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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극한 작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그 가운데서도 전통방식의 대장간 이야기는 채널을 고정합니다.
대장간의 망치 소리는
사라져 가는 우리 옛 문화의 전통, 그 자체여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끝없는 대장간의 망치 소리와 담금질의 결실은
전통검과 쇠를 자르는 도와 다마스커스검을 만들었습니다.
쇠를 불에 달구어 망치질을 하고 급냉하는 과정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
대장장이가 만들고 싶어하는 검과 도와 칼은 물론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은
인내의 믿음과 소망을 말씀의 교훈으로 깨닫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대장간의 담금질로
말씀과 신앙의 연단을 지혜롭게 교훈하였습니다.
말씀의 망치 소리와 담금질은
인내의 믿음을 온전케 하였습니다.
고난의 대서사시인 욥기서는
인생의 고난과 환난은 하나님의 단금질인 것을 일깨웠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고 하였습니다.(욥23:8)
또한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욥28:1-2)
욥은 자기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의 단금질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죽음의 절망 가운데서 생명의 길을 만났습니다.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욥은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실상은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이 범죄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욥31:29-35)
욥은 죽음의 절망 그 한가운데서도
죄인이 그 죄로 죽고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율법의 강령을
실천적인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가졌습니다.
누가 욥을 고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이 뜻에 부합하는 지성의 빛을 가진 욥의 친구들의 거친 입담도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고
욥을 참소하였던 사탄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욥42:1-6)
욥기서의 결말은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셨고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려 욥과 화평하게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고 하였습니다.(욥42:7-10)
욥의 고난과 친구들의 성토는 고난의 풀무, 그 단금질의 대미를 장식하였으며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번제로 용서를 구하고 욥의 기도로 화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고 하였습니다.(시12:6)
이렇게 완전한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고 하였고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고 탄성하였습니다.
또한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시119:66-67)
뿐만 아니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시119:71-73)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고 하였던 다윗은
오직 순결하고 정미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영혼이 소성되었으며
영광의 보좌와 주의 주를 보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고 찬양하였습니다.(시66:10-1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금속의 순도를 측정하듯 시험하고
금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도가니에 넣어 단련하듯
때로는 덫에 걸리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불과 물을 통과한 후 마침내 풍성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기 백성을 광야와 가나안 땅과 열방 가운데서 연단하여
거룩함에 흠이 없는 완전한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잠언은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17:3)
또한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27:21)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사48:10)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내가 이 일들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렘9:7-9)
다니엘 선지자는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고 하였습니다.(단12:10)
스가랴 선지자는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슥13:9)
말라기 선지자는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말3:2-3)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롬5:1-8)
또한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후1:6)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1:7)
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약5:7-11)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내가 너를 원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계3:18-2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계7:10-17)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순결하고
정미한 말씀과 고난의 풀무와 환난의 인내고 그 믿음을 연단하여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하늘의 존귀와 그 영광으로 옷입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 민국의 망치 소리는
메이저 언론의 여론의 조작과 언더그라운드의 진실 혹은 거짓 보도로 대혼돈의 늪에 빠졌습니다.
주권적인 하나님의 연단과 담금질의 망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제각기 자기 망치를 들고 적폐의 온상인 대한민국을 고치겠노라고
그 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메이저 언론과 언더그라운더 언론 보도의 농간으로 민주적 질서가 파괴되고
법치는 적폐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언론의 끝은 모든 국민을 악의 추종자로 매도 하였고
통치는 그 복마전으로 매도 되었습니다.
보수의 소리와 진보의 소리는 이전투구의 장이 되었고
진실과 거짓의 공방전은 진흙탕 싸움이 되었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은 진실의 종을 잃어 버리고
혼동의 백병전으로 이념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보수는 친일의 뿌리를 가졌고 진보는 종북의 뿌리를 가졌으니 서로 편향된 역사 의식은
안보와 민생의 주도권 싸움으로 그 혼전의 양산은 이전투구의 정치판이 되었습니다.
