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파도, 붉은 기운 걷고 오면 또 그리워지는 그 길
해파랑길 울진구간 24코스(19km)-화려함 보다 바다와 송림을 따라 우직하게 뻗은 힐링길
해파랑길은 해, 파란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다. 한 여행객이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뒤로하고 해파랑길 24코스인 후포 등기산공원을 지나고 있다.
월송정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해파랑길을 걷고 있는 여행객
노송이 우거진 숲길
백년손님 촬영지인 후포 벽화마을
후포항의 한 상인이 경매가 끝난 대게 홍게를 가마솥에서 쪄내 들어보이고 있다.
명물로 자리잡은 후포 출렁다리
[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
입춘(立春)을 지났지만 아직 동장군은 물러날 생각이 없나봅니다. 연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니 말입니다. 경북 울진으로 갑니다.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한결 누그러진 바람에 봄기운이 살포시 느껴집니다. 겨울을 밀어내듯 출렁이는 해안가 파도는 촉촉하고 포근합니다.
이번 여정은 쪽빛 파도와 봄내음을 맡으며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입니다. 동해를 박차고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친구삼아 걷는다는 뜻을 지닌 길입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장장 770㎞나 이어져 있습니다.
2016년 5월 완전히 개통한 길은 7번 국도를 따라 기존 부산 갈맷길, 영덕 블루로드, 울진 바닷길, 강릉 바우길 등 동해안의 명소를 품고 있습니다. 이중 울진 구간은 23~27코스로 78.3km에 이릅니다. 동해안의 절경과 바닷사람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해파랑길 24코스(19km)를 따라 이른 봄마중을 떠나봅니다. 기교나 화려함 없이 바다와 송림을 따라 우직하게 뻗어 있어 최고의 힐링 코스입니다.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후포 등기산과 월송정, 조선시대 울릉도를 관리하던 수토사들이 머물던 대풍헌, 바다풍경이 아름다운 기성면으로 이어집니다. 또 있습니다. 새롭게 만든 등기산 출렁다리와 스카이워크, 백년손님 촬영지, 대게 등 색다른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합니다.
이른 새벽 후포항 공판장에 섰다. 해파랑길 24코스 들머리다. 공판장은 싱싱한 수산물로 활력이 넘친다. 항구로 돌아온 어선들이 대게와 홍게를 쏟아낸다. 긴 장화에 고무장갑으로 무장 한 어부들은 호흡 척척 대게를 어판장 바닥에 깔며 경매를 기다린다.
동해안에서도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대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이곳 후포항이다. 국내 최대 대게 주산지인 후포는 해마다 2~3월이면 대게를 맛보려는 이들로 부산하다. 매몰찬 추위에 맛과 살을 키우는 대게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시끌벅적 삶의 현장을 지나 등대가 있는 등기산 공원으로 간다. TV예능 프로그램인 백년손님 촬영지인 후포마을 골목길은 다양한 벽화가 눈길을 끈다.
등기산 정상에 서면 오른쪽으로 후포항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해가 파도를 일렁이며 솟아오른다. 탁 트여 가슴이 시원한 바다가 온통 붉은 빛을 토해낸다. 아침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노목이 환상적이다.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풍경화의 주인공이 된다.
갓바위를 연결하는 41m 출렁다리를 지나 전망대에 서면 3~4월 준공을 앞둔 스카이워크가 눈에 들어온다. 해상 높이 50m, 길이 135m로 완공되면 관광명소로 될 듯하다. 특히 스카이웨이 중간에 만들어진 유리구간은 여행객들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해안을 따라 거일마을로 향한다. 늘 하역 작업을 하던 평해광업소 전용부두에는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만 분주하다. 거일마을은 대게 원조마을이다. 바닷가에는 큼지막한 대게 조형물과 대게낚시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겨울 추위에 오랫동안 문을 열지 못했던 해상낚시공원도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하다.
벽화가 그려진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 지루할 때 쯤 강을 건너 소나무 숲길로 접어든다. 울창한 방풍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숲길을 나오면 월송정이 코앞이다. 관동팔경중 하나인 월송정에 오른다. 아래로 소나무가 있고 멀리 바다가 보인다. 조상들의 이야기가 묻어있고 추억을 담아내던 시간들이 멈춰져 있다. 정자에 올라 잠시 시인묵객이 되어본다.
