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유기장 김문익씨가 방자유기를 불에 담금질하고 있다. |
유기는 사찰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어 바라, 다기, 제기, 향로, 촛대, 공양미 그릇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주석이 생산되지 않는 나라지만 구리와의 오묘한 합금으로 아름다운 빛깔과 유익한 성질을 함유한 유기는 외국으로 수출했을 만큼 우리 선조들은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유기의 제작방법은 평안북도 정주 납청에서 전해지는 방자유기와 전남 순천지방의 반방자 유기, 안성의 주물유기가 전해지고 있다.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유기장 김문익(61, 국일공예사 대표)씨는 섬세한 남부지방의 유기기술과 투박한 이북지방의 유기기술, 그리고 경기도 안성지방의 주물유기 기술을 모두 갖춘 장인으로 우리나라 사찰에 다량의 유기를 공급하고 있다.
전국 사찰에 유기 다량 공급
김덕수 사물놀이패 악기제작
공법 과학화…작품활동 왕성
그의 공방인 군포시 대야미동을 방문하면 벌겋게 달구어진 다양한 작품들을 담금질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 전시관까지 갖췄지만 유기를 만드는 공방답게 주변은 어수선하다. “사찰에서 저희 공방 제품을 많이 가져갑니다. 천태종 구인사나 서울 조계사도 저희 공방에서 만든 작품들을 많이 가져갔지요. 저희 공방은 사찰에서 사용하는 작품들이 80%가 넘습니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김 장인은 경상남도 함양사람이다. 양반집안인 안동 김씨 집안이라 천한 사람이나 배우는 유기기술 배우는 일을 만류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김 장인은 “희소가치가 있을 것이고 돈벌이도 잘 되어서 13살 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장인은 13살 때 유기장이었던 최두건 공방에 입문했다. 그곳에서 13년간 기술을 연마해 1967부터는 현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이봉주 옹이 운영하는 ‘안양 진유공예사’에서 17년간 일하며 평북 정주의 납청방자인 양대(큰 놋그릇) 기법을 전수받았다.
1982년에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군포에 ‘국일공예사’라는 공방을 연 김 장인은 하루에 다섯 가마의 숯을 이용하여 용광로를 가열하며 왕성한 작업 활동을 해 왔다. 최근에는 제조공법을 과학화하여 압연기를 도입해 100여종의 다양한 유기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섬세한 작업은 직접 수작업을 동원한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기간에는 상당량의 꽹과리가 저희 공방에서 공급됐고 특히 88년 장애인올림픽 개막 당시 춤사위에 사용되었던 ‘바라’를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또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악기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공방은 대부분 사찰에서 필요한 바라, 향로, 촛대, 대형 공양미 그릇, 과일 받침대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은근함과 끈기가 있어야 유기기술을 배울 수 있음을 강조하는 김 장인은 그의 처조카인 이춘복(44)씨에게 비법을 전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김 장인은 “전시관에 저의 혼이 깃든 좋은 작품을 많이 전시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피력했다.
첫댓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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