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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정선언
관심
창의력이 중요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창의력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서울대 경제학과 김세직 교수는 18년째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중심에 둔 수업인데요. ‘창의성 교육을 위한 서울대 교수 모임’의 일원이기도 한 그가 9회에 걸쳐 창의력을 키우는 7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첫 회에선 본격적인 방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창의성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립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인간은 참 경이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세요. 세상의 모든 물건, 공간, 음식, 예술 등 어디에도 창의적인 생각이 깃들지 않은 게 없죠. 창의력은 호모사피엔스만의 능력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사는 것을 넘어 불편을 해소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면서 지금의 세상을 이룩했습니다.
효모를 가지고 음식을 발효시키던 인류는 이제 유전자를 재조합하고 생명을 복제합니다. 전기 진동으로 소리를 전달하던 최초의 전화기는 스마트폰이 되었죠. 이렇게 누군가의 남다른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시초가 되고, 거기에 또 다른 생각이 더해지며 인류는 한발 앞으로 나아갑니다.
새로운 생각은 인공지능(AI)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AI와 함께 살아야 하죠. 인류 역사상 기계과 경쟁해 이긴 인간은 없었어요. 자동차보다 빠른 인간은 없고, 방직기보다 더 빨리 옷감을 짜는 사람도 없습니다. 핵심은 ‘기계를 얼마나 잘 쓸 수 있는가’입니다. 기계를 써서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AI와 경쟁한다면 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AI를 활용해야 합니다. 창의적인 사람만이 AI를 활용해 더 창의적인 걸 만들 수 있어요. 창의력이 중요한 이유죠.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하면 창의적이 될 수 있는지 모르시겠다고요? 당연합니다. 그동안 한 번도 창의력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숨 막히는 입시 경쟁 속에서 당장 눈앞의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공부만 해왔잖아요. 그래서 우리 사회엔 창의력이 소수의 천재에게만 있는 능력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만연해 있기도 하죠.
경제학자로서 저는 오래전부터 창의력 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한국의 장기경제성장률이 5년에 1%포인트씩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죠. 기준년으로부터 앞뒤로 5년, 총 11년의 경제성장률을 평균한 장기경제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의 체력을 보여줍니다. 한국 경제의 체력이 떨어지는 건 기술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선진국과 20년 이상 기술 격차가 있어 특허가 만료된 기술을 베껴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격차가 20년 안쪽으로 들어오자 더는 베낄 게 없었죠. 새로운 걸 만드는 것 외엔 성장할 방법이 없습니다. 창의력이 중요한 이유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죠. 저는 지난 10여년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을 시도해 왔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창의력을 키우는 효과적인 방법을 터득했죠. 그게 뭐냐고요? 바로 이겁니다.
무한 상상하라!
너무 추상적이라고요? 그럴 겁니다. 가슴에 와 닿지 않은 게 당연하죠. 그래서 제가 이 칼럼을 연재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지금부터 두 달여 동안 제가 학생들을 위해 고안한 ‘창의력을 키우는 7가지 방법’을 매주 한 가지씩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창의력에 대한 오해부터 바로잡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3가지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각 질문을 보고, 답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창의력에 대해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질문① 창의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창의력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명백한 오해입니다. 누구나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심지어 몇 개월 만에도 창의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죠. 제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학생들의 변화를 수없이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화폐금융론’ 수업은 다소 독특합니다.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과제로 내고, 학생들이 그 질문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거든요. 열린 질문이란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정부가 갑자기 대출을 금지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은행과 봉이 김선달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바나나를 빌리고 빌려주는 경우에는 이자율을 어떻게 정의할까?”
열린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처음에 평범하고 비슷한 답을 합니다. 그러다가 강의 중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흥미롭고 독창적인 답을 제시하죠. 이 수업 마지막 강의에선 학생들에게 처음과 지금의 창의력을 10점 만점으로 평가해 보도록 하는데요. 거의 모든 수업에서 90% 이상의 학생이 자신의 창의력이 커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매 학기 예외 없이 말이죠. 2016년 2학기 화폐금융론 수업의 경우, 첫 수업 때 평균 4.5점으로 매겼던 학생들의 창의력 점수가 6.3점까지 뛰었죠.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창의적인 잠재력이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아래서 꺼내볼 기회가 없었을 뿐이에요. 생각하는 방법만 터득하면 짧은 시간에도 얼마든지 내재된 창의력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창의성’이 아닌 ‘창의력’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죠. 생각하는 힘은 타고난 성정이 아니라, 쓸수록 자라는 근력이기 때문입니다.
질문② 창의력은 천재들의 전유물일까요?
이 질문에는 “예”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창의력은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같은 천재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이 오해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무한한 창의력을 끄집어낼 시도조차 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전문지식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오해도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건 어린이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어른은 상상하지 못한 번뜩이는 생각이 아이들 입에서 불쑥 나오곤 하니까요. 실제로 평범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 사례는 많습니다. 가까이에서 예를 들어볼게요. 고속도로 입⋅출구의 색깔 유도선을 누가 만들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한국도로공사 안성용인건살사업단에서 근무하는 윤석덕 설계차장입니다.
