끝에 잇대어놓고
점점 더 견고해진다. 성벽이 높아진다
먹방으로 달랜 더부룩한 어둠 속에서
짧은 댓글을 달며 아군과 연대하지만
겨울은 낮은 포복으로 나를 포위한다
뜨거워진 손가락 오므렸다 펴는 한밤
웅크린 가로등이 어슴푸레 잠이 들면
조용히 날아든 달빛 그림자 들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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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식도염/ 최광모
웅크린 내 몸속엔 수많은 밤이 있어
삼킬 수 없는 사랑 날마다 되읽더니
구름이 달빛을 지워 화들짝 핀 통증이여
명치끝에 걸린 슬픔 지그시 눌러봐도
말없이 왔다 가는 뾰족한 꿈이었지만
내일은 햇살 한 줌을 먹어 봐도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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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 최광모
포개진
숨찬 날이 온몸을 긁고 있다
한 근의 그리움을 씹지 않고 삼켜 먹었다
언 채로 버틴 남자가
부둥켜안은
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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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최광모 시집/ 디지털 장의사/ 도서출판 도훈/ 2022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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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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