월송정은 한때 달밤에 송림 속에서 놀았다 하여 월송정(月松亭)이라고 했고, 월국(越國)에서 송묘(松苗)를 가져다 심었다 하여 월송정(越松亭)이라고도 한다. 또 소나무 너머에 있는 정자라는 의미의 월송정(越松亭)이라고도 불린다.
정자에 앉아 걸어온 바닷길을 그려본다. 바다와 나무와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오롯이 눈앞을 지나간다. 월송정 입구에는 평해 황씨 시조 종택이 있다. 종택 옆으로 수놓은 송림의 환상적인 풍경은 수묵화처럼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걸음을 가볍게 구산항으로 간다. 출항을 위한 채비를 하듯 어구를 정비하는 어부들의 바쁜 몸놀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중간지점에 독도 조형물과 대풍헌이 보인다. 울릉도를 향하던 수토사들이 이곳에서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었을 방을 구경한다. 잠시나마 상상속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속으로 빠져든다. 수토사들은 현 구산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인 어부들을 수색하고 토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또 궂은 날씨에는 대풍헌에서 머물며 파도가 잔잔해 지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대풍헌을 나서면 걸음이 빨라진다. 종착지인 기성면이 가까워지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다양한 모습의 기암이 바다를 수놓고 있다. 싱그러운 솔밭과 새하얀 모래 해변 등 시시각각 다른 매력적인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눈길을 붙드는 어디에나 걸음을 멈추면 그곳이 바로 봄맞이 명당이 된다.
울진비행훈련원을 지나면 기성이 코앞이다. 기성공용정류장에서 24코스는 끝난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템프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영덕이나 삼척 등으로 가는 버스들이 자주 있어 원점회귀로 좋다.
24코스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기성면에는 망양정 옛터가 있다. 이정표 앞 골목을 따라가면 가파른 계단이 나오고 그 위에 옛터가 있다. 풀들이 무성한 이곳엔 큰 소나무가 바다를 향해 서있고 망양정 옛터임을 알리는 비석만이 쓸쓸히 세월을 견디고 있다. 지금의 망양정은 왕피천이 동해와 합류하는 울진읍 망양정해변 부근 언덕에 있다.
울진=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풍기IC를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영주와 봉화를 거치면 울진 서면이 나온다.
여기서 불영계곡을 지나면 후포항이 가깝다. 영동고속도로 강릉에서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7번 국도를 타면 후포읍까지 바로 갈 수 있다.
상주-영덕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2017년 대게 홍게 축제모습
축제=
울진에서 대게의 참맛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2018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가 3월1일부터 3월4일까지 후포항 한마음광장 일대에서 열린다. 맛과 영양이 풍부한 울진대게와 쫄깃하고 담백한 풍미의 붉은대게는 누구에게나 인기다. 올해 축제에는 월송 큰 줄 당기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더불어 대게 플래시몹, 대게송, 대게춤 등 다양한 주제로 펼쳐진다. 이 외에도 관광객 참여 체험놀이마당 및 레크리에이션, 대게 및 붉은대게 직판, 관광객 특별 경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먹거리=
죽변과 후포항 일대에 맛집이 많다.
이중 해파랑길 24코스가 시작되는 후포항에 있는 왕돌회수산(054-788-4959)은 가마솥에서 쪄내는 대게와 홍게로 유명하다.
특히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과 정직함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비결이다.
이외에도 홍게탕, 활어회 등을 맛나게 내놓다. 망양정 아래에 있는 망양정횟집은 해물칼국수로 이름났다.
볼거리=
최근 매화리에 친숙한 벽화가 생겼다.
울진군 매화리에서 태어난 만화가 이현세의 대표 작품들로 조성된 벽화거리(사진)다.
마을에 있는 매화 만화도서관은 누구나 편하게 쉬거나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외에도 죽변등대, 왕피천, 불영사, 금강소나무길 등 볼거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