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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흐느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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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숲은 마음으로 볼 수도 있는가 보다. 미국 맹농아 여작가였던 켈러(H. A. Keller)는 손끝의 촉감으로 주름지고 부드러운 나무를 구별했다고 썼다. 코로 꽃의 향기를 맡는가 하면 입으로 맛을 보았다. 간혹 운이 좋으면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는 마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단다.
이는 아름다운 숲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나무숲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켈러처럼 마음으로 느끼지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
잊을만 하면 산림이 몸살을 앓고 있다거나 희귀한 풀꽃나무가 사라진다고 떠든다. 지겹도록 듣다보니 오히려 유치하고 식상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떠들지 않으면 안되는 게 현실인 듯하다. 어찌됐건 산림파괴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대책 또한 비상하다. 최근 제주도 곶자왈지대(천연림지대)에서 잇따라 훼손사건이 일어난 것과 관련해 관계기관이 공식사과와 함께 그 진입로 12곳에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무차별적으로 망가지는 숲을 감시하는 카메라까지 등장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산림이 어떻게 위협받고 있을까. 아직 한반도의 식생파괴와 식물소멸의 범주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몇년전 어느 환경단체는 연간 500여종의 생물이 소멸위기에 처한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게다가 재래종의 유전자원도 급격히 사라져 갔다. 농진청은 1985년부터 8년 동안 일부지역의 재래종을 조사한 결과 25%만 남아 있어 75%가 멸종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는 일제강점기 말과 한국전쟁 당시에 심각한 산림파괴와 함께 희귀식물이 사라졌다. 최근에는 스키장·골프장·송전탑·콘도·철도·임도 건설을 비롯해 묘지 조성 등이 산림을 망가뜨리고 있다. 물론 무단채취와 더불어 지구온난화·산성비·산불·산사태·솔잎 혹파리 등 여러 요인에 의해서도 식물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의 식생파괴와 식물소멸은 인위적인 산림훼손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것이 문제이다. 골프장 건설은 나무를 베어내고 잔디를 대신 조성하므로 산림이 가진 고유의 기능이 상실된다. 울창한 숲속 식물의 생육공간이 사라지고 농약 사용으로 인해 주변 수질오염이 심각해진다.
송전탑 공사도 산림훼손의 주범 중 하나다. 1개가 100여평을 차지하는 송전탑은 전국적으로 3만6천여개나 되고 시설 중인 것만도 6,000여개나 된다. 시설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임시도로를 만들면서 산허리를 완전히 갈라놓고 있다. 이에 따른 식생파괴와 희귀식물의 개체수 감소는 불보듯 뻔하다.
묘지 조성은 어떤가. 전국에 약 2천만기가 산야에 자리하고 있어 면적으로 환산하면 서울 면적의 1.8배에 해당한다. 해마다 전체 사망자 중 83%인 22만여명이 매장돼 여의도 크기의 면적만큼 새로운 산림이 파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단채취도 희귀종 감소와 함께 식생파괴의 원인으로 무시할 수 없다. 일부지역이기는 하지만 산나물 채취의 극성으로 식생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즉 취나물 등 식용이나 약용식물은 분포지가 줄어드는 반면에 독초들은 생육지를 넓히고 있다. 한편 서해도서의 얕은 산야는 염소의 방목으로 초토화된 곳이 많다. 그곳은 큰천남성 등의 독성식물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지구온난화는 식물생태계에 영향을 준다. 온난화는 특히 온도변화에 민감한 식물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다.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한라산과 지리산 등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구상나무는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서늘한 곳이 생육적지인 구상나무는 오랜 세월에 걸친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고산지대로 밀려갔고 개체수도 줄었다. 이에 따라 근친교배가 이뤄졌고 이것이 유전자의 다양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단다.
또한 온난화는 따뜻한 곳에 살던 곤충이 기온상승에 따라 서식지를 넓히면서 산림의 병충해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기온상승은 작물에도 영향을 미쳐 기온이 2도만 올라도 고산지대를 제외한 남한 전역이 사과재배 불능지역이 된다. 사과를 재배하는 지역의 연평균 기온이 13.5도 이하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공성과 경제문화성을 이유로 자연휴양림과 삼림욕장을 조성하면서 자원식물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지는 않는지 모를 일이다. 숲과 어우러진 경관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조성하다 보면 그 자체가 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한다. 사전에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성했다가 그곳에 희귀식물이 생육한다면 그 식물의 소멸은 훨씬 앞당겨진다. 필자가 발견한 식충식물 땅귀개의 국내 최대 군락지가 영종도 옆의 무의도에 있다. 그곳은 삼림욕장이 조성돼 있어 방문객의 잦은 출입으로 인해 군락지 훼손은 물론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래저래 한반도의 식물은 몸살을 앓고 있다. 말을 못하는 식물인지라 난개발의 현장에서 그냥 무참하게 쓰러져 죽고 만다. 그렇게 나무숲이 없는 우리 산야는 상상할 수 없다. 문득 페스탈로치(J. H. Pestalozzi)의 말이 생각난다. “나무와 새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 당신은 조용히 있도록 하라”고. 울창한 나무숲은 우리 후손의 진정한 삶의 터전이요, 교육의 장이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 모두 떠들지 말자.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으로 꽃나무를 보고 느끼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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