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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 )
단비하는 칠은방도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자신이 할 일은
지금부터 였다. 청성과 당문 그리고 칠은방을 상대로 승산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싸움은 사천 모든 무인을 상대하
는 것과 진배없었고 둘 중 하나가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싸
움이었다.
준비해 두었던 인피면구(人皮面具)를 뒤집어 썼지만 육 척에
달하는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은 숨길 방도가 없었다.
무산으로 달려간 갈홍아에게도 기대할 바가 없었다. 아무리 무
산파의 문도가 늘었다고 하지만 당문과의 싸움도 벅찬 상태인
데 사천 전 무림과의 싸움이라면...
의지할 곳도 의지할 수도 없는 고독한 싸움이었다.
단비하는 관현 중심가를 빠르게 빠져 나왔다.
유일한 지기였던 이가동의 일도 있었던지라 만나는 모든 사람
이 칠은방도라 생각하고 조심해서 행동했다. 밤거리는 짙은 안
개가 자욱했다. 그에게는 관현을 벗어날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
회였다.
'청성은 삼절 진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칠은방, 당문, 청성
이 손 잡았다면...중원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막강한 문파다.'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청성의 정통 무공을 정(正)으로, 당문
의 독술을 기(奇)로, 칠은방의 수많은 사람들을 정보(情報)로
활용한다면 당할 재간이 없으리라. 구파일방의 태두라는 무당
파만 하더라도 칠은방 하나에 쩔쩔매는 형국인데...
축축한 안개가 찬 공기에 섞여 하얀 서리를 머리에 얹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 냈다.
벌써 동이 틀 시각이었다. 칠은방도가 물러서는 모습을 목격하
기 무섭게 청성산을 빠져 나와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시간이 많
이 걸렸다.
'성도로 가면 틀림없이 발각된다. 당문이나 청성이 도저히 생
각할 수 없는 곳이라면...아미(峨嵋)다.'
사지(死地)라 하여 피해 갈 의도는 없었다. 목적이 분명한 이
상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일지라도 걸어갈 심산이었다. 하지만
약간의 승산이라도 있어야 한다. 만약 방도가 전혀 없다면 목
숨을 하늘에 맡기고 걸어가겠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도 일말의 승산을 만들 수 있는데 애써 죽음을 선택할 필
요는 없었다.
'아미산은 성도 못지않은 영약의 보고(寶庫). 거미줄처럼 총총
히 깔린 약재상들의 이목만 피할수 있다면...'
칠은방도들은 염려되지 않았다.
청성파야 삼절 진인이 칠은방과 손을 잡았으니 무뢰배들이 설
친다고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미산 주변은 아미
파가 건재하는 한 칠은방도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리라.
한겨울의 햇살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축축한 안개가 녹으
면서 투명한 풍경을 그려 냈다. 맑고 시원한 공기, 어느 농가
에서 아침밥을 짓는지 구수한 냄새가 코 끝을 간질였다.
그러나 단비하는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듯 길목 한쪽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노인을
보는 순간 솜털까지 일어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허허허! 늦었구먼. 청성산에서 칠은방도들이 미혼독에 중독사
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왔네. 청성산을 다 뒤질 수는 없고...
관현을 빠져 나오는 길은 이 길뿐이라...닷새나 기다렸네."
노인은 손자에게 이야기하듯 다정다감하게 말을 건네 왔다.
"만초신의..."
들릴락말락 극히 작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당문 십절 중 일인...제일실 만채실의 실장인 만초신의 당중화
였다. 목적은 분명했다. 후위대주의 복수, 만채실장과 후위대
주의 오랜 교분은 사천 사람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깊고 깊
었다.
'시간이 없다. 속전속결...'
삼절 진인이 가만있지 않으리라. 지금쯤 명을 받은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달려오고 있으리라.
관현을 빠져 나오는 유일한 관도가 이 길뿐이고, 소위 머리를
쓴다는 사람들은 필요없으면서 께름칙한 적을 살려주는 법이
절대 없으니까.
단비하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다가 아차 싶었다.
독이 없었다. 대조독, 미혼독...모두 써버렸다. 품속에 있는
독이라고는 어린애 장난같은 섬백단 한 알 뿐이었다.
'가람신공을...'
더 안될 말이었다. 설혹 가람신공이 천하제일공이라 할지라도
숙련도가 낮아 당문 십절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물며 천하제일공도 아닌 바에야.
"독으로 하겠습니까?"
방법이 없었다. 독이든 검이든 상대가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였
다.
