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49
아버지에게 전화 옴.
소파 개정 시위 때 얻어터지고 들어온 전력이 있어서 시위만 벌어지면 아들의 행적을 캐고 다니는 아버지는 오늘도 역시 '시위 나가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
에이 그런데 안가요~ 라고 하자 니 몸에 네비게이션을 장착하겠다며 재차 협박.
재차 애교 떨며 안심시켜 드림.
모처럼 돈 안들이고 효도한 것 같아 개운함.
14: 30
상쾌하고 깨끗한 몸으로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감.
샤워기를 틀자 보일러의 고장을 알리는 경고등 들어옴.
욕지거리 내뱉음.
초장부터 김빠짐을 느끼며 계곡물에 버금가는 얼음장같은 찬물로 머리만 감고 면도 대충 함.
15: 06
헤어진 여친의 홈피 방문.
시위에 참가하려는 듯한 느낌의 문구 발견.
다칠까봐 걱정 되기 시작.
15: 07
다칠까봐 매우 걱정되기 시작.
15: 08
성격상 걱정이 목구멍에 걸려 아무 일도 못하기 시작.
15: 12
헤여진 여친에게 전화 연결 시도.
받지 않음. -_-
15: 13
그녀에게 메일을 보냄.
시위 가지 말라, 다친다, 참가해도 가두행진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제발 퇴근 전에 메일을 읽으라고 기원.
16: 56
옛날에 함께 일했던 연출부 女 ('숑'이라 불림) 에게 전화 옴.
숑이 저녁에 뭐하냐고 물어옴.
시위간다고 대답하자 괴성을 지르며 자기도 시위 가자고 하려고 했다며 만나서 함께해요~ 라고 외침.
17: 40
헤어진 여친에게 답 메일 옴.
알겠다고 고맙다고 오빠도 몸조심하라고 함.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하다 생이별한 호국 청년단 커플이라도 된 것 같아 슬퍼짐.
18: 35
광화문으로 이동중 친한 시나리오 작가형 ('낙타' 라 불림) 에게 전화해서 동참을 호소...까진 아니고 형 나오슈 하자 바로 수용.
합류하기로 함.
19: 00
광화문 역 6번 출구 동화면세점 앞.
숑 안 보임. 연락 시도.
지하철인데 20분 늦는다 함.
19: 20
숑 도착. 소라광장으로 이동하려 하자 아고라에서 들은 정보를 쏟아내며 오늘은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위하자고 제안.
첫마디부터 뭔가 격한 시위를 체혐하려는 듯한 느낌 감지.
이리저리 말을 돌려 일단 목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소라광장으로 끌고 감.
19: 54
소라광장 시위가 너무 평화적이자 전투를 하러 나온 숑이 불만을 터뜨림.
동화면세점 앞으로 가서 계속 구호를 외치자고 안달냄.
그 때 낙타형이 합류하자 처음 보는 남자 앞이라 그런지 2분 정도 잠잠해짐.
하지만 이내 자기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다며 좀 더 거친 것을 요구하며 안달 복달.
20: 02
시위대가 광화문으로 이동했다는 허위 정보 들어왔으나 우리는 허위정보를 믿어버림.
숑이 '드디어 시작인가' 라는 비장한 멘트 날리며 분연히 일어섬.
내 몸에서도 살짝 엔돌핀 감돌며 약에 취한 듯 나도 모르게 광화문쪽으로 앞장섬.
20: 05
광화문은 개뿔.
다 쳐막고 있어서 광화문 쪽으로 건너갈 수 조차 업뜸. -_-
융통성있는 숑이 동화면세점 앞의 네버엔딩 구호 시위대에 끼자고 함.
동화면세점 앞에 있겠다던 디오게네스에게 전화 함.
디오게네스와 합류.
구호 외치기 시작.
낙타형은 거의 침묵시위에 참가한 듯한 분위기.
X 표시된 마스크라도 사다줄까 잠시 고민함.
20: 20 경
키 큰 블락머신 합류.
숑이 민감한 내 귀에 대고 속닥속닥 블락머신에 대해 이것 저것 신상을 물어봐 옴.
간지럽다고 말해줌.
20: 38
숑이 그냥 지 갈길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Hello~ Come on~!!!" (안녕하세요 백인 아저씨,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시렵니까?)
라고 고급영어 외쳐 주변인들의 웃음을 자아냄.
20: 55
목도 지치고 몸도 노골노골해지기 시작.
