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24일. 이날은 내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위해 현대해상에서의 대리점 허가를 취득하고 영업을
개시한 날이다.
지역본부에서 현대인교실을 마치고 지점의 육성영업소에서 육성교실과정의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 홍현
식 육성장의 강의 제목 중 하나가
‘뻔뻔함이 구슬 서말보다 낫다.’
였다. 돌이켜 보면 이 말만큼 우리 영업인에게 많은 교훈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현대해상에서 앞만 보고 달린 6년 5개월의 세월이 흐른 지금! 지금도 그 말은 내 생활의 지표이다. 현대인교실,
육성교실… 등 많은 교육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전문지식을 쌓고 배워 그것을 많은 지인들 앞에서 쑥스러움과
어색함을 무릅쓰고 보험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일체의 일들은 바로 용기요! 자신감이요! 실천하는 보험 지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할 뿐, 가입여부 판단은 고객의 몫이기 때문에
뻔뻔하리 만큼 권유하지 못한다면 직무유기하는 거라 생각한다.
왜 하필이면 또 보험이냐…
1997년 3월경 현대해상에서 다시 보험 영업을 시작해볼까 한다고 하니까 내 주변에서는 하필이면 왜 또 보험
이냐며 말리거나 전업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결단을 내리게 한 사람은 아내였다. 내가 무능한 가장
으로서 비전도 없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장래 진로문제로 고민하며 괴로워하자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나는 당신이 돈을 못 벌어와도 괜찮은데, 축 쳐져있는 모습은 너무 싫어! 그러니 예전 총각 때처럼 생기 있는
삶을 살도록 열심히 뛰어봐! 당신은 할 수 있잖아! 지금은 힘들더라도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해!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꺼야! 힘내!”
하는 그 말이 나에게 무엇보다 큰 용기를 내게 하였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처음 시작한 것이 영업…
산간 벽지인 전라남도 함평의 조그만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농협에 근무하시는 아버지와 부농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적지 않은 농사를 손수하시며 할머니를 공양하는 어머니 슬하에 6남매와 더불어 크게 어려움 없이 오
손도손 다복하게 성장하였다. 어려서 나는 책임감이 투철하고, 나름대로 통솔력이 있다는 칭찬을 듣는 편이었
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한창 사춘기 시절인 중2때 돌아가셨다. 전남 광주에서 하숙을 하며 고교를 졸업하고, 재수
한 끝에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를 입학한 것은 1983년의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오신 후,
이상하게 우리 집의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여의치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결국 군대에 일찍 입대하여 전
역한 86년 2월부터는 학비와 생활비를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돈 걱정 없이 학업에만 전념코자 휴학까
지 해가며 돈벌이에 나섰는데 맨 처음으로 접한 아르바이트가 영업이었다. 이 첫 아르바이트 영업이 결국에 내
운명까지 결정지었다.
86년3월경 퇴계로 진양상가 16층에 당시 ‘아내를 사랑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한 잡지사 [여원]의 특수
사업부를 신문 모집공고를 보고 찾아갔다. 아르바이트 내용은 [여원]에서 발간하는 각종 월간지의 정기구독 신
청 받아오는 것으로 세일즈 교육을 받고 바로 현장으로 나서게 되었는데, 24살 갓 전역한 인생 초년병 아르바
이트 치곤 혹독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특별한 전략도 없이 마구잡이로 퇴계로 일대를 군인정신으로 누볐다. 첫날 나는 단 한 건의 정기구독도 받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몇 건씩 해오는 것을 보곤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단 한 건도 하지 못한
나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남들은 하는데 왜 난 못해?
