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
직원의 노크 소리에 전성훈 씨가 도망간다.
해가 바뀌고 열흘이 지났지만, 전성훈 씨도 직원도 아직은 서로가 낯설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믿지만
당장 나눠야 할 이야기들이 있어 전성훈 씨에게 오늘도 말을 건다.
직원이 낯선지 시선을 피하고 귀를 막는 전성훈 씨.
이야기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아 잠시 기다렸다 드라이브 가자 말했다.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외투를 챙겨 입고 함께 나서주는 전성훈 씨가 고맙다.
오늘은 가조에 있는 전은경 선생님 카페로 향했다.
적막한 차 안, 노래를 틀어 어색함을 깨보려 하지만 전성훈 씨가 좋아하는 노래를 모른다.
직원이 물어도 전성훈 씨는 창밖만 보다 이내 눈을 감는다.
결국 조용히 도착한 가조, 곧바로 카페로 향한다.
다행히 전은경 선생님이 계셔서 전성훈 씨가 편하게 주문하고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근처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에 도착해 정자에 앉는다.
전성훈 씨는 기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직원을 등지고 음료를 마신다.
말없이 음료를 마시다 직원이 설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에도 귀를 막으려다 설 이야기에 한쪽 귀를 연다.
올해는 설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었다.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는 전성훈 씨를 보며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래서 지난번 전화로 들은 동생 사정을 한 번 더 설명하고
할머니 댁에서 설을 보내고 싶은지 물었다.
전성훈 씨는 다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할머니한테 전화할까요?”
직원의 말에 전성훈 씨가 돌아앉아 전화를 건다.
“누구세요?”
“네. 네.”
할머니 말에 몇 번 답하다 직원에게 전화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아, 성훈이 선생님?”
“네, 저번에 인사드렸던 박효진입니다.”
“그래요. 성훈이는 잘 있습니까?”
“네, 전성훈 씨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어디 밖에 나왔어요?”
“오늘 날씨가 좋아서 드라이브 삼아 가조에 나왔습니다.”
“잘했네.”
“오늘 연락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이번 설 일정을 여쭈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설에 여기 온다고요?”
“전성훈 씨가 설에 할머니 댁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가도 될까요?”
“나도 장을 봐야겠네. 그래야 여기 뭐를 먹이고 하지.”
“아니면 장 보는 것 도울까요? 손자랑 같이 장 보시는 건 어떠세요?”
“하하하. 도와줄 건 없어요. 설에 오세요.”
“언제쯤 가서 언제 돌아오면 좋을까요?”
“거기 편한 대로 해요.”
“저는 언제든 도울 수 있습니다. 언제가 편하신지 말씀해주세요. 그럼 저희가 일정을 의논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나도 뭐, 선생님 편한 대로 해요.”
“그럼 20일 오후에 가서 22일에 돌아오는 건 어떨까요?”
“22일? 그때는 설인데.”
“그럼 설 쇠고 23일에 돌아오면 어떨까요?”
“그래요. 그때쯤 편할 때 데리러 와요. 훈이 설 쇠고 가게.
훈이도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하니까 놀러 왔다 가요.”
통화를 마치고 할머니와 의논한 내용을 다시 설명 드렸다.
전성훈 씨도 싫지 않은지 웃으며 차로 향한다.
아마 이야기 나눌 게 더 없다는 뜻인 것 같다.
전성훈 씨가 다시 귀를 막고 직원 차에 탄다.
돌아갈 시간이 됐나 보다.
2023년 1월 10일 화요일, 박효진
1. ‘성훈 씨가 자주 가는 ‘PC U’에 여행 정보를 찾으러 갔다. 보통 여행을 갈 때, 인터넷을 통해 여행지를 검색하며 준비한다. 성훈 씨도 그렇다. (…) 즐거움을 몸으로 바로 표현한다. 가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옆에 있으니 뜨거운 열기가 바로 전해진다. 하지만 너무 뜨거워서 폭발할 것 같다. 성훈 씨에게 피시방은 어떤 의미일까? 성훈 씨에게 우리가 피시방에 온 이유를 다시 설명했다. 힘들어했다. 몸에 조금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었다. (…) 성훈 씨는 보통 검색을 하고 그림을 펼쳐본다. 옆에 따라오는 글을 읽는다. 좋아하는 그림에는 한참 웃는다. 지금까지 찾은 것을 메모장에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부산여행, 아쿠아리움, 물고기, 상어, 버스, 기차, 택시, 할머니, 점심 먹고 삼겹살, 고기’. 메모장에 다 적고 한마디 했다. “부산여행, 해운대!” 여행 단서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2016년 7월 12일, 서화평」 ‘전성훈, 여행 16-13, PC방에서 여행정보 찾기’ 발췌
2. ‘“보성 씨, 아버지, 어머니 선물 사러 가고 있잖아요. 어떤 거 드리면 좋아하실까요?” “아니, 선생님. 내 말 좀 들어봐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 계속되는 보성 씨 말에서 선물의 단서라도 잡아 볼까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설명하고 물어도 ‘뭘 사고 싶다’는 뚜렷한 의견을 찾기 힘들었다. (…) “아버지한테 보낼 건데 뭐라고 쓸까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난 잘 모르겠는데요?” 처음 편지 고를 때처럼 순탄치 않았지만 어떻게든 편지가 보성 씨 입에서 나온 말로 채워지기 바랐다. 「2019년 5월 7일, 정진호」’ ‘이보성, 가족 19-139, 주세요, 둘 다요’ 발췌
‘단서’, 단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생각, 당사자의 뜻에 닿으려는 생각, 당사자의 뜻에 닿으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성훈 씨 의견을 묻고 살피려는 선생님의 실천에서 이 말과 글이 떠올랐습니다. 정진호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고 서먹한 사이, 그조차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박효진 선생님의 강점인 격식을 갖춰 의논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이번 설에 할머니 댁에서 지내니 감사합니다. 월평
전성훈, 가족 23-1, 전성훈아름이아빠
전성훈, 가족 23-2, 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