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도 없고 일하기도 싫어 영업을 일찍 접고 카페 타이틀 바꾸기를 '괴테'로
할까 '파우스트로' 할까 고민하다가 난데 없이 토요일(11일) 휴무를 통고했어요.
인(in)서울을 하려고요. 인생의 이정표였던 ‘팡세’를 40년간 써먹었으니 이제
그만 졸업하고 60세에 만난 ‘파우스트’를 벤치마킹하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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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읽기에 딱좋은 날입니다. 욥기와 파우스트는 찰떡 궁합이 아닙니까?
1달째 유투브 강의를 주서 듣고 있긴 한데 12,111행 운문의 텍스트 쪼개기를
한 번 시도해볼 생각도 있습니다. 20대에 쓰기 시작해서 82세에 탈고를 했다는
역작 '파우스트'는 무려 60년의 긴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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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독일인에게 있어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친 인물입니다. 칸트 형-헤겔이 괴테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하더이다. 오랜
공력이 들어간 만큼 책에는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모든 사상이 집결해 있습니다.
고전이 대개 그렇듯이 ‘파우스트’의 줄거리도 괴테의 머리에서 처음 솟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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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아니라는 것 같아요. 주인공 파우스트의 역사적 원형은 16세기 초에 독일
에서 활동했던 주술사 파우스투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대요.이 인물이 악마와
결탁해서 세상을 떠돌며 기이한 행각을 벌입니다 그 악마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괴테도 어린 시절 이 인형극을 보았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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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투스 전설은 영국으로 건너가 1588년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파우스트
박사의 비극적 이야기’라는 이름의 희곡 작품으로 재탄생시켰고, 이 작품이 독일로
역수입돼 파우스트를 널리 알렸습니다. 파우스트의 이미지에 획기적으로 변화를
준 것은 18세기 독일 작가 레싱이 쓴 ‘파우스트 단편’입니다. 여기서 레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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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를 ‘앎을 향한 무한한 욕망’을 품은 진취적 인간으로 그렸고, 바로 그
진취성 덕분에 악마에 희생되지 않고 구원에 이르는 자로 살려냈습니다. 계몽
주의의 영향을 받은 파우스트가 탄생한 겁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바로 이
레싱의 파우스트해석을 이어받아 그것을 심화하고 드넓게 확장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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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이 등장하는 제1부와 헬레나가 등장하는 제2부로 나뉩니다.
제 관심은 제2부 괴테의 여성 편력에 있지만 아직 시작이니 천천히 조근조근
파우스트를 먹어치울 작정입니다. 괴테는 제1부를 58살에 완성했으며, 만년에
제2부 집필에 들어가 82살 때 끝을 보았대요. 3년 후면 성경묵상40년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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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뭔가의 결과물을 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1부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세상속으로 들어가 행동하기를 갈망하는 노학자로 등장합니다. 철학·법학·의학·
신학. 티렉터, 미술, 작가, 광학(색채론) 등 모든 학문을 섭렵한 괴테를 대변합니다.
자신의 방대한 인풋에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파우스트는 행동을 통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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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겪어보려고 합니다. 파우스트는 요한복음의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
했다가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아‘뜻’으로 옮겨보기도 하고 다시 ‘힘’으로 옮겨
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파우스트가 고른 단어가 ‘행위’(행동)입니다. 그리하여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라는 말은 파우스트의 그 뒤 삶을 이끌어가는 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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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됩니다. 작품 속의 파우스트는 행동하는 인간입니다. 파우스트의 내부로
좀 더 들어가 보면, 그 안에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는 두 가지 욕망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하늘에서는 더없이 아름다운 별을 원하고 땅에서는 지고의
쾌락을 원하니, 그 요동치는 마음을 달래줄 것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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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천상의 서곡’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는 이 말은 두 방향으로
찢긴 파우스트의 내면을 확연히 보여줍니다. 하늘의 별, 곧 높은 이상을 지향
하면서도 쾌락의 극한까지 가보고자 하는 인간이 파우스트에요. 내면이 찢긴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젊은이로 다시 태어나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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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갑니다. 그러나 쾌락의 탐닉은 파우스트를 무수한 죄악으로 물들게 하지요.
제1부에서 파우스트는 순결한 처녀 그레트헨을 유혹해 아이를 낳게 하고,
그레트헨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은 그레트헨은 세상의 비난 속에 정신 착란에 빠져 아이를 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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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뜨려 죽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쾌락에 젖은 파우스트는
죄의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큰 행동을 갈망합니다. 제2부에서
파우스트는 고대 세계로 들어가 그리스 최고의 미인 헬레나를 유혹해 결혼
하는가 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공훈을 세우고 황제로부터 바닷가의 넓은
간척지를 하사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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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파우스트의 무자비한 행동은 멈추지 않아요. 간척지 개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언덕 위에 살던 선한 노부부를 죽이고 집을 불태워 버립니다.
이 불길 속에서 ‘근심’이라는 마녀가 나와 파우스트의 눈을 멀게 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된 파우스트는 내면의 눈이 뜨이고 그 눈으로 ‘자유로운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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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유토피아의 환영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을
향해 파우스트는 말합니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을 때 파우스트는 어떤 쾌락과 기쁨을 맛보더라도 자신은 절대로
만족할 수 없을 거라며, 순간을 향해 ‘멈추라’고 말한다면 제 영혼을 가져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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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고 약속했습니다. 파우스트는 드넓은 간척지에 자유의 공동체를 세운다는
환상 속에서 죽음을 맞아요, 파우스트의 이런 행보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한편으로 파우스트의 모험은 근대 서구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전형을 보여
준다고 합디다.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에서 욕망하고 정복하는 파우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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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럽 문화의 총체적인 초상화이며, 유럽의 역사가 ‘파우스트적인 정신’에
집약돼 있다고 말하기도 해요. 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
에서 무자비하게 질주하는 파우스트적 이성이 폭력과 독선의 이데올로기를
낳았다며 이런 이데올로기를 “소명과 운명의 신화적 거짓”이라고 질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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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파우스트야말로 구원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파우스트는 방황하면서도 열망을 품고 노력하고 추구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선량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에 쫓기더라도 올바른 길을 잃지
않는다.” ‘천상의 서곡’에서 신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하는 이 말은 괴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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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를 긍정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작품의 결말에서 하늘로
올라간 그레트헨이 성모 마리아에게 파우스트의 구원을 요청하는 것도
파우스트의 정신이 타락 속에서도 구원받을 만하다고 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노력(추구)하는 한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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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너는 아니?
작품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무슨 뜻인지.
사랑,
생명,
...
흥미진진한 '파우스트'야 말로 무대미술과의 필독서가 아니겠냐?
어떤 여성 학자는 괴테를 논할 때 3개의 동사를 쓴다고 하더이다.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배웠노라!
2023.11.8.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