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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일들
이 문 열
나는 올해로 스물셋에 드는 변두리 기계 공업사의 선반(旋盤) 기사다. 그러나 이름만 거창했지 회사라는 게 기껏 시다(보조공) 포함 열서넛의 종업원을 거느린 주물 공장에 지나지 않고 보면 그 선반기사라고 해서 대단할 리가 없다. 터놓고 말해 나는 바로 그 주물공장에 한 대뿐인 낡은 일제 선반과 이 봄 갓 중학교를 나온 녀석 하나를 시다로 거느린 한낱 싸구려 숙련공일 뿐이다. 이 길로 들어서서 쇳가루를 마시며 일한 게 10년에 가깝고, 또 선반이라면 내 몸만큼은 잘 알고 있지만, 어디든 따라다니는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 내가 보다 큰 회사의 그럴듯한 자리로 가는 걸 가로막는 탓이었다. 공고(工高), 공전(工專) 출신들도 대졸(大卒) 사원들과의 차별 대우에 한입 가득 불평을 물고 있는 그런 곳에 나 같은 것이 끼어든들 무슨 뾰족한 수가 나겠는가?
말이 났으니 하는 얘기지만, 내가 만약 이 세상을 빌어먹을 놈의 세상이라고 욕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갈수록 심해지는 그놈의 학력(學歷)주의 탓이다. 어떻게 된 셈인지 신문의 구인 광고(求人廣告) 라고 생겨 먹으면 우표 딱지 크기만 해도 대학교 졸업장 타령이요, 제법 손바닥만 해지기만 하면 이건 전 학년 성적 증명서까지 내놓으라는 식이다. 나야 쇠 깎는 기술 외에 이론적인 것까지 갖추지는 못했으니 어물어물 그런 풍조를 욕질이나 하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홀로 열심히 읽어 이론까지 정연히 갖춘 별무 학력(別無學歷)의 동료들에게 필시 치가 떨리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허두부터 학력 문제로 열 올리는 것은 단순히 나의 처우 때문만은 아니다. 실은 거기 기대서 앞으로 계속할 이 얘기의 제목을 변명하려는 것이 내 솔직한 의도다. 언젠가 나는 어떤 서점에 들렀다가 『그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으리』란 긴 제목의 소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지은이가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인가 보다 짐작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지은이의 고향은 엄연히 경북 어디여서 차표 한 장이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뒤에 나
는 또 『뒹구는 돌과 안 뒹구는 돌은 어디서 만나는가』라는 제목의 시집을 보았고, 다시 『무엇이 우리를 더럽고 아니꼽게 하는가』라는 제목의 수필집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대개는 제법 읽히는 것들이라는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글의 제목은 될 수 있는 대로 길고 알쏭달쏭한 것이 요새 유행하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막상 내 글에 제목을 붙여 보려니 그리 쉽지 않았다.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으로는 말을 매끄러우면서도 길게 푸는 방법이나 글을 짐짓 애매하게 만드는 재주를 익힐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먹물깨나 든 분들은 그 짐을 감안하여 ‘알 수 없는 일들’이라는 이 글의 제목이 멋대가리 없고 무식해 뵈더라도 참아 주시기바란다.
하지만 제목부터 고전하면서도 구태여 이 글을 쓰려는 데는 내게도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알 수 없는 일들’ 때문에 한 미결수가 되어 벌써 한 달째 철창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추행(醜行) 미수인가 뭔가 하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혐의로.
이 이야기는 앞뒤를 시시콜콜히 다 하자면 길지만, 편의상 내가 등산 장비를 구입한 때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 작년 이맘때 꿈꾸던 선반을 혼자 도맡게 되고 월급도 십만 원을 훨씬 웃돌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 여유로 가장 먼저 등산 장비를 사들였다. 열다섯의 나이로 중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뛰어나와 눈치와 구박 속에 주물 공장에서 잔뼈가 굵어 가는 동안 내가 제일 부러워했던 것들 중에 하나가 주말이면 등산복 차림으로 우리 공장 앞 시외버스 정류소에 줄지어 서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치 식량이라도 넉넉히 들어갈 것 같은 큼직한 배낭과 거기 얹힌 텐트 주머니, 원색 방수 천으로 지은 멋진 등산복과 여러 가지 배지며 마스코트가 달린 등산모, 알록달록한 각반과 에베레스트 산이라도 오를 수 있을 듯 요란스러운 등산화……. 그런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냥 황홀하였지만, 더욱 부럽던 것은 그렇게 주말의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그들의 여유였다. 근년까지도 일당 이삼천 원의 시다로 있던 나로서는 구태여 시골에서 남의 땅마지기나 붙여 어린 아우들을 기르는 부모를 핑계 삼지 않더라도,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온 날을 느긋이 즐길 처지가 못 되었다. 쥐꼬리만 한 일당이나마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불황(不況) 탓에 일감이 떨어져 못 받게 되는 날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고향에서 함께 나왔지만 나보다 일찍 자리 잡은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도 내게 무엇보다 먼저 등산 장비부터 구입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상철이 녀석은 애초부터 자동차를 따라다니더니 그 전해 방위 근무를 마치고부터는 도꼬다이〔特攻豚〕 택시를 몰게 됐고, 영남이 녀석은 중국집을 돌던 끝에 오래전부터 숙련된 이다바〔熟手〕로 주방에 들어앉아 나보다 사정이 좋았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 달에 한 번꼴은 등산복 차림으로 날 찾아와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함께 가자고 약을 올리거나, 아니면 돌아오는 길에 들러 잔업(殘業) 중인 사람을 끌어내 묻지도 않은 등산 얘기로 부아를 돋우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등산 포함 레저 열(熱) 일반에 대한 식자(識者)들의 의견을 주워 모아 녀석들의 허영과 낭비를 나무랐지만 부러운 것은 역시 부러웠다.
