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아내 최 동 철
아내를 빼앗겼다. 그것도 기계에 도둑맞았으니 더욱 슬프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스마트폰 보는 걸 좋아했다. 집에 오면 밥 먹는 시간 말고는 폰을 쳐다본다. 누워서 불편한 자세로 핸드폰과 두 손을 들고 천장을 향해 몇 시간이고 있다.
정치, 노래 등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 거기에서 정보를 얻어서 그런지 모르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박식하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많다. 많은 부분을 매주 진행하는 어느 정당 대표의 인터넷강의를 듣는다.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라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정치인이다. 그걸 떠나 어느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랫동안 변함없이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시샘이 나기도 한다. 그분을 향한 관심 일부라도 내가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튜브를 통하여 유행하는 가수의 트로트 노래도 많이 듣는다. 내 기억으로 ○○이라는 가수에 관심을 가지면서 노래에 빠진 것 같다. 운전 중에는 큰소리로 음악을 들으니 말 한마디 끼어들 수 없다. 또 어떤 사이트인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내용이 있는 곳을 자주 본다. 정규뉴스보다 빠르고 다양하고 자극적인 이슈가 있는데 항상 그곳에 눈이 집중된다. 맞는 것도 있지만 잘못된 정보도 있어 검증되지 않은 단체인 것 같아 걱정도 된다.
집에서는 더욱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다. 주로 독방에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밥 먹는 시간에만 나온다. 소파에 앉아있는 시간에도 대화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는 가끔 티브이를 보는데 집사람은 시시해서 잘 보지 않는다. 같이 보면 재미있는데 혼자 보니 별로다. 나만의 일거리를 찾아보지만 특별한 게 없다. 책을 읽다가 집안일도 하고 한 번씩 나도 핸드폰을 쳐다본다. 주요 뉴스 기사 보고 카톡과 문자메시지 확인하고 유튜브 한두 개 보면 끝이다. 이십 분 정도면 더 이상 볼 게 없어 내려놓는다.
퇴근하면서 가끔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반월당역에서 아내를 만나 밥을 먹고 만촌동까지 제법 먼 거리를 걷는다.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생긴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이야기를 한다. 아들 공부 이야기, 주변의 사건·사고 등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면 두 시간이 금방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걸으면서 폰을 보고 있다. 한참 걷다 조용해서 돌아보면 뒤에서 따라온다. 길에서 집중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기도 해서 걱정이 된다. 다시 보조를 맞추어 나란히 걷는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는데 다른 곳에 더 관심이 있으니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급하게 볼 게 있겠지. 오죽하면 그럴까 하며 웃으며 넘긴다.
집사람은 외향적이라 친구가 많다.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많고 전화도 많이 온다.
그러나 나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아내만 바라본다. 아내가 시간을 보내주지 않으면 종일 소파에서 시간을 보낸다. 방에 있던 집사람이 가끔 나가자고 하면 들뜬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벌떡 일어난다. 호출이 없는 날은 온종일 소파와 한 몸으로 주말 시간을 보내곤 한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밉기도 하다. 하루 이틀 말을 안 하며 속이 상하니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 나도 다른 방에 혼자 있어 본다. 아내가 하듯 누워 핸드폰을 보며 지내보지만 금세 지겹고 답답해진다. 부부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가정은 어두운 분위기로 변한다. 아이들도 눈치를 챈다. 자존심을 내리고 상대의 입장을 살펴야 결국은 내가 편하다. 법륜스님이 결혼의 첫째 조건이 내가 상대방에게 맞출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에게 고집을 내려놓고 이해하는 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란 걸 안다.
좋은 점도 있다. 수십 년간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반복적인 직장생활이 힘들 것이다. 집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면 좋은 일이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 무관하다. 스님이 늘 말하는 나쁜 짓만 아니면 되지 않는가. 아내가 그러는 사이에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잠도 실컷 자고 자유시간이다. 잔소리로부터 해방이다. 그렇지 않고 매번 날 따라다니며 함께 놀아달라고 하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집 인근에 텃밭이 생겼다. 상추, 고추, 가지 등 채소를 심었다. 밭에 가는 횟수가 늘었다. 아내는 아침에 눈만 뜨면 가자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안에서 아까운 시간을 보낸다는 걸 알기에 따라간다. 자연을 보며 식물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힐링이 된다. 무엇보다 핸드폰 보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일거리를 찾아 땀 흘리며 노동을 즐긴다. 자기는 농사나 조경이 적성에 맞는다고 한다. 조경사 자격을 따서 퇴직 후에도 일하고 싶다고 하니 우리의 노후는 보장이 된 것인지. 너무 자주 가자고 하니 이제 밭에 가자는 소리가 겁이 난다. 그래도 휴대전화기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아내는 피곤하고 힘든 직장생활에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집에서는 쉬고 싶고 남편은 재미가 없으니 스마트폰에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 자연과 함께하는 좋은 취미가 생겼다. 함께 텃밭을 가꾸고 흙에서 건강도 챙기고 있다. 나와 아내가 진정 좋아하는 게 무언지 생각해본다. 사람은 결국 혼자다. 많은 시간을 혼자 살아야 하고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혼자면 혼자라서 좋고 둘이면 둘이라서 좋은 인생이 되고 싶다. 즐거운 일을 하며 인생의 고비마다 흔들리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살고 싶다.
첫댓글 울집도 비스므리...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