"허허허! 자리를 만들어 놨네.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이기는 뭐
하지만 둘 중에 하나는 마지막 길이 아닌가? 우리 술이나 한잔
한 다음 손속을 겨뤄 보세나."
단비하로서는 엎드려 절을 할 만큼 반가운 소리였다. 빨리 관
도에서 벗어날수 있고 만초신의를 상대할 방법을 강구할수 있
으니까.
조그만 야산에 만들어진 술자리는 정녕 볼품없었다.
술은 담근 지 두어 달도 채 안 되는 독한 화주(火酒)가 두 말,
안주라고는 기름종이에 쌓아두었던 마른 육포가 전부였다. 그
나마들 기름 냄새가 배어 역겨울 정도로 비위가 상했다.
"허허허! 마지막 자리 치고는 너무 형편없지?"
"마실 만 하군요."
술독 하나를 들어 거침없이 들이키면서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쯧쯧쯧! 독이라도 들었으면 어쩌려고...아직 젊군그래. 조심
성이 없어."
만초신의 당중화는 선천적으로 과묵한 성격이었다. 거기에 맡
은 일 또한 만채실이다. 보니 사람과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일 년 중 당문에 머무는 날이 채 두 달을 넘지 않았다. 희귀한
약초가 있다는 소문만 들어도 바랑을 짊어지고 훌쩍 떠나곤 하
였다.
하지만 일원 유명원주 염라독객 당치대와 더불어 가장 무서운
사람중에 한 사람으로 지목되는 사람이었다. 말이 없고 행동이
모호한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니
까. 어쩌면 염라독객과 만채실장은 당문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인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의 눈에는 기껏해야 독제실의 생체
실험 도구 정도는 우습게 보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상대한다...어떻게...'
단비하는 내심을 숨기고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적어도 술독
에 있는 술이 동나기 전에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휴우! 이제 당문에 귀속칠가는 없네."
당중화는 뜨거운 빛을 발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겨울 해를 바
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알고 있습니다."
"내 말은...귀속칠가 사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
다는 말일세. 알아 듣겠는가?"
하마터면 술독을 떨어뜨릴 뻔했다.
"한연지는?"
"행방불명이네."
"사마전은?"
"죽었네."
더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묻지 못했다. 만약 예상했던 대답
이라도 나온다면 안 듣느니만 못했다. 귀속사가의 부녀자들은?
혈뇌옥이 적격이었다. 나중에 누가 뭐라하면 시신이라도 보여
줄수 있으니까.
인간 생체 실험 건으로 파견되었다는 소림화상은? 올 수도 있
고 안 왔을 수도 있지만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하고 돌아갔으리
라. 당문주의 간계는 빈틈 없으니까.
이상한 것은 한연지에 대한 감정이었다.
행방불명 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도
한때는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 준 여인인데 잊었다고 생각했지
만, 그래도 생사절명의 상태를 본다면 구할 수밖에 없다고 생
각했는데...생면부지 남남처럼 덤덤했다.
"휴우!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는가?"
만초신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나방이 껍질을 벗고 새 생명을 얻듯 당문은 새로 태어나고 있
다네. 그 와중에 버림받는 사람도 있지, 후위대주와 당자인이
그렇고 나 또한 버려졌지.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당문 십절 중
절반 정도는 죽을거야."
"당문 십절은 같은 혈족 아닙니까?"
"뿌리는 같지. 하지만 관계가 너무 멀어. 당씨 성을 쓴다는 것
외에는 남이나 마찬가지지."
"후후후! 골육상잔(骨肉相殘)이군요. 업보는 후대에나 받는다
는데 당문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비웃어도 좋네. 하지만 거듭 태어나는 당문은 분명 강할거야.
아마 구파일방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겠지. 그 영화를 보
고 싶네만 인연이 닿지 않아."
만초신의는 아쉬운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없다. 정면 승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부지런히 대응 방법을 강구했지만 뾰
족한 수가없었다. 가람신공과 섬백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
외에는...
술독에 남은 술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이켰다.
"자네가 개발한 독이 있다고 들었네. 풍문에는 대조독이라고
하던데...독제실에서 당자인과 후위대주의 시신을 부검한 사실
은 알고 있나?"
"관습이니...내가 만든 독을 속속들이 알고 있겠군요."
"당연한 소리. 하지만 나는 들은 바 없네. 잘 알다시피 독제실
장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독제실에서 연구한 모든 것은 전적으로 독제실장의 권한하에
처리 되었다. 물론 문주에게 빠짐없이 보고되었지만 문주가 나
서서 왈가왈부한 적은 없었다.
