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과 밭 사이 돌로 에워진 길을 숲속에서 우짖는 산새 소리
를 들으며 텃밭을 향하여 느릿느릿 걷다 보면
풀잎 끝에 매달려 있는 이슬이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草露人生라 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사라지듯 우리 인생도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보내야 한다
아침 저녘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노릿노릿하게
변해가는 초등학교 시절 등굣길에서는 오솔길가의 풀잎 이슬이
고무신 속의 헐거워진 양말을 젖이었기에 쩌억 쩌억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고무신 바닥에 구멍이 뚫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루하루의 반복적인 일상과 노동이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오롯이 나를 위하여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아 현실을 마주할 때의 모습은 항상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동래 한양 아파트에서 마누라와 함께 엄마를 살피고 나는 여유 있는 아침 시간에 수안 인정시장의 풍물을 구경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인도에 사시사철 생산되는 농산물, 수산물을 좌판 위에 널러 놓고 파는 할머니들에게서 삶의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할머니들이 나이를 잊은 듯 혼신을 바쳐 팽팽하게 유감없이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조 씨 밭 앞개울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물 길어가며 보이는 부추밭은 며칠 전에 베어 냈는데 부추밭이 또 파릇파릇하다
어느 날 조 씨가 " 김 씨 요기에서 요까지 베어가세요 " 라고 해서 다음날 마누라가 부엌에서 사용하는 가위로 곱게 잘라 왔다. 마누라가 보더니 "너무 억세다"라고 한다.
需要가 供給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알기에는 오래가지 않았다.
황 씨에게 퇴비 넷 포대를 빌렸다. 빨리 갚지 않는다고 성화가 대단하다.
퇴비는 농협에서 회원에게 밭 최대한 가까이까지 배달해 주고
가격도 대단히 저렴하다.
나같이 비회원은 종묘상에서 시중가 2,000원으로 구입하여 밭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데 한 포대가 20kg다. 보통 10포대 구입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황 씨도 나도 배달해 주는 오솔길에서 밭까지 300~400m를
옮겨야 한다, 황 씨는 노끈을 이용한 등짐으로 한 번에 두 포대로, 나는 어깨에 한 포대씩 짊어지고 옮겼다.
황씨나이 80대 초 나는 60대 중반인데 내가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농촌에서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들 위로 새 떼들이 천진난만하게 우짖고 날았다.
목수 김 씨 밭 주변에는 넝굴 장미 등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목수 김 씨 밭이 아름다운 것은 올챙이가 노니는 옹달샘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밭 주변에 활짝 핀 꽃 들이 동네에서 버려진 화분들을 주워다 살린 꽃들이었기에 더욱 탐스러웠다.
황폐되고 버려진 황무지에서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한국전쟁 이후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기에
더 황폐해진 대한민국의 산야에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녹색 꿈을 심고 오늘날 대한민국 숲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앞을 내다보는 한 정치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1960~1970년대에 걸쳐 治山治水에 들인 공은
그의 모든 정치적 허물을 덮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가 일궈낸 대한민국의 숲이 곳곳에서 타들어가고 있다. 건조한 봄철의 산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숲 도처에서 가치가 허물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지는 모습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지만 작금의 위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가히 총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