만땅 충전한 에너지가 두시간만에 반으로 줄자 또 슬퍼지기 시작.
술마시고 싶어짐.
이제 그만하고 술이나 때리러 가자는 말에 낙타형이 슬그머니 동조하지만
농담으로 알아들은 열혈소녀 숑이 재밌는 농담이라는 듯 웃어제낌.
이걸 어떻게 진지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
21: 10
시위대 내부에서 해산 후 집합 장소 & 이동 경로에 대한 여러가지 소문이 창궐.
정확한 정보를 알아오려는 디오게네스 바빠짐.
우리는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시위든 어디든 이동을 준비하기 시작.
하지만 숑은 가두 행진에 반드시 참가할 것을 강경하게 천명하고
나와 낙타형은 여전히 '술 빨러 가자는 말을 어떻게 진지하게 전달할까' 고민함.
블락머신은 일단 어느쪽이든 결정되는 데로 따라올 것 같은 모양새.
디오게네스는 자꾸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함.
21: 30
소라광장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하며 명동 쪽으로 이동했다는 정보 입수함.
우리도 명동 쪽으로 가기로 결정.
낙타형과 나는 속으로 '명동에서 술 먹어야겠군' 이라는 생각을 공유함.
21: 35
광화문에서 명동쪽으로 가는 길.
바람도 선선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수백의 시민들이 우리 주변에 있고
모처럼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하고 상쾌한 기분이 됨.
이런게 진짜 흐뭇한 산책...
22: 00
명동에 도착했으나 시위대의 촛농하나 안보임.
이때다 싶어 긴급히 제안.
덥고 피곤하니 일단 포장마차에서 목을 축이다가 시위대가 돌아오거나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그 때 2차 참가를 하자.
숑은 자기는 술먹으러 온거 아니라고, 자기는 오늘 저항하러 나왔다고 강경한 태도.
그러나 이미 포장마차 자리를 잡은 낙타형 발견.
숑, 낙타형, 블락머신, 나 맥주로 지친 목을 달램.
24: 00
블락머신이 며칠 과로를 한 관계로 몹시 피곤해하여 블락머신을 귀가조치 시킴.
여전히 시위에 참가중인 디오게네스에게 전화함.
종각역 앞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라고 알려줌.
숑이 다시 저항정신을 불태우며 시위현장으로 가려고 함.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
내 한 몸 상관없으나 시위에 한번도 참가해보지 않은 쪼그만 여자아이에겐 분명히 무리일 몸싸움...
이리저리 말 돌리며 (정확히는 그럼 종각역에서 술마시자고 함. 낙타형 동의표시) 집에 보내려 하지만 오빠에게 실망이라며 종각역 앞에서 고생하고 있을 시위대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고 면박 줌.
이 씨... 너랑 같이 가면 이것저것 챙길게 많아서 그러는 거란 말이다. ;;;;
의식있는 줄 알았더니 시위나가서 술만 먹자고 한다고 혼 남.
낙타형도 날 혼냄. 이럴수가...;;;
결국 종각역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
00: 08
종각역 으로 이동 중 길목을 막고 선 의경들과 잠시 실갱이.
나는 특유의 애교로 '우리는 시위대가 아니라 술마시러 가는 거에요 비켜주셔요~' 라고 하자
이 쪽 길에서 나올 수 는 있어도 들어가진 못합니다, 라며 길목 철저히 봉쇄.
'아이 왜 그러셔요. 저흰 그냥 술마시러 가는 거여요, 시위대가 아니고' 라고 재차 애교부리자
계급 높아보이는 한 넘이 숑을 가리킴.
숑 손에 초가 들려져 있뜸....
뻘쭘해진 숑, 갑자기 과격해지며 의경의 벽을 뚫고 가려는 듯 돌진
"난 시위할거야~!!!!!!" -> 어제의 명대사.
의경들 쪼그만 숑을 간단히 튕겨냄.
낙타형과 나, 숑이 부끄러워 질질 끌고 다른 골목으로 들어감.
병신들, 다른 길은 죄다 뚫려있음. 유유히 종각역 앞에 도착함.
00: 15
삼성타워 앞 도로를 완전히 막아버린 닭장차 수십대.
그리고 빈틈을 촘촘히 메워선 전, 의경들.
그리고 그 앞에서 열렬히 구호 외치고 있는 시위대.
함께 도로가에서 구호 외치기 시작.
슬슬 시위 본능 발동한 나는 전경들에게 "차 빼~!!! 차 빼~!!!" 라며 주차단속반 같은 말들을 외쳐댐.