세일즈 서적을 뒤지며 밤새 고민…
그래서 각종 세일즈 서적을 뒤지며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밤새워 고민하며, 어설펐지만 전략을 세우게
되었다. 그 결과 마구잡이로 하던 방문대상을 선택적으로 정하고 방문 반응이 좋았던 미용실이나 치과, 소아과
등 각종 의원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 결과 시간도 절약되고 효율적이었다. 급기야 정기구독을 받아올 수 있었
을 뿐만 아니라 제법 영업의 묘미와 성취감을 맛보게 되니까 어떤 일보다 재미가 있었다. 또 열심히 하다보니
높은 실적도 거두게 되었다. [여원]에서 익힌 역량을 바탕으로 나는 [시사영어사]의 어학테이프 세일과 자매 결
연 상품인 서울음반의 음악테이프 및 음반 세일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게 되어 내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고교(홍대부고) 재학중이던 막내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까지 충당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나는 천부적인 영업
능력이 있다고 믿게 되었고, 이 경험이 후에 내 보험 영업에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재산이었는가를 나중에 깨
닫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중 미용실에서 퍼머를 하다가 우연히 나로부터 [소설문학]을 구독하게 된 인연으로 만난 아내와
결혼한 것은 1989년 대학 3학년 때(27살)이었다. 아내의 뒷바라지 속에 오직 학업에만 전념하여 장학금과 장기
우대융자 학자금으로 대학을 졸업할 무렵, 사법고시 공부 중이었던 나는 아내가 임신하는 바람에 고시를 포기
하고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아내를 위해서라도 취업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대한생명에 입사
(1991년)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내 적성과 비전을 고려하여 생명보험 대리점을 개설하게 된 것은 1993년
이었다.
내 나이 서른 하나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일이다. 무엇보다 영업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나는 보험
영업을 통해 내 자아를 실현하고 단시일 내에 남들이 이루지 못한 금자탑을 쌓아 올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보
험 영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차츰 깨닫게 되었다.
유형의 상품을 파는 세일과는 완전 달라…
하지만 보험은 유형의 상품을 판매하는 세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생명보험 대리점에서 그럭저럭 무기력하게
5년의 세월을 보내고 보니, 내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이렇게 해서 어떻게 내 꿈과 야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뻔한 답이 나왔다. 무엇보다 변변치 못한 수입으로 애써 가져보는 자부심도 긍지도 없이
보험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가장으로서 아내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 별
볼일 없는 영업실적 등에 점점 인생의 패배자처럼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있었다.
차라리 전업하여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해보라느니 나를 생각해 주는 주변사람의 권유와 다단계의 유혹 등으
로 깊은 늪에 빠져들 듯 깊은 고뇌와 번민 속에서 나는 방황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일을 한다고 성공이 보장
된 것도 아니고, 과연 내가 실패한 인생처럼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
았다.
비록 아르바이트였지만 영업의 매력을 느끼며 찬란한 한 때를 보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지금까지
경험하여 얻었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교훈들을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버려야 한단 말인가. 틀림없이
성공하여 찬란한 인생을 꽃 피우고자 했던 나의 야망은 어떡한단 말인가.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무너질 순 없
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전기, 인생반전이 내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는 찾아왔다.
새 출발, 새로운 돌파구…
우연치 않게 약간의 안면이 있었던 현대해상에서 대리점을 하는 김점순씨가 내 심정을 헤아리는 듯 뜻밖에 현
대해상에서 새 출발을 해보라고 권유를 해왔다. 그렇잖아도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짧았지
만 엄청난 마음고생과 갈등 끝에 영업으로 내 인생을 다시 꽃피워보고자 새로운 결단과 각오를 다지게 되었고
