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먼저 한국군의 파견에 따른 임무와 주둔지를 어떻게 결정하였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답) 지금으로부터 약 35년 전의 일입니다. 자유월남으로 제일 먼저 파견된 부대는 이동외과병원(MASH)과 태권도 교관단으로 구성되는 140명의 군사원조단 이었습니다. 비록 인술부대가 중심이 되는 비전투부대의 파견이라고는 하나 아세아지역에서 공산침략을 저지하기 위하여 자유월남을 적극 지원해 주도록 요청하는 미국대통령의 호소와 공산국가의 사주와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베트콩”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달라는 월남공화국을 돕기 위하여 해외로 국군을 파견한다는 것은 단순한 군사활동이 아니라 그 의의로 보아 국위를 선양하고 안보문제는 물론 그밖에 여러 분야로 그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며 특히 앞으로 예상되는 증파문제를 고려할 때 이동외과병원에 대한 임무와 주둔지의 결정은 파견군이 그들의 사명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기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그 문제에 접근하였습니다.
당시 우리 합동참모본부가 저에게 준 지침은『주월미군사지원사령부는 이동외과병원의 주둔지를 “메콩”델타지역에 있는 “속트랑”이라는 곳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 자유월남군측은“미토”라는 곳을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으니 현지에서 사정을 살펴보고 특히 전술적인면에 유의하여 주둔지를 결정하도록 하라는것이었습니다.
우리 선발대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유월남의 수도“사이공”에 도착한 것은 1964년 8월 26일 오후 5시였습니다.
그 날은 “통킹만”사건이 발생하여 미국의 “존슨”대통령이 월맹에 대하여 보복 북폭을 단행하고 미국의 상․하 양원이 미국대통령의 조치에 대하여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자 월남 정부의 구엔 “칸”수상도 이에 적극 호응하여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어서 임시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제를 신설하고 “구엔 칸”장군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러자 “칸”정부가 독제체제로 가려고 한다고 이를 반대하는 반정부반 “칸”시위가 격화되어 “구엔 칸”은 그 압력에 굴복하여 대통령직을 사임하였고 “칸”장군을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한 임시헌법을 무효화함으로서 자유월남의 통치기구가 한때 공백상태에 놓이다시피 되어있는 때였습니다. 우리는 다음날 월남군의 생각을 먼저 알아보기 위하여 아침 일찍 월남군 총사령부를 방문하였습니다. 우리들을 전날 공항에 월남군 대표로 저희들을 영접하러 나왔던 군수참모부장이며 군사혁명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한 “팜 반 동”장군을 예방하고 월남에 파견될 우리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의 임무와 배치계획에 대하여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월남 전선에서 계속 늘어나는 부상자를 치료할 능력이 부족하여 크게 곤란을 당하고 있다면서「“델타”지역에 있는“미토”에서 월남 제3군단을 직접지원해 주었으면 한다」고 하면서 일단 그 지역을 돌아보고 최종결정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태권도 지도요원에 대해서는 주로 교관을 양성하는데 중점을 두어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육군보병학교 그리고 청소년지도양성소 등의 교육기관에 배치하도록 해주었으면 하였습니다. 오후에는미군사원조사령부를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미군사원조사령부는 월남정부의 평정사업을 적극지원하기 위하여 일선행정기관인 군에까지도 고문단을 배치하고 있었고 군부대에는 대대단위까지 고문관을 파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월남군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하여 “헬리콥터”5개 중대가 파견되어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미군은 병상 100베드 규모의 병원시설을 제2군단 관할지역인 북쪽 “나트랑”(육군)을 비롯하여 수도“사이공”(해군), “탄손누트”(공군), “칸토”(육군)등지에 배치하여 의료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행장에 마중 나왔던 “오스만스키”장군은 우리 이동외과병원을“델타”지역의“속트랑”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항구적인 병원시설이 6~12개월 내에 건설될 예정이고 비행장과 미군헬리콥터중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환자후송에 편리할 뿐만아니라 우수한 통신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들은 말과 같았습니다.
