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와 '낭자'란 말에는 모두 '狼'자가 들어간다. 狼은 '이리'이니, 개과에 속하는 산 짐승이다. 늑대보다는 조금 크고 귀가 쫑긋하며, 성질이 몹시 사나워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포악한 짐승이다.
먼저 狼狽란 말에 대해 알아 보자. 사전을 보면, '낭패'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 매우 딱하게 됨"이라고 되어 있다. 狼은 이리를 말하고, 狽 또한 이리의 한 종류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狼狽는 둘 다 이리를 지칭하는 말인데, 어떻게 여기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낭패라는 의미가 나오게 되었을까?
《박물전휘(博物典彙)》란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狼'이란 짐승은 앞 발이 길고 뒷 발은 짧은데, 狽란 짐승은 앞 발은 짧지만 뒷발이 길다. 따라서 狼은 狽 없이는 서지 못하고, 狽는 狼 없이는 가지 못한다." 또 《유양잡조(酉陽雜俎)》란 책에서는, "狽는 앞 발이 매우 짧아서 움직일 때는 항상 狼의 뒷 넙적다리 위에 앞 발을 얹고 다닌다. 狽가 狼을 잃으면 능히 움직일 수 없으므로, 세상에서 일이 어그러진 것을 狼狽라고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두 책의 말이 같지 않지만, 요컨대는 狼과 狽는 함께 있어야만이 서로 보완하여 서거나 움직일 수 있으므로 따로 떨어지게 되면 정말로 '낭패스런' 일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소경이 앉은뱅이를 업고 물을 건넌다는 옛말이 있듯이, 狼과 狽는 서로의 단점을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동물인 셈이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두 마리 짐승이 서로 떨어져 있게 되면 둘 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낭패란 말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比翼鳥라는 새가 있다. 이 새는 한 마리가 눈 하나와 날개 하나만 있어서, 두 마리가 결합되어야 만이 비로소 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가 금슬이 좋은 것을 흔히 비익조에 비유하기도 한다. 눈 하나와 날개 하나 뿐인 비익조가 서로 따로 떨어져 있다면 날기는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해 다른 짐승에게 금방 해를 당하고 말 것이다. 두 마리가 합하여 하나의 온전한 몸체를 이루듯 부부도 이와 같이 사랑으로 똘똘 뭉쳐 헤어지지 말고 협심하여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낭패다.
'유혈이 낭자하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전에는 낭자를 "어지럽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뜻으로 풀이해 보면, 狼藉의 '藉'는 풀을 엮어 짠 '깔개', 또는 '자리'란 뜻이다. 그러므로 글자 뜻 그대로 하면 '이리의 잠자리'란 의미이다. 《모시(毛詩)》의 풀이글을 보면, "이리는 풀을 깔고 눕는데, 떠날 때는 그 풀을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해놓는 까닭에 狼藉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담사(嬗史)》에는 "이리는 깔고 자는 풀을 가지고 장난치기를 좋아하여 풀이 모두 뒤죽박죽이 되므로 민간에서 狼藉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소동파는 그의 〈적벽부〉 끝에서 "杯盤이 낭자하다"고 하였는데, 밤새 술을 마셔 손님들이 다 취한 뒤 술잔이 뒹굴고 안주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어지러운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뒤에 '배반이 낭자하다'는 말은 술자리가 거나하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낭패와 낭자 두 어휘는 모두 이리란 동물과 연관된 말인데, 그 본래 의미를 캐어 보면 재미가 있다. '소문이 자자(藉藉)하다'에서 '藉藉'란 말도 어지럽고 시끄러운 모양을 나타내는 말인데, 狼藉의 '藉'의 의미와도 서로 통한다.
우리말 가운데 이와 비슷한 것을 하나 들어 본다면 '시치미를 뗀다'는 말이 있다. 시치미를 뗀다고 했으니, 시치미란 어떤 것에 부착되어 있는 물건을 뜻하는 명사이다. 시치미는 원래 집에서 기르는 사냥매의 꼬리에 붙이는 이름표를 말한다. 매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놈들은 사람 손에 길들여져 있어, 사냥 때 후쳐서 날려 보내면 간혹 제 주인을 잃고서 엉뚱한 다른 사람 집에 날아드는 수가 있다. 이때 시치미를 보면 그 매의 주인을 알 수 있으니, 매를 얻은 자는 달려 있는 시치미를 보고 주인을 찾아 주어야 옳다. 그런데 제 발로 굴러온 매를 굳이 애써 돌려 줄 필요가 있나. 그래서 달려 있는 시치미를 '뚝' 따고 거기에 제 이름 석 자가 박힌 시치미를 매달아 놓고, 말 그대로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면 우리가 무심히 쓰고 있는 말 중에는, 참 재미 있기도 하고, 교훈을 주는 말들이 뜻밖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