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불교문예문학상
수상자
청화스님
심사
이근배 문혜관 오세영 임술랑 장영우 홍성란
심사평
이근배
사람입니까 외 4편
청화
숲속의 사냥꾼이 되어
멧돼지 사슴만 뒤쫓다가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여
사람을 잃어버리고
중심부 나사가 빠진 기계처럼
온통 고장이 난 사람이여
온통 고장이 나
끝내 넘어서는 안 되는
붉은 선을 넘고 있는 사람이여
사람사람 사람…
하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사람이 못내 그립습니다
아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면벽
뜸북이는 뜸북뜸북
뜸북새 울음을 우는데
내가 무언지 모르는 나는
내 울음도 울지 못하고 사네
죽어라 이 무명無明의 삶
어떻게든 끝장이 나게
원수의 몸 같은 벽을 향해
송곳 하나 꼬나들고 앉는다
호수
-오현스님 영전에
잡초와 돌 뿐인 땅에
호수 하나 덩그렇게 남겼네
설악산 산그늘이
할랑하게 잠긴 그 호수
누구나 물가를 돌며 놀랄 뿐
그 수심水深은 알지 못하니
아 이 깊이를 다 아는 백조
어느 노을녘에 날아오려는가
오늘
사람들은 자꾸
길에서 벗어나
먹어서는 안 되는
열매들을 따러 가고
이미 기운 운동장에는
발소 서는 아이들도 없고
그래서 결국은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망원경 그 속에도
앞이 안 보이는 오늘
하늘
꽃에는
꽃이 없다
나에게도
나는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하늘 뿐, 하늘 뿐
그러나 하늘에는
하늘이 있다
꽃도 되고
나도 되는 하늘
묘하고 묘한
그 하늘이 있다
청화 1977년 《불교신문》. 1978년 《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산문집 『돌을 꽃이라 부른다면』,『향기를 따라가면 꽃을 만나고』 등이 있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청평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역임. 지금은 정릉 청암사에 주석하고 계시며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심사평
이 시대의 어둠을 깨치는 화두話頭
이근배
산을 앞에 두고 산을 못 보는 눈과 물가에 이르러도 물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내가 저 원호에서부터 나옹, 보우의 봉우리를 넘어 타고 내리는 법어法語를 속 깊이 읽을 줄 있으랴.
자못 하늘 덮는 검은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던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 자꾸 흐려져 가는 불국토의 법맥을 바로 세우려 촛불을 밝혀온 청화스님의 사화집을 받아들고 보니 오늘 시가 있어도 시를 찾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번쩍! 눈을 뜨게 할 게송의 주장자의 울림을 듣게 된다.
청화스님은 산사에서 오래 익혀온 모국어의 가락을 마침내 문자로 옮기어 197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첫 발을 내딛고 다음 해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시조로 다시 당선하여 영성했던 70년대 시조 시단에 박고 맑은 물길을 열었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까닭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선고했던 인연의 한 끝을 잡고 있음이다.
어느덧 마흔 해를 넘었으니 그동안 산문山門에서 면벽面壁과 불와不臥로 갈고 닦은 참선이며 생각의 천착은 또 얼마이겠는가. 아니나 다를까한 편 한 편의 삭 모두 부처님 말씀이요 세상을 깨우치는 경구驚句일러라. 그 가운데도 “심우尋牛”에서 “입전수수入廛垂手”에 이르는 「십우도十牛圖」는 일찍이 어느 고사도 깨치지 못한 화두를 꺼내서 잃어버린 소의 고삐를 잡고 돌아오는 덧이라 거듭 새기지 않을 수 있으랴.
한 편 한 편 더듬어가다가 그만 울컥한 것은 「호수」였다. “오현스님 영전에” 부제로 올리는 이 시는 무산 조오현 스님 영결식에서, 49재에서 내가 머리를 짜내고 가슴을 우려서 썼던 글자들을 모두 지우고 있지 않은가.
잡초와 돌 뿐인 땅에
호수 하나 덩그러니 남겼네
설악산 산그늘이
할랑학 잠긴 호수
누구나 물가를 돌며 놀랄 뿐
그 수심을 알지 못하니
아 이 깊이를 다 아는 백조
어느 노을녘에 날아오려는가
마땅히 설악산 신흥사 산문 앞이거나 백담사 무문관 입구에 돌에 새겨 세워야 할 헌시獻詩이다. 이 한 수만으로도 청화스님의 시법의 내공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가늠케 하며 무산 스님이 그토록 발원하고 시주해 오시던 불교문학의 이름으로 주는 큰 상을 바치는 데 있어 지극히 마땅하며 더하여 경하스러운 것이다.
첫댓글 좋은 시 감사합니다..- 하 많은 사람 중에 사람이 그립고 사람을 만나고 싶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지 못함에 가슴이 저릿해 오는 저녁 무산 스님의 글을 펼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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