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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11) 성사
“주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1코린 16,23)
우리가 성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정의가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가시적 표현”이라고 하는 문장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 보이시는데,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인간이 알아챌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신다는 것이 그 설명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은총을 내려주심에 있어서 그것을 인간이 알아챌 수 있는 방법으로 전하신다는 것은 한없는 자비이며, 복된 기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짐으로써 하느님의 은총 속에 머무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충분히 느끼고 깨달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나자렛 생활과 공생활 동안 그분의 말씀과 행위는 이미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가 지닌 능력을 미리 보여 주었으며,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교회에게 주어질 것을 예고하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드러내는 신비들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의 봉사자들을 통하여 성사 안에서 나누어 주시는 것의 기초가 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15항)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참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의 모든 일들을 온전히 겪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주신 말씀과 행적이야 말로 오늘날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성사들의 표본이자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사의 근원이신 원성사(元聖事, Original sacrament)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베푸는 성사들을 통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님께서 교회의 성사들을 통해 오늘도 우리와 함께 머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신 그 마음 그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머물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교회의 성사들에 참여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큰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2018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백석동 협력 사목)]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12) 교회의 성사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1코린 2,7)
“성사(聖事)”라는 말은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성사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성사(Sacramentum)”라는 말은 어디에서 비롯된 말이며, 그 중요성과 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성사”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은 그리스어로 ‘뮈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 즉, ‘신비’를 일컫는 단어가 2~3세기 고대 라틴어 번역 성경에서 ‘Sacramentum’이라는 단어로 번역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본래 ‘신비’를 일컫는 ‘μυστήριον’이라는 단어는 공관복음을 통틀어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마르 4,11 : 마태 13,11 : 루카 8,10)
그리고 이 ‘신비’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심오하고 감추어져 있던 지혜”(1코린 2,7)를 의미하며 바로 그 지혜가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1코린 1,23)를 통해서 실현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신비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참조: 한국가톨릭대사전 7권 “성사”)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성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현하시고 교회에 맡기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이며,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일곱 가지의 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성사의 개수는 12세기 전까지 30개 정도 되었는데, 12세기에 들어 성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리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에 ‘생 빅토르 후고’라는 신학자의 설명에 따라 가시적인 표징,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 은총의 포함이라는 세 가지 필수요소에 부합하는 일곱 가지로 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사의 갯수가 일곱 가지로 정리되었다고 해서 일생에 단 일곱 번만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곁에 머무르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성사로부터 시작해서 병자성사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우리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에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고 있으며, 바로 이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의 여정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곱 성사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요한 모든 단계와 시기에 관계됩니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며, 치유하고 사명을 부여합니다. 이 점에서 자연적인 삶의 단계들과 영적인 삶의 단계들은 어느 정도 유사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10항)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사들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랑 안에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성사풀이 (1) 하느님께 다가가는 일곱가지 여정
성사(聖事)는 그리스도인 삶의 여정이다.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영적으로 성장해 사명을 부여받으며, 치유되고 하느님과 일치한다. 따라서 성사의 삶에 충실하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균형 있게 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성사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사생활에 부담을 느끼고, 특히 고해성사와 혼인성사 때문에 교회를 떠나기까지 한다. 성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사로 고민하는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성사를 통해 복음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성사 풀이’를 새롭게 시작한다. 이 내용은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가 편찬하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펴낸 신자 재교육 교리 상식 교재 2 「성사」 내용을 따라 정리했다.
성사란 무엇인가?
성사는 우리 인간이 감지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거룩한 표징(말씀과 행위)이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의 행위와 성령의 힘으로 그것들이 가리키는 은총을 실제로 이루어준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84항 참조)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사를 설명할 때 감추어진 하느님의 신비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한 표징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며 그분을 만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통해 영혼과 육신이 치유되고 구원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이 구원의 체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간은 말과 몸짓, 상징적 동작 등으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합니다.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 존재인 인간은 물질적 표징과 상징으로 영적 실재를 표현하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오늘날 인간 역시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 기관을 동원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이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직접 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사를 사도들을 통해 교회에 물려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것이기에 성사는 언제나 살아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는 ‘성령의 행위’입니다.
성사생활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드님이신 구세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키심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성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고 가르칩니다.