등산 장비는 막연히 생각했던 것처럼 비싼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달에 수당까지 합쳐도 십오만 원이 채 안 되는 내 월급으로 한꺼번에 사들이기에는 역시 무리여서 나는 몇 달에 걸친 구입 계획을 짜야 했다. 첫 달에는 배낭과 등산화, 다음 달에는 버너와 등산복, 그다음은 코펠과 모자, 또 그다음은 텐트와 무엇 ― 이런 식으로 사들이다 보니 이 봄이 되자 대략 장비 일습이 그것도 보기 흉하지 않은 것으로 갖추어졌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등산이었다. 나는 상철이, 영남이 녀석들과 죽이 맞아 여가만 나면 산을 기어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맛을 들이고 보니 등산이란 괜찮은 취미였다. 복작대는 찻간에서 옆사람 눈총을 맞아 가며 한 짐씩 해 지고 비지땀을 흘릴 배는 헛고생하는가도 싶었지만, 한번 산에만 오르면 거기에는 우리가 늘상 시달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다.
“일단 올라만 가 봐. 세상이 얼마나 좁고 인간들이 얼마나 작으며, 산다는 게 또한 얼마나 하찮은가를 가만히 있어도 알게 돼. 산은 말 없는 가르침이지.”
셋 중에서 비교적 책권이나 읽은 상철이 녀석이 언젠가 그렇게 떠벌렸을 때 나는,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런 걸 꼭 산꼭대기에 기어올라 가서 두 눈깔로 내려다봐야만 아냐?” 하고 면박을 주었지만 확실히 산이 주는 감동과 의미는 상상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또 산은 한 달 치 봉급을 몽땅 털어 산 셈이 된 등산 장비를 비싸다고 생각 들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한 정신적 보상도 해 주었다. 도시에서 출발할 때는 각각 다른 삶, 다른 지위, 다른 부(富)를 가지고 있었지만 비슷비슷한 차림으로 산속에서 만나면 모든 사람은 그대로 평등해졌다. 이를테면 그들과 비슷한 차림, 비슷한 장비로 산에 오른 우리 모습 어디서 실패의 예감이 강하게 풍기는 우리 삶의 흔적을 찾아낸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서 영세업체의 선반공이나 스페어 운전사나 변두리 중국집 요리사의 냄새를 맡아 낼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산만 내려가면 바로 쳐다보기도 힘들 높으신 양반이나 학식 많은 대학교 선생님들 또는 돈 많은 사장들일지도 모르는 이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농지거리까지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쏠쏠한 재미는 거기서 만나게 되는 여자들이었다. 거리에 있을 때에 우리 셋은 한결같이 쓸쓸한 청춘이었다. 우리가 가능성 있게 마음 둘 수 있는 여자랬자 기껏 가까운 봉제 공장의 여공들이나 기사 식당에서 심부름하는 계집 아이, 또는 옆 이발소의 면도사 아가씨 정도였고, 그나마도 쉽게 우리 손안에 들어오는 것은 돈 주고 사는 거리의 여자들뿐이었다. 하지만 산에서는 달랐다. 이미 말한 대로 산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여자들에게도 적용되어 고관의 딸이건 재벌의 딸이건 여대생이건 직장 여성이건 등산복 안에서는 구별이 안 됐고 또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언행에 약간의 조심만 하면 거기서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유쾌한 하루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다. 거기다가 더욱 좋은 것은 여자 쪽에서도 자기들끼리만 패를 지어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대개 그녀들은 복장만 구색을 갖춘 채, 그중의 한둘이 김밥이나 콜라 따위가 든 신주머니 같은 작은 배낭을 메고 있기 마련인데, 성격상의 특징은 까다롭게 굴지 않고 인심이 후하다는 것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산에 다녀 수양이 된 것인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남자에게 후하게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하려야 변변한 파트너 하나 구해 낼 재간이 없는 우리 들로서는 참으로 편리한 존재였다.
“여기까지 와서 김밥이나 콜라 마시는 게 무슨 재미요? 일루 와서 밥 짓는 거나 좀 거들어 주소. 요리 실습도 할 겸…….”
그런 팀을 만나면 말발 좋은 상철이 녀석이 그런 식으로 수작을 거는데 열에 여덟, 아홉은 응해 주었다. 그러면 그 나머지 오후는 그녀들과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은행원도 되고, 회사원도 되고, 팔자 좋은 대학생도 되어 필시 우리보다는 나은 계층에 속할 것임에 분명한 그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애써 고상한 말을 찾아내야 하는 번거로움과 점잖게 행동해야 하는 거북스러움은 있지만 우리가 산을 내려가면 이내 겪어야 할 고단하고 서글픈 삶을 생각하면 실로 산의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자칫 이 지루하게 될 이야기의 직접적인 발단은 바로 그와 같은 산행(山行) 중의 하나에서부터였다.
하기야 그날은 처음부터 좀 별난 데가 있었다. 마침 상철이 녀석은 사고를 쳐서 놀고 있었고, 영남이 녀석도 그 무렵은 중국집에서 나와 며칠 쉬던 때여서, 연휴인 나와 녀석들은 토요일 아침부터 이도시 부근의 꽤 이름난 산으로 향했던 것인데 사실 우리 셋이 하는 야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밖에는 모든 게 전과 다를 바 없어서 그때 우리는 이미 첫날 오전에 세 명의 아가씨들을 일행에 맞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눈에 뜨일 만큼 짙은 화장 외에는 대개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아가씨들이었다. 내 파트너로 지정된 아가씨도 턱없이 짙은 화장 외에는 이렇다 할 것 없는 수수한 얼굴에 알맞게 활달한 우리 또래의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처럼 이렇게 내 삶을 휘저어 놓을 줄이야.