문주는 당문 십절이 맡은 기관(機關)에 대해서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위임했다.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
면서. 그 결과 육실, 삼대, 일원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뜻은?"
"후위대주가 대조독에 죽었네. 나에게도 대조독을 사용해 주
게. 내가 죽는다면 친구와 같은 죽음을 당하니 행복하고, 이긴
다면 복수를 하게 되어 통쾌하니까."
"일거양득(一擧兩得)이군요. 하지만 대조독은 없습니다."
순간 만초신의의 얼굴이 노기로 새하얘졌다.
"나에게 감히 그따위 말을..."
"다른 뜻은 없습니다. 지금 내 품속에 있는 독이라고는 섬백단
한 알뿐...검으로는 상대가 안 될 테고...섬백단을 어떻게 사
용할지 생각 중입니다."
만초신의는 인뜻 진위 구분이 가지 않는지 뚫어지게 단비하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거짓이 없다는 것을 읽고는 곧 너
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만초신의를 상대로 섬백단이라...허허허! 대단한 뱃
심이야. 허허허! 좋아. 대조독을 연단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
리나?"
단비하의 얼굴에 기광이 일렁였다.
만초신의의 뜻을 알아들었다. 기회를 준다면 얼른 받을 수밖
에.
"열두 시진."
"좋아, 연단하게."
"약재가 없습니다."
"구해다 주지."
단비하는 대조독을 연단하는 데 필요한 약재와 분량을 구술했
다.
"이런 엉터리 단방전이..."
만초신의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마음대로 뒤틀렸다. 그에게는
단비하가 도망가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
다. 평생을 약재와 더불어 살아 왔지만 이런 엉터리 단방전은
처음이었다. 지적하라면 서로 상극이 되는 약채를 다섯 가지는
꼽아낼 수 있었다.
쉬익!
번개처럼 신형을 날린 만초신의는 단비하의 마혈(痲穴)을 짚었
다. 약재를 구해 오는 동안 도주하지 못하도록.
커다란 무쇠솥에 담긴 약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고약한 냄
새를 풍겨 냈다.
만초신의는 눈을 부릅뜨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러나
채 일각이 지나지 않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앉았다.
화로의 불길을 조절하는 단비하의 모습이 지극히 정성스러웠
다. 엉터리 단약을 제조하기 위해 눈속임하는 것 같지는 않았
다.
"단방전을 설명해 줄수 없나?"
"미안합니다. 단방전을 설명해 주면 무슨 독인지 짐작하실 겁
니다. 그러면 제가 살수 있는 확률이 적어지죠."
"그렇군."
독문 사람이 독에 관해 묻는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만초신의는 서슴없이 물었다. 약초의 배합에 관한 열정
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알려 줄 수가 없었다. 만약 성
분을 알려 준다면 그만큼 방비하기가 쉬웠다. 목숨을 건 결전
만 없다면 알려 줄수도 있는데.
그런 독을 연단하라고 약재를 구입해 준 만초신의도, 독제실에
서 알고 있는 독을 만초신의가 모른다는 것도...모든 게 모순
이었다.
"제일실에는 정확히 천오백아흔두 가지의 약재가 있다네. 그
중 천가지만 알아도 신의(神醫)라는 소리를 듣지. 약재를 아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미(五味)라네. 신맛, 쓴맛, 단맛, 짠
맛, 매운맛...그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희노우사비경공(喜
怒憂思悲驚恐) 칠정(七情)의 허실(虛實)을 알아야지."
만초신의는 기다리기 지루한 듯 자신이 알고 있는 약재들의 특
성을 주절대기 시작했다.
"대복피(大腹皮)라고 아는가? 알겠지. 대조독을 만들 정도라
면...자네도 알다시피 빈랑(檳郞)의 껍질이라네. 이뇨에는 즉
효지. 빈랑나무는 더운 지방에서만 자생하며, 잎은 줄기 끝에
총생한다네. 과실은 달걀꼴이고 황적색. 달지만 떫지."
단비하는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건 또 뭔가? 만초신의
는 마치 죽음을 앞에 둔 노인이 유언을 하듯 평생 갈고 닦은
지식을 토해내고 있지 않은가.
풀무질하는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흘려듣듯
들었지만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도...아버지로부터 골기
도찰법으로 익힌 약독 중의 내용과 거의 중복되었다. 다른 점
이 있다면 시간이 없어 설명받지 못했던 부분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는 것.
단비하의 지식은 깊이를 더해 갔다.
