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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내도리와 금강벼룻길
무주 내도리는 금강이 휘어 흐르며 육지 속의 섬을 형성한 곳이다. 물돌이 지형의 앞섬마을(가운데)와 뒷섬마을(오른쪽 위)로 구분된다.
“2주 후면 딱 좋은데….” 지난달 30일 봄꽃 개화 상황을 묻는 질문에 무주군청 공무원은 좀 나중에 오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다. 그때면 전국이 찬란한 봄날일 텐데,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무주의 봄날은 특별하다’고 자랑한다. 산이 높은 무주의 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더디다. 전국의 벚꽃 명소에 꽃비가 내릴 때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해 대전에 이르기까지 북으로 흐르는 금강을 따라 북상한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꽃길, 꽃밭이 아니라 구불구불 휘어진 물길에서 산자락으로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깊은 산중에 물돌이 마을, 앞섬과 뒷섬
무주 읍내에서 북쪽 산모퉁이를 돌면 내도리(內島里)가 있다. 육지 속 섬이라는 의미다. 다리 건너 물길이 크게 휘돌아 감싼 곳은 앞섬마을(전도)이고, 앞섬을 통과해 다시 다리를 건너면 뒷섬마을(후도)이다. 마을로 통하는 교량의 공식 명칭은 ‘내도교’지만, 주민들에게는 앞섬교가 익숙하다. 뒷섬마을로 연결되는 다리는 후도교다. 매운탕과 어죽을 파는 내도교 앞 식당 이름은 ‘섬마을’이다. 지명만 보면 영락없이 바닷가다.
무주 내도리 앞섬다리와 뒷섬마을. 마을 들판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많다.
내도리 앞섬마을과 뒷섬마을을 연결하는 후도교. 읍내가 지척이지만 배를 타거나 고개를 넘어 다녀야 했다.
무주 앞섬다리 앞 어죽을 주로 파는 '섬마을' 식당. 이름은 바닷가에 있어야 할 식당 같다.
통통한 조롱박 모양의 앞섬마을은 전형적인 물돌이 지형이다. 엄밀히 말해 북쪽은 육지와 연결돼 있지만 사실상 섬이었다. 앞섬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읍내로 나갈 수 있었다. 1976년 6월 8일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학생들이 탄 나룻배가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뒤집혔고,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참사를 겪은 후에야 선착장 부근에 다리가 건설돼 차량으로 통학이 가능해졌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 회룡포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경관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마을은 평탄한데, 강 건너 산세는 가파르고 험하다. 부드러운 강물과 기암절벽이 대조를 이루면서도 조화롭다.
약 200명이 살고 있는 앞섬마을의 농지는 대개 복숭아밭이고 일부는 사과밭이다. 4월 말이면 일대가 짙은 분홍빛으로 물든다. 과수원 바닥은 노란 민들레로 뒤덮인다. 강변 산자락을 따라 철쭉과 산벚꽃까지 피어나면 마을은 말 그대로 꽃 대궐로 변신한다. 이제 막 망울이 부풀어 오르고, 바닥에 옅은 초록이 깔리는 수준이니 아직은 그 황홀함을 상상만 할 뿐이다.
뒷섬마을에서 강변 절벽 아래로 연결된 '소풍가는길'.
무주 내도리 뒷섬마을에서 연결되는 '소풍가는길'. 강변을 걷고 고개를 넘어 무주읍내로 가는 옛길이었다.
'소풍가는길' 일부 구간에는 바위절벽을 쪼개 길을 냈다. 그 모양을 따서 '질마바위'라 부른다.
앞섬마을에는 강변 제방을 따라 농로 겸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강과 들판을 끼고 봄날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강 건너 산자락으로는 걷기 전용 ‘맘새김길’이 조성돼 있다. 후도교 건너 뒷섬마을 어귀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무주로 이어지는 길에는 ‘소풍가는길’과 ‘학교가는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 자락으로 이어지는 길과 등산이나 다름없는 산길로 구분된다. 앞섬마을 주민들이 읍내에 나가기 위해 나룻배를 이용했다면, 뒷섬마을 주민들은 이 길을 통해 고갯마루를 넘었다.
강변 길도 마냥 순한 건 아니었다. 일부 가파른 절벽에는 한 발짝 내디딜 여유도 없어 주민들이 바위를 쪼개 길을 낸 흔적이 있다. 그 모양이 짐을 싣기 위해 소 등에 얹는 길마를 닮아 지역 사투리로 ‘질마바위’라 부른다. 이제 용도를 다한 길은 이따금씩 찾아오는 여행객이 잔잔한 강물에 마음을 풀어 놓는 쉼터로 이용된다. 앞섬마을에서 강 상류로 연결된 길을 따라가면 방우리마을이다. 행정구역상 충남 금산이지만 길은 무주로만 나 있는 독특한 마을이다. 좁은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금강 끝 마을의 아득한 정취를 즐길 수 있다.