처음 그녀들은 무언가 살피는 기색이더니 점심을 나누고 오래잖아 떠날 채비들을 했다. 그런 그녀들을 주저앉혀 우리들과 유쾌한 술자리를 벌이게 한 것은 순전히 상철이 녀석의 넉살 덕분이었다. 그러나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술자리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실직 중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했는가는 모르지만, 평소의 주량답지 않게 일찍이 돌아 버린 상철이 녀석이 느닷없이 우리들의 산통을 깨고 나선 것이었다. 아가씨들도 술은 제법 하는 편이어서 권커니 잣커니 준비해 간 네 홉들이 소주를 두 병쯤 비웠을 무렵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앞뒤 없이 소리쳤다. :
“씨팔. 야야 되잖은 거짓말 모두 때려치우고 우리 화통하게 놀자.”
그때까지 늘상 해 오던 대로 상철이가 대학생 역할을, 내가 유수한 기업의 엔지니어 역할을, 그리고 영남이가 공부에 취미가 없어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는 청년 실업가를 맡아 잘돼 가고 있었는데 상철이 녀석이 그렇게 나오니 영남이와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말려 볼 틈도 없이 녀석은 자기 정체를 스스로 밝혔다.
“나는 말이오, 도꼬다이(특공대) 택시 운전사요. 씨팔 대구 경주간은 사십 분이면 끝내 준다 이거요. 팡팡 날지.”
그러고는 그때껏 행여 불량하게 보일까 봐 긴소매로 감추고 있던 팔뚝의 ‘一心’ 이란 문신이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윗도리를 벗어젖혔다. 한데 이 무슨 조화 속인가. 당연히 말래고 나설 줄 알았던 영남이 녀석이 덩달아 일어서더니 밀가루 반쭉에서 우동 가락 뽑아내는 시늉을 하며 떠벌렸다.
“나는 중국집 이거요. 한 시간에 우동 곱빼기 백 그릇은 뺄 자신이 있소. 마침 수틀려서 있던 집을 나와 놀고 있는데 어디 아는 중국집 있거든 일자리 하나 구해 주쇼.”
그렇게 되구 보면 난들 별수 없었다.
“선반 알아요, 선반? 쇠 깎는 거……. 나는 그걸로 빌어먹는 사람이오. 집에서 기계 볼트나 너트 잃어버리거든 우리 공장으로 찾아오쇼. 크기만 알면 금세 깎아 드리지.”
한편으로는 우리 말을 농담으로 받아 주기를 기대하며 짐짓 과장스럽게 말했지만, 털어놓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후련했다.
“그쪽도 정직하게 자기소개 좀 해 보쇼. 혹시라도 우리 같은 것들과 걸맞지 않거든 그대로 일어나도 좋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철이 녀석이 여자들을 다그치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여자들이 새침해서 가 버릴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은근히 파트너를 마음에 들어 하던 나는 가능하면 시내로 돌아가서도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일순 여자들은 미묘한 눈짓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실망하거나 성난 기색은 없었다.
“사람 너무 급하게 몰아세우지 말아요. 내가 한꺼번에 소개할 테니.”
한참 후에 재미있다는 투의 얼굴로 일어나서 그렇게 말한 것은 뜻밖에도 내 파트너였다.
“저기 장(張) 양은 미용사, 커트 솜씨 한번 일품이죠. 머리 깎을 때 한번 부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옆 신(申) 양은 고려백화점 식품부에서 일해요. 나는…… 툭 까놓고 말하면 홀에 나갔는데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 놀구 있어요. 착실한 집 있으면 가정부로 몇 년 있다가 맘 잡고 시집이나 가려고 하는데, 좋은 집 알면 소개해 주세요.”
그러고는 무엇이 우스운지 친구들과 함께 깔깔 웃어 댔다. 나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적이 실망했다. 차라리 여공 쪽이 나을 것을, 하필이면 호스티스라니. 그러나 상철이 녀석은 그것 보라는 듯 신이 나서 떠들었다.
“짐작은 했지. 잘됐시다. 자, 그럼 피차에 별로 손해 볼 일도 없으니 지금부터 화끈하게 놀아 봅시다. 약하고 없는 사람끼리 하루쯤 서로 위로하며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요.”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여자들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흔연히 그런 녀석의 말에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 자리가 신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소주와 이상한 열에 들떠 그 긴 오후를 유행가 가락과 되다 만 디스코로 보냈다. 여자들도 질세라 노래를 뽑고 몸을 흔들었는데, 그녀들의 춤과 노래는 아무래도 우리보다 윗길이었던 성싶다.
그러다가 제법 해가 뉘엿해지자 그녀들 중 하나가 하산을 제의했고, 다른 하나가 동조하고 나섰다. 내 파트너는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눈치였는데 그때 다시 약간 술기운이 가신 듯한 상철이 녀석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구 이 무정한 아가씨들 좀 보소. 술만 퍼먹이고 그냥 갈 거요? 그러지 말고 속이나 좀 풉시다. 매운탕이나 얼큰하게 끓여 그쪽도 속 좀 풀고 가쇼.”
그래도 둘은 여전히 돌아갈 것을 고집했지만 유독 내 파트너만 미진한 표정이었다. 그걸 놓칠 상철이 녀석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동안 녀석의 온갖 넉살이 다 동원된 후 한구석으로 몰려가 무언가를 속살거리던 그녀들은 못 이긴 체 주저앉았다. 주로 내 파트너의 주장을 따른 것 같았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찌갯감을 씻으면서 그녀들이 주고받던 말이다. 마늘과 풋고추를 전해주려고 개울가로 가던 나는 별로 탐탁하지 않은 듯한 둘의 무슨 항의 같은 말에 내 파트너가 달래듯 이렇게 대답하는 말을 들었다.