01: 00
경찰들이 해산하라는 멘트를 우렁차게 날려댐.
시위대도 조까라는 듯 구호 더 크게 외침.
그리고
어디에선가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며 큰소리로 노래 따라부르기 시작하였으나 마음만 앞서 첫음을 너무 높게 잡음.
노래 중간쯤 가자 음을 따라잡지 못하고 삑사리 남.
쪽팔림을 무릎쓰고 옥타브를 낮춰서 노래를 마무리 함.
쪽팔린건지 감동한건지 뜨거워진 마음때문인지 술기운인지 눈물이 핑 돔.
01: 10
경찰들 내부에서 호루라기 소리 들려오며 뭔가 지들끼리 신호 주고받는 듯한 느낌 들며 쉑기들 무장 시작.
숑, 겁먹기 시작함.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숑을 집에 보내려고 시도함.
어쩐 일인지 열혈소녀 숑, 집에 가겠다고 함.
낙타형과 나와 숑, 일단 청계천 쪽으로 가서 숑을 택시 태워 보냄.
비장한 낙타 형과 나, 서로를 마주 봄.
"자 이제 숑도 갔겠다, 맘 편히 상황에 임하자" 라며....
시위대에게 돌아가려다
상황 거의 끝났고 이제 진압과 몸싸움 밖에 없다, 라고 판단한 낙타형과 나...
일단 목을 축이자며 술집으로 이동.... -_-;;
01: 40
소주 한잔을 꺾으며 3차 시위 참가에 대비하던 중 디오게네스에게 전화 옴.
강제 해산 시작됐고 자기도 잠시 어딘가로 들어가 있다고 연락 옴.
타이밍 상, 정황 상 나가서는 안 될 분위기.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함.
02: 30
소주 세병 째 주문;;;;
03: 30
스산한 집회 현장을 뒤로 하고 집으로 귀가.
뻗어버림...
* 이상, 그리 열렬하지 못했던 집회 후기 였슴다.

빠져 나오기 1분 전 시위 현장입니다.
폰카가 저질이고 솜씨도 저질이라 사진이 형편없군요.
첫댓글 12시 반 퇴근의 압박 ㅠㅠ
팔짱끼고 다니길래 형 애인인 줄 알았음.
언제 꼈다고;;;;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여러분!!! 진짜로 그런 적 없습니다. 저 요새 순결해요.
너무나 아끼는 모습이 글 구석 구석이 느껴지는 것으로 볼때;; 블락머신 님이 제대로 본 것 같아 보임;; 글에선 자그맣고 연약한 여자이니 보호한다고 썼으나 뉘앙스를 보았을땐 그런 것이 아니라 사료됨!! ㅎㅎㅎㅎ
자그맣고 연약한건 농생 형님인데...ㅋㅋㅋ
더 위에 헤어진 여친 얘기 안보이세요? ㅠㅠ 보고파요;;; 이거 보면 연락 좀...ㅠㅠ
농구생활 /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어디서 많이 본 문구인듯..
누가 농구생활님께 돌을 던질 수 있읍니까? 여러분~
저요~ 저요~~ (응??...;;;)
허허허허허허...
허위사실 유포하지 마세요~~ ㅋ
글을 보니 재미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긴박하지 않는 모습이어야할 촛불문화제가 어느새 긴박해져버린 시위대로 변했는지 그 변화된 속에서 슬픔이 드러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오늘이나 내일 가볼까 생각중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형 고생하셨어요~
저도 금요일에 가보려고요.
수고하셨습니다~
주제가 웃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글이 재미있습니다ㅎㅎ
호오.. 이건... 일거양득...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잡고... 또 뭐 없나... 여튼 고생하셨습니다.(응? ^^;;;)
열혈 소녀 '숑'과는 그런 사이가 아니래두요..-_-;;;
아니.. 왜 전... 술먹는다는 생각을 못했던 걸까요...ㅜㅜ 시위도 하구.. 술도 먹구... 아... (죄송합니다. 댓글 수정했습니다. ^^;;;;)
ㅋㅋ 그렇네요. 시위도 하고 술도 먹고. 그거야말로 일거양득 ^^
갔다가 10시경 귀가 했는데요. 저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쇠고기 반대 100%를 생각했는데, 쇠고기는50%미만이고 50%이상이 2mb라는!!!!!
오빠덕분에 헐렁하게 못살겠다. 매사에 열혈이 되어야 할것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