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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며 자라났고 본시 이렇게 생겼다
둘째 본래는 호남형으로 생겼는데 명나라를 창업하면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 원한을 가진 무리의 암살을 피하기 위해 본래의 초상화는 궁중에서만 두고 민간에는 이상하게 그린 초상화를 의도적으로 퍼뜨렸다
셋째 명을 이은 청나라에서 명의 태조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남으로 그렸다
네째 당시 관상학이 유행하면서 주원장을 관상학의 골상을 의도적 더입혀 다소 신격화하기 위해 그린 것인데 현대의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
다섯째 본래 못생겼는데 화공들이 사실적으로 그렸더니 내치고 실물과는 다르게 잘생기게 그린 초상화를 채택했는데 이때 내쳐진 화공들이 앙심을 품고 아주 더 못생기게 초상화를 그려 민간에 퍼뜨렸다.
먼저 청나라에서 의도적으로 이상하게 그렸다는 것은 명말에 그려진 초상화도 추남으로 그려진것으로 봐서 아닌듯 하다.
주원장의 공식적인 초상화(명왕실의 봉선전에 봉안된)를 살펴보면
위의 것은 40살정도에 그려진 것이다
위의것은 노년에 그려진 것이다
물론 실물이 아니고 잘생긴 얼굴로 각색되었을수도 있다
그럼 주원장의 후대 왕들의 어머니의 초상화를 보자
그리고 후손들의 초상화를 보면
후손들은 주원장과 마씨의 후손이니 닮았을텐데 맨위의 모습이 안보이고 공식적인 초상화의 모습과 닮았다.
괴상한 모습으로 그려진 초상화는 異像本이라고 하는데 이 초상화들은 궁정에 보관되었던 것들이 아니고 민간에서 제작된 것들이라 한다.
이상본들을 살펴보자
위의 초상화는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남경의 명효릉에 있는 초상화
기타로
민간에서 그려진 초상화
다 특이하게 주걱턱이 심하고 얼굴에 곰보자국이 많고 흉하게 그려져있다. 위의 후손들의 초상화와 비교하면 많이 다르다. 중국의 다른 제왕들의 초상화는 대개 1가지씩만 전해지고 있는데 왜 주원장만 여러형태의 초상화가 전해질까?
암살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의 근거를 살펴보면
또 주원장은 의심이 많아 궁에만 있지않고 몰래 민간을 살펴보는 밀행을 자주했는데 밀행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민간에 자신의 본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의 초상화를 의도적으로 퍼뜨렸다고 하는 주장이다
화공들이 의도적으로 더 못생기게 그렸다는 것은 절대왕정 시대에 힘들것 같다. 명에는 동창같은 첩보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에 미루어 봤을때
그럼 마지막으로 관상학적으로 신격화하기 위해 이렇게 그렸다는 주장을 살펴보면 異像本들을 五嶽朝天식으로 그려진 것들이라 한다
용의 관상을 가진것으로 묘사하다 보니 괴이한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논형은 중국 관상학의 시초가 되는 책으로 역대 중국 제왕들의 모습은 남들과 특이하게 다르고 태어날때부터 남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제왕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즉 중국 역대왕조중 드물게 한족이 제왕이 된 주원장을 드높이고 관상부터 제왕의 풍모를 가진것으로 묘사하다보니 오늘날 우리에게는 괴상한 모습으로 보여지게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주원장의 다른 초상화를 더 보면
위의 초상화는 오악조천식으로 묘사되었고
임진왜란시기 만력제때의 궁중에서 그려진 초상화는 또 다르게 그려져있다.
역대 중국의 제왕들의 초상화는 대개 1본씩이 존재하는데 주원장만 십여개의 異本이 있는 이유는 주원장과 명조정에서 의도적으로 퍼뜨렸다고 밖에 볼수 없는데 그 이유는 암살을 피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을테고 관상학적으로 용의 형상을 타고난 하늘이 내린 인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일수도 있겠다 추측된다.
지금도 정치지도자의 외모가 중요시되는데 과거에도 정치지도자의 외모는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으리라. 외모가 천하게 생기고 웃음이 나올정도이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져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을듯 하다. 개인적으로 봉선전에 봉안된 공식 초상화가 좀더 주원장의 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부모도 고향도 잘모르고 절에서 살다가 초적출신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오악조천식이면 마황후가 좋아하지 않았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