“안 되면 특식 한번 맛보는 거야, 특식.”
그때 나는 별 의심 없이 그 특식(特食)이란 말을 매운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지금에 와서 보니 딴 뜻이 있지 않았는가 싶다.
그럭저럭 매운탕이 끓고, 거기다 낮에 남은 찬밥 한술씩 말아서 걸신들린 것처럼 퍼먹은 우리들이 다시 남은 소주를 까려고 할 때는 제법 골짜기가 으스름해져 있었다. 야영할 생각이 아니라면 마땅히 산을 내려가야 할 때였다.
“이젠 정말 내려가겠어요.”
우리가 새로 술판을 벌이는 것을 아무래도 탐탁하지 않은 눈길로 보고 있던 장 양이 다시 일어나며 나머지 둘을 재촉했다. 그때는 그 둘도 예외 없이 몸을 일으켰다. 짙은 화장이며 야한 복장과 스스로 한 자기소개는 물론 우리와 함께 흐드러지게 놀며 오후를 보낸 그녀들이고 보면 약간은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무언가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기분이면서도 영남이와 나는 막연히 상철이 녀석의 얼굴만 살폈다. 그러자 녀석의 눈길이 문득 음흉해지더니 우리에게 찡긋 알 수 없는 눈짓을 하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
갑자기 험악해진 얼굴로 그녀들을 가로막고 선 상철이의 손에는 어느새 깨진 소주병이 쥐어져 있었다. 목소리까지도 전에 없는 포악스러운 것이었다.
“이것들 보자 보자 하니까 싸가지가 너무 없어. 지금 와서 내빼겠다는 건 무슨 수작이야? 썅 갈보 같은 년들이…… 누굴 놀리려구 들어? 끽소리 말고 앉아 있어. 괜히 반반한 쌍판에 기스 가기 전에.”
일순 장 양과 신 양의 얼굴에 가벼운 원망의 기색이 떠돌며 내 파트너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둘 다 별로 겁먹은 눈치는 아니었다. 산전수전을 겪어도 여러 번 겪은 여자들임에 틀림없었다. 겁을 안 먹기는 내 파트너 쪽도 마찬가지였다. 진작부터 엉치께에 두 손을 걸치고 상철이 녀석이 하는 양을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쏘아붙였다. 상철이 못지않은 돌변이었다.
“개새끼, 그 입 한번 드럽네. 그래 이 새꺄, 우리가 가겠다는데 네가 뭐야? 불알 차고 나서 여자 다루는 법 그따위로밖에 못 배웠어? 내친김에 밤까지 함께 왕창 놀아 주려고 했더니 원 밸이 꼴려 못 보겠네.”
그 서슬에 영남과 나는 물론 상철이 녀석도 잠시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막돼 먹은 골목에서 창녀들과 시비를 해 본 적도 있지만 우리가 그처럼 호된 꼴을 당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쭈 어쭈 이, 이게…….”
당하고 보니 화난다는 식으로 목청은 높았지만 상철이 녀석은 드러나게 더듬거리고 있었다.
“야, 이 새꺄, 똑바루 해. 한 코 생각 있으면 일이 되도록 꾸미란 말이야. 여왕처럼 떠받들어도 줄까 말까 한데 어디서 신라적 수작하고 있어?”
그런데 어이없는 일은 그런 그녀의 호통에 신 양과 장 양이 킥킥거리는 것이었다. 크게 겁먹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왠지 이거 잘못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철이 녀석은 역시 우리들의 리더였다. 그대로 나가다간 다 된 밥에 재 뿌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녀석은 다시 능글맞은 웃음과 넉살로 되돌아갔다.
“어이쿠 여왕님 잘못 봤습니다. 앞으로는 정성껏 모시겠으니 오늘 밤은 저희들과 함께 보내 주십시오…….”
언뜻 들으면 꾸며 낸 얘기 같지만 그게 바로 해결의 실마리였다. 그 뒤로도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어쨌든 그날 밤 그녀들은 우리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판초 우의 두 장으로 급히 만든 텐트까지 도합 세 개의 텐트에 낮에 정한 파트너끼리 들어가 잤는데 ― 그 밤의 나머지 상세한 얘기는 생략하겠다. 그런 얘기는 한 때 모든 사람들에게 몹시 흥미로운 것이었으나 이제는 너무 흔해 빠져서 모두들 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욕을 얻어먹을 우려도 있으므로. 하지만 꼭 한 가지는 밝혀 둬야겠다. 그것은 그 밤 그녀들이 우리에게 봉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녀들에게 봉사한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들은 능숙하고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 정말로 알 수 없는 일들은 우리가 그 산행(山行)에서 돌아온 뒤부터 시작된다. 한 밤을 그렇게 엉겨 보낸 그녀들과 우리는 이튿날 오전에 무슨 다정한 연인들처럼 헤어졌다. 주소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적고, 다시 만날 장소까지 굳게 약속한 후 이별의 키스를 갖춘 그런 헤어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것은 그녀들을 보낸 직후에 우리 셋이 취한 행동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기 텐트 속에 들어가 잠에 곯아떨어졌는데 ― 다시 일어나 보니 벌써 해가 서편에 뉘엿거리고 있었다. 그걸로 보아 아직 하루가 절반 이상 남았는데도 우리가 그녀들을 잡지 않고 보낸 것은 질렸다기보다는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젊고 건강한 우리 셋, 그러나 충분한 시간도 돈도 없어 언제나 여자에게 굶주려 있다고 할 수도 있는 우리 셋을 그 지경으로 만든 그녀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여자들이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한동안 무슨 사나운 꿈처럼 연상되기도 했다. 이상하게 자극적인 몸부림과 흐느낌과 낄낄거림, 쌍스러운 욕설과 노골적인 요구에 쫓기며 나는 그 밤을 거의 뜬눈으로 그녀의 몸 위에서 헐떡여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 나이 스물셋이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고 또 나름대로는 여자를 안다고 생각해 온 나에게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털어놓은 것이지만, 그런 사정은 상철이나 영남이 녀석도 비슷했다. 그리하여 다시 만나자는 그녀들과의 약속은 한동안 우리 셋 모두에게 별로 탐탁잖은 짐이 되고 나가지 말자는 합의에까지 도달하였다. 상철이는 그녀들이 동침 중에 상대편 남자의 혀나 성기를 물어뜯어 버린다는 변태(變態) 들일 거라고 했고, 영남이 녀석은 남자를 산 채로 말려 죽인다는 옛 얘기 속의 색광(色狂)일지도 모른다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추리까지 했다.
