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스바냐 3장 1-8절
그리스의 사라쿠사 거리에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인 ‘카이로스(kairos)’라는 우수광스러운 동상이 있습니다. 이 동상을 본 관광객들마다 웃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상 밑에는 “몸이 벌거벗은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발견되기 위함이고, 앞머리는 무성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게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것은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고 발에 날개가 달린 것은 나를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빨리 달아나기 위함이다. My name is ... CHANCE(나의 이름은 ...‘기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주변 이방 민족에 대해 심판을 선고하시고, 이제는 점점 유다와 예루살렘 쪽으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유다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지, 백성부터 시작하여 정치지도자 그리고 종교지도자들까지 범죄를 고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거절한 유다의 완악함을 지적하신 하신 후 남은 것은 심판뿐임을 강조하십니다.
이스라엘 성읍의 패역(1-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빛으신 예수님께 돌아오도록 빛을 비추시고, 간절히 외치십니다. 애타게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비추어진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청산해야 할 죄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지금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1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2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1-2)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다시 한 번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말씀합니다. 그들에게 히스기야의 개혁 그리고 요시야의 개혁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경고가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저버렸습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3장에서 범위를 좁혀 예루살렘과 정치적, 영적 지도자들을 향해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예루살렘은 시온과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시온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특한 위치와 중요성을 내포합니다. 먼저, 시온은 온 세상의 중심입니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러 있는 거룩한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임하셔서 이스라엘을 만나시고, 영적인 교제와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사 2:1-4). 둘째, 시온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유일한 곳입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므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성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시온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선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함으로 언약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고, 그의 통치가 구현되는 영광스러운 처소이자 여호와의 궁정입니다. 이곳은 여호와의 거룩함으로 인해, 인간의 부정함과 죄악이 공존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스바냐는 그 성읍이 매우 패역하고, 더럽고, 포학하다고 선언합니다.
그곳 백성, 특히 정치적, 영적 지도자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고 패역했습니다. 그리고, 외적인 의식에 치우쳤지만 삶은 범죄로 가득했고,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착취했기 때문에 더러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 당시 유다의 관원과 백성은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과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선행과 정의를 행하기보다,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지도, 변호하지도 않았습니다(사 1:10-17). 스바냐 선지자 시대에도 비슷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의 패역함에 대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선언됩니다.
범죄를 일삼은 지도자들(3-5)
성도들은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정지,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 공의로은 사회가 구연이 됩니다. 먼저 그들이 말씀을 통해 영적 지도자의 바른 삶을 배우고 구원의 진리를 아는 영적 지도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냐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세상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4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3-5)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외면한다면 예루살렘 백성처럼 어리석은 자들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 더 의지하고, 말씀에 더 열심히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1) 범죄를 일삼은 지도자들(3-4)
선지자 스바냐는 당시 영적, 정치적 지도자들의 타락과 범죄를 더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3절은 정치 관료들, 4절은 영적 지도자들의 패역함과 흉악함을 포악한 짐승에 비유합니다(참조, 겔 22:25-31). 약자들을 돌보아야 할 공직자들은 먹이를 찾아 부르짖는 사자와 같이 약자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무자비하게 착취했습니다. 재판장들은 탐욕과 배고픔에 찌든 이리와 같이 가난한 백성을 폭력으로 착취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함으로써 구원의 길과 방편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스바냐 당시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했습니다. ‘경솔하다’로 번역된 ‘포하짐’은 ‘교만하다’, ‘거만하다’, ‘훈련되지 않다’, ‘경솔하다’라는 뜻입니다.
‘간사하다’로 번역된 포이짐은 ‘배반한’, ‘사악한’, ‘믿음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당대 많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가르치기보다, 거만함과 사악함을 따라 백성을 기만하면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쳤습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자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이끌어야 하는 영적 어른입니다(레 10:10). 하지만 당시 제사장들은 율법을 먼저 범했고, 스스로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영적 기준이 무너진 공동체는 한순간에 망합니다.
(2) 공의를 비추시는 하나님(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공동체에 친히 임하셔서 아침마다 당신의 공의를 비추십니다. 그때에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를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과 종말론적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심판의 경고(6-8)
지도자가 잘못되면 모든 백성들도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은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죽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일보다 더 지도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백성들보다 지도자들을 향해 죄를 먼저 물으실 것입니다. 이제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압제 받은 자들을 높이시고 패역한 자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6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7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8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6-8)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열국을 심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열국을 의지하며 안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아가 예배하며 교제하지 못할 만큼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그들에게 남은 것은 패역과 포악과 더러움뿐이었습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아도 부족할 때 자기 행위를 더럽히는 유다에게 심판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6-7)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원하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섬기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은 경건의 토대이자 완성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을 존중함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의 영적 가치와 유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를 경외할 때, 지혜롭고,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한 삶을 살게 됩니다(잠 1:1-7). 여호와를 경외할 때, 영혼은 평안하고, 그 자손들은 땅을 상속받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친밀함을 누리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신비한 생명과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시편 25:12-14). 그때 그들은 참된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잠 2:5-6).
다음으로, 백성이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교훈’으로 번역된 ‘무싸르’는 말씀을 실천하는 ‘영적 훈련’ 내지는 ‘제자도’(discipline)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훈을 받는다는 것은 신앙의 여정에서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구현해 가는 영적 훈련과 제자도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여호와께서 당시 유다 백성뿐 아니라, 오늘날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원하시는 신앙의 근본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여호와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며 살아갈 때, 여호와의 심판과 형벌을 피하고, 참된 생명과 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 백성, 특히 영적, 정치적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초청을 단호히 거절했고, 모든 행위를 더럽게 했습니다.
(2) 불에 소멸되리라(8)
유다 백성이 여호와의 초청을 거절할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그분의 분노와 진노에 의한 심판의 불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기다린다’(하카)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경건한 백성이 여호와를 기다리는 모습과 그 이후에 누릴 구원과 축복을 내포합니다(사 8:17:30:18; 64:4). 하지만 여기서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한 영적, 정치적 지도자들은 분노와 진노의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며, 그 끝은 여호와의 불에 의해 온 땅과 함께 소멸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절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점점 돌아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가까워져 갔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날마다 공의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교훈을 들려주실 때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고통이 아닌 하나님이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