용기를 주는 아내의 성원에 힘입어 현대해상 대리점을 개설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교육에 임하였다. 이전의 나는 이미 죽어 없어지고 새로 태어난 내가, 나이35세가 되어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이니 만큼 각오와 다짐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두 번 다시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비록 보험 영업의 경험이 있었지만 첫 입문하는 자세로 겸허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모든 손해보험 교육과정에
열중하였다. 그래서 모든 교육에 최선을 다하였고 아무리 졸립고 피곤하여도 나의 불타는 열정이 두 눈을 부릅
뜨게 하였던 것이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이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장래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황
에서 각오와 다짐을 매일 새롭게 하지만 쉽사리 현실적인 금전적 요구와 비전 등 무엇 하나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 더 없는 기회요, 새로운 전기가 된 현대해상에서의 나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으로 변신해 가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새로 접하는 손해보험의 전문 교육들이 나의 머릿 속에 쏙쏙 들어와 잘
이해가 되었다. 새로운 지식을 깨닫는 그 기쁨은 뭐라 형용하기 힘들었고 나의 발걸음을 경쾌하게 하며 활력이
넘쳐 나게 했다. 성공을 향해가는 사람은 발걸음 그 자체가 다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나는 분명 성공을 향
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신교육과 신사고는 내 몸에 신무기를 장착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차라리 모르는 사이였으면 나을뻔했다…
하지만 육성실에서 배우고 익힌 손해보험 지식을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전하면서 바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
은 이론처럼 내 생각처럼 쉽지 만은 않았다. 특히 연고에 찾아가서는 오히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
다. 당연히 내 얘기를 들어주고 기꺼이 계약도 해주리라 굳게 믿고 정성스런 선물을 들고 찾아 갔건만 각종 변
명과 핑계만을 늘어 놓는 거절하는 지인들의 강한 벽에 부딪힐 때는 차라리 모르는 처지였으면 더 나을뻔했다
는 자조 섞인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알량한 감상에 젖을 여유도 없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 후에도 수많은 거절과 거듭되는 실패의 연속 속에 불타 오르는 오기가 발동되었다. 그리고 차츰
안면도 더 두꺼워지고, 우리 육성장님의 표현대로 점점 뻔뻔해져야 만이 일을 잘할 수가 있겠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그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자!’
하고 방문대상을 늘렸다. 깨지면 깨질수록, 상처가 크면 클수록 성공 또는 성취에 대한 나의 열망은 갈증을 더
해 갔다. 그렇게 거듭되는 방문 속에 요령이 터득되고, 고객설득, 거절처리, 계약유도 등 다양한 세일즈 기법을
실행하다 보니 차츰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고, 안되면 될 때까지 두드리고, 찾고, 구하다 보니 고객 수가 차츰 늘
어갔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체결한 계약일수록 짜릿한 흥분과 이 세상을 다 쥔 듯한 성취감에 젖어 밤낮을 가
리지 않고 영업현장을 누비게 되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손해보험의 매력과 새로운 비전을 맛보다…
방문대상에 따라 방문시간, 판촉물, 제시할 리플렛 및 자료집, 무엇보다 풍부한 화제와 시사, 상대방의 취미와
레저에 따른 다양한 화법을 위해 독서를 쉬지 않았다. 고객과 공감대를 함께 하는 각종 활동을 동반한 준비된
영업이 차츰 결실을 거두게 되어 신인시절에 슈퍼등급을 단 한차례도 놓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점점 손해보
험영업의 매력과 새로운 비전을 맛보게 되었다. 신입대리점으로 받은 교육들이 내게는 인생을 바꾸는 고귀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젠 깨닫게 된다. 미숙하지만 손해보험의 전문성을 점점 갖추어 가게 된 나는 그야
말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자동차처럼 영업전선의 탄탄대로를 달리며, 매일매일 인생의 찬란한 광채
를 맛보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어찌 그 교육들의 소중함을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업이 잘될 때는 새벽
부터 일어나 빨리 떠오르지 않는 태양을 기다리는 조급함과 흥분까지 만끽하기도 했다.