무주 향로산자연휴양림 전망대에 오르면 육지 속 섬, 내도리 풍광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진달래가 곱게 핀 향로산전망대에서 뒷섬마을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앞섬마을과 뒷섬마을 전경은 무주 읍내 뒷산인 향로산 전망대(420m)에서 가장 잘 보인다. 읍내에서 사찰(북고사)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고, 뒤편 향로산자연휴양림에서 올라도 된다.
바위 절벽과 강물 사이, 금강벼룻길
진안 용담댐에 갇혔던 금강 물길은 무주 땅으로 접어들며 깊은 산골짜기로 굽이굽이 휘어진다. 강을 따라 부남면 감동마을에서부터 무주읍까지 ‘예향천리 금강변마실길’이 이어진다. 도소마을부터 율소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5㎞ ‘금강벼룻길’은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힌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지름길이자 학생들의 등굣길이었다. 면소재지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주민들의 왁자지껄한 나들이 길이었다.
무주 부남면 도소마을에서 면소재지로 가는 길의 세월교. 얕은 강물에 햇살이 부서진다.
부남면 소재지의 만석당.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 전승 시설이다.
도소마을의 다른 이름은 ‘섬곳’이다. 상류의 거센 물살에 섬처럼 고립된 마을이라 붙은 지명이다. 제법 넓은 습지가 형성된 한적한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첫 물굽이를 건너는 세월교가 나타난다. 폭은 경운기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고, 강물이 불어나면 그대로 잠기는 농로다. 다리를 지날 때면 양쪽으로 들리는 물소리가 청량하고, 투명한 수면에 반사되는 햇살이 눈부시다. 조금 더 걸어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리 어귀에 다다르면 도로 가에 ‘대문바위’가 보인다. 소나무 몇 그루가 용마루처럼 얹혀진 바위로 마을의 관문이자, 액막이 상징이다.
근처 소공원에 ‘만석당’이라는 초가가 세워져 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무주 부남 디딜방아액막이놀이’를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시설이다. 1750년 무렵 마을에 전염병이 돌자 이웃 마을의 방아를 몰래 가져와 자기 마을 방앗간 입구에 거꾸로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 민속놀이다. 이 방아에 여성의 속곳을 씌워 놓으면 재앙이나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더해졌다. 절박함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미신을 놀이로 승화했다.
부남면사무소 옆에는 키 작은 천문대가 서 있다. 겨우 3층이 될까 말까 한 높이에 뚱뚱한 굴뚝 모양이어서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은하수를 관측할 수 있는 여름철에는 가족단위 예약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내부 시설이 낡고 천체 전문가를 구하지 못해 지금은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부남면사무소의 부남천문대. 고 정기용 건축가의 작품이다.
부남면소재지 부근 금강벼룻길. 받두렁과 강물 사이로 걷는다.
이 천문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와 전국 6곳의 ‘기적의도서관’을 설계한 정기용(1945~2011) 건축가의 작품이다. 부남면을 방문한 날 그는 "하늘에서 그렇게 많은 별이 쏟아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감탄했다. 강변에는 또 반딧불이가 신비스러운 빛을 뿌렸을 테니, 청정한 별세계를 나누고자 한 생태건축가의 뜻이 반영된 작품이다. 무주에는 부남천문대 말고도 목욕탕이 딸린 안성면주민센터, 관람객을 먼저 고려한 등나무운동장 등 정기용 작가의 작품이 30여 개나 있다.
부남면 소재지를 지나면 길은 다시 강을 따라간다. 밭두렁 가장자리에 걷기 쉽도록 덱을 깔아놓았다. 길을 조성하면서 설치한 유일한 인공구조물이다.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옥색 강물이 아른거리고, 햇살 따스한 밭두렁에선 초록이 움트고 있다. 밭머리에 한두 그루 심은 매화는 화사하게 꽃을 피웠고, 강가에 뿌리내린 연둣빛 버들개지는 곱고도 싱그럽다. 길도 물도 순하다. 나른한 봄기운에 걸음걸이가 한없이 늘어진다.
맑은 강물과 벼랑 사이로 이어지는 금강벼룻길.
금강벼룻길의 금강. 잔잔하게 흐르는 맑은 강물에 주변 산자락과 하늘이 투영돼 있다.