단비하와 만초신의는 이 장 거리를 두고 마주섰다.
조그만 야산이지만 수목이 거의 없었고 바람은 서풍(西風)이었
다. 바람만 가지고 논한다면 단비하는 북의 위치를, 만초신의
는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어느쪽도 유리하지 않았다.
둘 다 피수투를 낀 상태였다. 단비하는 복면인들에게서 빼앗은
흑색 피수투를, 만초신의는 당문에서 자체 개발한 녹색 피수투
를...피수투는 단비하의 것이 좋았지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
었다. 만초신의가 비폭십팔수나 당절삼해를 펼친다면 피수투의
우위가 한결 감소될 것이 분명했다.
"꼭 싸워야만 합니까?"
어쩐지 만초신의와는 싸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허허허! 자네는 왜 당문을 적으로 돌렸는가? 후위대주는 왜
자네를 찾았는가?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를 용서할수 있
겠는가? 은원이란 끝이 없는 것이네. 자네처럼 나도 벗의 복수
를 해야 한다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당문에서 같이 살았다는 이유로 적이
되다니.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인생을
살았다면 좋은 선후배가 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간닷!"
만초신의는 단비하의 결단을 촉구하듯 선제 공격을 가해 왔다.
예측했던 대로 당절삼해였다. 독은 구더기에서 체취한 후란독
이었다. 후란독은 마치 계란 썩는 듯한 냄새를 풍겨 단번에 알
아볼 수 있는 평범한 독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당문 십절
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이기도 했다.
타악...!
단비하는 피수투 장심에 갈무리된 대조독을 쏘아내지 않고 따
로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대조독 여섯 봉지 중 한 봉지를 꺼내
마주 터뜨렸다. 지금은 승부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피수
투에 있는 독은 한번 쏘아내면 끝. 최후의 기회를 기다리며 아
껴 두었다.
치지직...!
후란독과 대조독이 부딪치며 기음을 터뜨렸다. 독과 독이 부딪
치며 서로 중화되었다.
"흐흐흐...!"
만초신의가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후란독과 상반되는 독이
라면 혈액독이었다. 혈액에 침투하며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지
는...하지만 침투 경로가 단순했다. 아무리 맹독을 지닌 독사
가 있다 해도 뭐 하겠는가. 물리지만 않으면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독이 혈관으로 침투하려면 병기를 쓰는 것이 기본 상식
이었다.
만약 독문 사람이 독병(毒兵)을 쓴다면 거의가 혈액독이 묻은
병기였다.
좀더 독공이 진보하면 단비하처럼 병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무산일괴가 사용하는 흑풍사처럼 피부
에 손상을 줄수 있는 자연 기물을 사용해야만 했다.
피부 손상이 없으면 절대 중독될 염려가 없는 독. 독성이 강하
고 치사 시간이 빠른 반면 치명적인 결함도 가진 독이었다.
만초신의는 입술을 오무려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외관상 혈
액독을 흡수할 수 있는 곳은 입술과 콧속의 점막뿐. 하지만 입
술을 안으로 밀어 넣고 호흡을 멈춘다면 혈액독은 무용지물이
었다.
파앗...!
만초신의의 피수투에서 화려한 색조가 터져 나왔다.
당문 십독 중 서열 이의 투골독과 칠위 무시독이 한꺼번에 터
지면서 그려 낸 빛깔이었다. 중독 즉시 즉사한다는 절대독만
아니라면 손으로 만져 보고픈 아름다운 색조였다.
사라락...!
옷소매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승부를 걸어 왔다면 이쪽도 승부...양손이 함께 들려지며 피수
투에 갈무리했던 대조독 두 개가 한꺼번에 발출되었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치지익...!
첫 번째 대조독은 아름다운 색조와 부딪치며 기음과 하얀연기
를 뿜어 냈다. 역시 중화된 것이자.
순간 만초신의의 두눈은 경악으로 한껏 부릅떠졌다.
후란독은 부시독이었다. 사람에게 살포하면 죽은 지 몇 달 된
사람처럼 고름이 형성되며 살갗이 썩어 들어가는...그러나 후
란독을 상용하는 것은 독성 때문이 아니었다. 부시독은 어떤
생물이나 물체를 막론하고 모조리 썩히기 때문에 다른 독과 부
딪쳤을 때 같은 부시독이 아닌 이상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
큼 중화 작용을 일으켰다.
중화되는 정도를 관찰하고자 함이었다.
중화되면서 내는 기음이 어떤 소리이며 연기가 일어나는지, 일
어난다면 무슨 색인지, 연기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이런 점
을 관찰하면 상대의 독성분을 알수 있었다.