그러나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변덕일까. 열흘 후로 잡힌 약속 날짜가 가까워지자 우리는 한결같이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약속 날짜가 되어서는 무엇에 끌린 듯 함께 약속 장소인 시내의 어떤 다방으로 몰려가고 말았다. 그녀들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이상한 열에 들떠 아무런 뜻도 없는 얘기를 큰 소리로 떠들어 가며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끝내 소용이 없었다. 그녀들이 적어 준 전화번호도 한결같이 엉터리였다. 몇 번이나 번갈아 다이얼을 돌려 보아도 역 안내실이나 호텔의 프런트, 한전(韓電), 전화 고장 센터 따위만 나올 뿐이었다.
전화 확인이 있고서야 우리들은 비로소 속은 것을 알았고, 그러자 지난 열흘간의 구구한 억측과 의구(疑懼)들, 갖가지 정신적인 혼란이 어처구니없는 자기 도취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모두 한마디씩 쌍욕을 내뱉고 있었지만, 다방을 나서는 우리들의 기분은 분하기보다는 씁쓸했다. 특히 나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내 파트너의 전화번호가 시내에서 가장 큰 호텔의 프런트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이상하게도 참담한 실연을 당한 기분이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어지간히 질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녀에게는 한마디로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왠지 나는 그 밤 처음으로 그녀에게 정신적인 동정(童貞)을 바친 기분이 들었고, 한없이 분방했던 그녀의 몸짓도 어딘가 내가 몇 푼의 돈으로 안아 보았던 거리의 여자들과는 달랐다. 이를테면 짙은 화장 같은 것도 그 냄새는 창녀(女昌女)들의 공통된 싸구려 지분 냄새가 아니라 어딘가 고급하고 그윽한 것으로 기억됐다.
그런 내 느낌은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에게도 비슷했다. 그날 바람맞은 기분 풀이를 위해 마주 앉게 된 술자리에서 내가 그 얘기를 하자, 상철이 녀석 역시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나도 생각나는데…… 확실히 년은 미용사 따위가 아니었어. 밑에서 설치는 것은 똥치 이상이었지만 가끔씩 특툭 튀어나오는 말이 이상했어. 소위 지식층의 말버릇이지. 나는 그들의 말투를 주의하여 연구한 적이 있거든……. 예를 들면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라든가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따위가 그것인데, 알고 보니 그게 영어 번역 문체라더군. 그런데 년이 일부러 쌍스럽게 말하는 중에도 가끔씩 그런 구절이 툭툭 튀어나오는 걸 들었어. 내가 잘못 들었을까?”
우리 셋 중 가장 유식한 상철이가 그렇게 말하자 좀 우둔한 영남이 녀석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파트너에 대한 의심을 말했다.
“나도 년이 백화점 점원 따위는 아닌 것 같아. 적어도 가난뱅이는 아니란 말야. 년은 내게 몇 가지 중국 요리 얘기를 했는데 그건 시내 웬만한 중국집에서는 만들지도 않는 최고급이었어. 예를 들면 제비집이라든가 곰 발바닥, 상어 지느러미 따위였는데 변두리 중국집만 돈 나도 먹어 본 적이 없는 것들이야. 그런데 년은 맛까지 알고 있는 눈치였어. 돈 많은 유부남 홀려 바가지 씌웠다면 몰라도 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얘기야…….”
그러자 그녀들은 우리들의 상상력 속에서 서서히 격상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스스로의 격상도 되었다. 도시의 논다는 계집들에게 차인 건달이 되기보다는 선녀(仙女)를 놓친 나무꾼 쪽이 훨씬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었다. 비록 하룻밤 걔 같은 섹스의 선녀들이긴 하지만.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지난달 초순, 그러니까
그 산행(山行)으로부터 꼭 두 달이 된 어느 날이었다. 비가 심하게 쏟아졌는데 그날 오후 늦게 나는 뜻밖에도 이미 단념하고 있던 내 선녀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공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깨끗한 여관에서 낸 전화로, 앞도 뒤도 없이 빨리 나오라는 재촉이었다. 오전에 대단찮은 일로 조립부(組立部) 김 씨와 한바탕 싸움을 하고 점심때 한잔 걸친 화해술 탓인지 오후에 손가락 하나를 크게 다친 나는 그러잖아도 일찍 퇴근할까 하던 참이어서 한달음에 그녀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늦으면 이제는 영영 놓쳐 버릴 것 같은 느낌에 기름때에 전 작업복을 그대로 걸친 채였다.
그녀는 이미 구석진 방에서 속옷 차림으로 이불에 기대 있었다. 나는 그동안의 경위와 그녀의 정체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그녀는 도무지 얘기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말은 당장에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금지당하고, 나는 굴욕적일 만큼 충실하게 그녀의 욕망에 따랐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가 더욱 치열해졌다는 것과 기름때 묻은 힘찬 근육과 잘려진 손가락에 성의 없이 감긴 때묻은 붕대 따위에 기이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는 것 정도였다.
