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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품은 천년고찰, 전등사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안에 자리한 전등사는 일주문과 사천왕문이 없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전등’이라는 이름은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옥등을 시주한 후 붙여졌다. 전등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범종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특히 대웅보전 불사를 맡은 도편수와 아랫마을 주모의 이야기가 담긴 나녀상이 인상적이다. 대웅보전 처마 밑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웅크려 처마를 받치는 모습으로 조각돼 있다.
70여 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와 발굴조각 기법으로 제작된 이영섭 작가의 어린왕자 조각상도 전등사의 명물이다. 전등사를 둘러본 후에는 삼랑성 성곽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약 3km에 걸쳐 이어진 성곽길에서 바라본 강화의 가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성곽길 걷기는 전등사 정족사고 뒤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9월 중순부터 붉은 꽃을 피우는 꽃무릇 또한 전등사의 가을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고려의 왕이 39년간 머물렀던 공간, 고려궁지
강화산성 북문 아래 자리한 고려궁지는 1232년, 고종 19년에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고려 왕실이 도읍을 옮기고 39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몽골군과 화친 후 삼별초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강화도의 모든 건물을 불태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고려궁지에는 외규장각과 유수부 동헌인 명위헌, 이방청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 때 왕실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한 왕립도서관으로 궁궐 안에 있던 규장각과 달리 도성 밖에 위치해 있어 ‘외규장각’이라 불렀다. 강화도에 외규장각이 설치된 것은 수많은 전란을 겪으며 강화도가 안전한 장소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인조는 정묘호란 이후 강화도를 도호부에서 유수부로 승격시켜 외침에 대비한 방어도시로 발전시켰으며, 숙종 대에 이르러서는 진-보-돈대로 이루어진 해안 방어체계를 완성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강화도에는 해안 경비를 위한 5개의 진, 7개의 보, 그리고 53개의 돈대가 있다. 고려궁지 한가운데 자리한 외규장각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의 습격으로 파괴되었으나 2003년에 복원되었다.
200년 불교 불모지에 우뚝 선 효행본찰, 몽운사
몽운사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위치한 작은 사찰이다. 200년 동안 절집이 없었던 백령도에 몽운사가 세워진 것은 2002년도의 일이다. 남북 평화와 심청의 효 사상을 기리기 위해 건립댔다. ‘몽운’이라는 이름은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겠다고 했던 설화 속 몽운사에서 따왔다.
법당 입구에 ‘효행의 집’이라는 편액을 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당 옆에는 거대한 발우가 전시돼 있으며,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5층 석탑과 해수관음상이 서 있다. 해수관음상은 장산곶 너머 북한의 평양을 바라보고 있으며, 높이 9m, 무게 25톤에 이른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1년부터 10여 년간 군사보호구역의 문화유적을 조사해 백령도에서 ‘연화리사지’를 발견했으며, 동국대학교 발굴 팀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호신불을 발굴하기도 했다. 사찰 마당에서 방목하는 공작들은 몽운사의 또 다른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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