성사는 몇 가지가 있나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은총을 전해 주시려고 성사들을 세웠다. 교회는 일곱 성사, 곧 세례ㆍ견진ㆍ성체ㆍ고해ㆍ병자ㆍ성품ㆍ혼인성사로 우리 삶의 중요한 단계와 시기마다 필요한 은총을 전해준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10항 참조)
교회 안에는 모두 일곱 성사가 있습니다. 먼저 교회에 들어오려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성사를 베풉니다. 곧 믿음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세례성사, 그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하는 견진성사, 성체와 성혈에서 영적 자양분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살게 하는 성체성사입니다. 이 성사들은 ‘입문 성사’라고 합니다.
또한, 신앙인의 영혼과 육신을 위로하고 고쳐 주는 치유의 성사 곧 고해성사와 병자성사가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세례를 받아 깨끗해진 뒤에 죄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모욕하고 자신의 영혼을 병들게 한 행위에 대해 용서받고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해 다시금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성사입니다. 병자성사는 특별히 신체의 병고에 시달리는 이에게 힘과 위로, 용기를 주는 성사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이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마련된 특별한 두 성사, 곧 성품성사와 혼인성사가 있습니다. 성품성사를 받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하도록 축성되고, 혼인성사를 받는 신자 부부는 그 혼인의 의무와 존엄성을 위해 견고해지도록 축성됩니다. 이 두 성사는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라고 합니다. 이 일곱 성사 가운데서 성체성사는 성사 중의 성사로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다른 모든 성사는 성체성사를 지향합니다.
교회는 일곱 성사가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합니다. 성사생활의 효과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교회의 모든 전례생활은 성찬의 희생 제사와 다른 성사들을 구심점으로 해서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때까지 주님의 신비인 성사를 기념할 것입니다.
‘성사를 보다’가 올바른 표현인가요?
성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된 공동체 전체가 거행하는 전례 행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40항 참조) 모든 신자는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으로 완전히 참여해야 한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완전하게 성사에 참여하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은 모두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성사에 참례하다’는 표현은 전례나 예식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사 예식에 참여해 은총을 받아 누리다’는 의미로는 ‘성사에 참여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사에 참여함’이라는 표현은 새 「로마 미사 경본」에도 자주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성사를 받다’는 표현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삼가 받다’는 뜻의 배령(拜領)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어느 성사에나 무리 없이 두루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사를 보다’라는 표현은 집전자가 성사를 거행하는 것을 그저 구경꾼처럼 지켜보는 것을 연상시킬 수 있어 적절한 표현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말 ‘보다’에는 어떤 일을 맡아 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삼자나 방관자처럼 지켜보는 의도가 아니라 맡아 한다는 뜻으로 사용한다면 우리말의 고유함을 살리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고해성사를 보다’라는 표현이 이에 해당합니다.
성사풀이 (2) 합당한 자세로 준비한 만큼 결실맺는 성사
성사는 언제나 유효한가?
성사는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성사가 맺는 결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달려 있으므로,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한 만큼 더 참된 결실을 얻게 된다.(「가톨릭교회 교리서」1128·1131항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성사를 세우시고 그 성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신앙 안에서 정당하게 거행된 성사는 언제나 유효하며, 성사의 은총은 틀림없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성사는 성사를 집전하는 사람이나 성사를 받는 사람의 개인적 신앙의 깊이나 도덕적 삶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유효합니다. 이를 ‘성사의 사효성(事效性)’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사에 참여하는 사제와 신자들의 마음가짐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모든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이기에 그 자체로 구원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하지만 성사는 신앙 안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사를 받는 사람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성사를 준비한 사람은 참된 결실을 얻습니다. 이를 ‘성사의 인효성(人效性)’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마음으로 거룩한 전례에 참여해 주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합당한 신앙의 자세로 성사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성사와 개인 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기도는 뗄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 요소와 공동체적 요소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2596항 참조) 성사는 공동체의 측면이 강조된 공적 예배다.