그 다음 상대의 독을 제압하는 독을 하독하면 필승이 보장되었
다. 단비하의 대조독은 혈액독...그래서 혈액독과 극성인 장기
독을 사용했다. 바로 투골독과 무시독을 약간이라도 피부에 접
촉하면 바로 모공(毛孔)을 타고 들어가 장기를 녹여 버리는...
흡입이라도 하면 더욱 좋았다. 공기를 따라 들어간 장기독은
식도를 태우고 위장을 녹일 테니까.
만초신의가 놀란 점은 장기독인 투골독과 부시독이 중화되었다
는데 있지 않았다. 그 점은 예상했다. 원래 제일 공격은 상대
의 독과 중화되기 마련이니까. 그가 놀란 이유는 자신이 전개
한 독과 대조독이 중화된 현상 때문이었다.
장기독과 혈액독이 부딪치면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것이 상
례였다. 그런데 흰 연기가 솟구쳤다. 이것은 신경독과 장기독
이 증화되며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상.
파앗!
만초신의는 다급한 나머지 두 번째 공격을 재빨리 시전했다.
아! 그러나 이미 단비하의 두 번째 독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
다. 혈액독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철저한 방비를 했으니
까. 신경독이라면 이렇게 달려들지 않았다. 신경독, 신경독...
피독단을 입에 물고 공격하면 충분한데.
코의 점막이 바늘로 찌르는 듯 따끔거렸다.
호흡을 하지는 않았지만 접촉하는 것까지 막을수는 없었으니
까.
'역시 신경독...'
통증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코가 떼어지는 듯 머
릿골까지 울리는 고통에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 그러자 기다
렸다는 듯 흡입되는 독기.
"크으윽...!"
'공격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부릅뜬 눈에 단비하의 모습이 잡혔다. 어느덧 이 장 밖으로 달
아난 단비하는 측은한 눈빛을 보내 왔다. 실로 간발의 차이였
다. 상대방의 독을 잘못 판단한 착오가 빚어 낸 결과였다.
전신이 뼈가 없는 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뇌와 척추가 마비되
면서 오는 증상이었다. 전신의 모든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혀가 마비되고 소리가 들리지 않고 풍경이
가물거리더니 암흑속에 잠겨 들었다.
'역시 신경독...!'
신경독이라 단정을 내리던 만초신의는 불현듯 들끓어 오르는
혈맥을 감지하고 의아심을 품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는가
싶더니 터질듯 팽창되었다. 숨이 막혀 왔다.
'이, 이건 혈액독인데? 그럼 신경독과 혈액독의 혼합?'
만초신의는 웃으려고 했다. 하지만 허물어지는 몸은 웃을 여유
조차 앗아 갔다. 종류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독을 혼합할 수 있
는 수준이라면 문주와 버금가는 경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독에 죽는다는 것은 독인으로서는 영광이었다.
'야지(野地)...독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
다. 만약 후위대주와 겨뤘을 때처럼 밀폐된 공간이었다면 양패
동사, 위험천만이었다.'
단비하는 오공에서 피를 토하고 죽은 만초신의의 시신을 보면
서 부르르 치를 떨었다. 만약 만초신의가 보자마자 공격해 왔
다면...섬백단 하나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목숨과 바꾼 교훈을 얻었다.
어떠한 상황속에 있더라도 독이 없으면 움직이지 말것.
단비하는 양지 바른 곳을 골라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만초신의가 불쌍해 보였다. 그의 죽음은 필연이었다. 아니 단
비하의 손을 빌려 자살 했는지도 모른다. 여생이 얼마남지 않
은 노인에게 평생을 바쳐 충성했던 집단으로부터 받은 배신감
은 잔혹한 고문이었으리라.
만초신의가 말한 것을 종합해 보면 당문 십절의 하나이면서도
당문에서 벌어지는 일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철저하게 외면당
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또 있으리라. 그들 역시 죽음을 당하겠지. 누굴
까? 독제실장? 암기실장? 수독실장...?
모든것이 불분명했다. 일을 벌이는 목적도 문파들간의 연관관
계도, 자신을 살려 두는 이유도...
분명한 것은 방사를 완성하고 새로운 절독을 개발해야 약간의
승산이라도 있다는 것.
만초신의의 시신을 묻었다.
그리고 기다란 그림자를 남기며 길을 재촉했다. 아미, 아미
로...
< 第 三 卷 終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함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ㄳ
즐감하고 감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거웠습니다.