모래사장이 넓은 대유리 구간에선 바위 절벽 아래로 난 길을 걷는다. 깎아지른 암벽 아래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 연결된다. ‘금강벼룻길’은 바로 이 구간 ’벼랑길’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아찔한 길은 아니다. 수면에서 불과 2~3m 높이다. 그래서 ‘봇둑길’이라고도 부른다. 에메랄드 빛을 가득 머금은 강물은 크게 곡선을 그린다. 산자락은 아직 무채색인데, 길섶에는 현호색과 큰괴불주머니 산자고 등 곳곳에 야생화가 눈에 띈다. 기온 점검하러 나온 전령사처럼 느닷없이 꽃잎을 틔운 산벚나무도 보인다.
벼룻길이 끝나는 지점에 각시바위가 있다. 강가에서 하늘로 솟은 모양이 마치 여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형상이어서 붙은 명칭이다. 아이를 낳지 못한 며느리가 시어머니 등쌀에 희생된 한 많은 ‘여성 잔혹사’ 전설이 빠지지 않는다. 각시바위 아래로는 허리 숙여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인근에서 가장 큰 대티마을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수로를 만든 흔적이라 전해진다. 각시바위를 지나면 바로 율소마을이다.
금강벼룻길의 각시바위. 시어머니 등쌀에 괴롭힘을 당한 억울한 며느리 전설이 서려 있다.
금강벼룻길 각시바위 아래의 인공수로. 인근 대티마을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뚫은 터널이다.
무주 금강 여행 지도. 그래픽=성시환 기자
이곳에서 조금 더 하류로 내려오면 잠두마을이 있다. 지형이 누에와 비슷해 붙은 이름인데, 대전통영고속도로에 꼬리 부분이 살짝 잘린 모양새다. 잠두마을 강 건너편에는 금산으로 이어지던 비포장 국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가로수로 벚나무가 심겨 있어 금강변마실길에서 가장 먼저 화사한 봄을 맞이하는 곳이다.
금강벼룻길은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 차량을 이용한다면 주차한 곳까지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 워낙 외진 곳이라 택시를 부르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일행이 차량 2대를 이용해 시작과 끝 지점에 주차해 놓으면 그나마 수월하다.
무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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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 점령당한 조붓한 숲길, 트레커들의 발길을 사로잡네~
‘한반도의 가슴 서럽게 서럽게 쓸어내린 / 그 강물 기슭에 우리들 발을 묻고 / 집 지어 마을 이루고 살아가니 어찌 어머님 어머님이 아니시리요.’ 나태주의 시에 김애경이 곡을 붙인 가곡 ‘금강이시여’에서 금강은 어머니로 비유된다.
전북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진안 용담호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무진장(茂鎭長)의 맏형인 무주에서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조붓한 강변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떠난다. 미루나무 가로수가 멋스런 강변길은 무주 사람들에게 장도 보고 마실도 가는 소통의 통로이자 삶의 실핏줄이었다.
무주의 옛길은 모두 금강변을 달린다. 하지만 강과 산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도로가 속속 건설되면서 금강 벼룻길 등 옛길은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때로는 가파른 벼랑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때로는 여인의 피부처럼 하얀 강돌이 지천인 호젓한 강변을 꿈결처럼 걸어 다니던 옛길의 출발점은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마을.
사방이 산과 강에 둘러싸인 대소 마을은 무주에서도 가장 오지였다. 1990년대에 도로가 확장되면서 오지마을이라는 불명예를 벗었지만 외롭기는 마찬가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마을 골목길을 벗어나자 칡덩굴에 점령당한 농로가 구릉을 넘는다. 대소리의 수풀은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청정지역.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른 금강 줄기가 바짝 다가서자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사과밭 옆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대신 농로와 연이은 깎아지른 벼랑에는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금강 벼룻길이 강변에서 홀로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벼룻길은 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로 통하는 비탈길을 이르는 말로 이곳 주민들은 ‘보뚝길’로 부른다.
조항산 자락의 금강 벼룻길은 굴암리의 대뜰에 물을 대기 위해 일제 강점기 시절에 건설한 1.5㎞ 길이의 농수로.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대소리와 율소 마을을 이어주는 지름길로 자리 잡았다. 어른들은 대소리 오일장이 서면 막걸리 한 잔에 불콰해진 얼굴로 벼룻길을 걸었고, 책보자기를 어깨에 둘러맨 아이들은 찔레 순으로 허기를 달래던 추억의 길이다.