헷갈리는 고속도로 분기점 때문에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윤 차장은 상부로부터 “초등학생도 분기점을 알아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던 어느 날, 그는 8세 딸과 4세 아들이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도로에 색깔을 칠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사실 그의 아이디어는 도로교통법상 실현하기 어려웠어요. 운전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 도로에는 흰색, 황색, 적색, 청색 외에는 추가로 색을 칠할 수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윤 차장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관할 경찰청을 설득했습니다. 색깔 유도선은 서해안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안산분기점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목적지에 따라 타야 할 도로를 분홍색과 연두색으로 나누어 표시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연간 25건 발생하던 교통사고가 3건으로 줄어든 겁니다. 이 아이디어는 2014년 한국도로공사의 정식 인정을 받았고 2021년에는 관련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었죠.
교통사고 발생률을 85% 줄이고,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운전자가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준 이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떠올린 게 아닙니다. 도로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춰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이 우리처럼 평범한 누군가가 창의력을 발휘한 산물입니다.
질문③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이 질문에도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방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창의력을 갖게 된다고 믿는 건데요. 다른 사람의 작품을 따라 하기만 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습니다. 창의력을 키우는 연습을 해야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죠.
우리나라 학생들은 암기 중심의 모방형 교육을 받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예요. 일을 할 때는 레퍼런스부터 모으는 게 관행이죠. 누군가의 좋은 사례를 따라 해서 성공을 이룬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제로 성장의 위기에 처한 건 그래서죠. 과거 우리 사회는 선진국의 기술이나 제도를 본떠 고도성장을 했어요. 이제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줄어든 지금, 대한민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를 해야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따라 하기만 해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믿기 어려우실 텐데요. 이건 부딪혀봐야 체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미국 유학 당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는데요. 연구의 핵심은 기존의 지식을 토대로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느냐 거든요. 한국에서 모방형 교육을 받은 유학생들은 이 단계에서 큰 고생과 좌절을 경험합니다. 기존의 연구는 많이 알고 있지만, 나만의 연구 아이디어를 찾지 못해 헤매거든요. 저 역시 그랬고요. 반면에 어려서부터 학교나 가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훈련을 받고 자란 미국 친구들은 슬렁슬렁 노는 것 같았지만 결국 날개 단 듯 논문을 써냈습니다. 자신만의 연구 아이디어 다들 척척 내면서 말이죠. 나만의 아이디어, 새로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여부가 그 차이를 만들었던 겁니다.
축구를 잘하려면 축구 연습을 하고 피아노를 잘 치려면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하듯, 창의력을 키우려면 창의력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무런 노력과 투자 없이 외우고 모방만 하다가는 정말 중요한 단계를 건너가지 못하죠.
IQ 125의 과학자는 어떻게 천재가 됐을까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건 중요합니다. 그래야 창의적인 생각을 계속 시도하고, 그러다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이렇게 생각하는 즐거움을 느끼면, 우리 뇌는 점점 더 생각에 몰두합니다. 그 결과 창의력이 자라고요. 그래서 저는 창의력을 ‘자기실현적 믿음(self-fulfilling belief)’이라고 말하곤 해요. 창의력은 키우는 거라고, 키울 수 있다고 믿어야 실제로 큰다는 의미로 말이죠.
창의력은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있습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입니다. 전자와 자기장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풀어낸 ‘양자 전자기학’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천재적인 물리학자죠.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파인만이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파인만의 IQ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해요. 120 수준으로, 천재들의 모임이라는 멘사에 가입하지 못할 정도죠. IQ가 140은 넘어야 멘사 회원이 될 수 있거든요. 파인만도 가입 제안을 받았지만, IQ가 낮게 나온 걸 오히려 기뻐했다고 합니다. IQ 지수에 대한 신뢰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모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가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그는 자서전 『남이야 뭐라 하건!』에서 지능이 아니라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주말마다 아들과 숲을 산책했던 파인만의 아버지는 어느 날 새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새가 보이지? 저 새의 이름은 스펜서 휘파람새라고 한단다.” 그 이름은 아버지가 마음대로 지어낸 것이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파인만은 아버지의 그다음 말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탈리아어로는 ‘추토 라피티다’라고 하며, 포르투갈어로는 ‘봉다 페이다’, 중국어로는 ‘충롱따’, 일본어로는 ‘가타노 데케타’라고 한단다. 이와 같이 세상에 있는 모든 언어로 저 새의 이름을 알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나서도 저 새가 어떤 새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단다. 단지 세계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저 새를 뭐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만 알게 된 것이지. 그러니까 우리는 저 새를 관찰해 저 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꾸나. (중략) 저 새는 계속 자기 깃털을 쪼고 있잖니? 왜 자기 깃털을 쪼고 있다고 생각하니?(『남이야 뭐라 하건!』 18쪽에서 발췌)
아버지의 이러한 가르침은 파인만에게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과 ‘본질’을 아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파인만은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에게 달려가 물었지만, 아버지는 무엇 하나 명확히 대답해 주지 않고 아들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 해요. 파인만은 이러한 대화를 하면서 과학에 심취했고, 답을 생각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는 자연의 세계에 경이를 느끼곤 했죠. 그러면서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요. 아버지 덕분에 생각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겁니다.
이렇게 스스로 답을 떠올리는 경험을 쌓는 건 창의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칼럼이 여러분에게 그러한 역할을 할 거예요. 칼럼을 읽는 동안은 창의력 수업을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잘 따라와 주세요. 양육자라면 아이와 함께 해주시고요. 창의력은 천재가 아니라, 노력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생깁니다.
성소영 객원기자 ssoy419@gmail.com,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박정민 디자이너 park.j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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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