“아무 말 마. 나를 다시 만나고 싶거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
몇 번인가 폭풍이 가라앉은 틈을 타서 나는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정말로 내가 거역할 수 없는 무슨 여왕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밤 열한 시쯤 되어 기진해 있는 나만 남겨 두고 빗속의 도회로 사라져 버렸다. 아침에 보니 모든 계산은 깨끗이 치러져 있었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가지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만 놀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기회를 노려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홈쳐보는 데 성공했으며, 주소를 거의 완벽하게 외워 두었다. 다시는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내 결의의 공들인 결과였다.
다음은 바로 그 재앙과도 같은 끔찍한 날이었다. 비록 주소를 알고는 있었지만, 여관방을 나서면서 그녀가 다시 나를 찾기로 한 날이 기다림 속에 속절없이 지나가 버리고서야 나는 그녀를 찾아 나섰다.
한나절을 완전히 찾아 헤맨 끝에 나는 도심의 고급 주택가에서 그녀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주소를 알아냈다. 언뜻 보기에도 백 평이 넘는 정원과 흰 철 대문을 가진 멋부려 지은 3층 건물이었다. 문패의 성이 그녀의 성과 같은 것이 언뜻 눈에 들어왔지만, 아무래도 그녀가 그 호화스러운 저택의 일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나는 우선 손쉬운 대로 그녀를 그 집의 가정부쯤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동회와 복덕방에서 알아낸 결과로는 그녀가 그 집의 둘째 딸, 그것도 시내의 괜찮은 대학 졸업반인 재원(才媛)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다시 내가 만난 그녀가 주운 주민등록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다닌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것도 아니었다. 몇 시간이나 그 집 주위를 배회한 끝에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그녀가 흰 철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화장기라고는 없는 맑은 얼굴과 점잖고 수수한 옷차림이며 손에 든 몇 권의 대학 교재 때문에 자칫 못 알아볼 뻔하였지만 분명 그녀였다. 나는 야릇한 전율과 그녀를 감싸고 있는 건드릴 수 없는 위엄 때문에 숨어 있는 골목에서 그녀 앞에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그녀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친 걸 다행으로 여기며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그다음 일주일은 그때껏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 큰 혼란의 도가니였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이 그녀와의 밤들을 무슨 끔찍한 죄악처럼 느껴지게 하다가도, 다시금 그녀가 누리는 여러 가지 삶의 혜택이 나를 어두운 삶의 밑바닥에서 혜택받은 계층으로 끌어올려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나는 그 일로 여러 사람과 의논을 했다. 공장장 박 씨, 주물부(鑄物部) 최 씨, 단골 밥집의 아주머니, 내 자취방 주인 아저씨 등,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을 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었다. 내가 녀석들을 굳이 뺀 것은 녀석들까지 끼어들어 법석을 떨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와의 관계를 입맞춤 정도로밖에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믿으려 들지 않았지만, 만약에 사실이 그러하다면 나는 행운의 끄나풀을 잠은 것임에 틀림없다고 또한 한결같이 단언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단언 속에 차츰 내 혼란은 진정되어 갔다. 그녀를 원하는 것은 죄악도 불가능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녀와의 예사 아닌 인연이야말로 남자의 일생에 세 번은 오게 마련이라는 그 ‘때’ 중의 하나라고 믿게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그 근거 없는 믿음 속에 나는 그 ‘때’를 온전히 내 것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결국은 이렇게 끝장나고 말았지만, 그 무렵을 앞뒤해서 내게 온갖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이웃집 양 형에게는 아직도 감사하고 싶은 기분이다. 나보다 한 살 위인 그는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었는데, 나의 처지에 처음부터 깊은 흥미와 동정을 보여 주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 그녀 사이의 커다란 간격을 메우는 데 할 수 있는 도움을 베풀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그 역시도 나의 무력함과 다름없다 보니, 자연 도움의 내용은 지식이나 교양 같은 쪽이 되었다. 가령 교양에서 음악 같으면 그는 내게 이렇게 충고했다.
“시끄럽고, 빠르고, 요란스러운 음악이 나오거든 점잖게 이맛살을 찌푸리시오. 부드럽고 지루한 음악이 나오거든 솔직하게 하품을 하시오. 앞에 것은 대개 ‘팝뮤직’이라고 하는데 지나치게 빠져들면 경박하게 보이고, 뒤에 것은 대개 클래식이라고 하는데 너무 감탄하면 오히려 천박하게 여겨지오.”
뜻이 제대로 와 닿지 않아 결국은 외우다시피 했지만 문학에 대한 조언은 훨씬 길고 세밀했다.
“흥미는 있지만 다른 일에 바빠서 많이 읽지는 못했다고 말하시오. 어떤 부류의 인간들에겐 문학에 대해 무식하거나 무관심한 것 자체가 고급한 교양으로 여겨지는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기여이 얘기를 꺼내거든 외국 문학에 대해서는 대개 음악과 같이 하시오. 즉, 아주 현대의 것은 ‘팝뮤직’ 대하듯, 그 밖의 것은 클래식 대하듯 하면 되오. 한국문학의 경우에는…… 무조건 나무라는 쪽이 실속 있고 힘도 덜 들 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규정짓고 단언하고 획일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것도 부정적으로……. 예를 들어, 일제시대의 작가는 무조건 친일파라고 몰아세우시오. 엄격히 말한다면 그 시대에 살았다는 것 자체가 친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비난을 완전히 면할 사람은 극히 드물 거요. 해방부터 6·25 전후까지는 정상(政商) 문학이라고 나무라고 그다음 1960년대 전후는 실속 없는 강개(慷慨) 문학이라고 비웃으시오. 만약 알지 못하는 책 제목을 들고 나오면 무조건 그건 문학도 아니라고 우기면 되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70년대 문학이 나오면 그건 시장(市場) 문학이라고 잘라 말하시오. 물론 상업주의 문학이란 조어(造語)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 말 자체가 상업적으로 쓰인 데다 또 너무 남발되어서 통속해졌소…….”