새로운 삶을 위해 술과 담배를 모두 끊고,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그리고 차원이 다를 것 같은 변화를 꿈꾸며
골프를 시작한 것이 97년 8월경이었다. 그 해 겨울에 골프모임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회원들 어느 누구도 보험
대리점 하는 나를 반기지는 않았다. 모두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기에 나도 애써 친한 척하려 하지 않았고 그냥
묵묵히 매너 좋고 운동 열심히 하는 젊은이로 각종 애·경사나 모임에서 매사에 솔선수범하며 특히 예의 바른
모습에 신경을 쓰며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한 2년정도가 지나자…
그랬더니 전혀 미동도 할 것 같지 않던 회원들이 운동을 자주 같이 하여 거의 가족처럼 친근하고 허물없이 지
내게 되던 2년 정도가 지나자 한명, 두명 나의 고객이 되기 시작하였고 현재에는 거의 모든 회원이 나의 가장
튼튼한 영업배경이 되어 지금까지 확실한 협력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는 현재 4개의 골프모임에 가입하고 있다. 각 모임에서 총무, 간사 등의 직책으로 리더가 되었다. 물론 수고
와 애로사항은 다 말할 수 없지만, 모든 회원들의 동향 등의 첩보와 정보를 접하는 자리라 영업에는 더 없이 좋
은 기회이고 많은 위로와 보람을 느낀다. 회원들은 기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이사 사장들이 대부분이어서 사회
적 지위가 있는 만큼 그 주변에 보험 영업하는 친·인척, 선후배, 거래관계 등 지인이 한 두 명은 꼭 있기 마련이
다. 그러나 그런 지인들과 경쟁관계에도 더 빠른 정보가 승부를 결정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공장 신축, 증축, 사무실 이전, 고가의 기계매입, 건물(APT, 주택, 사옥) 매입, 자가용 구입, 부모상, 자
녀결혼 등 이런 정보를 얻게 되면 평소의 좋은 이미지 위에 다른 사람보다 좀 더 튀게한다. 축의금을 하더라도
좀 더 하고, 화환이나 난, 행운목을 보낼 때 좀 더 비싼 것으로 확 튀게 보내서 이미지 메이킹을 확실히 해둔다.
그러면 반드시 그 효과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본인계약은 물론 주변의 소개계약도 자청하여 들어와 신바람 나
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운동할 때는 오직 운동과 좋은 매너만을 고수하도록 노력한다.
이런 골프모임 외에 축구동호회, 동문회 활동, 각종 친목모임 등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다 보니 매일매일 일
상생활이 분주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영업을 농사에 비유한다. 또는 종합예술이라 본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당
장 열매를 기대한다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그런 것처럼 영업은 끊임없이 씨 뿌리고 김 매고 물 주고 헌신하며
가꿔서 열매를 얻는 것처럼 영업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영업은 정직하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
은 자는 적게 거두게 되어 있다.
산 증인을 모델로, 폭발력 있는 홍보수단…
2002년3월에 있던 일이다.
장위동에서 제법 규모가 큰 이불도매점을 경영하는 나름대로 주변에 영향력이 막강한 김주안씨가 위암 초기
로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암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고객은 나에게 많은 계약을 하였을 뿐 아니라 거
래관계로 타 생·손보에도 부득이 많은 보험에 가입하였었다는 것을 병문안 했을 때 알게 되었다. 나는 본인과
보호자에게 세심하게 보험금 청구 등의 안내를 자청했을 뿐 아니라 거의 병실에 상주하면서 무료한 환자의 말
벗도 되고, 간병하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궂은 일을 마다 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보험금 합계가 약 1억2천여 만원이나 되었다. 이는 폭발력이 있는 홍보수단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래서 문병 오는 사람들, 거래처, 가족, 친척 등에게 보험 생활의 산 증인을 모델로 보험을 권유한 결과 약 100여
건의 질병보험과 종합보험, 화재보험, 자동차보험 등을 체결할수 있었다.
고객을 만날 때 나는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
다. 고객은 나를 좋아할까? 부담스러워 할까? 늘 고민하며, 고객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 고마
운 사람, 친절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도록 노력하고 애쓴다. 고객 개개인에 맞춰 맞춤서비스에 만전을
기하도록 한다.
그렇게 6여년을 영업해 온 결과 현대해상의 VIP회원이 되었고, 지금도 진정한 VIP가 되기 위해 오늘도 뻔뻔해
지고 있다. 그 뻔뻔함은 나쁜 의미가 아니고, 고객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진정한 보험의 혼을 담은 몸짓이다.
영업은 종합 예술이다. 만나는 사람, 내가 아는 모든 사람과 좋은 인간 관계를 맺고 가장 편할 때 그 사람의 니
드를 찾아 부드럽지만 강하고 자신있게 보험을 전하고, 내 고객으로 삼아 남은 인생을 더불어 향유해 간다.