전례는 사적 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 예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개인적 성격을 띱니다. 성사와 개인 기도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공동체성에 있습니다. 성사는 공동체 전체가 드리는 공적 예식의 거행을 통한 기도입니다. 이와 반대로 개인 기도는 개인 차원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성사와 개인 기도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성생활은 오로지 거룩한 전례의 참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은 공동으로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또한 자기 골방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며, 더욱이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전례 헌장」 12항)
이렇게 교회는 성사생활과 함께 이루어지는 개인 기도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인 기도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 교회의 전례, 믿음과 희망, 사랑의 덕과 성사입니다. 개인 기도는 그가 바치는 기도를 통해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과 그 후에 그 전례를 내면화하고 그 전례에 동화될 수 있게 해줍니다. 또 개인 기도는 전례생활을 통해서 다듬어지고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사와 개인 기도가 조화롭게 서로를 도와주는 가운데 하느님께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는 성사가 없나요?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 주신 선물이며 신앙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교회 안에만 성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의 성사로서 자신을 하느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도구로 내어주시면서 그 계속되는 임무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 사업을 계속해 나아갈 임무를 받았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거행하는 전례들 중에서 주님이 세우신 온전한 성사가 일곱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곱 성사는 ‘교회를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두 가지 의미에서 ‘교회의 성사’입니다.
또한, 성사는 신앙을 전제로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없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성사란 당연히 있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의 교회 안에서는 어떨까요? 동방 정교회는 일곱 성사를 모두 인정합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성공회의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거행된 세례는 그 유효성이 의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55ㆍ59조 참조)
성사풀이 (3) 성사, 하느님 은총을 보고 느끼게 해주다
성사 집전자는 누구인가요?
교회는 성사를 집전하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136항 참조) 또한 성사를 거행한다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성사를 거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 성품을 받은 성직자들에게 맡겨진 특별한 역할들이 있다.
전례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그리스도께서 집전하십니다. 그리고 성사를 거행하는 사제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특별히 봉사하도록 하느님께 부름을 받아 그 직무를 수행합니다.
세례성사의 정규 집전자는 주교와 신부, 부제입니다. 정규 집전자가 없거나 장애 되는 경우에는 교구 직권자에게서 교리교사 또는 이 임무에 위탁된 다른 이가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임종 직전과 같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합당한 의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적법하게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견진성사 정규 집전자는 주교입니다. 보편법이나 특별한 허가로 이 특별 권한을 받은 신부도 이 성사를 유효하게 수여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 집전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해 성찬의 성사를 이룰 수 있는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뿐입니다. 고해성사와 병자성사의 집전자 역시 사제입니다.
성품성사의 집전자는 축성된 주교입니다.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들과 달리 집전자와 주례자가 다릅니다.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혼인 계약을 맺는 신랑 신부입니다. 혼인 주례자는 그 자리에 입회해 혼인 당사자들의 합의와 표명을 요청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주교와 본당 신부입니다.
성사를 거행할 때 물질들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성사 거행 때 쓰이는 물질적인 도구와 행위들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은총을 인간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언어, 몸짓, 동작, 그리고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 우리는 타인에게 자기 생각과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에 인간을 참여시키시고자 인간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이것을 ‘성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사는 하느님의 영적인 은총을 드러내 보이고자 물과 기름, 빵과 포도주와 같은 물질적 도구와 행위를 활용하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45항 참조)
예를 들면, 교회가 세례성사를 베풀 때 사용하는 물은 모든 죄를 씻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을 드러내며, 견진성사 때 사용하는 기름은 성령의 특별한 은총의 선물과 축복을 드러냅니다.
성사를 거행하는 특별한 시기가 있나요?
성사는 시기적으로 어떤 특정한 때나 정해진 시간에만 거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성사의 의미를 더 잘 드러내고 능동적으로 성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와 때를 권고하고 있다.
세례성사는 어느 날이든 거행될 수 있지만, 교회는 주일이나 파스카 성야에 거행하도록 권장합니다(교회법 제856조 참조). 다만 유아는 출생 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례를 받아야 하므로 본당에서는 유아세례를 위해 따로 정기적인 날을 정합니다.
견진성사의 정규 집전자는 주교입니다. 따라서 본당에서 견진성사는 주교가 봉헌하는 미사 중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들을 위한 견진성사의 경우에는 어느 사제나 거행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본당에서 모든 신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날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거행합니다. 사제는 사목상 필요하다면 평일에는 세 번까지,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네 번까지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본당에서 일반적으로 미사 전ㆍ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사제는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청하면 언제든지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병자성사 예식 중에 고해성사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병자성사는 병이나 노령으로 기력이 많이 떨어지기 시작한 신자들에게 거행됩니다. 따라서 사제와 병자의 친지들은 적절한 때에 병자들이 바로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성품성사는 주일이나 의무 축일에 장엄 미사 중에 거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목상의 이유가 있다면 평일에도 거행할 수 있습니다.