대개 그런 식이었는데, 그는 뜻밖에도 미술, 스포츠, 연극, 영화는 물론 시사(時事)까지도 적절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신문은 문화면만 보고 TV는 ‘명화극장’만 본다고 하시오. 신문문화면도 그렇고, TV ‘명화극장’이라는 것도 한물간 오락물 재탕에 지나지 않지만 요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정치사화문제에 있어서는 약간 비장기 어린 침묵이 제격인데, 더욱 효과를 곁들이려면 가끔씩 나지막한 목소리로 ‘개새끼들…….’, ‘죽일 놈들…….’ 하고 맞장구나 쳐주면 되오. 경제 문제? 그건 달걀이라고 말하시오. 노른자는 언젠가 병아리가 되겠지만 그걸 위해서는 많은 흰자위가 소모될 것이라고. 그리고 설령 우리가 흰자위에 속하는 처지일지라도 너무 성내지 말자고, 어쨌든 그 병아리가 우리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빈정거리면 되오.”
물론 이 많은 어렵고 벅찬 애기들을 한자리에 앉아서 들었다면 나는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 형은 세심하게도 그것들을 일정 분량으로 나누어 주석까지 달아 가며 들려주었으며, 어떤 부분은 반복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여섯 권의 책을 지정해 준 후 자신 있게 덧붙였다.
“제대로만 기억 하신다면 얼치기 여대생 하나쯤 충분히 감탄시킬 수 있을 거요.”
나는 양 형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따랐다. 그리하여 대략 보름이 지났을 때 나는 그녀를 찾을 최소한의 준비를 갖추었다. 지금까지 쑥스러워 숨겨 왔지만 나는 철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야간대학생으로 가장할 작정이었다. 경제적인 것은 당장에 어찔 수 없다 하더라도 신분만은 일단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그녀의 집 앞을 배회한 지 이틀 만이었다. 얌전하게 눈을 내리깔고 단정 한 걸음걸이로 외출에서 돌아오던 그녀는 처음 한동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그동안의 저축을 몽땅 털어 마련한 새 양복과 넥타이 탓으로 여기며 지나치려는 그녀를 가로막았다.
“누구세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차분하고 밝은 목소리는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순진하게 놀라는 폼도 지난날의 그녀와는 너무도 달랐다.
“나야, 모르겠어?”
전에 하던 대로 그렇게 대답했던 나는 이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면서 더듬거렸다.
“저, 저…… 미스터 황입 니다……. 저 비취산과 동산여관…….”
그녀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당황한 가운데도 그녀의 눈길을, 언뜻 스쳐 가는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애써 침착을 가장하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분명 무언가를 결심한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살피며 물었다.
“뵌 것도 같고…….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사과도 하고……. 찾으려고 무척 애썼습니다.”
나는 여전히 까닭 모르게 허둥대면서도 그녀가 틀림없다는 확신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말을 듣는 그녀의 얼굴에 짧은 순간 곤혹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를 체념 한 표정이 되며 나직이 말했다.
“따라와. 여기선 곤란해.”
그렇게 말한 그녀가 멀찌감치 앞장서서 나를 인도해 간 곳은 가까운 다방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웬일이야?”
“저는 당신과 진정으로 사귀기를 원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노력하여 그 부족함을 메우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돌변에 당황하면서도 준비해 간 대사는 잊지 않았다.
“산에서는 사실 거짓말이었습니다. 저는 분명 철물 공장에서 선반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르바이트죠. 그걸로 벌어 야간대학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뮐 공부하는데?”
그런데 아마도 큰 실수는 그때 있었던 것 같다. 어리석게도 나는 양 형에게서 들은 것을 잊지 않고 전하는 데에 급급해서 단 십 분 동안에 보름이나 익힌 것을 죄다 쏟아 놓았다. 그 바람에 군데군데 빠지고 순서도 뒤죽박죽이 되어 결국 감탄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게 되어 버렸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밑천이 거덜나 멋쩍게 앉아 있는 내게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것 뿐이야?”
“원, 이 정도로는 친구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학원에 나가는 이웃집 양 형 말로는 요즘 대학생들도 대강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나는 그녀의 뜻 모를 미소가 야릇하게 맘에 걸려 양 형을 끌어들였던 것인데, 그것도 아마 잘못된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지식의 원천이 어디라는 걸 알았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거렸다. 그게 내 혼란을 가중시켰다. 나는 허둥대며 이번에는 각본에도 없는 수작을 앞뒤 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며 찬바람이 일었다. 그러다가 매서운 눈초리로 내 얘기를 중단시키고는 낮으면서도 매몰찬 목소리로 내뱉았다.
“이봐, 이봐, 꿈 깨. 깨란 말이야, 이 병신아. 그리고 내 충고하는데 다시는 내 곁에 얼씬도 마. 아니면 크게 다쳐. 같잖은 게 꿈은 커가지고…….”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미…… 이미 두 번이나…….”