나는 “오스만스키”장군에게 월남측에서는 제3군단을 지원할 수 있도록“미토”에 주둔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말하고 현지를 답사하고 그 결과를 서로 협의하여 최종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현지정찰을 떠나기 전에 며칠동안 사이공에 체류하면서 앞으로 파견될 우리 이동외과병원이 사용하게 될 의료장비 및 기기를 비롯하여 제반군수지원 문제에 대한협의를 하는 한편 주월 한국대사관을 방문하여 월남의 정세와 치안상태 그리고 전술적인 상황에 대하여 세밀하게 검토하고 월남군과 미군의 안내를 받아 현지 답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사이공의 남쪽인 메콩강과 바삭강을 지나 “속트랑”비행장에 먼저 착륙하여 비행장시설과 헬리콥터중대의 현황에 대하여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속트랑”은 평야지대로 시야가 넓고 광활하여 공지가 많고 계획대로 발전된다면 병원시설은 물론 좋은 군수기지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통신망도 좋고 헬리콥터 중대가 있어 환자의 수송과 처리에 매우 효율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만 미국의 원조로 6~12개월 안에 항구적인 병원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런 준비도 진행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이동와과병원이“속트랑”에 주둔하게 된다면 병원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는 야전천막을 치고 그 속에서 모든 의료활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비행장에는 경비부대가 따로 없었습니다.
델타지역을 포함한 제4군단지역은 곡창지대 이며 완전히 평정된 곳은 아닙니다.
비행장주변은 광활하고 시야가 넓었으나 갈대 숲에 묻히다시피 되어 있으며 약 1년전에 베트콩의 박격포공격을 받은바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우군은 비행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시내에 주둔하고 있는 월남군 제21사단 예하의 1개연대가 있으나 이 부대는 주력부대는 없고 연대본부만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단 유사시 자체방위력이 취약한 이동와과병원의 주둔지로써는 문제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미군측에서 제시한 주둔지의 시찰을 마치고 월남군이 희망하고 있는 “미토”로 향하였습니다. “미토”는 “델타”지역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토 비행장은 월남군 제7사단이 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월남군 안내 장교의 안내를 받아 제7사단이 의료시설로 사용했었다는 건물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단의 의무실정도 밖에 되지 않은 이 시설로써는 우리 이동와과병원을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후보지에 안내를 받아 돌아본 곳은 연못을 끼고 있는 넓은 빈터였습니다. 천막을 친다면 그런대로 입지조건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기존건물은 없으나 도로망을 좀 개량하고 헬리콥터의 이착륙 시설만 보완한다면 가까운 곳에 제7사단이 주둔하고 있음으로 병원의 안전문제는“속트랑”보다 좋은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은 느끼며 썩 내키지를 않았습니다. 월남측은 나의 이러한 마음을 읽고 추가로 하나 더 후보지를 가보자고 하면서“붕타우”라는 곳을 제의하였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사이공을 떠나 동남방으로 123㎞ 떨어진“붕타우”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붕타우”는 월남에서 손꼽히는 해양도시이고 휴양지였습니다. 먼저 우리들이 안내된 곳은 월남군의 정양병원이었습니다. 환자가 넘쳐서 병원의 복도까지 빡빡하게 차있었습니다. 군의관이 부족하여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전상환자가 많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후보지로 안내된 곳은 오랫동안 비워놓고 방치하다시피 되어있는 낡은 건물이었습니다. 구석구석에 쓰레기와 오물들이 쌓여있었습니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오래 전에 월남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건물의 규모나 구조로 보아서 건물 안을 대청소하고 몇 곳 만을 개ㆍ보수한다면 우리 이동외과병원이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월남측에 군의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숙소가 별도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현 시설로 부족하면 가까운 곳에 월남군 장교들이 사용하고 있는 시설들을 비워줄 수 있다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붕타우”에는 월남군의 정예부대인 해병여단이 주둔하고, 미군 항공수송부대 등 지원부대가 많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통신시설을 비롯하여 비행장, 항만시설, 도로망 등 나무랄 때 없는 좋은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주민들도 다른지역에 비하여 생활수준이 높은 편이고 친정부측이고 치안상태도 수도 사이공보다 안전한곳이라고 안내장교가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이동외과병원의 주둔지를 확정하기에 앞서 피지원국인 월남대표에게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동”장군은 말하기를 지금 일선에서 부상하여 후송되는 환자가 많은 데 군의관이 부족하여 곤란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현재 작전 중에 있는 제3군단을 지원해 주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토”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들의 최초의 생각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오시는 한국군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답사하신 결과 어느 지역에 주둔하는 것이 좋을지 이장군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희망하는 주둔지를 말하기에 앞서서 이번에 파견되는 우리의 이동외과병원 구성과 그 능력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였습니다.
