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마르코복음 1,12-13)
모레토 다 브레시아 외 3인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코 1,13)

마르코복음사가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장면을 간단하게 묘사 했습니다.
그런데 모레토 다 브레시아(Moretto da Brescia, 1498-1554)가 그린 <광야의 그리스도>는
마르코복음사가의 표현대로 그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맨발로 붉은색 속옷과 푸른색 겉옷을 걸치고
뺨에 오른손을 괴고 고독과 깊은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고난을 깊이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새들과 많은 들짐승에 둘러싸여 있고,
예수님의 발치에는 뱀이 놓여 있으며,
예수님의 시선은 사슴을 바라보고 있고,
사슴도 물을 마시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의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시편 42,2-3)
그런데 중세의 동물우화집에서는 사슴이 샘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뱀의 독에 저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에게로 귀의함으로써 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등 뒤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함으로서 시중을 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에게 어떤 유혹을 받으셨을까요?
마태오와 루카복음사가는 세 가지 유혹을 받았다고 기록했고
, 후안 데 플란데스(Juan de Flandes, 1496-1519 활동)는
그의 작품 <그리스도의 유혹>을 통해 세 가지 유혹을 말해줍니다.
악마는 수도복을 입고 돌을 들고 예수님께 다가섭니다.
뾰족한 수염과 뿔, 그리고 파충류의 발이 그가 악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손을 저으며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오 4,4)
오른쪽 나무 뒤에 있는 고딕성당 위에 희미하게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뛰어내려보라고 하면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돌봐주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오 4,7)
왼쪽 절벽 가장자리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만약 예수님이 자기를 경배한다면 세상 모든 나라를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오 4,10)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그리스도의 유혹>은
성경의 내용과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풍부하게 묘사합니다.
첫 번째 유혹은 왼쪽 상단에 있습니다.
수도복을 입은 악마가 예수님께 다가와 돌을 가리키며 돌을 빵으로 바꿔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손짓으로 거부하십니다.
두 번째 유혹은 중앙에 있는 성전 꼭대기에서 이루어집니다.
악마가 그리스도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며 이를 거절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상단 산꼭대기에서는 악마가 온 세상을 주겠다고 유혹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를 물리치자,
악마는 옷을 벗어 버리고 허공에 몸을 던집니다.
그러자 세 천사가 다가와 식탁을 차리고 성찬을 준비합니다.
이 성찬의 식탁이 바로 중앙의 번제의식과 연결된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악마가 우리에게서 떠날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성찬뿐입니다.
왼쪽 중앙에서는 예수님께서 천사들에게 성전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사제는 시종이 봉헌하는 어린양의 피를 나뭇가지로 적시고 있는데,
어린양의 피를 봉헌하는 시종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고,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피를 봉헌하고 있으며,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피요,
죄를 사하여 주려고 인류를 위하여 흘릴 구원의 피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삼중관을 쓰고 있는 대사제는 지금의 교황이요,
예수님 주변에 있는 다수의 고위 성직자들은 아론의 후손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희생제사가 사제들을 통해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두초(Duccio, 1260-1319)는 시에나 대성당에 봉헌된
대형제단화 「마에스타」의 프레델라(predella)에 <산 위에 유혹>을 그렸습니다.
악마가 험악한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의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자기에게 경배만 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산꼭대기에 꼿꼿이 서서 단호한 몸짓과 표정으로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하고 있으며,
예수님 뒤로 날개달린 두 천사가 예수님을 받들어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모두 그림 위쪽에 모여 있고,
당시 시에나 같은 도시 풍경들이 미니어처처럼 아랫부분에 깔려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잠깐 사이에 사라지고,
하느님의 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잠깐 뿐인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살고 있으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