정치 복마전의 막장 싸움은 왜곡된 정치 성향과 거짓 정보로 분노를 표출하여
막싸움꾼의 이전투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그 자체일지라도 인생의 마음을 연단하기 위해서
도가니로 일곱번 연단한 순결한 말씀으로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담금질은
그 고난의 풀무로 진실의 종을 울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여정으로
천성을 향하는 믿음의 길을 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과 홍해와 광야의 삶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구원의 손길로 체득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서
여호와 잔쟁의 전사로 거듭났습니다.
사무엘은 타락한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서 언약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실로의 성소가 파괴되는 절망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등불을 켜는 여명의 빛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끝없는 언약의 전쟁으로 가나안 땅에 대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였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며 메시야 언약, 그 왕국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문둥병으로 죽은 웃시야 왕의 종말을 보았고 아마샤와 요담과 아하스를 거쳐
히스가야의 종교 개혁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군대를
하룻밤에 몰살 시키는 큰 능력을 목도하였고
마침내 애굽과 블레셋과 남왕국 유다와 두로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영원한 메시야와 그 나라를 계시하였습니다.
요시야는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왕의 표본이 되었고
종교 개혁으로 신명기의 이상을 실현하였으며 훌다 여선지자가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였을 때
그 저주의 예언을 듣고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그 성전이 불타는 참상을 목격하며 예언하였고그 참혹한 진상을 눈의 눈물로 선포하며 기록하였습니다.
참으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과 진실의 싸움을 하였고
이스라엘과 열국을 향한 하나님의 관점이 무엇인가를 온전히 깨닫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망치로 담금질을 통하여
인류의 역사를 그 구원 역사로 만들며 그 뜻을 온전히 이루는 과정을 말씀의 거울로 기록하였습니다.
난리법석의 아우성으로 메아리 치는 적폐의 온상인 대한민국을 개혁하고 혁신하겠다는 망치 소리는
과연 하나님의 담금질인가?
목공의 망치 소리는 아름다운 집을 짓고
석공의 망치 소리는 아름다운 조각상을 예술로 다듬고
철공의 망치 소리는 전설의 명검을 제작합니다.
광야의 망치 소리는 사막의 샘이 흐르고
주의 길을 예비하며 그 길을 평탄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론과 지성의 망치 소리는 진실의 종을 울리지 못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역사의 왜곡과 날조로 그 진실을 은폐하는 이념의 프리즘으로 채색하였습니다.
저마다의 망치질로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정치는
이념의 대립으로 이전투구의 장이 되었고
교육은 참 교육의 잘못된 교육으로 혼탁하고 언론은
조작과 날조와 은폐의 공방전으로 타오르는 용광로가 되었습니다.
이념의 프리즘으로 조각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는
종말론적인 참혹한 역사의 파고를 겪고 있습니다.
편향된 이념의 집단적 질주는 언론과 정치의 성향이 되었고
대한민국을 사공이 없는 배로 표류시켰습니다.
공평한 저울과 추, 그리고 진리의 다림줄은
왜곡되고 날조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실의 종을 울릴 것입니다
한결같지 않는 저울과 속이는 저울추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면.......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입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그 한가운데 있는 한국 교회는
기독교의 종말론으로 그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는 종교적인 진실의 종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종말론의 혼동으로
참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상실하였습니다.
시한부 종말론과 세대주의 종말론은 이단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성경적인 참된 종말론적인 신앙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종말론적인 진실의 종을 울릴 참 믿음의 성도는
말씀의 망치로 연단되고 단련된 큰 환난의 담금질에서 예수의 믿음을 지킨 사람일 것입니다.
암흑의 사사 시대를 종식 시키고 여명의 빛이 되었던 사무엘과 다윗같은 입지전적의 신앙 인물은
오직 하나님의 담금질, 그 말씀의 망치로 연단된 사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