이번에 파견되는 이동외과병원은 월남을 지원하기 위하여 최초로 파견되는 부대이고 월남의 실정을 감안하여 이동외과병원의 기능인 외과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일반내과,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 방사선과, 병리실험과 등을 포함하는 거의 종합진료를 담당할 수 있는 우수한 의료진입니다.
이들은 또한 월남 정부의 요청도 있으니 전상환자 뿐만 아니라 민간인환자에게도 진료의 기회를 주게 된다면 월남정부의 평정계획에도 크게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발대장인 나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 의료요원들이 월남을 위하여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의료요원들이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 것과 자체방위능력이 없는 병원부대에 대한 안전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여건을 종합해서 생각해 볼 때 월남측에서 희망하는“미토”와도 가까운 거리에 있고 우수한 통신 및 교통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델타”지역과 제3군단지역 내의 환자수송도 용이하며 여건만 허용한다면 민간인환자도 진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간 개ㆍ보수한다면 기존시설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붕타우”가 가장 적절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월남군측 대표인 “동”장군은 묵묵히 저의 설명을 들으면서 특히 우리 병원부대가 이동외과병원 수준을 넘어서는 훌륭한 의료진이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동”장군은 그를 수행한 군수국장“담”대령과 의무기관을 통괄하는 의무감과 잠시 의논하고 나서“이”장군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붕타우”에는 실제로 환자가 많지만 의료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의 이동외과병원이 이 곳에 주둔하게 된다면 이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소 될 것입니다. 한국군 의료요원들의 안전문제는 저희들도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대처할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우리의 이동외과병원의 임무와 주둔지를 확정하기 위하여 3개국 대표가 회동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동”장군은 한국군 이동외과병원을“붕타우”에 주둔시키고 월남군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발언한 미국측 대표인 “오스만스키”장군은 처음부터 자기들이 주장하였던 “텔타”지역의“속트랑”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6개월 내지 1년 내에 병원을 건설하게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현재도 미군헬리콥터중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환자수송이 펀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또한 “붕타우”를 반대하는 이유로 이동외과병원은 작전지역 안에 배치하는 것이 원칙인데“붕타우”는 작전지역이 아닐 뿐만아니라 일반인의 휴양지니까 적절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양측의 주장을 듣고 난 다음 나의 견해를 설명하였습니다. 먼저 현지 답사한 세곳 후보지에 대한 장ㆍ단점을 설명하고 월남군측 “동”장군이 이야기 한 대로 “붕타우”가 가장 적지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측 대표도 한국의 의료요원들에 대한 안전문제를 가장 중요한 관심사임을 말해주면서 월남군과 한국측이 적지로 생각하는“붕타우”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그리하여 “속트랑”에 병원을 건립하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아직 착공한 것도 아니고 하니 한국군이동외과병원의 주둔지는“붕타우”로 합시다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이동와과병원의 주둔지를 월남의 유수한 휴양지인 “붕타우”로 결정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큰짐을 던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미군측이 제시한“속트랑”으로 결정되었다면 천막 속에서 더위와 싸워야 했을 것은 물론 쿠테타의 연속으로 월남의 정치정세가 안정되지 못함으로써 반정부세력과“베트공”은 그 위세가 더해가고 수도인 사이공에서조차 백주에 테러가 행해지는 치안상태 하에 놓여있는 이러한 때에 자위방위 능력이 없는 병원은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현지에서 당사국간의 의견이 조정되어 처음에는 예상하지도 못하였던“붕타우”라는 곳에 주둔하게 된 것은 한국군에게 행운이 따른 기적적인 성과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