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와 청소 로봇
우리 집에는 청소 로봇이 있다.
아내가 무릎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친구 집에 가서 발견한 것이 청소 로봇이다.
이 녀석이 참으로 영리하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청소를 하고 끝나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멈춰 주인이 쉽게 찾게 하는 영리함까지 가지고 있다는 친구의 극찬에 구미가 당겨 구매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제품이라서 크게 비싸지도 않고 아내가 병원에서 돌아오면 다리를 구부려 청소하는 데 무리가 있을 터이니 작동이 쉬운 로봇이 아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내가 퇴원하고 왔을 때 시범적으로 작동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시연을 한 적이 있는데 꽤 만족한 표정과 나에 대한 감사까지 묻어나와 살다가 칭찬받는 일도 한다며 어깨를 들썩였다.
아침부터 교육받으러 간다면서 청소를 부탁하기에 한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로봇을 찾고 작동법에 맞춰서 청소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갑자기 로봇이 나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기계니까 프로그램에 따라 이리저리 다니면서 불평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충전된 배터리 양만큼 열심히 하겠지만 만약 나라면 과연 저토록 열심히 구석구석 다니면서 두세 번 확인하며 청소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물겹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보고 있는 나에게 로봇은 관심이 있는 듯 다가와 발밑에서 열심히 청소하는데 왜 미안한 생각이 들지?
다리를 들어 올리며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 하면서 기계에 대한 미안함이 문득 드는 것은 아마 몰라도 나 대신 청소에 마음을 다하는 기계에 대한 감사였는지 모른다.
오직 아내가 청소하는데 조금 수월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구매해서 사용하지만 늘 로봇의 충직함과 부지런함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왠지 잘 모르겠다.
인간은 고용되어 일하는 경우 고용주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찌 되었든 잔꾀를 부려 쉬운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할 테지만 기계는 만들어진 프로그램 때문에 질서정연하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보면 과연 어떤 것이 멋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에 의문을 갖는다.
창의성이 모자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창의성을 제외하면 인간보다 훨씬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맞은듯하다.
잔꾀를 부리지 않으니까.
하루는 큰 방문을 열어놓고 로봇을 돌렸더니 특이한 일이 발생했다.
로봇이 자꾸 큰방 옷장이 있는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있더니 문이 열린 사워 공간으로 추락하여 일하지 않고 멈춰있어 로봇도 수작을 부린다며 웃은 적이 있다.
물론 나 스스로 생각하고 단정 지은 우스운 생각일 뿐이지만 백수가 노는 일종의 생각 놀이의 다양함이다.
대화할 수 없는 것이 기계다.
요즘 AI를 이용하여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하고 있긴 해도 집에서 사용하는 청소 로봇은 대화할 수 없는데도 사워 공간에 추락하여 있는 로봇에게 너 딱 걸렸다며 달랑 들어 옮겨 놓으면 이 장난스러운 로봇은 조금 전 했던 행동을 반복해 그냥 웃게 만드는 것이다.
“요 녀석 보소. 또 농땡이 치려고 그곳에 가네” 하며 문을 닫아버리고 나서 무슨 대단히 승리라도 거둔듯이 웃고 있는 내 모습이 가끔은 허허로 와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감정을 교감할 수 없는 기계와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이다.
누군가 대화할 상대방이 존재한다면 결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혼자 있으니 기계도 이야기 상대로 인식하고 이런 행동을 한다.
나 대신 청소를 열심히 하는 로봇이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록 대화는 통하지 않을지언정 말없이 내가 해야 할 청소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어 그저 멍하니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영악한 머리를 굴리는 인간보다 훨씬 낫다며 혼자 중얼대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거나, 아집으로 똘똘 뭉친 닫힌 인간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로봇에 정이 가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세상에 남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그래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기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내의 어명이 떨어지면 충전 대기 중인 로봇으로 청소를 하고 그 로봇이 청소하는 동안 내가 읽고 싶어 빌려온 책을 읽으면서 어제처럼 오늘도 로봇에 감사를 전하게 된다.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 인간은 상처를 남길 수 있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완수해가는 우직한 로봇이 어쩌면 마음을 한층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친구 같다는 느낌이다.
신통방통한 것은 청소를 마친 로봇은 언제나 인간의 눈에 띄기 쉬운 거실이나 방의 한복판에서 주인을 맞이하는 센서야말로 감탄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청소를 다 마친 로봇이 침대 밑 깊은 곳에서 작동을 멈춘다면 늙은 기억으로 잊을 수도 있는데 주인을 배려하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서 멈춰 찾기 쉽게 배려하는 것을 볼 때마다 네가 인간보다 훨씬 낫다며 혼잣말로 중얼대곤 한다.
생활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고 사용하지만, 썩 마음에 와닿는 것은 별로 없는데 우연히 발견하여 사 온 청소 로봇만큼은 언제나 만족감을 선물하고 있어 괜히 사랑하는 님을 보듯 보면 웃게 되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백수와 청소 로봇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친구다.
그래서 오늘도 대답 없는 로봇과 대화를 하고 잊어버릴까 두려운 말들을 혼자서 연설처럼 주절대며 신나고 있다.
시간적 여유와 노동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청소 로봇은 누가 뭐라든 나의 소중한 친구임은 틀림이 없다.
“사랑해 로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