IMF위기도 나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영업경력이 더해감에 따라 매월 마감 전에 계획한 실적을 미리 달성하고, 다음 일을 도모하는 것이 신나게 일
하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년간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른 월 실적목표(전년대비 및 전월대비 목표달성여부를 항상 체크하고 성찰한다)를
세우고 매일매일 활동계획을 세워, 대체로 월초에 세운 영업계획이 거의 차질 없이 달성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시간이 가면서 늘 해오던 스타일이 굳어져, 우선 매월 목표를 달성하게 되고, 일정한 영업리듬을 타고 기타 제
반업무에도 만전을 기할 수 있다.
만약 목표달성이 불투명해지면 밤낮을 불문하고 활동량을 배가하면 된다. 틀림없이 꿈은 ★ 이루어진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던가? IMF가 우리나라를 강타하여 모두가 어렵다고 할 때, 나는 골프
모임 회원들 공략에 성공하여, 영업에 탄력이 붙어 신바람이 나있었고, 무엇보다 금융형 상품(일시납) 판매로
오히려 위기가 나에게는 축복의 기회이었던 것이다.
거기가 아니면 계약할 곳이 없으랴…
그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개
척소개로 알게 된 그다지 친분관계는 없었지만 꾸준히 배양하여 드디어 월납 150만원을 계약코자 한 신당동
직물공장을 운영하는 이종빈 사장을 만나 그 사무실에서 계약체결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사장 친구가 훼방하는 바람에 결국엔 그 계약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억울한 심정을 달래며 그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데 그날은 마감 날이었다. 이미 받을 것으로 알고, 당시
팀장으로서 소장님께 보고도 해놓은 상태였는데… 책임감과 아울러 오기가 발동되었다. 거기가 아니면 계약할
곳이 없을까 하고 더 열심히 미친 듯이 가망 고객들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는데, 그러던 중 당시 무교동에서 무
역업으로 대성한 고객 유계환 사장이 마침 지나가는 길에 인사나 하고 가려고 들렀다고 둘러대는 내게 “당신!
정말 운 좋네.” 하면서 마침 은행에 3억 짜리 적금을 들려고 하던 참이었다며 705만원(5년 만기)을 내준 일은
아직까지도 짜릿하기 만한 기억이다.
받은 돈을 들고 점잖게 사무실을 나서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너무나 흥분되어 막 춤을 추다가 1층에서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의 황당한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것도 몰랐던 만화 같은 현실을 체험하기도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실패자는 성공의 바로 코 앞에서 포기한다.’
내 사전에는 좌절이란 포기란 있을 수가 없다.
마감날 놓친 이종빈 사장의 계약은 나중 수 차례의 방문 끝에 기어코 월납 150만원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성
취감이 배가 된 느낌이 들었다.
성공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이 성공을 쫓고 그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나는 생각한다. 보험 영업에서의 성공은 보람과 긍지를
갖고, 또한 자부심을 가지고 직업적인 소명의식 속에서 적성에 맞아야 되고, 보험전문가로 자신감을 가지고 고
객으로부터 인정 받고 사랑과 신뢰를 받아 늘 변화되고 성장하며 자아성취 하는 영업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나의 사고, 습관, 행동에 늘 변화를 추구하며 자기혁신과 사고의 유연성을 갖고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자동차
보험 온라인화, 방카슈랑스 등)와 다양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
려한다.
오늘도 나는 뻔뻔해지고 있다…
성장하는 나의 두 아들에게도 자랑스런 보험영업의 달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명장”을 꿈꾸듯 보험분야에서 보험영업의 진정한 “명장”을 달성하여 찬란한 인생의 족적을 남기고 싶은 소망
으로 오늘도 나는 뻔뻔해지고 있다. 그 뻔뻔함에는 수많은 거절 속에 노하우를 터득한 자신감과 용기, 보험전
문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영업하며 보낸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잔잔한 미소가 오늘도 배어 난
다.
카페 게시글
유머&좋은 글
[성공수기/어느보험설계사] 뻔뻔함이 구슬 서말보다 낫다
카마스터
추천 0
조회 265
04.09.20 23:05
댓글 1
다음검색
첫댓글 장문의 글이지만 같은 영업인으로서 배울점이 많은것 같아 올려봅니다. 이뿐 아니라 모든 문야에 옳바른 뜻을 두고 정진한다면 아름다운 결실이 있겠죠~~ 카마스터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