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시104:19-35)
갈등
1. 1857년 9월 1일,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는 사람들의 숨결과 발자국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은행이 무너지고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주가는 바닥을 쳤고, 상점의 창문에는“임대”라는 종이가 여기저기에 붙었어요. 그해 세계 금융 위기는 많은 가정의 희망을 삼켰습니다. 복잡한 도시의 길모퉁이, 노후한 글자판이 걸린 교회 건물 안에서 한 남자가 홀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제레마이아 렌피어(Jeremiah Lanphier). 그는 상인이었고, 특별한 영향력도 없었습니다.
그날 그는 정오 기도 모임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30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바깥에는 말발굽 소리, 마차 바퀴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묵직하게 울렸습니다. 교회 안은 숨소리조차 울릴 만큼 고요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도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지금 이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세상은 이렇게 흔들리는데, 하나님이 정말 일하실까?”잠시 후,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날 모인 사람은 여섯 명이었습니다. 기도 모임은 매주 계속되었습니다. 숫자는 조금씩 늘었고, 그 작은 불씨는 몇 달 뒤 도시 전체로 번졌습니다.
2. 뉴욕 전역에서 정오 기도 모임이 시작되고, 미국 전역으로까지 퍼졌습니다. 역사상 드문 대규모 영적 회심과 회복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역사가들은 이것을“1857년 미국 대부흥(The Layman’s Prayer Revival)”이라고 부릅니다. 이 모든 변화가 삶의 밤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은 한 사람의 조용한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은 사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상도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리고 미래도 흔들릴 때가 있어요. 빛이 보이지 않고. 길이 보이지 않고.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두려움과 불안뿐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19절,“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자는 때를 알도다.”세상이 불안하고 마음이 흔들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질서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붙드시고. 생명을 지키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아갑니다. 오늘 시인은 노래하며 이렇게 묻습니다.“밤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는가?”
갈등 심화
3. 오늘 시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밤의 어둠 속에 울부짖는 생명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20–21절,“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 젊은 사자들은 그들의 먹이를 쫓아 부르짖으며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하다가.”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자, 숨어 있던 짐승들이 슬금슬금 움직여 나옵니다. 사자는 숲속에서 포효하며 먹이를 찾아 헤맵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그 울음소리. 갈기갈기 찢기는 울부짖음. 숨을 죽이고 있는 생명체들의 긴장감을 시인은 노래했어요.
깊은 숲속, 달빛조차 닿지 않는 검은 어둠 속에서 사자의 갈기가 흔들립니다. 긴 풀숲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들려오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그 소리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슴 깊은 곳을 흔들어 놓습니다. 시인은 이 장면을 왜 말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이 우리 인생의 밤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찾아올 때, 우리는 깊은 곳에서 두려움의 소리를 듣습니다. 몸은 멀쩡한데 영혼이 자꾸 떨립니다. 집에 가만히 있어도 불안합니다.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는데 혼자만 아프고 무너질 것 같습니다. 병원의 진단서 한 장이 우리를 무너뜨릴 때가 있습니다.
4. 갑작스런 관계의 갈등이 영혼을 흔들 때가 있습니다. 재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장래의 문제, 심지어 신앙의 문제까지 어둠 속에서 울부짖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입니다. 회사에 나가고, 은행에 들르고, 대화를 하고 웃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밤이 찾아와 있습니다.“과연 이 길이 맞는가?”“나는 옳게 살아가고 있는가?”“하나님이 정말 나를 돌보고 계신가?”밤의 어둠 속에서는 사자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마치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지 않는 것 같고. 나를 잊으신 것 같고. 나를 외면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혼란스러운 현실을 봅니다.
22–23절,“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들의 굴속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일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해가 떠오르면 사자들은 물러갑니다. 사람들은 일하러 나갑니다.
밤에 포효하던 사자가 해가 떠오르자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가 눕습니다.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일터로 나섭니다.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리고, 하루를 살아가요. 사람이 나가 일하는 이 장면이 정말 평안하기만 한 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일터로 나가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어둠입니다. 해는 떠올랐는데, 마음은 어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사자는 물러갔는데,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5. 해가 떠올랐지만, 빛이 비추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침인데, 속으로는 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현실은 때로 하나님을 보이지 않게 합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두려움은 커지고. 믿음은 작아지고 하나님의 손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갈등 앞에 섭니다.“밤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알고도 흔들리는가?”“어떻게 이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다시 볼 수 있는가?”
