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임재 앞에 (이사야6:1-8)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코로나 전염병으로 혼란한 세상이다. 백신이 나와서 예방접종을 한 사람 중에 혈전(피가 뭉치는 현상)이 생기는 것 때문에 저 백신을 맞아야 하나 맞지 말아야 하나? 코로나19는 어디서 걸리는지 알 수가 없다. 이 근래에 평창의 어떤 장례식장에서 19명이나 확진자가 나왔다. 몇 달 전만 해도 평창은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치 지뢰밭을 걷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고 신경 쓰이는 세상이다. 지뢰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듯이 코로나도 보이지를 않으니..
혼란의 시대,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어렵고 힘든 세상, 어두운 먹구름이 세상을 덮고 있는 것처럼 막연한 두려움으로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하늘의 신비한 예배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셨다.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하늘의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 광경을 보고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입술이 부정한 자로 하나님을 뵙게 되었구나.’ 그때 천사 중 하나가 제단에 불타고 있는 숯불 하나를 가져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이사야가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소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첫째, 세상이 혼란할 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야 한다.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려워했다. 그때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갔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했다.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때, 이사야는 성전으로 갔다.
교회를 다니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두가지 패턴이 있다.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없어 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 다른 하나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이다. 평소에 평범한 일상 속에서 교회 다니고 예배드리고 헌금하고...그러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더 열심히 나아가고 더 열심히 성전을 찾고, 더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정상이다.
우리 성도들은 대부분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목사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런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나도 병에 걸렸을 때,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내가 군대에 갔을 때, 4월 초순, 목련 진달래가 온 세상에 만발했을 때,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 같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하고 말씀 읽고, 남들 훈련받다가 10분간 휴식시간에 담배일방 장전하고 조교가 큰 솔리로 말할 때 성경구절을 외웠다.
힘들수록 더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아예 너는 교회에서 살아라 하고 교회로 발령내어 주셨다. 제 주특기가 104, M60에서 980, 군종병 주특기로 되었다,
연대 군종병이 되어 교회를 지키고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내 나이 스물세살에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교회학교를 내가 담당했다. 교회 전도사가 되었던 것이다. 어려울 때 성전으로 가면,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신다.
창세기 35장에 보면, 야곱이 두려움이 가득할 때가 있었다. 아들들이 여동생 디나의 일로 분노하여 세겜 가문의 사람들을 부당한 방법으로 몰살을 했던 것이다. 야곱이 두려워했다. 그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 하셨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집이 성전이다.
야곱은 성전, 벧엘로 올라갔다.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하고 의복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이 야곱과 그 가문을 지켜 주시고 보호하셨다.
온 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로 우리는 두렵고 불안한 세상을 살고 있다.
마음이 불안할 때,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의 현실이 절망이 가득할 때,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 마음에 낙심이 될 때,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할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둘째, 이사야는 하나님을 뵙고 부정한 자신을 발견했다.
6절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는 하늘 예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죄된 모습을 발견했다.
이사야는 자신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깨끗한 줄 알았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사람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믿음이 좋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심이 있었다.
그런데 하늘의 예배에 참여했더니 자신이 불결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부정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죄 많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거짓에 가득찬 인간이구나.. 나는 저주받을 인간이구나..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절망적인 모습이다. 희망이 없는 자신을 보았다. 초라한 자신을 보았다. 잘난 척, 무엇인가 된 척 했던 자신을 보았다. 나라가 절망스럽고 공무원들이 절망스럽고, 백성의 지도자가 절망스러웠는데 이사야가 하나님을 뵈니 절망스런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죽게 된 사람도 자기 자신이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 살길이 있다. 이사야가 ‘나는 죽게 되었다’고 탄식할 때, 천사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불 하나를 들고 와서 이사야의 입에 댔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았다.
오늘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오신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발견할 때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해 주신다. 우리의 허물과 죄는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된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셋째,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명을 발견했다. (8절)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던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8절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탄식과 근심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를 앞에 두고 하나님은 ‘누가 우리를 위해 갈 것인가?’ 하셨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하나님 앞에 이사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소서.’
그 이후 이사야는 평생을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 살게 된다. 어두운 시대에 미래의 희망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을 했고, 사는 것이 힘들고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전했다. 캄캄한 밤과 같이 어두운 세상에서는 일어나 빛이 되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다했다.
언젠가 나이드신 어른들을 모시고 효도관광을 갔다. 민속마을로 갔다. 추수철이어서 대부분의 논에서 벼를 수확했다. 어떤 논에 벼가 그대로 있었다. 너무 오래 되어서 벼가 허옇게 되어 있었다. 아.. 저 논에는 왜 추수를 안했을까? 벼를 버리게 되겠구나.
예수님이 요한복음4장에서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않느냐?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4:35-36) 추수할 때가 지난 곡식을 보았을 때 안타까운 마음과 걱정이 된다. 우리 예수님은 추수 때가 지난 밭을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다 익어 거두어야 할 열매, 영혼의 추수를 말씀하신 것이다.
밭을 보라 추수 때가 되었다. 누가 나가서 추수할 것인가? 이사야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해 갈 것인가?’ 하신다.
어떤 관광지에 바위 끝에 절벽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어떤 아가씨가 발을 헛디뎌 절벽아래 바다에 떨어졌다. 수영을 못하는지 아가씨가 물 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했다. 모두 걱정을 했지만 아무도 30m 절벽 아래 로 뛰어내리지를 않았다. 그런데 어떤 할아버지가 용감하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물에 빠져 죽어가던 아가씨를 구했다. 그 할아버지는 갑자기 영웅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물에서 나오자 모두 박수치고 환호했다. 마침 신문기자가 있어서 인터뷰를 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젊은이도 겁이 나서 뛰어 내리지 못하는데..’ 할아버지가 기자의 말을 끊고 ‘아, 어떤 놈이 내 등을 떠밀었어...’ 허걱... 어떤 사람이 할배 등을 떠밀었다는...
누가 세상이라는 밭에 말씀이라는 낫을 가지고 추수하러 갈 것인가? 누가 갈 것인가? 할아버지 등을 떠밀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이사야처럼 용감하게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할 것인가?
우리는 사명이라고 하면 무슨 거창한 것을 떠올린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사명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은 무엇인가? 나는 과거 폐병이 걸렸다. 병에 걸리기 전 나는 무슨 사명이 있는지 몰랐다. 병에 걸린 나는 낫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새벽에도 기도하고 낮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했다. 교회에서도 기도하고 산에서도 기도하고 들에서도 기도했다. 기도제목은 살려 달라는.. 어느날 보니 내 기도가 ‘나를 살려 주시면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나는 폐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곧 군대로 부름을 받았다.
군에서 제대하고는 막막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신학교 가려면 학력도 안되는데...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공장 문을 닫는 바람에 다시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가 1979년, 40년 전이다. 사명을 다하려면 어렵고 힘든 일도 있다. 그 다음해에 대학예비고사를 보았고 신학교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