거친 잔돌이 깔려있는 들머리를 통과하자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나무터널이 이어진다. 돌길은 흙길로 바뀌어 한결 걷기 편하다. 강변에는 나리꽃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벼룻길 중간쯤에 이르자 강으로 돌출된 거대한 바위가 길을 가로막는다. 구박받던 며느리가 돌로 변했다고도 하고 선녀가 옷을 잃어버려 바위로 굳었다고도 하는 각시바위다. 각시바위 앞 각시소는 수심이 깊고 물의 흐름이 조용해 래프팅 보트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곳.
신기하게도 금강은 이곳에서 한반도 지도를 그린다. 유동마을에서 대치마을로 가는 작은 고개에서 보면 금강 벼룻길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빚어내는 국경선처럼 보인다. 봉길마을 백사장은 동해, 율소마을 앞 습지는 서해, 그리고 고개 아래의 비탈과 밭은 남해로 보인다.
금강 벼룻길은 이곳에서 각시바위를 뚫고 지나간다. 길이 10m로 어른 두 명이 서서 지나갈 정도로 넓은 동굴은 농민들이 일일이 정으로 쪼아 만든 땀의 결정체. 동굴을 통과한 금강 벼룻길은 복숭아밭을 지나 율소마을에서 다리쉼을 한다.
마을의 지세가 알밤처럼 생겨 밤소마을로도 불리는 율소마을은 실제로 밤나무가 많은 강마을. 이곳에서 대티교 삼거리와 굴암리를 거쳐 잠두2교까지는 강변을 따라 아스팔트 도로가 5㎞ 정도 이어진다. 일부는 옛길에 아스팔트를 깔았고 일부는 새로 낸 도로이다.
2001년 금강 상류인 진안에 용담댐이 완공되기 전까지 굴암리 강변은 자갈밭이었다. 그러나 댐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일정해지자 자갈밭은 습지로 변했다. 인간이 바꾼 환경에 자연이 적응한 셈이라고나 할까. 수심이 깊어진 금강은 래프팅과 천렵을 즐기는 피서객들로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두 번째 옛길인 용포리의 잠두마을 강변 옛길은 잠두2교에서 시작된다. 금강에 발을 담근 갈선산(480m)의 허리를 달리는 강변 옛길은 1970년대까지 무주와 금산을 잇던 비포장 국도였으나 잠두교가 놓이면서 잊혀진 옛길이 되었다. 잠두2교에서 잠두1교까지 강변 옛길은 약 2㎞. 차가 다닐 정도로 노폭이 넓고 평탄해 산책하기에 좋다. 벚꽃이 만발하는 이른 봄에는 강변 옛길의 벚나무 가로수가 거대한 연분홍 띠를 두른 듯 환상적이다. ‘잠두’라는 이름은 강변 옛길에서 내려다보는 지세가 마치 누에의 머리를 닮아 명명됐다. 무주 반딧불이축제 때 반딧불이 탐사지로 선정되는 잠두마을은 무주의 청정지역 중 으뜸으로 꼽힌다.
잠두마을 강변 옛길에서 아스팔트길로 내려와 새로 놓은 용포대교 교각 아래를 지나면 옛 용포교가 나온다. 용포교는 전북 무주와 충남 금산을 이어주던 길목 중의 하나.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된 웅포교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일부가 파손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도 소통의 통로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세 번째 강변길은 용포교를 건너지 말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하류 쪽으로 200m쯤 가면 나타난다.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의 일부인 강변길은 내요대 마을에서 서면마을까지 3.6㎞.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강을 따라 조붓한 숲길이 이어진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잡초에 점령당했지만 길의 흔적은 뚜렷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놀란 물잠자리가 수십 마리씩 날아올라 어지럽게 춤을 춘다.
금강은 용담댐에서 용포교까지 강폭이 좁고 수심이 깊어 속으로 울음을 삼키듯 조용하게 흐른다. 그러나 용포교를 지나면 강폭이 넓어지면서 수심이 얕아진다. 여울을 흐르는 강물이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가 어머니의 통곡처럼 들린다.
다리가 없던 시절에 잠두마을 강변 옛길과 세 번째 강변길은 버스가 다니던 신작로였다. 무주와 금산을 오가는 버스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강변길을 달려 용포교 하류의 소이진나루터에서 우마차와 함께 나무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금강과 남대천이 합류하는 대차리에는 큰비라도 내리면 강물에 잠기는 세월교가 놓여 있다.
대전통영고속도로 굴암교와 용포교에서 차창을 통해 보이는 아름다운 강변길들. 그 길은 무주 사람들의 추억이 서린 잠두마을 강변 옛길이었다.
무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83637&code=141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