실마리
6. 오늘 시인은 밤의 어둠만 노래하지 않습니다. 밤 속에서 포효하는 사자의 울음소리만 들려주고 끝나지 않습니다. 어둠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불안의 소리를 듣게 하더니, 곧이어 완전히 다른 장면을 보여줍니다.“밤이 깊어도 아침은 반드시 온다.”(22-23절) 이 말은 단순한 위로의 노래가 아닙니다. 자연의 질서를 관찰하여 발견한 영적 진리입니다. 밤과 낮, 어둠과 빛, 정지와 활동이 반복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위에 리듬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밤이 있다면, 아침도 있습니다. 어둠이 있다면, 빛도 있습니다. 고요가 있다면, 활동도 있습니다. 반드시. 언제나. 흔들림 없이.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밤에 포효하던 사자가 새벽이 오자 숲으로 돌아갑니다. 밤이었던 인생의 두려움이 햇살 아래에서 물러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밤새 포효하던 짐승의 소리가 아침의 새소리로 바뀝니다. 밤새 흔들리던 마음의 떨림이 아침의 평안과 함께 사라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 아침을 누가 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밤이 올 때 하나님이 계셨던 것처럼, 아침이 올 때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시인은,“해는 그 지는 때를 안다.”(19절)“사람은 일하러 나간다.”(23절) 이 노래는 밤과 낮을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일할 때와 쉴 때도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역사의 때도, 우리의 삶의 때도,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7.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둠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실은 변하지 않고, 고통은 조금도 줄어드는 것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밤을 묘사하면서도 밤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밤을 주신 분이시며, 동시에 아침을 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도 하나님은 잃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시간 속에서 흔들려도 하나님은 시간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고 계십니다. 시30:5의 말씀이 여기서 떠오릅니다.“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사랑하는 여러분, 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 안에서 밤은 반드시 낮이 됩니다. 어둠은 반드시 물러갑니다. 우리는 밤이 깊어질수록 흔들립니다. 사자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두려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시인은 아주 놀라운 전환을 보여줍니다. 24절,“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나이다.”시인은 시선의 방향을 완전히 바꿉니다. 시인은 밤의 이미지에서 창조의 세계로 눈을 돌립니다.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 울부짖던 사자의 소리를 듣던 그 귀가 이제는 다른 소리를 듣습니다.
8. 생명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숨결, 바다 위를 스치는 바람의 노래, 기지개를 펴는 생명들의 살아있는 소리. 25-26절,“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나이다, 그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이제 바다가 보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파도. 그 아래에서 다니는 수많은 생물들. 바다의 바닥에서부터 수면 위까지 온 생명이 끊임없이 꿈틀대고 살아 숨 쉽니다. 바다는 혼돈의 상징이었습니다. 깊은 바다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영역,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오는 공간이었습니다. 시인은 그 혼돈의 바다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풍성함을 봅니다.
레위야단은 고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입니다. 리워야단을 바다악어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바다에서 풍성하게 살아가는 크고 신비한 피조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리워야단이 장난감처럼 놀게 하셨습니다. 이 노래는 혼돈의 세력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두려움의 근원도 하나님의 발아래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힘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선언입니다. 밤-어둠은 우리를 속입니다.“너는 혼자다.”“너는 약하다.”“너의 문제는 너무 크다.”“하나님은 침묵하신다.”바다는 진실을 보여줍니다.“하나님이 너를 지으셨다.”“하나님이 세상을 붙들고 계신다”“모든 생명이 그분 안에서 산다.”
복음 제시
9. 27–30절,“이 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그들에게 주시면 그들은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만물에게 먹을 것을 주시듯, 우리 삶에도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살피십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 하나님의 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자꾸 무너지고. 자꾸 흔들리고. 자꾸 좌절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세우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은 어둠 속에 빛으로 오셨어요. 절망 속에 소망으로 오셨습니다. 마른 땅에 생명수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공급의 완전한 근원입니다.“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들려도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떨려도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두려워도 어둠 속에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손안에 있습니다.
기대
10. 시인의 결론은 33절,“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우리가 왜 찬양합니까? 왜 노래합니까? 왜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주인-시간의 주인-생명의 주인이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밤 속에 있습니까? 어떤 어둠 속에 있습니까? 어떤 혼란과 두려움 속에 있습니까? 오늘 시인은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이 밤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낮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과 존재와 생명을 주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최종 목적은 찬양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상황이 아니라 창조주를 바라보십시오. 할렐루야! 시인은“나는 너를 만들었고, 너를 알고 있고, 너를 먹이고, 너를 지키고, 너를 새롭게 하며, 너를 결코 놓지 않는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둠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창조주의 숨결 안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렐루야!”이렇게 찬양하며 살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