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묘에서 하산하여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간 곳은 장단콩 마을 식당이다. 장단콩이라는 이름이 독특하여 신기했다. 장단콩에서 ‘장단’이란 콩의 품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파주 장단 지역의 콩이란 뜻이다. 지금은 파주시 장단면이란 지명으로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전쟁 전에는 경기도 장단군이었다. 1940년대 6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던 제법 큰 군이었다. 예전 장단군의 상당 부분은 민통선 안에 있다. 통일촌 안에는 장단콩 식당 외 장단콩 체험 단지도 있다. 장단콩이란 이름이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이다. 일제는 장단 지역에서 수집한 재래종 콩에서 '장단백목'이라는 장려품종을 선발하였다. 콩의 색깔은 노랗고 껍질이 얇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단백목’은 한반도 최초의 콩 보급품종이다. 해방 이후에도 이 ‘장단백목’을 이용하여 장려품종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이 ‘장단백목’이 재배되지는 않는다. 수확성이나 품질에서 더 나은 품종이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단콩은 한국전쟁 후 사라졌었다. 장단 지역 대부분이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민간인 통제구역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1973년 정부에서 통일촌 사업으로 이 장단 일대 민통선 지역에 마을을 조성하고 민간인이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였다. 그때 민통선 내 100헥타르의 농지에 콩을 재배하게 하였다. 그러나 인삼 등 다른 작물에 밀려 콩 재배면적은 해마다 줄어들었다. 1990년대 들어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의 하나로 파주시에서 장단콩 브랜드 육성사업에 나섰다. 1997년부터는 임진각 광장에서 장단콩 축제를 열었다. '신토불이 바람'과 함께 이 축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콩 재배면적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가을 수확기에 장단콩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는 초가집 등 잘 꾸며진 옛스런 이곳 식당에서 장단콩으로 요리한 두부전골 등 여러가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