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참풍수지리학회가 창립되고 얼마되지않아
우진헌에서 학회의 조직화를 위해 임원회의를 가졌습니다.
당시에도 몇몇 제도권이 시각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회원모으기에 상당한 정성을들이기도 하였고
이름만들어도 알만한 손석우, 최창조, 김두규교수등 당대풍수의 최고라고 자칭타칭하는 풍수가들이 즐비했습니다.
또한 한국풍수지리의 계보라는 출처불상의 계보가 카페와 블러그에 돌아다녔고 헤아릴수없을만큼 많은 풍수동호회, 카페, 블로그, 연구소, 연구원등등 풍수라는 두글자가 들어간 단체나 조직들이 우후죽순 갈래갈래 만연했습니다.
스님과 신부님할것없이 풍수는 종교를 초월할정도로 기세가 대단하기도 하였습니다.
1988년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사회의 장례문화는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상례를치루던 장례문화가 장례식장의 등장으로 아버님이돌아가시면 하늘이 무너지고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땅이꺼진다는 천룬이 끊어지는날 자식은 고개를들어 하늘을볼수없고 허리를펴고 숨을쉴수 없도록 불효자일수록 주렁길이가 짧다하여 한자남짓한 주렁을들게 하였으니 그렇게 3일장 5일장을 차루고도 집안에 지청을두고 석달열흘간 조석으로 상식을올리며 머리를조아리고 재배를 드리며 죄를씻고 어버이를잃은 슬픔을 하늘에고하였습니다.
그렇게라도해야 자식된도리를 다한다하였으니 이는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졌고 이렇게해도 불효자의 마음이 하늘여닿지 않아 죄책감을 다풀지못한 자식들은 산소옆에 움막을짓고 길게는3년 짧게는 석달열흘간의 시묘살이를 하기도합니다.
그런 상례풍습을 하루아침에 쓸고가버린 장례식장과 상조회는 더불어등장한 공원묘지와함께 매장문화를 화장문화로 바꾸며 음택풍수를 위기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주택문화가 아파트문화로 변하며 양택풍수가 잠식된것처럼 음택풍수역시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나앉는건 아닌지 심히우려를 하게한것도 부인할수는 없겠습니다.
음택과 양택을 쓰기위한 풍수보다는 기존에 이미씌여진 자리에대한 감정이나 평가, 간산이 겨우 풍수의 명맥을 잇고있을뿐 풍수에대한 새로운개척은 고작 인테리어풍수? 이정도로 유지되지않나싶습니다.
화장율83% 매장율17%라지만 매장17%중에서도 가족묘지, 공원묘지, 단체묘지등 성형화된 땅에 하관을하고 상석이나 묘표하나 세우는것으로 음택조성을 끝내는경우가 대부분이고 지사를불러 재혈을하고 하관시에맞춰 하관을하고 봉분과 벌안을 다듬고 조성하는 세밀한 산역은 포크레인의 힘에 밀려나버렸습니다.
그러니 풍수로 먹고사는 염쟁이나 풍수쟁이들은 고령화되었고 대를이을명분도 없어졌으니 존재의필요성조차도 사라져버린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제도권에서 고작 학문이랍시고 하는것은 역사나 사상쯤으로 치부하고 시대적사명감은 찾아볼수없는 고고학정도로여겨서 풍수가아닌 풍수로 길들이고있는것입니다.
풍수는 이시간에도 땅속 깊숙한곳에서 끈임없이 행룡과 박환의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천장지비하며 살아움직이고있습니다.
풍수를 사랑한다면 풍수를 믿는것부터 시작하여야합니다.
풍수는 확률이 아닌 O냐 X냐의 문제 입니다.
17%는 풍수고 83%는 풍수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