나는 당황하다 못해 애원조가 되어 더욱 앞뒤 없이 떠들었다. 결혼해 주십시오,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것도 같고 아니면 죽여 버리겠다는 엉뚱한 위협도 해 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몇 마디 더 계속하기도 전에 발딱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글쎄요, 전 아무래도 댁 같은 사람은 기억에 없는데요. 이만 실례하겠어요.”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다 들릴 만큼 높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 바람에 다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아랑곳 않고 똑바로 카운터 쪽으로 가더니 셈을 치르면서 역시 다방 안에 다 들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찻값은 저 사람에게 받으세요. 재수가 없으려니 웬 생판 낯선 사람이…….”
그러고는 정말로 희롱이라도 당한 여대생처럼 분한 눈길로 나를 쏘아본 후 입구 쪽으로 나가 버렸다. 그녀의 그림자가 완전히 다방에서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내게도 어렴풋하게나마 사태가 짚혀왔다. 그러나 허겁지겁 내 찻값을 치르고 간신히 그녀를 따라잡은 나는 비굴하게도 다시 한 번 애원과 사정을 했다.
“제발 저를 버리지 마십 시오. 전처럼이라도 지내 주십시오.”
그녀는 대답 대신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슈퍼마켓이 하나 있고 그 앞에 몇 사람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그것들을 경계하듯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이봐, 빨리 꺼져. 소리쳐 사람을 부르기 전에.”
“사람을 부르면 지난 일들 모두 떠들어 버리겠소.”
“소용없어. 네놈만 상해. 조용히 꺼지는 게 더 나아.”
“뭐라고?”
드디어 내게도 사태의 결말이 뚜렷해졌다. 그러나 이 알 수 없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아니라, 모든 게 글러 버렸다는 절망과 분노로서였다.
“야, 이 쌍년아. 개같이 붙어 헐떡일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시치미를 떼는 거야? 정말 끝까지 이렇게 나올 거야?”
나는 무의식 중에 상철이의 흉내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슈퍼마켓의 늙수그레한 주인과 젊은 손님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돌아보았다. 그녀도 그걸 보았는지 짐짓 겁나면서도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앙칼지게 나왔다.
“이 양반이 정말 미쳤나? 나는 댁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개 같은 수작 말고 따라와. 이불 속에서도 그따위로 시치미를 떼는가 보자.”
나는 거의 절망적으로 외치며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어떻게든 그녀를 끌고 가 벌거벗고 헐떡이는 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 살려요!”
그녀가 찢어지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내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슈퍼마켓 쪽을 향해 구원을 청하기를 잊지 않았다.
“아저씨, 아저씨, 저 알죠? 윗길 흰 철문집 둘째 딸이에요. 빨리 경찰을 불러 주세요. 이 사람이 나를 끌:고 가 욕보이려고 해요.”
그녀는 내 주먹에 입가를 맞아 피를 흘릴 때까지 계속했다. 그러자 젊은 녀석이 달려 나와 내 앞길을 막고 주인 영감은 전화통으로 달려갔다. 그다음은 엉망이었다. 젊은 녀석이 지가 무슨 태권도 사범이라고 이단 앞차기로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지나가던 몇몇 친구가 합세하고, 다시 경찰이 달려오고 ―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넙치가 되도록 맞은 후에 부근 파출소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일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걸 알아차리고 열심히 변명해 보았지만 이미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목격자들은 모두가 그녀 편이었고, 처음에는 약간의 의심을 가졌던 경찰도 그녀와 내 신분이 밝혀지자 그녀 편으로 돌아섰다. 그러다가 급히 연락을 받은 그녀의 아버지가 번쩍거리는 승용차를 타고 다녀간 후부터는 나를 어김없는 파렴치한으로 취급했다.
“너 상습이지? 하지만 안됐다.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어. 너 저 아가씨가 누군지 알기나 해? 유명한 성창기업 둘째 따님이야. 이번 여름에는 해외 연수도 다녀왔고, 다음 달에는 약혼자가 기다리는 미국으로 유학 가게 돼 있어. 그래도 너 같은 새끼와 동침한 적이 있다고 우길 거야?”
조서를 받은 경찰은 노골적으로 이죽거리다가도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 혹시 돈 놈 아니야? 벌건 대낮에 그게 무슨 짓이야? 아니면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보았거나…….”
그리고 ㅡ 그 뒤부터는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그녀는 피해자였고 나는 가해자였다. 그녀는 경찰서에서 한 시간도 안 돼 아버지의 승용차에 실려 돌아갔고 나는 사흘 만에 추행 미수인가 뭔가 하는 혐의로 구치소에 넘겨졌다. 내게는 모든 게 혼란투성이인 그 일련의 사건이 경찰에게는 왜 그리 명백한지 알 길이 없다.
나는 또 그녀와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을 증인으로 내세웠는데 그 결과도 너무나 이상했다. 만약에 사실과 다를 경우 위증이나 명 예 훼손죄를 뒤집어쓸 염려가 있다손 치더라도 녀석들이 어떻게 그녀를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화장과 옷차림이 달라지고, 어마어마한 집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도 하룻밤 하루 낮을 함께 보낸 여자를 그렇게도 까마득히 몰라본단 말인가? 더구나 나를 면회 와서는 얼굴조차 제대로 못 들고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그녀들 쪽을 대신하여 검찰 서기가 내게 한 제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지저분한 관계만 주장하지 않는다면 단순 폭행으로 처리해 가벼운 벌금으로 끝내 보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어떻게 그녀와 보낸 밤들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면회 온 양 형은 뒤늦게야 내가 숨겼던 칙칙한 부분까지 다 듣고 난 후에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양과 세련된 향락에 식상(食傷)한 지성이 야만의 쾌락을 구한 것일까?”
그러나 내게는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지금은 오히려 나 자신조차도 그녀가 과연 나와 그럴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가. 조사관이 이죽거리던 것처럼 정말로 내가 돌았거나 헛것을 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느덧 알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 차 버린 것일까.
(1981 년)
2016년 11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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