혼인성사는 원칙적으로 미사 중에 거행됩니다. 그러나 사제는 사목상 필요하다면 미사 없는 혼인 예식을 거행할 수 있습니다. 단 주님 수난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는 혼인성사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
성사풀이 (4) 준성사… 축복, 축성, 구마예식 포함
성사는 아무 곳에서나 받을 수 있나요
성사는 어디에서나 거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리는 성당이 성사를 거행하기에 알맞은 장소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80항 참조)
성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성사는 임종 세례와 같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성당이나 경당에서 거행합니다. 어른은 자신의 소속 성당에서, 유아는 부모의 소속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교회법 제857조 참조)
견진성사도 성당에서 거행합니다. 그러나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적당한 장소에서 거행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성당과 경당 등 거룩한 장소에서 거행해야 합니다. 다만 구역 미사 등 장소를 달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 단정한 곳에서 거행해야 합니다. 교회는 교구 직권자의 허락 없이 일반 개인의 집에서 사사로이 성사를 거행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교회법 제932조)
고해성사도 성당이나 경당에서 거행합니다. 사제는 참회자와 고해 사제 사이에 칸막이가 있는 고해소나 대면식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를 집전해야 합니다. 부득이한 경우 다른 장소에서 고해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병자가 있는 병원, 집, 요양원 등에서 거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당이나 다른 적당한 장소에서 줄 수 있습니다.
성품성사는 일반적으로 주교좌성당에서 거행합니다. 하지만 사목상 이유가 있다면 다른 성당이나 경당에서도 거행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몇몇 교구에서는 성품성사에 최대한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른 장소에서 거행하기도 합니다.
혼인성사는 혼인 예정자 소속 성당에서 거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구 직권자나 소속 본당 주임 신부의 허가를 받아 다른 성당이나 경당 또는 다른 적당한 장소에서 거행할 수 있습니다.
성사의 경륜’이란 말뜻은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성사를 통해 살아 계시며 활동한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성사의 경륜’이라고 부른다. 이 성사의 경륜은 교회가 성사의 전례 거행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서 얻은 열매를 전하고 나누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76항 참조
‘성사의 경륜’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경륜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경륜(經綸, administration)이란 말은 일정한 포부 아래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일을 말합니다.
경륜은 청지기가 집을 관리하고 다스리듯이(루카 16,2-4)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지상의 교회와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구원 계획을 역사 속에서 이루시고 드러나게 하시는 것으로 ‘구원 경륜’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성사의 경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사들을 통해 활동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시는 것을 뜻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오늘날 교회의 성사 안에서 그리고 성사를 통해 당신 구원의 활동을 드러내시고, 현존하게 하시고 전해 주십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오늘날 당신의 구원 계획을 성사를 통해 실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준성사는 무엇인가요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성사를 제정하셨고, 교회는 몇 가지 직무와 생활양식, 신앙생활의 다양한 상황들과 유익한 물건 등을 성화하려고 준성사를 제정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68항) 이 준성사들은 성사들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영적 효력을 가지며, 삶의 다양한 상황들을 성화시킨다.(「전례헌장」 60항)
준성사는 성사처럼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못하지만, 교회의 기도를 통해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은총에 협력하도록 결심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준성사로는 먼저 사람, 음식, 물건, 장소 등에 대한 축복이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필요한 선물을 청하는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이때 보통 예수님의 이름으로 십자 성호를 그어 축복합니다.
또 축성이 있습니다. 축성은 ‘거룩함이 함께 한다’는 뜻으로 지속적 효력을 가지는 축복을 말합니다. 이러한 축성은 하느님께 봉헌되어 온전히 거룩하게 구별되는 사람이나 사물들에 대한 축복을 가리킵니다.
구마 예식도 준성사에 포함됩니다. 구마 예식은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예식입니다. 장엄한 구마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아 사제만 할 수 있으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 구마는 마귀를 쫓아내거나 그 지배력에서 구해 내는 것이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주신 영적 권한으로 행하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7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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